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제대로 믿읍시다
욥 1:6-12
대학 4년 공부하는 동안 그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다 겪는 기간이었습니다. 굶어보기도 하고 새벽시장에 가서 등짐도 져 보고, 연탄장사에, 건축현장에서의 경험, 3년간의 야경, 때로는 단돈 500원으로 한달을 견뎌야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들을 4년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다시 하라면 또 하고 싶지만 그 경험들은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통해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광야경험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되돌아보면 그 경험들은 목회활동을 준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광야 경험이 우리를 세우고 견고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를 세우시는 견고한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나가시면 나머지 모든 부분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결하시고 길을 인도하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예수 제대로 믿읍시다’ 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제게 하는 말씀입니다. ‘목회하려면 제대로 하자’ 이런 의미입니다. 더위가 시작되면서 제 생활리듬이 완전히 뒤죽 박죽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말씀에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제대로 하자고 다짐을 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온전한 삶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믿음지키자.
온전한 신앙을 할 때까지 믿음 지키자가 아닙니다. 삶이 믿음을 온전히 드러낼 때까지 신앙을 제대로 하자고 말씀을 드립니다. 교인들에게 성경의 인물 중에 가장 좋은 인물을 물으면 누구를 가장 많이 말할까요? 아브라함, 모세, 혹은 바울, 때로는 찬양하는 다윗 등 많은 인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욥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우리 인생이 욥과 같다고 생각됩니까? 그것은 착각입니다. 욥은 거룩한 시험을 당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의 경험, 여러분들의 가정의 경험이 욥같은 광야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욥은 졸지에 재산이 사라졌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순식간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그야말로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온전하다’라는 영어는 “blameless”입니다. 이 말은 탓하는(blame) 것이 없다(less)라는 뜻입니다. 흠잡을 데가 없고 도무지 탓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비겁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올곧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시험이 과하다고 하나님을 외면하거나 하는 그런 비겁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길을 걷다가 으쓱한 골목길에서 불량배를 만났습니다. 불량배가 다가와서 아내의 얼굴을 치켜보고 얼굴에 손을 대며 “참 예쁜데?”하면 아내를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데려가 사실래요?”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아내를 보호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욥이 비겁해질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조차 욥의 신앙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가 욥이었고 그런 사람인 욥을 하나님은 온전한 사람, 탓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 함은 하나님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섬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입니다. 이것저것 다 최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최고로 섬기는 삶을 신앙생활이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최고로 응답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기적도 베풀어 주십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시 1절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욥 1:1) 『그는 완전하고 진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욥의 생활이 여기서 그만이 아닙니다.
(욥 1: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은 자녀들조차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하여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자녀를 대신해서 언제나 두려운 마음으로 예배하고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왕에 예수 믿는 것 온전하게 신앙합시다. 신앙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흥할 때만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 신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처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나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온전히 드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탓할 것이 전혀 없는 온전한 신앙생활로 돌아가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로 오늘 이 시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침례받는 자매님들이 그렇게 결심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2. 변화가 일어나야 예수 믿는 것이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신앙하면서 둘 중 하나 선택합니다. 변질되면 죽는 것이고 변화되면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예전에 좋던 것이 싫어지고 과거의 가치관이 바뀌고 악을 떠나 선을 좇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 목숨을 걸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태도변화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변질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름철에 냉장고에 둔 음식이라고 100% 믿으면 안되지요. 냉장고를 자꾸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 보면 냉장고 속에 보관된 음식도 상합니다. 소위 변질되지요.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테두리 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받을 수 있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악을 행하는 태도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사단과의 접촉을 차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변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접촉보다 세상의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면 변질됩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가 등한시되면 변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욥 1:6-7)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도 함께 왔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동급이 아닙니다. 절대로 동급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순간에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사단도 역시 지금 이 자리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이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며 우리를 변질시키기 위해 두루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도 역사합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신앙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단에게 패배하고 변화가 아니라 변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변화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됩니다. 예수님처럼 변화되도록 합시다.
3. 예수신앙, 진짜로 합시다.
좀 전에 읽었던 6-7절에서 땅을 두루 돌아다니고 온 사단이 하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짝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줄 정도로 사랑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답변이 그 다음절입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몰락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성도들은 대충 신앙합니다. 사단은 교회를 허물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쓰러뜨리는 일에 거의 성공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정신이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리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는 일에 명수인 사단에게 “욥을 보았느냐”하고 자신있게 욥을 소개합니다.
지난 주 휴가로 삼척을 갔습니다. 목회하면서 성도와 목사로 만났던 성도들 몇 가정이 동해에 살고 있습니다. 28년전, 23년전, 그리고 12년 전에 함께 신앙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월요일에 동해에 가서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한 분이 치킨집을 개업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한 시간여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 중에 감동이 받았습니다. 현 시대의 성도들의 신앙 모습 때문에 염려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가의 치킨 집, 제일 피크타임이 금요일 저녁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과감하게 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전화가 걸려오더니 이제는 토요일 저녁에 주문하면서 어제 참는다고 혼났다고 하면서 주문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존심을 지켜 드리는 것입니다. 피크타임인 금요일 저녁에 장사하면 하룻 저녁에 100만원 가량의 매상을 올릴 수 있지만 100만원의 매상보다 문을 닫고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자존심을 지켜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결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짜이면 가짜로 알고 우리가 진짜이면 진짜로 아십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오해를 당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를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존심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존심으로 살려면 이왕 예수 믿는 것 목숨 바쳐 제대로 된 신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흔들리지 말고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치유하실 것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과 우리를 예수쟁이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읍시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는다고 착각하지 말고 제대로 신앙을 합시다. 욥은 자신이 가진 소유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다 잃고도 하나님을 믿는 마음에 요동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이 재난으로 다 죽어도 신앙의 추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이 엄청난 시련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길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연인들이 사랑합니다. 이 사랑이 계속 되려면 오직 그 연인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바라보고 기웃거리면 그 사랑은 깨어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진짜 예수쟁이가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나님처럼 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제대로 신앙해 봅시다. 신나는 신앙생활을 해봅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신바람이 나야 변화가 됩니다. 그리고 내 생활에 신앙생활이 됩니다. 욥처럼 거룩한 시험들이 닥쳐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흐트러진 우리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온전한 신앙, 제대로 된 신앙의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지, 기적같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지 우리 같이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