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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다시개벽 편집인,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지구야 미안하다”
최근에 내가 본 댓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이다. 그만큼 지구에 대한 관심이 전례없이 고조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유교적으로 말하면 “지구에 대한 우환의식”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싹트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에 기후위기까지 앓고 있는 지구는 분명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것은 몸이 아프다는 징후다. 지구가 아프면 만물도 편치 못하다. 지진이 일어나면 모든 게 같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구위기에 대한 감지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이른바 ‘지구화’(globalizaiton)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다. ‘지구화’는 처음에는 ‘세계화’라는 번역어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점점 ‘지구화’라는 번역어가 정착되었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지구화의 경제적 측면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점을 지적한 것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다. 그는 1986년에 쓴 위험사회(Risk Society)와 1997년에 쓴 지구화란 무엇인가?(What is Globalization?)(한글번역본 제목은 지구화의 길)에서 ‘위험의 지구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기후위기와 같은 위험이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철학자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09)는 지구의 꿈(The Dream of the Earth, 1988)과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 1999)에서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 개념을 제시하고 ‘지구법’을 제창하였다. 만물은 지구라는 하나의 ‘시스템’에서 함께 사는 운명공동체이고, 인간 이외의 존재들의 생존권도 보장해 주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을 ‘지구학자’(Geologian 또는 Earth Scholar)라고 명명하였다.[1]
여기에서 ‘지구학자’는 지구시스템과 지구공동체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아,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학자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류에 따르면 울리히 벡도 일종의 ‘지구학자’에 해당한다. 그는 국가 단위의 근대적 학문은 이미 유효기간이 다했다고 보고 학문의 단위를 ‘지구’의 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안에 따르면 우리는 한국인, 미국인이라는 의식 이외에도 ‘지구인’이라는 공통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구가 ‘님’이 되다
이러한 의미의 지구학은, 지구화에 관한 학제간 연구를 진행하는 지구학(Global Studies)과 구별하여, ‘지구인문학’(Globalogy)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지구인문학의 특징은, 토마스 베리의 지구학에서 두드러지듯이, 지구를 하나의 시스템과 공동체로 간주하고, 그 안의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번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 있다.[2] 따라서 지구인문학은 필연적으로 생태지향적인 경향을 띤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지구인문학은 19세기 말의 한국에서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해월 최시형의 개벽사상이 그것이다. 해월은 「개벽의 운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와 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한데, 유독 사람만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싸우는지라.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 (해월신사법설)
여기에서 해월은 천지와 만물의 ‘불안’을 걱정하고 있다. 천지는 지금으로 말하면 ‘지구’에 해당하고 ‘만물’은 자연에 상응한다. 천지만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이유는 세상의 운수가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세계정세는 서구열강에 의해 자본주의가 지구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때였다. “물질개벽이 장차 극에 달한다”(해월신사법설「기타」)는 해월의 말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에 대한 해월의 처방은 인간 존재를 생태적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생태적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면, ‘나’라는 존재는 만물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생명을 영위하는 의존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나와 만물은 생태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 도움을 받아가며 사는 관계에 있는데, 해월은 이것을 ‘기화(氣化)’라고 하였다.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 기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생태적 그물망의 궁극에는 ‘지구’가 자리잡고 있다. 기화는 지구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월은 지구를 또 하나의 ‘부모’로 모실 것을 제안한다. 혈연적으로 보면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모이지만, 생태적으로 보면 만물은 지구에서 태어나서 지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월의 ‘천지부모’ 사상이다. 그래서 해월에게 오면 지구가 하나의 ‘님’과 같은 대상이 되고, 수운의 하늘님은 ‘지구님’으로 재해석된다. 따라서 해월이 말하는 ‘개벽’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지구적 전환’(Global Transformation)에 다름 아니고, 각자가 ‘하늘사람’(天人) 즉 ‘지구인’이라는 자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만물이 ‘벗’이다
해월의 천지부모 사상을 받아들이면 만물은 모두 지구의 자식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동물의 존재론적 차이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해월은 천지부모와 함께 ‘만물동포’를 제창한다. 피를 나눈 친척이나 인간만이 동포가 아니라(사해동포) 인간 이외의 존재도 지구의 ‘생명력’을 나눈 형제이자 자매라는 것이다.
해월의 스승인 수운은 모든 인간은 지구적 생명력(一氣)을 몸에 모시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하늘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해월의 만물동포 사상에 의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지구적 생명력을 모시고 있는 하늘님인 셈이다(萬物莫非侍天主).
해월은 이렇게 확장된 존재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윤리학을 제창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하늘님으로 모시라는 ‘경물(敬物)’의 도덕이 그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인여천(事人如天)에 사물여천(事物如天)이 더해진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해월은 경물을 실천해야 비로소 도덕의 극치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마치 현대 서양의 인류학이나 철학에서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는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해월도 유학의 인간중심주의적 존재론을 탈피하여 지구중심적 존재론으로의 전환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서양 현대철학에는 경물의 도덕이나 윤리는 없다. 존재론적 전환은 있는데 윤리학적 전환은 부재한 것이다.
반면에 해월은 도덕이나 윤리의 범위를 인간을 넘어서 지구와 만물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일종의 ‘도덕’ 개념의 지구적 확장이다. 수운이 도덕 개념을 유학적 도덕에서 동학적 도덕으로 전환했다면, 그래서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하늘님이라는 시천주(侍天主)적 인간관을 선포했다면, 해월은 그것을 인간 이외의 존재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돈화의 지구인문학[3]
해월의 지구인문학은 그 후에 천도교로 이어진다. 가령 1920년 개벽지에 실린 ‘동물학대폐지론’이 그것이다.
