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협회 홈페이지 <동화방>에 재수록된 동화작가 배익천의 동화 <풀종다리의 노래>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그 작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떤 이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원천적인 창작 욕구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외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마음과 영혼에 위안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라고 말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시대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의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또 어떤 이는 불의에 항거하여 시대와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동문학에 종사하는 시인과 작가들은 이런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작품을 쓴다는 보편적이고 두리뭉실한 대답을 할 것이다.
2.
동화 <풀종다리의 노래>는 일종의 우화적 동화이다. 짐작하건데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사람은 현재 MBC 문화방송국의 아나운서 국장인 손석희 아나운서이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1992년 노조 권익쟁취위원으로 활동하다 푸른 수의를 입고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풀숲 왕국 풀무치 대왕은 당시 민주노조 활동을 억압하고 탄압하던 권력자를 상징하고 있으며, 감옥에 갇힌 풀종다리는 민주 안론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던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를 비롯한 민주 인사들을 상징하고 있다. 풀무치 대왕이 풀종다리를 감옥에 가둔 것은 단지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이유보다는, 풀숲 왕국 풀벌레들의 억울함과 아픔을 풀종다리가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즉, 자유를 열망하는 민중들의 아픔과 민주적 언론 쟁취를 위해 투쟁하던 당시의 언론인과 지식인들을 탄압하던 정치 권력자들의 폭압을 우화적 동화라는 형식으로 항변하고 있는 것이 이 동화이다.
3.
필자도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8년의 정치 권력자들의 폭압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던 김지하 시인을 상징적 모델로 하여 <쫓겨난 여우>라는 우화적 동화를 써서 발표했다가 필화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바가 있었다. 이 작품의 창작 모티브는 돌아가신 조유로 선생님에게서 얻은 바가 있다. 당시 필자를 비롯한 몇몇 아동문학인들은 광복동의 모 다방에서 자주 모여 조유로 선생님을 모시고 당시의 시국을 염려하며 토론을 자주 했던 경험이 있다. 이런 예는 우리 문단사를 살펴 보면 심심찮게 발견할 수가 있다. 소설가 한수산은 전두환 정권 당시 J일보에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작품 속에서 군인을 폄하했다는 꼬투리를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당시의 조국에 환멸을 느끼고 기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정권이 바뀔 때까지 피신한 적이 있었다. 소설가 이문열 역시 동아일보 중편소설 당선작인 <쇄하곡>이 역시 군대를 폄하했다는 이유로 모 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시중의 책을 회수당한 적이 있었으며, 시인 박정만 역시 모 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나온 뒤에 매일 소주만 마시다가 생을 마감한 적이 있었다. 시인 천상멱 역시 모 기관에서의 고문 후유증으로 미친 사람처럼 생을 탕진한 적도 있었다.
4.
아동문학 작품도 이런 유사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마해송의 몇몇 동화는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포악성을 고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현대적 고전이 된 쌩 떽쥐베리의 동화 <어린 왕자> 역시 성인을 위한 동화이다. 어린 왕자가 자기 별의 장미 나무와 다투고 난 뒤 여러 별을 여행하면서 겪는 이야기는 정신보다는 물질을 우위에 두고 있는 성인 세계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한 의도에서 쓰여진 것이다. 정채봉의 동화 역시 성인 세계를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쓰여진 동화이다. 이솝 우화 역시 당시 로마 귀족들의 퇴페적 세계와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의, 그리고 성인 세계의 불합리성을 동물의 세계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우리 아동문학 작품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본래의 원찬적인 목적도 중요하지만, 성인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물질 만능의 정신 세계를 풍자하고 비판하는가 하면, 정치 권력의 폭압성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내용의 우화도 많은 시인과 작가들에 의해 쓰여져야 할 것이다. 꼭 성인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이런 작품을 우리 아이들이 일찍부터 읽는다면 그들 역시 성인이 되어 자유와 진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주 사회를 건설하려 노력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5.
요즘 아이들은 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집 밖만 나서면 상업주의가 범람하고, 학교 담 밖만 나가면 학교에서 배웠던 윤리와 도덕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는 모두 우리 성인들이 저지른 잘못이고 사회구조적 모순에 다름 아니다. 아동문학 작품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이런 참담한 현실을, 사회구조적 모순과 성인들의 잘못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의 우화적 동화를 많이 써서 성인들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고 책임의식을 심어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인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21세기 후기 산업사회에서 겪는 희망과 좌절, 고민과 갈등, 불안과 공포를 형상화하는 성장 동화도 많이 써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소설가 오정희의 성장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라는 성장동화는 우리 아동문학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6.
시인과 작가는 모름지기 시대와 민중의 아픔에 귀기울여야 하고 민중의 아픔을 대변하는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시인과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보다 나은 사회와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동문학도 이런 시대와 민중의 아픔, 우리 아이들이 겪는 불안과 좌절, 그리고 심리적 불안감과 영혼의 절규를 우화적 동화라는 형식으로 형상화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 못지 않게 아름답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동문학 작품에도 이탈리아의 아미치스가 쓴 <쿠오레>(국내에서는 사랑의 학교로 번역되어 있음)나 일본의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토끼의 눈> 같은 작품이 이제는 니와야 한다. 이런 작품들처럼 일선 학교의 교육 현장을 무대로 한 본격적인 작품이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