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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칭찬과 책망
성경 본문 : 요한 계시록 2 장 19절-20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6월 9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주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 계시록> 2장 19절-20절 말씀입니다
19절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1) 다섯 가지 칭찬 :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두아디라>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었다.
본 절에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1) 사업.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요한복음> 6장 29절 말씀에
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보내신 자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자요. 아버지와 하나가 된 자요.
성경보다 큰 자요. 성전(예루살렘)보다 큰 자요. 안식일보다 큰 자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말씀 속에서 거듭나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말하고.
사도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성전을 건축하여 성전보다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20절 말씀에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에
1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도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곱 영을 소유하여 사도 선지자들보다
큰 자가 되어 성경보다 큰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가 학교.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 사회사업에 열심이었다.
주의 이름을 위해 수고한 모든 사업을 주님이 아신다.
<요한복음> 5장 39절 말씀에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2)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주제다.
모두가 사랑을 노래한다. TV에서도. 극장에서도. 공연장에서도.
책에서도. 컴퓨터에서도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주께서 기억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랑이다.
이것은 <에베소>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말씀에
3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절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린도 전서> 12장 31절. 말씀에
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 전서> 13장 1절-3절 말씀에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절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3) 믿음.
주께서 믿음을 보시며 믿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큰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가나안> 여인 같은 믿음. 백부장 같은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란다.
주님이 말하신 말세에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는 한탄처럼
말세에는 믿음 보기가 어렵다.
<누가복음> 18장 8절 말씀에
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 되는 삶을 가리킨다.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세벨'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
(4) 섬김.
주님은 섬김을 아신다.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의 종이 되어 섬겼습니까? 그는 높아질 것이다.
자기 스스로 높아지지 말라. 스스로 높아지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때 주님께서 높여주시는 사람이 되라. 그렇다면 주께서 제자들을
섬김같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기 바란다.
이는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덕목이다.
<로마서> 15장 25절 말씀에
25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고린도 전서> 16장 15절 말씀에
15절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5) 인내.
인내하는 사람의 심정을 누가 알까? 스스로 질문해 본다.
아무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주께서 네 인내를 안다고 하셨다.
2) 나중 행위 :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1) 영혼 구원 사업 : 처음 행위
<요한복음> 15장 2절 말씀에
2절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베드로 후서> 3장 18절 말씀에
18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2) 사회 구원 사업 : 나중 행위
<욥기서> 17장 9절 말씀에
9절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시편> 92편 14절 말씀에
14절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잠언> 4장 18절 말씀에
18절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이것은 <에베소> 교회와는 정반대되는 현상으로(4절)
<두아디라>교회의 신앙 상태가 현저하게 진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에베소>교회가 믿는 도리를 강조하다 사랑을 잃었으나
<두아디라>는 사랑이 식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사랑의 사업이
처음보다 더 많아졌음을 나타낸다.
본문 <요한 계시록> 2장 20절 말씀에
20절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1) 책망 :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양적으로 부흥되고 발전해도 교회 안에 자칭
선지자 <이세벨>같이 비 진리를 용납하여 신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형식적이고 타협적인 예배를 드린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주님으로부터 다섯 가지의 칭찬을 듣는 교회로 나중 사랑이
풍성하였지만 그릇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22절-24절 말씀에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 자칭 선지자 :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구약 성경에서 <이세벨>은 시돈의 왕녀였으나
(참고 성경 <열왕기 상> 16장 31절. <열왕기 하> 9장 7절)
<이스라엘>왕 '아합'의 왕비가 되어 <바알>신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게 함으로 영적 간음을 행하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에도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있던 <이세벨>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다른 사본에 <이세벨> 앞에 '너의'(*, 수)가 있어
당시 <두아디라> 교회 교역자의 아내라 주장한다.
⒝ 구약의 <이세벨>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단자라고 주장한다
(Alford, Charles, Barclay, Walvoord).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당시 <두아디라>에 성행했던 조합(組合)과
관련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고 성적 부도덕에 빠지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그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해 구약 성경의
<이세벨>을 상징적으로 사용한 듯하다(Alford, Johnson).