“모 학자는 인도(人道)의 최후 도덕상 목적으로 동물학대폐지를 절론(切論)하여 말하였다: 「(인류가) 동물을 먹는 것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지만, 이들을 죽여서 먹을지라도 여기에 우애주의, 즉 인도주의를 확실히 지키지 않을 수 없으니, 가급적 그 고통을 없게 하며 (…) 그들의 행복을 중히 하여 과도한 사역을 금하며 무리한 학대를 피함이 옳다. (…)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사람의 품성을 황폐하게 하며 감정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 그러므로 인도주의의 종국 목적은 동물학대폐지까지 이르지 아니하면 완벽한 준비의 지경에 이르지 못하리라」라 하였다.”[4]
여기에서 우리는 해월이 “경물을 실천해야 도덕의 극치에 이른다”고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동물을 학대하면 인간의 본성도 황폐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라 인간과 만물 사이에서 지켜져야 하고, 그것을 ‘인도주의의 궁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사상가인 야뢰 이돈화는 신인철학(1934)에서 동학의 ‘하늘’ 개념을 ‘한울’로 재해석하면서 ‘지구적 자아’ 개념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울’이란 모든 존재가 지구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지구의 생명력을 공유하며 산다고 하는, 만물의 공동 존재성이 강조된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월의 ‘천지부모’ 사상이나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 개념과 상통한다.
이돈화는 이러한 한울 의식, 달리 말하면 지구공동체 의식을 자각하면서 사는 존재를 ‘무궁아(無窮我)’ 또는 ‘대아(大我)’라고 하였다. 생명 개념을 지구적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키면 인간이 무상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지구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 해월에게서 도덕이 지구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됐다면, 이돈화에게서는 자아가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무궁아’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지구와 만물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서 지구와 만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식이 생기게 된다. 이에 대해서 이돈화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대우주의 무한한 시간 중의 이 현재, 무한한 공간 중의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대우주 대생명(즉 한울)의 가장 고도로 발전된 일부분적 생명이다. 이 우주, 즉 한울을 떠나서 생겨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나는 마땅히 우주 만물을 사랑하고 아끼고 잘 기르고 잘 발전·향상시킬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계 인류 중의 하나이다. 이 인류 사회를 떠나서 내가 생길 수도 없으며 살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나는 마땅히 이 세계의 무궁한 발전·향상과 이 인류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증진·향상시키는 사업에 적극 노력하며, 이 인류 사회의 발전·향상과 함께 자신의 행복을 증진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5]
여기에서 이돈화는 사물에 대한 공경(敬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물에 대한 돌봄까지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만물에 의존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고도로 발달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만물을 잘 기르고(養物),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시대의 지구공화
해월의 지구인문학은 1930년대의 이돈화를 거쳐 1980년대에 한살림으로 이어진다. 한살림운동이 시작된 20세기 후반의 한국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해월의 우려대로 ‘물질발명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그 결과 지구시스템이 붕괴되고 그 자리를 자본주의시스템이 대체하였다.
지구학적으로 말하면, 전 세계적으로 과학(산업화)과 경제(자본주의)의 지구화가 진행되어 인간과 만물의 생태적 균형이 깨진 것이다. 기후위기, 팬데믹, 혐오사회 등은 모두 이러한 지구적 균형(global harmony)의 상실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지구인문학적으로 말하면, “현대인들이 우주를 상실하여”(D.H. 로런스, 요한계시록), ‘지구공화’(地球共和)가 깨진 것이다.
이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공화는 ‘지구민주주의’(global democracy) 또는 ‘생태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회복될 수 있다. 민주공화의 차원을 인간과 국가를 넘어서 지구적(global) 차원으로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해월이 도덕의 영역을 지구와 만물로 확장하고, 이돈화가 생명과 자아의 차원을 우주와 만물로 확장했듯이 말이다.
실제로 김대중은 동학이나 불교와 같은 아시아적 가치를 언급하면서,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인간 이외의 존재들, 가령 산, 나무, 강 등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지구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Is Culture Destiny?」, Foreign Affairs, 1994). 그리고 2017년에는 뉴질랜드는 ‘강’을 오염시키면 처벌을 받는 ‘지구법’을 제정하였다. [6]
그렇다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한국이 나아가야 할 민주공화는 지구적 차원의 민주공화가 아닐까? 그럴 때 비로소 한살림이 지향했던 ‘지구살림’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주석]
[1] <토마스 베리 강좌> “지구와 사람” 홈페이지.
http://www.peopleforearth.kr/load.asp?subPage=320
[2] 조성환·허남진, 「코로나 시대의 지구인문학」, 2020 원광대학교 교책연구소 연합포럼 “COVID-19 이후 대학연구소의 나아갈 길”, 2020년 8월 26일 발표문.
http://www.wth.or.kr/modules/bbs/index.php?code=pds&mode=view&id=49&page=&___M_ID=31&sfield=&sword=
[3] 이 절은 조성환, 「현대적 관점에서 본 천도교의 세계주의 – 이돈화의 지구주의와 지구적 인간관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84집(2020년 여름)을 참고하였다.
[4] 인터넷싸이트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한국근현대잡지자료’ 개벽 4호, 1920년 9월. 이 자료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로부터 소개받았다.
[5] 김병제⋅이돈화, 천도교의 정치이념, 모시는사람들, 2015, 269쪽.
[6] 〈뉴질랜드, 자연 훼손하면 상해죄 … '지구법', 한국은?〉, 《중앙일보》(온라인), 2017.04.15.
* 출전 : 무위당사람들 72호. 202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