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평창효석문화제
2023년 9월 8일~17일까지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평창 효석문화제가 개최되었다. 효석문화제(孝石文化祭)는 평창이 낳은 한국문학의 걸출한 인물 가산 이효석 선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적인 배경이자 그의 출생지인 봉평(蓬坪)에서 메밀꽃이 필 무렵인 9월에 열리는 꽃 잔치다. 이런 문학소설의 실제 배경에 와서 경험하는 아름다운 메밀꽃밭과 가산의 문학을 알리고, 문학인과 국민들의 정서적 풍요로움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1999년에 제1회를 시작으로 매해 개최되어 2023년 제23회를 맞이하였다.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하였고 2021년 제22회 문화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코로나로 인해 이효석 문화예술촌 예술제만 온라인 및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다. 2022년에는 코로나가 해소됨으로써 제23회 문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으나 유례없는 긴 장마, 여러 개의 태풍의 영향을 받은 칠팔월의 많은 비 때문에 메밀밭에 뿌린 씨가 유실되었거나 꽃망울이 맺혔어도 대부분 활짝 피지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초토화된 메밀꽃밭은 효석문화제 개최를 어렵게 했다. 주관 부서인 이효석문학선양회는 눈물을 머금고 개최 일주일 전에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이렇게 2년의 공백기를 마치고 열리는 올해 2023년 제23회 효석문화제이다 보니 기대가 가득하다.
이번 효석문화제는 소설의 무대인 봉평의 시가지와 흥정천을 따라 지역 특색을 살려 조성한 테마걷기공원 ‘달빛흐믓 낭만로드’를 개장했다. 이 길은 소설에 나오는 봉평재래장과 이효석문학마을, 메밀꽃밭, 흥정천, 팔석정 등의 강변길을 연결하는 문학과 생태체험 탐방로다. 이번에 조성된 낭만공원과 쉼터, 낭만데크로드는 문화제가 닫힌 후에도 지역의 기존 자원들과 연결되어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명품 탐방산책로가 될 전망이다.
메밀꽃을 봉평의 상징화(象徵花)가 되게 한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에서 아버지 이시후(李始厚)와 어머니 평산 신 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1910년 4살이 되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경성부로 갔다가 1912년 다시 평창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세운 사숙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914년 4월 평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0년 3월 평창공립보통학교(6년제)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그해 4월 당시 조선 최고의 고등보통학교였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이후 평생을 절친한 벗으로 지내게 되는 1년 선배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를 만났다. 유진오는 시를 쓰고 이효석은 소설을 써서 각자 평을 하면서 우정을 다졌다.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보 역시 우등으로 졸업하고, 1924년 제1회 입학생 수석 유진오의 뒤를 따라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1925년 제2회 신입생으로 입학하고 1927년 3월 예과를 수료하고, 4월 1일에 법문학부로 진학했다. 당초 예과에서 문과 A반이었기 때문에 법학과로 진입하게 되어 있었으나, 문과 B반 동기들과 함께 문과로 올라가 문학과로 진입하였던 것이다. 전공으로 사토 기요시 교수의 영문학을 택한 그는 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8년 잡지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30년 3월 31일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이효석은 1931년 7월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성동본인 나남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의 이경원과 결혼하여 경기도 경성부 수송동(현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번지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살림이 매우 어려웠다. 1932년 처가가 있는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공립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해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뒤로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 후 모더니즘 문학단체인 구인회에 참여하였고 「돈(豚)」, 「산」, 「들」 등을 발표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시적인 문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1936년에 발표한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秀作)으로 꼽히고 있다. 대표 작품집으로는 「노령근해」(1931년), 「성화」(1939년), 「해바라기」(1939년), 「이효석단편선」(1941년), 「황제」(1943년) 등이 있고, 장편으로는 「화분」(1939년), 「벽공무한」(1941년)이 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본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산허리에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느끼하다는 옛말)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달빛에 비치는 소금 빛 하얀 메밀꽃은 가을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을 깊게 하고 그들이 손을 걸고 한 약속을 변치 않게 해준다. ‘산(뫼, 메)에서 자라는 밀’이라는 의미를 가진 메밀은 이름처럼 봉평이 아니라도 어디에나 자라는 석죽목(目) 마디풀과(科) 메밀속(屬, Fagopyrum)에 속하는 식물이다. 메밀꽃이 봉평을 대표하게 된 것은 절대적으로 가산의 가교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메밀이 누구를 만났느냐는 사실이 미래를 열고 시대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무지렁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인류의 미래를 여는 메밀꽃이 되었듯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모두에게 낭만과 희망을 선사할 메밀꽃이 되지 않을까? “너희가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
2023년 효석문화제 포스터
달빛흐믓 낭만로드
산허리에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느끼하다는 옛말)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재래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