<제85장>
西傾과 朱圉와 鳥鼠로 至于太華하시며 熊耳와 外方과 桐柏으로 至于陪尾하시다
서경과 주어와 조서로부터 태화에 이르셨으며, 웅이와 외방과 동백으로부터 배미에 이르셨다.
○西傾朱圉鳥鼠太華는 雍州山也요 熊耳外方桐柏陪尾는 豫州山也라 西傾은 見梁州하니라 朱圉는 地志에 在天水郡冀縣南이라하니 今秦州大潭縣也니 俗呼爲白巖山이라 鳥鼠는 見雍州하니라 太華는 地志에 在京兆華陰縣南이라하니 今華州華陰縣二十里也라 熊耳는 在商州上洛縣하니 詳見豫州라 外方은 地志에 潁川郡崇高縣에 有崇高山한대 古文에 以爲外方이라하니 在今西京登封縣也라 桐柏은 地志에 在南陽郡平氏縣東南이라하니 今唐州桐柏縣也라 陪尾는 地志에 江夏郡安陸縣東北에 有橫尾山한대 古文에 以爲陪尾라하니 今安州安陸也라 西傾에 不言導者는 蒙導岍之文也일새라 此는 北條大河南境之山也라
○서경과 주어와 조서와 태화는 옹주의 산이고, 웅이와 외방과 동백과 배미는 예주의 산이라. 서경은 양주에 보이니라(禹貢 제70장). 주어는 『지리지』에 천수군 기현의 남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진주 대담현이니 속칭 백악산이 되니라. 조서는 옹주에 보이니라(禹貢 제76장). 태화는 『지리지』에 경조 화음현의 남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화주 화음현의 이십 리라. 웅이는 상주 상락현에 있으니 예주에 자세히 보이니라(禹貢 제55장 앞주). 외방은 『지리지』에 영천군 숭고현에 숭고산이 있는데, 고문에서는 외방이 된다하니 지금의 서경 등봉현에 있음이라. 동백은 『지리지』에 남양군 평씨현의 동남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당주 동백현이라. 배미는 『지리지』에 강하군 안륙현의 동북쪽에 횡미산이 있는데 고문에서는 배미가 된다하니 지금의 안주 안륙이라. 서경(의 앞)에 도(導)를 말하지 않은 것은 견의 글(앞글인 禹貢 제84장)을 받았기 때문이라. 이것은 북쪽 가지인 대하 남쪽 지역의 산들이라.
<제86장>
導嶓冢하신대 至于荊山하시며 內方으로 至于大別하시다
파총산을 인도하셨는데 형산에 이르셨으며 내방산으로부터 대별산에 이르셨다.
○嶓冢은 卽梁州之嶓也니 山形如冢이라 故로 謂之嶓冢이니 詳見梁州하니라 荊山은 南條荊山이니 地志에 在南郡臨沮縣北이라하니 今襄陽府南章縣也라 內方大別은 亦山名이니 內方은 地志에 章山이니 古文에 以爲內方山이라 在江夏郡竟陵縣東北이라하니 今荊門軍長林縣也라 左傳에 吳與楚戰할새 楚濟漢而陳하여 自小別로 至于大別이라한대 蓋近漢之山이니 今漢陽軍漢陽縣北大別山이 是也라 地志水經에 云在安豐者는 非是라 此는 南條江漢北境之山也라
○파총은 곧 양주의 파산이니, 산의 모양이 무덤과 같으므로 파총이라 이르니 자세한 것은 양주에 보이니라(禹貢 제63장). 형산은 남쪽 가지인 형산이니, 『지리지』에 남군 임저현의 북쪽에 있다하니 지금의 양양부 남장현이라. 내방과 대별은 또한 산 이름이니, 내방은 『지리지』에 장산이니 고문에서는 내방산이라고 하니라. 강하군 경릉현의 북쪽에 있다 하니 지금의 형문군 장림현이라. 『춘추좌전』에 오와 초가 전쟁할 때에 초가 한수를 건너 진을 쳐서 소별산으로부터 대별산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대개 한수 근처의 산이니 지금의 한양군 한양현의 북쪽 대별산이 이것이라. 『지리지』와 『수경』에 안풍에 있다고 한 것은 옳지 않으니라. 이것은 남쪽 가지인 강수와 한수 북쪽 지역의 산이라.
<제87장>
岷山之陽으로 至于衡山하시며 過九江하사 至于敷淺原하시다
민산의 남쪽으로부터 형산에 이르셨으며, 구강을 넘으시어 부천원에 이르셨다.
