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김희선
사람이
가슴을 열면
그 깊이는 얼마일까
온 겨울 다져온
저 노란 생명의 두께
얼마나
더 깊어져야
저 향기로 다가갈까
모정2
김희선
아들 딸 건네어 줄
한꿈을 심어놓고
너 한 뼘 나 한 뼘
함께 하는 발돋움
오늘도
새순 돋았나
굽은 등이 환하다.
뉴도자키 절벽에서
김희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온 몸으로 버텨가며
바다 등진 벼랑 끝에
그대 서 보았는가
손잡아 주는 이 없는
고독의 그 끝자락
금세라도 날아가 버릴
극한의 눈보라 속
외려 더 밝아오는
의식을 보았는가
되돌아 구하지 못할
깨침의 그 정수리
빈 들판에 서서
김희선
젊음의 시간들만
가득한 게 아니다.
여린 씨앗 품어 안아
골수를 내어주던
격정이
지나가버린
빈 들판의 충만함
바람이 쉬어가고
햇볕도 토닥여주는
세진을 다 털어버린
자유의 저 몸짓은
백발로
누워있어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똥꽃
김희선
보이는 그대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면
들리는 그대로만 헤아리지 않는다면
때로는 아픔 속에도 향기가 깃들인다.
어머니 고이고이 닦아주던 유년의 꽃
나는 왜 향기로 다가가지 못하는가
사랑의 깊이만큼만 피고 지는 저 똥꽃
치매노모 삶을 비벼 노란 물감 풀어놓고
벽에도 이불에도 손으로 그린 그림
신산한 세월의 무게 온 방에 가득하다.
풀죽어 웅크린 채 깊이 패인 주름 앞에
“어무이, 똥재이~” 애교 섞인 말 한마디
웃음꽃 눈물범벅되어 온 방이 환해진다.
* 똥꽃 : 전희식의 수기 ‘똥꽃’을 읽고
교단일기 2
김희선
무거운 신발을 신고 우리는 만났다.
관심은 부담이라며 두 손 젓던 너희들
장시간 탐색 후에야 마음 활짝 열었지.
손가락 걸어가며 함께 뒹군 시간 속에
너희는 밀물로 와 나에게 화답하고
어느새 공모자인양 내밀한 꿈 펼쳐냈지.
설익은 열매에 종이옷을 입히듯
너희의 순수함에 불꽃을 입히리라
불면의 밤을 밝히는 사제라는 그 이름
故 이태석 신부님
김희선
활짝 핀 그 미소로 이미 다 하신 말씀
온 몸과 마음으로 드러내 보이셨네.
진실한 사랑이라면 제 몸을 사르거라.
포화 속 닫힌 마음 빛이 되어 여시고
천형의 손발들을 가슴으로 품으시니
사람의 꽃으로 피어 향기 가득 번집니다.
애틋한 사모의 정 수단에서 피어올라
메마른 토양마다 온기로 젖어드니
가신 길 잊지 말아라, 뭇 가슴 울립니다.
마음자리
김희선
삶의 파편 욱신거려
세월을 담아가도
이제
내 마음 실려 가지 않도록
스스로
돌릴 수 있는
수레바퀴 하나 간직하자.
삶
김희선
머무른 그 자리가
하나의 길이 되어
애써
손잡지 않아도
끝없이 이어지는
모두는
서로의 의미다.
열어야 할 가슴이다.
함께 가는 길
김희선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모처럼 뜻을 모았다. 정동진행. 먼 추억이라도 건져 올리듯 바다는 내게 항상 목마름이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소중하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늘 함께 있는 듯한 편안함. ‘익어갈수록 더욱 달콤해지는 열매 같다.’라고나 할까? 우리 오늘 동인 모든 분들이 그러하다. 한 분 한 분의 원숙한 개성이 서로를 감싸 안은 울타리가 되고, 걸어가는 발걸음마다 따스한 바람이 분다.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 여행은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 기차 안에서 도란도란 나눈 정겨운 대화엔 창밖으로 펼쳐지는 시골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하얀 백사장에 울긋불긋 늘어선 오색 양산과 저 멀리 파랗게 펼쳐진 바다는 마음을 한껏 설레게 하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바다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되고, 나 역시 바다와 하늘과 한 몸이 되었다.
사람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인 곳
오색 빛 마음 비워
푸른 물 드리우고
나 또한
바다가 되면
저 하늘이 내게 올까
시원한 숲 그늘에서 머리를 맞댄 작품 합평회. 서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며 한 발 한 발 우리는 더 멋진 시조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약력>
<시조세계> 신인상,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문학상
한국문인협회이사, 한국여성시조이사, 한국문인협회 봉화지부장,
시조 동인『오늘』회원. 현, 봉화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