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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수 칼럼 *----- Re: 나물먹고 물마시고 살아도 자연속에서 행복함을 누리던 .. 견유학파를 닮은, 예수
고물장수 추천 0 조회 103 15.03.16 21:01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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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3.17 06:55

    첫댓글 Q가설에서 "Q1"에 해당하는 "어떤 지혜 어록"이 견유학파 비슷하기도 하고, 불교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건 맞아요. Q1의 내용은, 제 글 "루카 복음서에서 뽑아낸 Q 자료"에서 파란색 글씨 부분만 읽어 보세요 :
    http://cafe.daum.net/bgtopia/73AA/26986
    문제는, 이 지혜 어록의 출처를 "예루살렘 교회"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Q 가설이 힘이 셌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여기저기에서 Q 가설을 회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거든요? 고물장수 님이 인용한 글들은 대개 1990년대 무렵의 풍조 같군요.

  • 15.03.17 07:04

    Q 가설을 비판하는 "소수의견"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1) 마태오 --> 루카 쪽으로 생각하는 설로서, 영국 학자들(오스틴 파러, 마이클 굴더, 마크 굿에이커 등)이 주장했는데요. 이건 Q 비판 면에서는 괜찮은데, 마태오 저자가 Q 어록을 가져왔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설입니다(마태오 저자와 Q의 색깔이 잘 어울리지 않거든요).
    (2) Q 대신에 "마르키온의 복음서"를 집어넣는 가설로서, 독일 학자 마티아스 클링하르트(Matthias Klinghardt)가 2008년에 내놓았는데, 이 가설이 요즘에 힘을 좀 얻고 있어요.

  • 15.03.17 07:16

    어쨌든 이런 건 학술적인 주제라, 딱히 어느 쪽으로 결론낼 필요가 없고요.
    Q 가설, 마태오 설, 마르키온의 복음서 설 등의 세 가설을 모두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도로만 말해 두죠.
    저로서는 Q 가설에 회의적인데, 그 핵심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의 노선이나 "베드로나 야고보"의 노선을 다루는 초기 기독교 문헌 가운데 "견유학파" 비슷한 게 거의 없거든요? (예루살렘 교회의 노선이 정확히 뭔지... 는 수수께끼입니다만.)
    아무튼 이 주제는 중요하므로, 나중에 따로 글을 쓰겠습니다.

  • 15.03.17 07:26

    신약 가운데 "유대계 크리스천" 문헌은 크게 보아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1) 에녹 1서 같은 유대 묵시문학의 영향이 강하고, 강력한 종말론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2) "율법"을 강조한다.
    (3) 히브리 성서를 독특한 관점에서 해석한다.
    이 세 가지예요.
    "견유학파"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유대 사상"이 아니고 "그리스 철학"에 가깝거든요? 위의 세 가지 특징과 "견유학파의 지혜 사상"은 전혀 다른 계열이죠?
    어쨌든 간에, Q1의 지혜 사상이 원래의 예수 사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려면, 그 자료의 출처가 예루살렘 교회다... 맨 먼저 이걸 논증해야 하겠죠?

  • 작성자 15.03.18 01:24

    정치적 성향이 있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렐레스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매장되어 죽어간 스승 소크라테스를 보고) 사유체계보다는 일상관습에서 벗어난 생활방식을 택한 그리이스의 견유학파, 제자 '안티스테네스'가 창시자로 대표적 인물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이다.(에피쿠로스도 맥을 같이한다. 모두가 싱글남들이다..^^)

    Homo ludens(유희) - Johan Huizinga

    지지자 불여호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호지자 불여락지자 好之者 不如樂之者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 옹야편 論語 雍也篇 )

  • 작성자 15.03.17 20:09

    디오게네스는 '자연 그대로'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사회관습들을 파괴하려고 애썼다. 일상관습에서 벗어난 행위를 할 때 아무에게도 해롭지 않다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대의명분을 솔직히 내세우고 스스로를 엄격히 훈련할 것을 주장했다. 예수도 주로 길위에서 가르치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보다 진보된 패러다임을 지녔고 그래서 기존의 맞지않던 율법 관습 제도등을 쇄신하려 했읍니다.

    자료의 출처가 예수살렘교회다 라는 것보다는 예수 전 혹은 사후도 근동지방 아니 팔레스타인도 여전히 헬레니즘 영향권(그리이스 철학사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는 것에 착안을 하시는 것이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15.03.17 19:33

    초기 기독교에는 그리스 사상이 이것저것 들어와 있거든요? 가장 흔한 게 스토아 윤리학이고, 그 다음이 중기 플라톤주의이고, 지금 논의되는 견유학파 비슷한 사상도 공관 복음서들에 나오죠? 이 모든 게 "예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고 생각하는가요?

  • 작성자 15.03.18 00:01

    @강경수 서민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그런데도 지배층에서도 써먹기도 했던, 스토아 철학(만이 그리이스에 있었던 철학사상은 아니지요?) 보다는,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한 정권에 빌붙은 사람들을 질책하며 죽어간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본, 그래서 부정한 권력에 대항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 준 제자 '안티스테네스'와 같이 철학논리 보다는 작은이에게 자신의 겉옷까지 벗어줌에 행복을 느끼며 그 행실을 삶으로 실천하는 행위를 (거슬러 올라 간것이 아니라) 400년전 부터 맥을 이어 내려오는 그런 헬라 철학 사상류의 정신을 예수는 따라 간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 작성자 15.03.18 01:34

    @강경수 잠시 마카비 혁명때 헬라화 반대를 했으나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 후에 다시 헬라화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읍니다. 예수의 활동무대인 갈릴리가 당시엔 철저하게 헬라화 되었다고 버튼맥을 비롯한 성서학자들의 주장이고 세계사에 기록도 되있고요 ..

