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근대의 종교 개혁자
윌리엄 밀러의 출현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하는 일을 지도하도록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면서도 진심으로 진리를 알고자 갈망한 착실하고 정직한 농부였다. 그는 다른 종교 개혁자들처럼 어린 시절에 가난과 싸웠으며, 그로 인하여 스스로 힘쓰고 극기하는 큰 교훈을 배웠다. 그가 출생한 가문은 자립정신과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고, 열렬한 애국심과 인내력이 강한 것 등으로 특징이 지어진 집안이었는데, 그 같은 특성들은 또한 그의 성격에도 현저히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 한 부대장(部隊長)으로 있었는데, 그 격렬한 전쟁 동안의 투쟁과 고난 때문에 겪은 희생이 아마도 밀러의 어린 시절의 생활환경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고, 어린 시절에 벌써 비범한 지력을 가졌다는 증거를 나타냈다. 그가 차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 사실은 더욱 현저해졌다. 그는 비록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누리지 못하였으나 배우기 좋아하는 그의 마음과 주의깊이 사색하는 습관과 빈틈없는 비판력 등은 그로 하여금 건전한 판단력과 풍부한 이해력을 갖춘 인물이 되게 하였다. 그는 비난할 여지없는 도덕적 품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청렴하고 검소하고 관대한 인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는 또한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쓴 결과로 일찍부터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럴지라도 그는 연구하는 습관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치와 군사 면에서도 상당한 수완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명예와 재산을 얻을 길이 넓게 열려 있었다.
그의 번민 시대
그의 어머니는 참으로 경건한 부인이었으므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감화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청년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무신론자들과 많이 교제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대개 선량한 시민들로서 인간미가 있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원래 그리스도인의 분위기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들의 환경에 의하여 품성이 꼴 지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용을 얻은 것은 성경으로 말미암은 바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재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영향을 끼치리만큼 왜곡되었다. 밀러는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므로 그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의 성경 해석은 그에게 그 참뜻을 깨닫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받아들인 새로운 신조는 성경을 도외시하도록 만들었을 뿐 성경을 대신할 만한 더 좋은 것을 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불만족한 상태로 그냥 지내왔다. 그는 이와 같은 상태로 약 20 년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그가 34세 때에 성령께서는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마음에 강력하게 깨우쳐 주셨다. 동시에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종래의 신념은 무덤을 초월한 행복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래는 어둡고 음울한 것뿐이었다. 후일에 그는 당시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절멸(絶滅)이란 실로 차갑고 냉랭한 사상이었다. 그 결과는 모든 것을 분명히 멸절시키는 것이었다. 하늘은 다만 놋쇠처럼 내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고, 땅은 마치 쇳덩이처럼 견고하게 나의 발밑에 있을 뿐이었다. 영원,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죽음, 그것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따져보면 볼수록, 나는 실증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려고 하였으나 마음이 정돈되지 아니하였다. 나는 참으로 가련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원망하고 불평하였으나, 누구에게 하는 불평과 원망인지 몰랐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디서, 어떻게 옳은 것을 찾을는지 몰랐다. 나는 탄식하였지만 소망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