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새 임지에서 학부모를 처음 만나는 날이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며칠간 고민하며 메모도 했지만 끝내 정리는 못했다. 머리속은 내일 할 일로 어수선한데 또 언저리에서 빙빙 돈다. 여기저기 흩어진 책이며 신문의 칼럼을 읽으며 딴짓을 한다. 그러다 저장해둔 기사를 읽었다. 임윤찬 이야기다.북미에서 가장 권위있다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그가 “난 그냥 산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피아노만 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아이들에게 얘기해주려 보관했는데 학부모에게 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으면 하지 말라 해도 스스로 저렇게 빠져드니 부모도 자식도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뛰어난 재능 위에다 음악은 시가 되고 연주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며 피아노만큼 인문학을 강조하는, 새학기가 되면 읽을거리를 손수 추천하는 손민수라는 멋진 스승을 만난 것은 또 얼마나 축복인가. 그는 리스트 ‘단테 소나타’ 연주를 위해 단테의 《신곡》을 출판사별로 구해 거의 외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 끈기와 열정의 근원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미리 준비하거나 한 번에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빙빙 돌다 기사에서 겨우 힌트를 얻었다.
이러니 학창시절에도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으로 겨우 연명했지 복습이나 예습 따위를 해 본 적이 없다. 벼락공부도 진득하게 하는 게 아니어서 한 시간 간격으로 자다깨다하니 차라리 제발 자라는 엄마의 핀잔을 달고 살았다. 그래도 시험을 못 보지는 않으니 그때부터 내 고질병이 시작됐을까? 무의식 언저리에서 "넌 시일이 딱 닥쳐야만 잘 할 수 있어! " 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휘둘린 듯 도무지 그전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뿐더러 계속 안 할 궁리만 찾고 있다.
교직에 몸 담갔으니 수업연구는 벗어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지금이야 약식 수업안이랄 것도 없는, 무형식의 그야말로 소통만 하면 되는 정도지만 그때는 갑안이라하여 단원 전체를 꿰뚫고도 거기에 교과의 본질에 맞고 학생의 발달단계를 고려한 나만의 수업안을 써야했으니 한 달 전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결재까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머리로만 생각하고 게으름을 피우다 가위눌림에 이르러도 결국은 닥치고서야 펜을 들곤 했다.
그렇게 한 이틀 바짝 그일에 매달리면 이후에는 수월하게 처리되니 또 반복이다. 한 번 혼나야 정신을 차릴 텐데 이제 습관으로 굳은 듯하다. 그래도 핑계를 대자면 게으름을 부리기는 하지만 일을 시작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그일을 끊임없이 뇌리에 떠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또한 큰 고통이다. 꼭 해야만 할 일을 못 하고 있으니 처리하기까지 큰짐을 지고 자는 것처럼 개운하지 못 한 날의 연속이다.
'일상의 글쓰기' 강의를 7학기째 수강하고 있다. 아마 제일 불량학생일 터이다. 고놈의 미루기 고질병 때문이다. 예전에는 미루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을 조각조각 모아 틀을 짜고 살을 붙여 마무리도 금방 했는데 늙으니 확실히 머리도 딸리고 순발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닥치면 다 돼!"라는 속삭임이 귓전에 맴돈다. 그래, 이제는 내가 이기고야 말리라. 너에게 휘말리지 않고도 나는 할 수 있어!
선애 샘처럼 참다운 스승이 사라진다는 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손실일까 생각하니 그런 맘 안 먹어서 다행이라 여기는 제가 넘 이기적일지 모르겠어요. 교감까지는 괜찮았는데 교장은 늘 머리가 맑지 않더라구요. 월급 받는 날 교장들끼리 서로 스트레스 값으로 이거 합당한 거냐며 쓴웃음을 짓기도 한답니다. 선애 샘 진실한 글 읽으며 우리 선생님들과도 진지한 물음을 가끔 던져봅니다.
하하. 저랑 똑같습니다. 예복습은 없이 수업 시간에 듣는 걸로 시험을 쳤던 거나, 닥쳐야 일을 하는 거나요. 마감효과가 있어선지 닥치면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선배님은 고칠 생각이라도 하시네요. 저는 그렇게 살랍니다. 고치려는 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첫댓글 교장 선생님으로 학부모를 만난다, 참 힘드시겠어요. 내 능력을 일찍 알고 그 자리를 욕심내지 않고 산 것이 잘했다 싶어지는데요.하하
그동안 닥치면 능력을 발휘해 잘 해 내셨지만, 이제 그 습관을 이기려는 의지가 굳건하시니 꼭 승리하시길 응원합니다.
선애 샘처럼 참다운 스승이 사라진다는 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손실일까 생각하니 그런 맘 안 먹어서 다행이라 여기는 제가 넘 이기적일지 모르겠어요. 교감까지는 괜찮았는데 교장은 늘 머리가 맑지 않더라구요. 월급 받는 날 교장들끼리 서로 스트레스 값으로 이거 합당한 거냐며 쓴웃음을 짓기도 한답니다. 선애 샘 진실한 글 읽으며 우리 선생님들과도 진지한 물음을 가끔 던져봅니다.
하하. 저랑 똑같습니다.
예복습은 없이 수업 시간에 듣는 걸로 시험을 쳤던 거나, 닥쳐야 일을 하는 거나요.
마감효과가 있어선지 닥치면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선배님은 고칠 생각이라도 하시네요.
저는 그렇게 살랍니다.
고치려는 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한때는 마감효과도 봤지만 이젠 머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 손을 움직여야 될 듯합니다. 울 양교장님 글은 아직도 빛나는 머리의 작용을 받는 것 같으니 쭉 가셔도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