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집중하는 것과 마음을 모으는 데는 소리를 내서 그 소리를 듣는 이근원통 (耳根圓通 듣음에 의지하여 깨달음에 들어감) 이 제일 이라 합니다. 다라니이든 , 관세음보살이든 , 나무 아미타불이든, 인연에 따라 주 바라밀을 선택하여 끊임없이 염송하면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그것을 사마타 (samatha)라 하고 정(定)이라, 지(止)라, 일행(一行) 이라 합니다.
마음이 모아졌을 때 망상과 병고와 우환이 함께 사라집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졌을 때 망상과 병고와 우환이 침범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모우는 것으로만 끝나는 수행은 반쪽짜리 수행입니다. 반드시 마음을 모아서 비춰 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낱낱이 정밀하게 현상을 비춰 보고 통찰할 때 현상이 공(空)함을 알고, 인연(因緣) 행상(行相)임을 깨닫고 고해의 바다를 견너가는 지혜를 드러냅니다. 그것을 '위빠사나' 라고 ,' 혜(慧)' 라고, '관(觀)' 이라고, '일상(一相)' 이라고 말합니다. 즉 관찰(觀察)입니다. 우리가 마음닦기를 위해 사유하는 방법은 집중과 관찰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정(定)과 혜(慧) (지(止)와 관(觀)) (일행(一行) 과
일상(一相)이 함께할 적에 그것을 바른 수행이라고 합니다.
어느 선지식이 "한국 불교는 정은 있는데 혜가없다. 나는 보조국사의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배우겠다." 고 말씀 하신적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부했다고 하지만 어딘가 그늘이 있는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대부분이 마음을 모으는것까지는 잘하지만 통찰하는 지혜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집중은 잘되는데 관찰이 부족한분도 있고 관찰은 잘 되는데 집중이 부족한 분이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나의 업이 보여도 금생에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원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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