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첫 유정독서모임, 김유정역 김유정문학열차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1월이라고, 아직은 가을이라고 어깃장을 부렸는데, 이제 12월 7일, 누가 무어라고 해도 이제는 겨울입니다. 그런데 겨울 치고는 웬일인지 오늘은 푸근한 날씨었습니다.
오늘 1차시에서는 '12월의 인사'로, 이어령 교수의 < 雪人의 발자국>을 읽으면서 전설과 전설을 넘어선 증언, 그리고 상상 속의 설인이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는 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긴 겨울 밤, 설인의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 설인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설인에 대한 상상은, 설인의 체온과 체취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우주적인 신비체험이지요. 천지가 눈에 덮인 겨울밤에 문학작품을 읽고, 예술작품을 향유한다는 것, 그에 대한 감동, 나아가 우리들의 소망이나 고독, 슬픔을 한 줄의 글로 써본다는 것 자체가 설인이 남긴 발자국 처럼 경이로운 생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이왕에 설산과 설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유정독서모임 회원인 정금지 선생이 그녀의 수필작품
<김유정역에 눈이 내린다>를 읽어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 작품은 함박눈이 쏟아지던 작년 이맘 때, 김유정역과 문학열차에서 유정독서모임에 참석해서 체험했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들은 조정권 시인의 < 산정 묘지 1>, 김광균 시인의 < 설야>, 공광규 시인의 < 그만 내려 놓으시오>를 읽으며 이 겨울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찾아주신 귀한 손님 ' 실레책방' 주인장 어선숙 선생이 찐고구마를 가져오셔서 모두들 환호하며 따뜻한 찐고구마를 먹었습니다. 비록 눈은 내리지 않았어도 우리들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따뜻한 실내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토론하며,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그럴듯한 날이 아닌가고 웃었습니다.( 음식물 섭취금지 구역이라고, 문학열차 관리 여직원에게 주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반쯤은 미안한 생각, 반쯤은 그 야단 맞는 것 자체가 재미 있다고 느끼는 순간, 목구멍을 메게 하는고구마가 그렇게도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엔 역시 뜨거운 고구마가 최고 입니다. )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메어지는 때에 맞추어 민정 선생이 '제주양배추 진액' 팩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역시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2차시에는 찰스 디킨스 원작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일본인 무라오카 하나코가 일본어로 축약한
<소녀 네리>, 이것을 저본으로 김유정이 한국어로 중역한 <귀여운 소녀>를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귀여운 소녀>의 네리는 일찌기 어머니를 사별하고 고물상을 하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외손녀를 끔찍이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세상을 뜨기 전에 외손녀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고파 합니다. 그러나 그 유산이란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이 아니라 노름판에서 돈을 따서 손녀에게 주려고 하는 허황한 꿈일 뿐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밤마다 노름판에 나가고, 심지어는 악당 고리대금업자에게 노름돈을 빌어서 노름을 하다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마저도 차압을 받게 됩니다. 네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악당 고리대금업자로부터 탈출, 극단 사람들을 만나고, 요술을 부리는 자이레 아주머니를 만나 도움을 받고는 하지만, 할아버지의 노름 버릇을 고치지 못합니다.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들의 꾐에 넘어가 은인인 자이레 아주머니늘 해치고 그녀의 돈을 강탈할 생각까지도 합니다. 이에 네리는 할아버지를 악당들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할아버지를 모시고 유랑길에 이르고, 폭우를 맞은 이후 건강을 해쳐 결국은 은인인 교장 선생님의 극직한 보살핌 아래서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할아버지도 외손녀를 따라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귀여운 소녀>입니다. 노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노름꾼의 숙명, 노름꾼에 딸린 가족이 겪어야 하는 심신의 고뇌 같은 것이 이 작품 속에 배어 있습니다. 무엇이 선량한 사람으로 하여금 노름에 미치게 하고 노름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귀여운 소녀>를 읽고 나서, 번역과 중역의 차이, 번역과 번안의 차이, 문학가 가운데 대표적인 노름꾼으로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김유정 작품 가운데 노름꾼이 등장하는 < 만무방> <소낙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모임은 2023년 12월 21일 18:00에 커먼즈 필드에서 진행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유정의 소설 < 솥>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3. 12. 7.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