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덕순 목사
어떤 작은 어촌 앞 바다에서 자주 조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조난을 당하는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구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항구 근처에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놓고 순번을 정해서 거기서 바다를 내다보면서 만약의 조난을 대비하였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빨리 구해낼 수가 있었고 희생을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구조를 받은 사람 중에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구조대에 함께 하는 사람이 생겼고 이 좋은 일에 함께 하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그마한 오두막은 많아진 구조대원들이 모이기에는 너무 비좁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오두막을 헐고 크고 멋진 구조대 건물을 지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많아지면서 대원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친교가 필요해졌고 가끔은 파티도 열었습니다. 구조대의 규모가 커지자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조직도 만들고 직책도 만들고 규칙도 만들었습니다. 더 잘, 효율적으로 구조하기 위한 훈련도 실시했고 더 많은 구조대원을 모으기 위한 광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구조대는 점점 저 훌륭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구조대의 내부의 일이 많아져서 그 일에 힘을 쏟는 동안에 동네 앞 바다에서 조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조난당하여 죽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앞 바다의 조난당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하여 시작된 구조대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일로 바빠졌고, 구조대의 조직이 커지고 확장되는 동안 구조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숫자는 오히려 늘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 바닷가의 구조대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교회의 이야기는 아닐까 두렵고 떨리지 않습니까?
세계의 인구는 65억이 넘고 그들 중에는 생명이 없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전혀 신앙을 갖지 않고 있는 무신론자도 수십억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종족도 만개가 넘습니다. 세계인구의 50%가 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 2%만 예수를 믿습니다. 아시아인구의 98%가 아직 예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한국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자기교회 치장에만 힘쓰고 교회에서 감투 쓰는 문제로 싸우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은 그 바닷가의 구조대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이 세상은 어둡습니다.
거짓과 속임과 테러와 전쟁과 재난이 가득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가 감추어져있는데 드러낼 사람이 없습니다. 흑암과 혼돈 속에서 방황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분당에는 800억 들여 예배당 짓는다고 비난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흑암과 혼돈의 세상에 맨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진리의 빛으로 오셨고 구원의 빛으로 오셨고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만나지 않고는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없고 그분을 알지 않고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고 그분을 믿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으면, 그를 영접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보호와 가르침과 인도를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을 향하여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없다면 빛을 비췰 수가 없을 터인데 우리에게는 빛이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십니다. 그의 복음이 빛이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죄악과 근심과 염려와 절망과 사망의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이 빛을 비출 수가 있고 비추어야만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누구나 전도해야 합니다. 누구나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성령님의 권면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교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일반적인 사명입니다. 그 어떤 교회라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교회의 근본 목적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등대여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죽어가는 영혼, 지옥에 가는 영혼을 구원해 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이 모두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이 영적인 가정인 교회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형제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웃들 모두 교회에 와서 더러워진 마음을 씻어야 하고,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인생의 참 행복은 참된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더 나은 행복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당신의 일에 우리더러 함께 하자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일하는 것 보다 더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빛을 증거 하는 사람은 그가 가진 진리가 여호와의 영광이요 그가 하는 하나님의 일이 여호와의 영광입니다.
신학자 에밀 부룬너 라는 사람은 “불이 탐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선교를 함으로서 존재한다.” 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개척멤버의 교회가 아니고 목사님의 교회가 아니고 장로님의 교회도 아닙니다. 주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세우신 주님의 교회이고,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방법은 그들이 전도하고 선교하여 사람들을 구원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변의 영혼들을 건져 구원하는 방주, 구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조직을 위해서, 확장을 위해서, 할 일을 멈추면 안 됩니다. 교회의 재정과 인적 자원과 역량을 교회유지를 위해서 소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를 성도들의 교제, 성도의 복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기를 바랍니다. 희생을 하면서 선교하는 것은 되도록 반대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박해를 받으면서도 선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복음전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으면 이미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빛을 발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등을 말 아래 감춰두고 있는 잘못된 교회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고통 받는 우리민족을 위해 “동방의 등불” 이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타고르 시인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나라를 찾았습니다. 세계 선교역사에 유일하게 자립하여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꺼져가는 복음의 빛을 비추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아프리카의 그 많은 나라들, 아시아의 그 많은 나라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복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립하여 선교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수백년 되어도 여전히 선교사에게 무엇인가 받기만을 바라는 교회로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교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선교국가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한국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그룹의 한 회사인 삼성전자가 지난해 일본의 소니, 히다찌, 파나소닉 등 최고의 회사 열개가 낸 수익의 합계보다 배나 더 이익을 남겼다고 일본이 지금 난리랍니다. 욘사마가 일본 여성들의 우상이 되었고, 새로운 축구스타 박주영이 나타나서 일본을 3:0으로 깨끗하게 이겼습니다. 그런데 그 박주영이 꼴을 넣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탁구스타 유승민이 중국을 이긴 뒤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나, 태권도의 문대성이 결승에서 이기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세계가 더 많이 볼 모습입니다. 이게 우리가 잘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주신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선교는 축복입니다.