<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의 정체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교회 내에서 활동하도록 용납함으로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이세벨>을 징계했어야 하나 하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두아디라>교회가 책망을 받게 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은 선지자. 거짓선지자들
즉 자칭 선지자들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교회에 자칭 사도. 자칭 유대인.
자칭 선지자가 등장한다. 어느 시대든지 참 선지자가 등장하면
거짓 선지자도 등장하였다.
(1) 이세벨 : Jezebel (인명. 고상한)
<시돈>의 왕녀로 <아합>왕과의 정략적인 결혼한 이방 여자다.
<아합>왕의 아버지 <오므리>가 정권을 아들에게 주기 위해서
정략적인 결혼을 하게 하여 <이스라엘>이 나빠지게 만든
<오므리>의 율례다.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오면서 <바알>신을 가져 오면서
<바알>신을 섬기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데려왔다.
<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세벨>이 왜 말세 교회의
예표에 등장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요한 계시록>에서 <이세벨>이 등장한 것은
<요한 계시록> 17장 1절-3절 말씀과 같이
심판 받을 큰 음녀의 등장할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가 되어 비 진리로
<바알>신을 <이스라엘> 앞에 놓았을 때. 이에 대항하여
참 선지자 <엘리야>가 등장하였다.
① <시돈>왕 <엣바알>의 딸로 <이스라엘>의 <아합>왕의 부인.
<열왕기 상> 16장 29절-31절 말씀에
29절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절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② <사마리아>에 <두로>의 신 바알 신당을 짓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다.
<열왕기 상> 16장 31절-33절 말씀에
31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절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절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③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다.
<열왕기 상> 18장 4절. 13절 말씀에
4절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13절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명을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④ <갈멜산>의 대결 -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이 <엘리야>에게 전멸되었다.
<열왕기 상> 18장 19절. 40절 말씀에
19절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40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⑤ <나봇>의 포도원을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열왕기 상> 21장 9절-10절 말씀에
9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10절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 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⑥ 음행과 술수
<열왕기 하> 9장 22절 말씀에
22절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⑦ 이세벨의 죽음
<열왕기 하> 9장 30절-37절 말씀에
30절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절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절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절 이르되 그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절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절.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절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절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 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⑧ 여장부로서 남편을 좌지우지하여 가정이나
정치에 간섭한 교활한 독부였다.
<열왕기 상> 21장 25절 말씀에
25절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 하였음이라.
(2)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다.
신자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참고 성경 <요한 계시록> 2장 20절-23절).
어떤 학자는 교역자의 아내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는 <바벨론>의 신 <사이빌>(Sibylle. 이름이
<이세벨>과 비슷함)과 관련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세벨>에 대한 큰 사건
① <열왕기 상> 21장 23절
② <열왕기 상> 21장 21절
③ <열왕기 상> 21장 19절 은
<요한 계시록> 2장 22절-23절과 부합한다.
① 그 여자 자신을 병상에 던져 죽임.(22절)
② 그와 함께 음행한 자들. 곧 그의 교훈과 타협하면서
교역하는 자들을 환난 중에 던짐.
③ 그의 자녀. 곧 완전히 그에게로 귀속한 자들을 죽임.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은 외래의 이교 인물로서
자기의 사상을 가지고 복음을 변경시킨 자이다.
(3) <삼바테> : 여자 점쟁이.
다른 사본에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을 유혹한 점쟁이가 있었다.
일부 학자는 그 교회 지도자의 아내로 주장한다.
<델피>의 예언자라는 속담이 있다.
이교들의 축제는 신전에서 간음이 병행되며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제물을 먹었다.
<아합>왕은 정치(국가)를 상징하고.
<이세벨>은 우상(종교)를 상징한다.
정치와 종교가 만나서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하였다.
<두아디라> 교회가 영적으로 말하면 이와 똑같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