○岷山은 見梁州하니라 衡山은 南嶽也라 地志에 在長沙國湘南縣이라하니 今潭州衡山縣也이라 九江은 見荊州하니라 敷淺原은 地志에 云豫章郡歷陵縣南에 有博陽山한대 古文에 以爲敷淺原이라하니 今江州德安縣博陽山也라 鼂氏以爲在鄱陽者는 非是라 今按컨대 鼂氏以鄱陽有博陽山하고 又有歷陵山하니 爲應地志歷陵縣之名이라 然이나 鄱陽은 漢舊縣이니 地不應又爲歷陵縣이라 山名偶同이니 不足據也라 江州德安이 雖爲近之나 然이나 所謂敷淺原者는 其山甚小而卑하니 亦未見其爲在所表見者라 惟廬阜는 在大江彭蠡之交하고 最高且大하니 宜所當紀志者로대 而皆無考據하니 恐山川之名이 古今或異하여 而傳者未必得其眞也니 姑俟知者하노라
○민산은 양주에서 보이니라(禹貢 제63장). 형산은 남악이라. 『지리지』에 장사국 상남현에 있다하니, 지금의 담주 형산현이라. 구강은 형주에서 보이니라(禹貢 제48장). 부천원은 『지리지』에 예장군 역릉현의 남쪽에 박양산에 있고, 고문에서는 부천원이라 하니, 지금의 강주 덕안현 박양산이라. 조씨가 파양에 있다고 한 것은 옳지 못하니라. 이제 살펴보건대 조씨가 파양에 박양산이 있고 또 역릉산이 있다고 하니, 『지리지』의 역릉현의 이름과 응한다고 간주함이라. 그러나 파양은 한나라의 옛 현이니, 땅이 응하지도 또한 역릉현이 되지도 못함이라. 산 이름이 우연히 같으니 족히 증거 하지 못하니라. 강주의 덕안이 비록 가깝기는 하나 이른바 부천원은 그 산이 매우 작고 낮으니 또한 그 간주함이 겉으로 나타난 바에 있다고 볼 수 없음이라. 오직 여부는 대강과 팽려의 교차점에 있고 가장 높고도 크니 마땅히 계통을 세워 기록해야 하지만 모두 살펴서 의거할 것이 없으니, 아마 산천의 이름이 옛날과 지금이 혹 달라서 전하는 자가 꼭 그 참을 얻지 못한 듯하니, 놔두고 아는 자를 기다리노라.
過는 經過也니 與導岍逾于河之義同이라 孔氏以爲衡山之脉이 連延而爲敷淺原者는 亦非是라 蓋岷山之脉이 其北一支는 爲衡山而盡於洞庭之西하고 其南一支는 度桂嶺하여 北經袁筠之地하여 至德安하니 所謂敷淺原者는 二支之間으로 湘水間斷이라 衡山은 在湘水西南하고 敷淺原은 在湘水東北하니 其非衡山之脈이 連延하여 過九江而爲敷淺原者는 明甚이라 且其山川崗脊源流 具在眼前이로대 而古今異說이 如此어늘 況殘山斷港으로 歷數千百年者를 尙何自取信哉아 岷山에 不言導者는 蒙導嶓冢之文也일새라 此는 南條江漢南境之山也라
과(過)는 경과함이니 견산을 인도하여 하수를 넘는다는 뜻과 같으니라. 공씨가 “형산의 맥이 이어져 벋어 부천원이 되었다.”고 한 것은 또한 옳지 못하니라. 대개 민산의 맥이 그 북쪽 한 가지는 형산이 되어 동정의 서쪽에서 다하고, 그 남쪽의 한 가지는 계령을 넘어서 북쪽으로 원균의 지역을 지나 덕안에 이르니 이른바 부천원은 두 갈래의 사이로 상수가 사이에서 끊어짐이라. 형산은 상수의 서남쪽에 있고, 부천원은 상수의 동북쪽에 있으니, 형산의 맥이 이어져 벋어 구강을 지나 부천원이 되었다는 것이 아님은 더욱 분명함이라. 또한 그 산천의 산등성과 원류가 눈앞에 온전히 있는데도 고금의 다른 설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나지막한 산과 끊어진 뱃길로 수천백 년이 지난 것을 오히려 어찌 스스로 취하여 믿으랴! 민산에 도(導)자가 없는 것은 파총을 인도한다는 문장(禹貢 제86장)을 이었기 때문이라. 이것은 남쪽 가지인 강수와 한수의 남쪽 지역에 있는 산이라.
출처 : 『書經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