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명의 발생과 문명의 교류, 융합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 그리스와 로마를 포함하는 지중해 연안 지역, 실크로드 주요 지역, 인도,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의 문명 발생지이자 우리 문명의 시원이라 생각되는 요하문명(홍산문명) 지역, 또 남미 페루의 잉카문명을 볼 수 있는 마추픽추에 가보고 싶다. 이번 터키.그리스 지역 여행을 통해 지중해 지역의 극히 일부를 답사하였는데 나머지 지역엔 언제쯤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ㅠ
인간의 탄생-성장-죽음이라는 인생의 싸이클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지역의 문명 역시 탄생과 성장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나는 이러한 인류문명을 일으킨 국가(제국)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화려했던 번영의 시기를 거쳐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에도 관심이 많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한 청나라의 황금기를 가져왔던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시기의 강건성세 (1661-1796년; 135년간)가 지나고 왜 청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삼황제 각각의 평전을 읽어봤는데,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청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다름아닌 황제 시스템 그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똑똑하고 현명한 황제가 등장했을 경우엔 번영을 구가했지만, 후임자인 황세자가 늘 선대 황제만큼 똑똑하고 현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현명한 황제일지라도 그의 판단이 늘 옳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황세자 간택을 두고는 권력 암투가 빈번히 일어났고 피바람이 몰아쳤다.
로마제국 역시 팍스 로마나를 구현했던 5현제 시대 (96-169년; 73년간)가 지나면, 40년간 20명의 황제가 암살되고 바뀌는 군인황제시대를 거쳐 몰락의 길을 걸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팍스 로마나 시기가 지나자마자 왜 갑자기 혼란의 시기가 됐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조 후기 르네상스 시기라 불리던 영.정조 시대가 끝나자마자 망국의 길을 향해 걸었다. 청나라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서태후처럼 정순왕후 때문인가?
지금은 대의 민주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이 뽑는다. 과거처럼 왕이나 황제 1인의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정치권력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한 국가의 번영과 몰락은 과거와 같은 과정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지지에 의해 정치 지도자를 뽑는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장점이 점차 흐려지고, 정치가 돈에 의해 좌우되고 정치인의 자질이 저질화되는 양상을 보여 현재와 같은 방식의 선거로 정치 지도자를 뽑는 미국이나 일본,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제도와 다른 현재 중국의 정치제도, 지도자를 뽑는 방식과 이렇게 뽑힌 지도자가 보이고 있는 역량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중국의 외교 전략과 현대판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는 그들의 일대일로 (一带一路, One
Belt One Road) 국가전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병자호란을 당할 때처럼 전략.전술이란 게 거의 없고, 국내에선 정쟁이나 일삼고, 자신의 무지는 깨닫지 못하고 국민을 훈계하려 들고, 유엔에 가서 40년전 새마을운동 타령을 하는 우리 정치 지도자와 너무 비교되어 이렇게 계속 갈 경우 일어날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되어 내 아이 세대가 무척이나 걱정스럽다.
이번 터기 여행을 하면서,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에서 터키 민족의 화려했던 영광의 시대를 볼 수 있었고,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몰락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16-17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확장과 제국의 영광을 가져오는데 한 몫을 했던 예니체리 보병 시스템이 19세기 이후에 오스만 제국 몰락의 한 요인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어떤 시기에 효과적이었던 시스템이나 제도도 세월이 지나 둘러싼 내외환경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역사가 일러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머지 않은 시기에 G2 시대를 거쳐 중국에 G1 자리를 넘겨주게 되겠지만, 역사적 교훈에 적절히 대응하여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나 제도를 비교적 빠르게 교정할 줄 아는 미국이 G1 자리를 쉽게 중국에 내줄 것 같지는 않다.
터키 팜필리아 지방의 페르게, 아스펜도스, 시데의 폴리스 유적과 이오니아 지방의 에페소스 폴리스 유적에서, 그리스인의 신화적 상상력과 로마인의 고도로 발달된 건축술을 볼 수 있었다. 만약 그리스 신화라는 스토리 텔링이 없었다면 그리스.로마문명이 남긴 유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돌맹이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의 신과 영웅은 신화의 시대에서 신앙의 시대로 바뀌면서 숭배의 대상에서 잡신의 자리로 떨어지고 그들의 성소는 파괴되었지만, 인류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형성된 신화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결코 소멸될 수 없는 것이었다. 별빛이 총총한 아스펜도스 고대 극장에서 관람했던 발레공연은 이번 여행을 꿈결같이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화산 지대에서 본 버섯모양의 커다란 바위는 무척 신비했고, 괴뢰메에서 이른 새벽에 탑승한 벌룬 투어는 여행의 재미를 더해줬지만, 으흘라라 계곡에서 시냇물을 옆에 끼고 숲길을 따라 걷던 트래킹과 주름 잡힌 붉은 토양의 로즈밸리에 올라 저 멀리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태양을 아내와 함께 바라보던 그 때가 나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파묵칼레에서 온천수가 찰랑거리며 흘러내리는 까끌까끌한 석회암층을 밟고 올라갈 때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그 촉감은 무척이나 황홀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 때도 이런 느낌이 들까?
이번 여행에서 해넘이 광경을 여러 곳에서 지켜봤지만, 가장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 곳은 파묵칼레의 다랭이 논처럼 생긴 석회암층에서 바라본 석양이었다.
여행 중에 친절했던 터키인을 길에서, 오토가르에서, 숙소에서, 유적지에서 종종 만났다. 그들이 베푼 작은 친절이 이번 여행을 지치고 않고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차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사프란볼루에서 우연히 만났던 터키의 예쁜 소녀들이 나에게 준 선물 (터키 전통가옥 모형)은 이곳에서 머문 하루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주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날 클래식 투어와 둘째날 로맨틱 투어, 그리고 야경 투어를 안내한 예쁜 한국인 가이드에게도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장기 여행을 걱정해 주고, 카톡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 예쁜 딸아이와 여행 내내 카톡으로 여행지 얘기를 함께 나누면서 즐거운 여행길이 되도록 응원해 준 형제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길을 꼼꼼히 준비하여 큰 어려움과 빠뜨림 없이 여행지를 유람할 수 있도록 하고, 나의 까탈스런 성격을 잘 참고 견뎌 준 아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끝으로 터키의 혁명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쓴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나의 문명 답사의 한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Nazim Hikmet)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이번 터키 여행길에서 본 무궁화
![](https://t1.daumcdn.net/cfile/cafe/23524F435642ED3C28)
터키 여행길에서 만난 꽃
![](https://t1.daumcdn.net/cfile/cafe/2222F3355642ED9A17)
터키 여행길에서 만난 고양이. 터키는 고양이가 행복한 나라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150D355642ED9C1F)
첫댓글 감사^^
저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