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일 – 대한민국으로!
오전 3시 30분. 또 새벽에 깼다. 이상하게 항해 중에 더 충분히 수면하는 것 같다. 마리나 정박 중엔 하루 종일 ‘시에스타’도 없이 일해야 되니, 오히려 정박 중에 수면이 부족하다. 반대로 항해를 떠나면 더 쌩쌩해 지나보다. 체질이 바뀐 건가? 이래서야 원, 귀국하면 수면부족에 시달리려나?
드디어 D-day 다. 수면 부족에 시달려도 항해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아침에 제네시스 코의 상처를 에폭시로 치료해 주자. 잠깐 잠수해야 한다. 뒷 탱크에 물을 마저 다 받고. 전기선과 급수라인을 정리하면 출발 준비는 끝이다. 식료품도 잔뜩 실었다. 1115해리, 8일 18시간 구간이다.
오전 9시 30분에 가오슝에서 이미그레이션 관리들이 마리나로 오고, 포트 클리어런스(Port Clearance)를 해줄 세관원들도 함께 오기로 했다. 굉장히 친절한 시스템이다. 폐쇄적인 타이완 마리나 들이지만, 일단 들어오면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다.
Port Clearance: 출항 면장(出航 免狀) - 출항선이 그 항구에서 모든 일을 깨끗이 결말 짓고 떠난다는 것을 세관장 이름으로 증명해준 증서. 다음 도착한 항구에서 입항 시 세관에 제출해야 한다.
윈디를 보니, Hobihu 출항부터 바람이 강하고, 5~7일 사이가 고비다. 이후로는 바람이 평온하다. 5~7일 구간을 잘 피해 가자. 최대한 축범 하든가, 아예 세일을 접고 기주하자. 풍랑에 휘말리면 안 된다. 100년 전 항해와는 다르다. 내겐 어제 인젝터 크리닝을 마친, 성능 좋은 볼보 펜타 75마력 엔진이 있다.
마지막 코스고, 쿠로시오 해류가 도와주고, 강풍이지만 뒷바람이다. 이런 조건들로 쉽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바람이 Run 일 때, 그것도 강풍일 때, 얼마나 힘든 항해인지, 해본 사람들만 안다. ‘Run 인데 뭐가 힘들어?’ 한다면 더 이상은 대화가 안 된다. 강풍과 파도 속에 메인세일을 열어 붐이 이리저리 스윙하지 않도록 고정해야 한다. 고정을 하면 급히 세일을 접어야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엄청난 강풍과 파도 속에 갑판으로 나가, 고정 되었던 붐을 풀어야 한다. 이때 붐이 스윙하기 시작하면서 사고가 나는 거다. 재빨리 붐을 정렬하고, 그 상태에서 세일이 접히지 않으면 잠시 역주행으로 노고 존을 만들고 메인 세일을 접어야 한다. 이때 펀칭과 수동 조작의 재빠른 연결 동작이 필요하다. 노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펄링 방식 메인세일의 장점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강풍엔 펄링 방식의 장점이 별 의미 없다.
어제 윤태근 선장님이 조언한 것처럼, 오키나와 인근서부터 부산까지는 대표적인 변풍대(變風帶)대다. 윈디가 큰 의미 없다는 의미다. 바람이 엉뚱하게 바뀌면 파도도 따라서 바뀐다. 피항 할 곳을 미리 확인해 두어야 한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자. 이탈리아에서 지금까지 보다 더 긴장하고 조심하자. 사랑하는 이들을 목전에 두고 어떤 불상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제주도 해역에 5마일 가량 붙어갈 예정이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만약의 경우에 피항도 해야 한다. 그래도 제주도 인근 까지 가면 마음이 놓인다. 한국인이 한국에 간 것이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아닌가? 여기까지 이미지 항해를 마친다. 오전 5시 15분. 커피를 끓이자. 출항의 아침이다.
오전 6시. 문선장님과 같이 컵라면으로 식사를 마친다. 뭐든 위에 부담을 주면 안 될 것 같다.
오전 6시 30분. 잠시 쉬었다가 입수한다. 상처 난 선수에 에폭시를 바른다. 물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한다. 에폭시 작업을 마치고 잠수하여 러더와 킬, 스크루를 본다. 스크루에 해초가 약간 끼어 있다. 지난번 코타키나발루에서 올 때, 해초들이 많이 떠다니더니 역시다. 몇 번 잠수하여 해초를 제거하고 고프로9로 촬영해 둔다.
잠수 작업을 마치고 수돗물로 씻은 다음, 뒷탱크에 물을 가득 받는다. 이제 이 물로 강릉까지 사용해야 한다. 이로써 한국까지의 출항 준비는 끝이다. 곧 이미그레이션과 세관에서 오고 여권 스탬프와 포트 클리어런스 서류만 받으면 출항이다.
오전 8시. 이미그레이션 공무원이 왔다.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각자 여권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그걸로 끝이다. 간단하다. 그런데 세관에서는 여기 안 온단다. 그럼 포트 클리어런스(Port Clearance)를 어떻게 받지? 헷갈리는데, 마리나 관리자가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같이 해경에 가서 포트 클리어런스를 받으면 된단다. 그래서 문선장님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해경으로 갔다. 해경에서 포트 클리어런스(Port Clearance)를 해주나? 특이하다. 하긴 뭐 수단 수아킨에서는 에이전트 모하메드가 모든 걸 다 해줬으니.
오전 8시 30분. 문선장님이 포트 클리어런스(Port Clearance)를 받아왔다. 한문으로 ‘요트출해보비표’라고 되어 있다. 올해 초 온 한국인들도 이 서류만 받아서 출항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포트 클리어런스(Port Clearance)라고 귀퉁이에 적어달라고 한다. 그래야 한국 가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다. 이로써 타이완에서의 모든 출항 절차가 끝났다. 호세가 와서 제네시스를 고박한 로프들만 풀면 된다. 오전 9시 출근이라고 하니 25분 남았다.
오전 9시 10분. 호세가 오지 않는다. 문선장님 과 둘이서 밧줄을 풀고 출항한다. 다들 한국에서 만나요.
첫댓글 마지막까 안전하게 잘 오셨으면합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안전항해로 강릉에 무사귀환을 기도드립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