복 받은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선교입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의 진리를 바로 이해 못하고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자립하지 않고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남들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없이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선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축복입니다.
본문에 보면 더 큰 축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네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빛을 제대로 전하기만 하면 이런 축복과 영광이 네 것이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너의 빛을 보고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올 것이며, 너의 아들들이 먼 곳으로부터 돌아오며, 너의 딸들이 이방인들의 팔에 안겨서 돌아 올 것이다. 풍부한 재물이 뱃길을 통하여 너에게로 오며, 바다의 풍부와 열방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올 것이다. 스바의 모든 사람이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주님이 하신 일을 찬양할 것이며, 너는 그들이 가져온 것을 제물로 쓰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선교를 하면 국력이 신장된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복음, 돈으로도 만족할 수 없고 지식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진리와 구원을 전해준 사람들을 복음의 혜택을 받은 나라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일본에 가서 사무가와 교회 30주년 기념설교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왕소금처럼 짠 사람들인것을 세상이 다 압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교회가 무엇인지, 이 교회가 달려온 30년 세월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으로 설명해 주었더니 그 교회 사모님과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고는 갑자기 대우가 달라지는데 놀랬습니다. 최고급 호텔에 나를 모시더니, 최고급 열차에 나를 태워서 동경과 오사카를 구경시켜주는데 그 작고 가난한 교회가 있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교는 국력임을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7절에 보면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내 영광의 집이란 선교 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를 말합니다.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영적인 갈망은 어느 때보다 더합니다. 부귀영화가 행복을 가져다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배만 부르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북한 땅에서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배가 늘 부르지만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민입니다. 조금만 먹어도 배는 두 배로 나오니 그게 고민입니다. 배가 채워져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업화시대에는 남들이 갖지 않은 편리한 가전제품이나 자가용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세탁기가 있어서 손빨래 안한다면 행복하겠지,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하게 하면 행복하겠지, 자가용이 있어서 밀리는 버스 타지 않으면 행복하겠지,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남이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면 행복하리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욘사마에 열광하고 있는데, 인생의 행복이란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손이 편한 것도 아니라 마음에 만족이 있어야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만족은 욘사마 같은 스타를 만나본다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어서 욘사마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뿐입니다. 조금 지나면 그것도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있습니다.
문화의 시대는 멋진 배우, 최고급 명품, 가슴 찡한 드라마 등이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착각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실체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영혼은 음식이나 옷이나 문화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그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죄를 벗고 그의 자녀로 당당하게 서서 사랑을 받을 때에만 만족하고 행복해지는 존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 리가 없기 때문에 이리 몰리고, 저것으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날 뿐인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들려주고 예수를 믿게 해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서게 해주어야 그들 모두가 만족을 얻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이 모아질까요?
사람들은 이것도 해보았고 저것도 해보았습니다.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보았고 최고급 음식도 먹어보았습니다. 다양한 문화도 체험해 보았고 여행도 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만족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올 날을 성경은 예고하셨습니다. 영적인 수요가 폭발할 때가옵니다. 선교의 전성시대가 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어나서 빛을 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슥 8:22-23을 봅시다.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불신자 열명이 믿음이 좋은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나도 좀 하나님을 믿자, 나에게 하나님을 좀 알려달라고 애원하는 날이 온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할 일입니다.
어떻게 선교할 수 있습니까?
선교는 영적 전쟁입니다. 선교를 해서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을 속여 짓밟던 사단이 쫓겨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거센 저항을 합니다. 그래서 선교지를 위해서,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 약해서 사단이 그들을 통해 선교사를 공격하면 선교사가 실망을 한 나머지 물러설 수 있다는 것을 사단은 잘 알기 때문에 선교사의 측근 들을 공격합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무릎 선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선교지에 가십시오. 만일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든 가능하면 선교지로 가십시오. 가서 대단한 사역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셔서 구경만 하고와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선교에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알게 되고 내가 할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왜 선교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선교현장을 보면 한 영혼의 소중함을 느낄 것이고 선교사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시고, 게시판에 있는 선교사님들의 기도편지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 편지를 좀 보내주시고 작은 책 한권이라도 선교사님들에게 보내주신다면 큰 힘이 됩니다. 그런 일이 다 선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교는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모자라지 않도록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그 일의 경험자입니다.
눅 6:38에 “주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주리니” 라고 원칙을 분명하게 밝히셨고, 이어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풍성하고 확실한 보상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신자가 아닙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면, 이웃에게 전도하면, 먼 나라에 선교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귀하게 쓰임 받는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그냥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순종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확실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선교에 최선을 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