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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농사 이야기(2013/11/26~12/02)
무녀리- 문 열고 나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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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일을 대충 수습했다.
완벽히 수습했다라고는 말 할 수 없다.
가을에 갈무리한 농산물을 도시의 "마지막 농부"들에게 보내는 일을 아내에게 맡긴 채 아이들을 뒤로하고 밀양으로 내려왔다.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농사가 아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를 위해 농사가 아닌 일을 계속한다라는 게 참으로 우습기는 하지만 내게는 현실이다.
인근에서 농사 짓는 형님 집에 갔다.
밀양으로 오기 전 인사라도 해야 했다.
한 해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마주 앉아 술잔 한번 부딧 친 일이 없으니....
그 집에 한 100년쯤 된 옻나무가 있다.
간장 담을 때 옻을 좀 넣을까 해서 부탁을 했다.
높은 나무로 올라가 톱질을 하는 형님을 밑에서 바라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저 양반은 내가 누구 길래 저리도 열심히 옻나무를 베어 주는걸까?"
그저 오며 가며 술 몇 잔 한 게 우리 관계에 전부인데 세상에 사람은 나 뿐 인 양 열심히 나무를 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차 뒤에 옻나무, 마늘 한접, 말린 시레기를 실어주셨다.
사람이 이렇게만 살아도 되겠구나.
그러면 살만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왔다.
밀양에 내려왔다.
앞으로 5개월을 살 집이다.
하늘은 아찔하게 푸르고 5개월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수확한 콩을 싣고 밀양에 왔다.
작년엔 아내가 낮에는 직장에 밤에는 콩을 골라 도시 농부들에게 보냈다.
올 해는 다소 널널한 내가 콩을 골랐다.
더위와 바람, 비와 어둠으로 맺은 열매들이다.
무녀리를 골라낸다.
벌레 먹고 썩고 색이 바랜 콩을 골라 따로 둔다.
대부분은 우리 집 두부의 재료가 된다.
생산자가 생산물에서 소외되는게 우리 현실이다.
실한 놈들은 다 팔고, 무녀리는 생산자인 농부의 몫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무녀리에 애착이 간다.
내꺼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옆동네 선보 형님이 물었다.
"무녀리가 왜 무녀린 줄 아라?"
"몰라요!"
선보 형님 왈
"문 열고 나왔다 그래서 무녀리야!"
"장남들 생각해봐. 전부 션찮잖어. 효도하는 건 둘째, 세째야. 너나 나나 무녀리야."
"그러네요. 형님. 그러고 보니 저두 무녀리네요."
무녀리들이 모였다.
동양 최대의 송전탑, 밀양에 22기가 이미 건설중이거나 완공됐다.
서울의 송전탑 지중화율이 70%가 넘는다나 어쨋다나.
헌데 시골은 만만한지 동네 뒷산까지 밀고 올라왔다.
이 할매들을 막으려고 전경 수백명이 상시 진을 치고 있다.
싫다는데 억지로 밀어부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본인들이 싫다는데....
이제 다시 갑오년이다.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샘 솟는다.
올해는 왠지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묘하다.
2014년 갑오년 새해에도 정치, 경제, 사회에....
건강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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