    (본문의 내용과 같이 고물은 자료얘기가 아니라 예수의 견유학파적 삶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 15.03.17 20:19

    고물장수 님, 논의의 편의상 예수를 "견유 현자"로 가정합시다. 그럼 "역사적 예수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은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견유학파" 비슷한 성향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렇잖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나 그 중요한 사도들(베드로나 야고보)을 논하는 글 가운데 "견유학파" 운운하는 글을 혹시 본 적 있는가요?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묻는 건, 저 견유학파 비슷한 자료가 초기 기독교 운동의 어느 분파의 산물인 건 분명한데, 그 출처가 과연 "예루살렘 교회"냐... 바로 이겁니다.

  • 15.03.17 20:26

    또 견유학파 비슷한 생활방식은 떠돌이 생활이므로, "율법"을 무시할 수밖에 없잖아요? 정결예법이나 음식예법 같은 걸 지키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뭔가 "율법"을 강조했을 거란 말입니다. 그런 게 "갈라티아서"와 "로마서" 등에 나오고 말이죠.
    또 다른 문제는... 만약 예수를 "견유 현자" 비슷하게 생각하면, 신약 서신들을 거의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버튼 맥처럼 그런 걸 몽땅 "그리스도 신화"로 팽개치면 몰라도 말이죠.

  • 작성자 15.03.18 07:36

    @강경수 님, 지금 알지도 못하는 Q자료니 예루살렘교회의 자료니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도 헬라문화 영향권에서 벗어나서 살다간 인간은 아닐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예수 사후에 제자들 역시 동가숙 서가식의 길위의 가르침의 삶을 살다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 더우기 바울도 그런 면모가 그의 편지들 속에서 볼 수 있는데 ... 강경수님, 고물장수의 위의 댓글들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허덕이는 가난에서 해방 되기만을 기도하며 소원하던, 디오게네스가 들어가 살던 나무등걸과 같은, 소위 예루살렘 비유대 교회 .. 그리고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컨셉은 신약서신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지요?)

  • 15.03.17 20:58

    고물장수 님, 지금 제가 묻는 건 어디까지나 "역사적 예수론"의 관점에서 묻고 있거든요? (저는 "예수적 예수"를 믿지 않아요.)
    역사적 예수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저 Q1의 출처가 예루살렘 교회다... 이런 게 뭔가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논거를 가진다니까요? 왜냐하면 학자들이라면, 복음서 이야기의 80% 이상이 초대 교회에서 만든 자료다... 이런 식으로 보통 생각하니까요. 공관 복음서들에 견유학파 비슷한 자료가 분명 있단 말입니다. 그 자료의 출처가 이를테면 "예루살렘 교회"다... 이런 게 웬만큼 설득력 있게 제시되면, 예수는 원래 견유 현자였다... 이렇게 주장해도 돼요. 역사적 예수론을 지금 전제하니까요.

  • 15.03.18 06:22

    아, 다시 읽어 보니까, 문답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군요. 그럼 제가 문제를 쉽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수상을 선택하자면, "종말론적 예언자" or "견유 현자"예요. 이 둘은 서로 충돌하는 성향이므로,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Q 가설에서는 "Q1 = 견유 지혜층" "Q2 = 종말론적 예언층", 이렇게 분류해요. 따라서 예수상을 선택하자면, 이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버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버튼 맥은 솔직한 학자인데, "견유 현자"만 예수상으로 인정하고 "종말론적 예언자" 및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부활" 등을 모두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 운동과 전혀 관계없는 예수상이 학술적으로만 구성되겠죠?

  • 15.03.18 06:30

    또 한 가지 문제는, 요즘에 여기저기에서 Q 가설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다른 대안들이 제시된다는 건데요.
    제가 보기에는 Q 대신에 "마르키온의 복음서"를 집어넣는 쪽이 유력해 보입니다. 그럼 마르코 --> 마르키온의 복음서 --> 마태오, 루카 식으로 전개되는 거예요. 이 가설을 따르면 Q 자료가 "마르키온의 복음서"에서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Q 자료는 "범 바울파 문헌"으로 분류됩니다(마르코 복음서도 바울 쪽에 가까워요).
    요즘에 제가 자주 느끼는 점이지만, 복음서 이야기도 바울 서한집의 기초 위에서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 15.03.18 06:48

    Matthias Klinghardt, "The Marcionite Gospel and the Synoptic Problem: A New Suggestion" (2008) :
    https://docs.google.com/file/d/0B75F1hKk4E3XZU5SQXFWTWFrZWs/edit?pli=1
    중요한 논문이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 15.03.18 16:29

    너무 심오한 내용에 대한 설전(논쟁?)이므로 감히 끼어들수가 없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복음서는 여러가지 예수모습, 견유거사,종말론적 예언자등의 요소가 다 함께 편집된 글이라 생각합니다만.... 글쎄요. 물론 요한복음서는 좀 다른 경향이 있지만서두.

  • 작성자 15.03.18 15:48

    심오한 얘기 아닙니다. 오날날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 당시 패러다임속에 빠져들어가 대표적 몇몇 사람들을 통하여 그냥 그려 보는 겁니다. 그리고 장기 훈수두듯 관심있게 옆에서 찬찬히 살펴보면서 생각 좀 해보시면 뭐 그런 그림 그려보고 싶은대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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