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근 요트 항해학교/세계일주/한국연안뱃길연구소

2023년 6월 20일 – 타이완으로! 코타키나발루 (KK)의 마지막 저녁을 마리나 1층 레스토랑에서 보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던 아프리카의 지부티 앵커리지에서는 차라리 일주일을 보내기 쉬웠다. 하지만 온갖 멋진 시설이 다 있고 가족들끼리 환하게 웃으며 관광하는 유명 휴양지에서, 혼자 3박 4일을 보내기는 정말 쉽지 않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왔고, 화요일 오전에 떠나니 실제로는 일, 월 이틀만 제대로 KK에서 보냈는데도 굉장히 오랫동안 빈둥거린 느낌이다. 느긋하게 여행 온 것도 아니고, 혼자 관광할 것도 아니고, 최대한 빨리 한국에 가야하는 딜리버리 항해라 더 그렇다. 항해의 목적이 어중간해져 버렸다. 내일부터 계속 항해니, ‘저녁이나 제대로 먹자!’ 해서 마리나 카페에 갔다. 호텔 바 정면으로 해가 진다. 석양이 멋지다. 대기가 안정되지 않으니 내일부터는 메인세일도 60~80%만 펴야겠다. 여차직하면 곧장 축범해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하게만 가다가, 26일과 27일 루손 북쪽의 강풍을 피해야 한다. 같은 지점에서 2020년 겨울에도 한번 혼난 적이 있다. 그때는 44노트 강풍이었다. 한밤중에 오토파일럿이 고장 나 파도를 뒤집어쓰며 몇 시간동안 수동으로 항해했다. 그때 핸드폰도 죽고 도무지 시간을 알 수 없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산 게 지금의 야광시계다. 그래도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치고 싶지는 않네. 오전 5시. 타이완을 9일간 항해 한다고 외국 선장들에게 알렸더니, 늘 냉소적이지만 적극적으로 답을 해주는 미국 윌리엄(75세) 형이 문자를 보내 왔다. ‘Sabah is called "Land below the wind" by sailors because it is south, out of typhoon latitudes. I would be surprised that your ship insurance does not have an exclusion for South Cina Sea in summer. Better read it... 사바는 태풍 위도에서 벗어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선원들에게 "바람 아래의 땅"이라고 불린다. 귀사의 선박보험이 여름에 남중국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야. (조항을) 한번 읽어 보는 게 좋을걸...’ 차가운 말투지만,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시크한 형이다. 태풍 시즌에 항해 하는 건 좋지 않단 뜻이다. 나도 동의 한다. 그래서 중간에 필리핀을 고려하고 있고, 다행이 오늘 아침엔 윈디 예보가 26~27일 루손과 가오슝 사의 바람이 태풍이 아닌 것으로 진행 중이다. 그래도 돌풍 등을 고려해야 하니 이번엔 전 구간 최대한 축범 하고 안전하게 갈 생각이다. 루손과 가오슝 사이 426Km (230해리) 이틀간 항해가 최대의 위험요소다. 이 구간을 갈 때는 최대한 축범 하거나 기주로 돌파할거다. 디젤유를 많이 쓰는 구간이 되겠네. 여하튼 통영 이준희 선장님께서 일기예보에 각별히 신경 써 주신다고 하고, 나도 중간에 필리핀에 바짝 붙어 로밍 전화기로 일기예보를 중간 체크 한 번 하고 지나갈 예정이다. 요트 운반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전이 제일이다. 나는 아직 오래 살아야 한다. 이룬 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급 우울해 진다. ‘게으른 나그네가 석양에 바쁘다.’ 는 격언이 폐부를 찌른다. 하지만 난 별로 게으르게 살진 않은 것 같은데, 쫌 억울하다. 오전 6시. 이부자리들을 정리하고, 에어컨 덕트를 분해해 치운다. 