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위 시인의 시집 <겨울풀>이
우리시대현대시조 100인선 가운데의 96권으로
2006년 7월 태학사에서 나왔습니다.
박옥위 시인은
1941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현대시조, 시조문학 추천 등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성파시조문학상, 이영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금강초롱을 만나>, <숲의 침묵>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이우걸 시인은 '올곧은 삶 올곧은 詩'라는 해설에서
"...박옥위 시인의 서정시인으로서의 모습....안은한, 신선한,
화려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그의 작품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그러나 비단 아름답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단순히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부단한 몸부림들이 독자의 공감을 얻게 될 때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탁월한 수사의 도움을 입고 있는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변치 않는 가치관이 있다....박옥위 시인은
"시는 근본적으로 인생의 비평"이라고 한 아놀드의 견해에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편은 존재의 삶을 살기 위한 처절한
자기 반성의 방법이며 동시에 부조리한 세계에 항거하기 위한
투쟁의 깃발이다. 그러나 그 깃발은 공소하지 않고
과장된 분장술을 쓰지 않는다. 즉 언어가 거칠거나 냉정하거나 쉽게
흥분하거나 조악하지도 않다. 담담한 일상어법으로 정직하게 바라본
세계에 대해 노래할 뿐이다. 이제 그 노래는 더 곡진하고 더
깊어져 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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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풀
-박 옥 위
풀들이 주저앉아 겨울 해를 당긴다
더 키를 낮추고 몸을 도사린 채
양지에 납작 엎드려 삼동을 읊고 있다
버릴 건 다 버리고 줄일 건 다 줄인 채
부드러운 흙에다 전신을 펴 붙이고
저 땅 속 포근한 소식에 귀마저 내려놓다
마르지 않는 풀은 토박이 근성이다
겨울을 건너가는 풀들의 작은 몸짓
발 붙여 살아온 터를 온몸으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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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 4
-삶
-박 옥 위
바늘구멍 사진기 속 먼지들이 춤을 춘다
아우성을 치면서 몸부림을 치면서
빛 속에 조명되는 삶, 한때를 엿보다
무수한 먼지의 입자들 사이에는
익명의 분자들이 공존하며 살고 있다
호명에 응답하면서 삶이 한결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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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을 만나
-박 옥 위
초가을 금정산에서
금강초롱을 만나다
아, 얼마만인가
책 속에서 널 만난 후
내 꿈속
그리운 날에
방울소리를 내던 꽃
비밀한 품을 가진 금정능선 가까이
금강초롱 순한 너를 내 맘에다 부비고
어둡던 눈도 부비며 새 날 빛을 보겠다
널 만나 나도 이 밤 고웁게 젖을까봐
보랏빛 여린 살에
가을달이 내릴 때
사랑도
꽃물이 배어
그리움만 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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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정운의 시를 읊다
-박 옥 위
작설차 한 잔 두고 시의 이랑을 헤쳐 가면
지나던 구름송이 흰 자락이 젖어온다
기억이 풀린 자리에 임 생각이 맑아온다
코신 한 켤레 달빛 아래 희디흰데
쪽머리 참빗질하던 차디찬 겨울밤
옛 생각 하얀 나비 떼 밤새워 날아든다
불이 되지 못하는 삶의 젖은 구비 구비
가시덤불 길 따라 이슬 같은 시를 놓아
혼자세 헤쳐 가는 글 숲, 깊은 밤을 헤매다
어둠 속 먼 먼 길 빛 하나 타고 있다
임의 등불인가 꺼지지 않는 저 화톳불
지금도 글 숲의 이랑에 새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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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박 옥 위
내 사유의 바닥까지
밑밥을 놓아두고
찌를 바라보는
가슴은 처절하다
삼행시 행간을 입질하는
무수한 잠언들.
간석지를 떠난
수만 새 떼들의 비상
예각의 울음들이
한순간 사라질 때
절망과 접해있는 핵이
노을 속에 떠오른다.
깊은 어둠이다
살얼음 낀 강은 깊다
적멸을 불사르고
몸 추스리는 새벽 새
이제 막 미명을 벗고
비상을 시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