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공간은 원자 규모보다 훨씬 더 작은 것들에서부터 크기가 우주적인 것들까지
가능한 모든 파장을 가진 영점 파동들의 양자 바다
cipher와 zero.
모두 0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반면 void는 무(無: nothingness), 진공(眞空: vacuum) 등을 의미한다.
진공은 기본적으로 물질이 없는(빠진: devoid)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적으로 진공은 마이너스의 에너지로 충만한 무한의 장소이다.
이를 디랙(Paul Dirac)이 제안했다 해서 디랙의 바다라 한다.
디랙에 의하면 진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바닥 없는 지하 갱도 같은 것이다.
이때 지하 갱도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때 쓰이는 사다리의 단(段: 층계 단)은 전자가 머무는 가능한
양자상태이다.
미국의 과학 작가 K.C. Cole(콜)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無)는 사실상 대부분이 가짜라고 말한다.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에도 진공 한 숟가락에 원자 한두 개는 들어 있고 요행히 원자들을 완전히 제거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수많은 별들이 내뿜는 빛들로 가득하며 엑스선과 감마선, 중성미자를 비롯해
아직 알려지지 않는 이상한 입자들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콜은 진공은 더 이상 아무것도 제거할 수 없는 상태이자 빈 상자이지만 그 빈 상자가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라는 콜먼의 말을 상기시킨다.
프랭크 클로우스는 고요한 깊은 바다와 같은 진공은 외부의 교란이 없는 한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고
말한다.
진공의 이런 모습은 중성자가 전체적으로는 전하가 없지만 내부는 전하가 있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이때 내부가 반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었음은 물론이다.
진공에 대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은 호수의 물을 멀리서 보면 고요한데 가까이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 아주 작은 에너지의 편차가 생긴다는 비유를 통해 에너지 = 물질(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
이론에 의해)이니 진공 상태에서도 물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 정도였다.
물리학자 출신의 불교 수행자 앨런 월리스가 이 양자 효과가 뇌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의거
해 의식의 기원을 밝히려 하고 있음은 주목된다.
프랭크 클로우스는 마치 앨런 월리스에 답하기라도 하듯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를 이해
하기란 우주의 물질이 어떻게 무(無)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을 한다.(7 페이지)
프랭크 클로우스의 ‘보이드’는 우주의 빈 공간과 무(無), 그리고 진공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애쓴 인류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진공이 의미 있는 것은 빅뱅이 이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플랭크 클로우스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고대 그리스의 진공에 대한 논의에서 현대물리학 즉 양자역학의
진공에 대한 논의까지로 진공의 총체적 역사라 해도 무리가 없다.
진공 논의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와도 관련된 사안이다.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는 정상(定常) 우주라 생각한 가운데 아인슈타인은
그렇다면 우주는 자체 증력으로 수축해 결국 붕괴할 것이라고 보고 자체 수축을 저지하는 힘으로
우주 상수(常數)를 도입했다.
후일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우주 상수가 불필요한 것으로 판명되자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
도입을 일생 일대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주가 가속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중력으로 인해 팽창이 느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중력을 상쇄하고도 남는 척력이 요구되었고 이 알 수 없는 힘 즉 암흑 에너지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인슈타인이 버린 우주상수 즉 진공이다.
현재 우주를 설명하는 표준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140억 년 전 빅뱅이라는 대폭발에 의해 생겨났다.
빅뱅 이후 1/ 10의 36 제곱(초)에 걸쳐 일어난 인플레이션(급팽창)으로 우주는 1050배 커졌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앨런 구스(Alan Guth)와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에 의해 정식화되었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주가 등방적(isotropic)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우주가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우주는 편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무판이 급격히 잡아당겨져 펴지듯이 공간이 편평해졌고, 작은 부분이 아주 많이 커짐으
로써 우리 우주는 어디서나 정보 교환이 가능했고 온도와 밀도 등이 균일해진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균일한 것은 아니었다.
양자역학의 효과에 따라 양자 요동이 생겼고 이로 인해 우주의 영역마다 온도와 밀도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
이 차이가 지금의 은하, 별, 행성, 그리고 생명체 탄생의 씨앗이 되었다.
현재 초기 우주를 실험으로 밝혀내려는 연구가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진공의 비밀도 밝혀지고 있다.
앞서 우주 상수를 둘러싼 아인슈타인의 우여곡절을 이야기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는 말을 했다.(‘보이드’는 양자역학과 천체
물리학을 결합해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가 우주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풀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을 던지면 돌과 함께 주위의 공기가 움직인다는 말을 했다.
돌이 전진하면 돌 뒤에 진공 상태가 만들어지는데 공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돌 뒤에 들어간 공기에
눌려 돌이 계속 날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물론 이는 운동 법칙에 어긋나는 이야기이다.