에어컨을 세면대 손잡이에 단단히 묶어 고정한다. 풍랑이 치면 다 말썽꺼리고 흉기다. 고박을 단단히 해야 한다. 출항 전 윈디를 다시 한 번 살피고 다운 받아두자. 마리나 사무실에서 오전 10시에 오라고 했으니 오전 9시 30분쯤 가자. 그리고 가능하면 10시쯤에 출항해야지. 이제부터 배에 물을 가득 채워야 한다. 엔진룸 커버들도 모두 닫고, 아침 식사도 준비하자. 힘을 내자. 오전 9시. 최종적으로 윈디를 체크한다. 윈디 상으로 아직은 별 문제 없어 뵌다. san fernando city 앵커리지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직 타이완 Horizon 올 갈지 Hobihu로 갈지 최종 결정은 하지 않았다. Horizon 은 입항 허가를 받았고, 이중식교수님의 호의로 Hobihu를 추진 중이다. Hobihu가 되면 타이완 입항 날짜도 조금 짧아지고, 한국으로 가는 항로도 약간 더 짧아진다. 아직은 결과를 알 수 없으니 가면서 위성전화나 필리핀 접근항로로 파악하기로 한다. 오전 9시 30분. 마리나 사무실로 정산하러 간다. 수도호스를 정리했다. 돌아오면 전기선도 치우고 드디어 출항이다. 비용은 총 412.15 링깃(114,169원)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4시에 와서 화요일 오전 10시에 출항한다. 211링깃은 남은 현금, 나머지는 카드로 정산했다. 1링깃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다 소비했다. 사무실에서 정산서를 받아, 호텔 1층 계산대에서 계산하면 된다. 마리나 사무실에서 세바스찬을 만났다. 그는 내게 이것저것 묻더니, 갑자기 중국 영화처럼 포권의 예를 표한다. 그는 카타마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진짜 세일을 써서 세일링 하거나 장거리 항해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나를 존경한단다. 허허 뭐 이렇게까지. 그는 나중에 다시 만나면 세일링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나는 네가 한국에 오면 반드시 나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그와 왓스앱 연락처를 나누었다. 사진을 함께 찍고 왓스앱으로 보내준다. 이렇게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이 세일링의 또 다른 기쁨이다. 2023년 6월 20일 오전 10시. 드디어 타이완으로 떠난다. 도착지는 아직 확정이 아니다. 나는 Hobihu를 원한다. Hobihu 마리나라면 1,016해리 7일 16시간이다. 어디가 되었건 모두 신의 뜻이 될 것이다. 가자 타이완으로! 전기 커넥터를 잘라 페데스탈에 남겨놓고, 혼자서 계류줄을 풀어 출항한다. 처음엔 50피트가 버겁더니 이젠 수월하게 입출항 한다. 뭐든 훈련하기 나름인가보다. 태풍 시즌에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항해 하려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 주신다. 윤태근 선장님께 전화가 왔다. “몇 노트로 가십니꺼?” “네 5노트 정도 생각합니다.” “기름은 얼마나 실었으요?” “네, 1톤 실었습니다. 1,000리터요.” “아이구 마이 실었네. 그라믄, 속도를 6이나 6.5노트로 유지 하이소. 하루에 144해리 갑니더. 가다가 태풍 만나문 필리핀 들르고, 그럼 또 500불 써야 하니까. 그냥 6~7일만에 대만 가버리소. 그 배가 그 정도 속도로 가도 기름 차이 얼마 안나요. 필리핀 들르면 또 며칠 지나가니까, 속도 높여서 대만 빨리 가는데 더 낫습니더. 9~10일 가는 것 하고 6~7일 가는 건 차이가 크요.” 옳다. 옳은 충고다. 태풍이 오기 전 대만에 도착해 버림 아무 문제없다. 엔진 Rpm을 1,500으로 하여 속도를 내본다. 코타키나발루 내만에서는 노고존 6.6노트 다. 내만을 벗어나 방향을 잡으면 곧장 메인 세일을 펴자. 이번엔 속도전으로 남중국해와 필리핀 루손 섬 북쪽을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