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과 아이들의 엄마를 이번 토요일 대전 숙소로 오라고 며칠 전부터 전화로 이야기를 해두었었다. 새벽에 일어나 진공청소기로 먼지와 몇가닥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 등도 치우고 걸레를 깨끗이 빨아 방바닥과 마루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았다.
집을 지을 때 여기저기 생긴 얼룩과 미세한 점들도 메틸알콜을 사다가 모두 지웠다. 거울표면의 손자국도 알코올로 닦아냈다. 벽에는 환영의 글을 A4 용지에 출력하여 붙여놓았다.
새로산 자동차도 날자를 당겨 출고하도록 해놓았다. 꽃집에 부탁하여 장미다발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고 아이들 맞을 준비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전화기를 들었다.
1. 둘째딸 유진이와의 대화
아빠다. 전화해도 괜찮냐.
지금 일하는 중인데요. 오늘 일을 마무리 못하면 못 갈 수도 있어요.
그러면 부지런히 서둘러!
제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필름을 넘겨주어야 하는 부서에서 일이 늦게 넘어 올 것 같아요.
엄마 혼자 가면 안되요?
엄마를 대전에 혼자 보낸다고? 아직 안 된다. 길에서 낭패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2. 큰딸 혜연이와의 대화
아빠다. 뭐하냐.
사무실이요.
유진이 못 온다고 하더라. 너는?
월요일 방송이라 일요일부터 밤새워 일해야 되요?
그래? 엄마한테 컴퓨터를 새로 사줄 테니 너희들이 따로 컴퓨터 사지 말라고 너희들한테 전하라고 했는데 아무 이야기 못들었냐?
엄마 그런 이야기 안하던데요. 컴퓨터 아직 쓸만한데요.
지난 번 셋이 모여서 조금씩 보태서 컴퓨터 새로 사자고 네가 했던 말을 들어서 아빠가 사주려고 하는거야.
그래요? 그럼 내 방에 설치하고 지금 있는 컴퓨터는 랜으로 연결해서 유진이와 윤주가 쓰도록 할께요.
오늘 못오면 이번 월요일에라도 내려 오지?
못 가요. 다음 주에 갈께요.
알았어
3. 막내 윤주와 대화
윤주냐?
네, 아빠? (잠에 취한 목소리)
자냐?
어제 마감하느라고. 새벽 3시에 집에 왔어요.
집 전화는 안받던데, 엄마는?
몰라요. 성당에 갔겠지요.
그래? 더 자라. (전화 끝)
아이들과 통화하려면 이제는 모두 이동전화로 해야 틀림이 없다. 집의 전화는 벨이 울려도 잘 받지를 않거나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이 모두 커서 성인이 되어 내 손길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고 나서야 이제는 오히려 내가 딸들의 손길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가슴에서 무엇인가 커다란 한 덩어리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나는 일주일 내내 내가 벽에 붙여놓은 환영의 글을 보면서 아이들이 첫번 발을 디딜 마루를 쓸고 닦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더 지나고 나면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첫댓글 아내에 대한 배려와 깊은사랑 자녀들과의 깊고 세심한 사랑이 무불님께 담뿍 있는줄 미쳐 몰라 습니다. 어느누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리오마는 본 밭아 가며 살아 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