어떻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공론은 오늘의 논의에 부합한다.
데카르트 역시 우주가 꽉 차 있다고 생각했다.
빈 공간에서 원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물체들이 끊임없는 운동(vortex: 위치를 바꾸는 운동)을 한다
는 결론이 도출된다.
사물의 본질을 외연(外延)으로 본 데카르트에게 공간은 물질이었고 물질은 공간이었다.
즉 물질과 공간을 구분할 수 없었던 그의 세계에서 진공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데카르트의 공간은 물질로 가득한 플레넘(plenum: 물질이 충만한 공간)이었다.
양자장 이론에서 말하는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란 것이 있다.
진공 상태에서 2개의 금속 행성을 약간 떨어지게 두었는데 기이하게도 두 행성이 서로 잡아당겼다.
전하를 띠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두 행성이 전하를 띠지 않는 것이었으니 우주 속에 진공장이 가득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카시미르 효과는 진공 에너지의 실재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후보이다.
진공 에너지는 텅 빈 공간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시공간은 임의의 유한한 시간에 에너지가 0이 될 수 없다.
진공이라 알려진 공간에서 가상 입자들이 쌍으로 생성되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진공 즉 보이드와 반물질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랭크 클로우스의 ’보이드‘ 이전 책이 ’반물질‘임은 시사적이다.)
반물질은 질량과 스핀은 같고 전하가 반대인 물질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 에너지는 언제든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물리량이라고
말하며 에너지의 격동이 심해지면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서 전자와 양전자(전자의 반물질)가 갑자기
생겨날 수 있는데 빌려 온 에너지이기에 빠른 시간에 돌려줘야 하므로 진공 중에서 느닷없이 생겨난
전자와 양전자는 곧바로 합쳐지면서 소멸한다고 설명한다.
그린에 의하면 무언가를 빌렸다가 되갚는 일이 계속 이어지면 평균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어 거시적으로는 텅 빈 공간이 아주 고요한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다.
카오스 팽창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가짜 진공이거나 진짜 진공 중 하나의 상태에 있다.
어려운 말이지만 가짜 진공(에너지 밀도와 대칭성이 높은 상태, 진짜 진공보다 에너지는 높지만 다른
이유로 인해 안정화된 가짜 상태)에서 진짜 진공(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으로 옮겨갈 때 급팽창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한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시드니 콜먼(Sidney Coleman: 1937 - 2007)은 힉스장이 작동하지 않을 때의
고에너지 상태를 가짜 진공으로, 힉스장이 작동을 한 후 안정을 찾는 에너지 곡선의 최저점을 진짜
진공이라 표현했다.
역장(力場)과 물질입자가 언제 동등해지는지, 그리고 언제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힉스
메커니즘인데 이 메커니즘은 힉스장(힉스場)이라는 새로운 장에 의존한다.
힉스장은 힘과 입자가 서로 다르게 행동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스위치와 같다.(폴 스타인하트, 닐 투록
지음 ‘끝없는 우주’ 참고)
힉스 보손 또는 힉스 입자는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질량을 있게 하는) 입자로 17개의 기본
입자 가운데 하나이다.
힉스입자들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기본입자들의 속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입자들 각각에 개별적인
관성을 부여한다.
기본적으로 각종 기본입자들이 스칼라장(크기는 있지만 방향이 없는 양을 나타내는)에 속하는 힉스장
(힉스장은 자기장과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스칼라장에 속한다.)을 통과하게 되면 힉스입자들의 흐름에
의해 각각의 관성을 갖게 되는데 이는 기본입자들에 질량이 부여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공이란 결국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입자 - 반입자의 바다, 생성, 소멸이 지극히 순간적이고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곳이다.
저자는 빈 공간은 원자 규모보다 훨씬 더 작은 것들에서부터 정말로 크기가 우주적인 것들까지 가능한
모든 파장을 가진 영점 파동들(zero point waves)의 양자 바다(quantum sea)라고 말한다.(196 페이지)
저자는 들끓는 진공은 빈 공간으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심오한 암시들을 제공한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저자는 우주는 결국 공짜로부터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241 페이지)
저자는 양자 우주의 철학에서 소위 공간과 시간은 양자 거품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말한다.
알려진 과학에서 이 철학을 거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56 페이지)
물론 저자는 무엇이 양자 가능성을 빈 공간에 암호화했는가라는 수수께끼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270 페이지)
‘보이드’는 현재 우주 탄생 시나리오와 그 이전 상태, 그리고 무엇이 양자 가능성을 빈 공간에 암호화했는
가란 질문을 통해 알 수 있듯 가장 앞서 가는 첨단의 우주론을 담은 책이다.
‘보이드’는 어렵다기보다 시간을 두고 몇 차례 정독하고 다른 책들도 참고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