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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정능엄신주
 
 
 
카페 게시글
원오심요 스크랩 28. 찬상인(璨上人)에게 주는 글
智仁 추천 0 조회 8 09.06.23 21:5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28. 찬상인(璨上人)에게 주는 글



머물 것 없는 근본에 의지하여 일체 법은 건립하나니, 머뭄없는 근본은 머뭄없는 데 근본한다. 이를 투철하게 깨치면 만법이 한결같아 털끝만큼의 머무는 모양[住相]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 드러난 행위 그대로가 모두 머뭄 없음이다. 근본이 이미 밝혀졌다면 이것은 마치 사람에게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추면 갖가지 물건을 보는 것과도 같으니, 이 어찌 반야의 문빗장이 아니랴!



영가(永嘉)스님은 "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다"하였으니, 이보다 더 가까운 말은 없으리라. "찾은즉 그대를 아나, 보지는 못 하도다"고 했는데, 담연한 당처에서 2변을 눌러 앉아서 평온해야지 알음알이를 내서 찾으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찾았다 하면 마치 그림자를 잡은 것과도 같느니라.



"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하였는데, 마음의 광채를 돌이켜 스스로 비추어보라.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모두 마시면 그때 가서 너에게 말해 주리라"하였는데, 팔각의 맷돌이 허공에서 구르듯 하였다. 이를 참구해 꿰뚫으면 눈앞에서 평지가 푹 꺼져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망상이 말끔히 없어지리라.



덕산스님이 강 건너에서 부채로 부르자 문득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고 조과(鳥 )스님이 실올 하나를 뽑아서 훅 불자, 깨달은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큰 인연들은 시절이 이르자 뿌리에서 싹이 스스로 튼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기틀과 감응이 서로 딱 들어맞을 바탕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바로 그 사람이 빈틈없이 가만히 운용하다가 스승의 문호를 빌려 발휘한 것이었던가? 이처럼 어려운 일을 어찌 그리 초준하게 끊어서 그리 쉽게 증득했을까? 옛사람이 겨자씨를 굴려 바늘을 맞춘다는 비유를 하였는데, 진실로 헛말이 아니다.



마음을 믿어서 다다르고 성품을 확연히 보면 날로 씀에 실낱만큼도 빈틈이 없다. 세간법 모두가 그대로 불법이며 불법 모두가 그대로 세간법이니 평등하고 한결같다. 어찌 말할 땐 있다가 말하지 않을 땐 없으며, 생각할 땐 있다가 생각하지 않을 땐 없으랴. 이와 같다면 바로 망상과 알음알이 속에 있는 것이니, 어찌 철저하게 깨친 것이겠는가!



생각생각 마음마음, 빠짐없이 관조해야 한다. 세간법과 불법이 전혀 간격이 없으면 자연히 순수하게 익어 어디에서나 근원을 만나리라. 질문이 있으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고 질문이 없으면 담연하여 항상 고요하니, 이 어찌 실제로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요점이 아니랴.



최후의 한 구절[末後句]을 모두 꿰뚫고 난다면, 말 있음과 말 없음, 향상과 향하, 방편과 진실, 조(照)와 용(用), 오무림과 폄, 줌과 빼앗음에 간파하는 일이 필요치 않다. 조주스님의 이 본분소식을 뉘라서 알랴. 모름지기 우리 본분가풍의 자손이라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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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2.25 11:00

    첫댓글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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