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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순간 죽고 다시 태어난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원핵생물들의 초기 공생발생 중 하나가 원생생물의 진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핵과 새로운 종류의 체내 동역학을 갖춰 다른 세포들을 섭취하고 게놈을 꿀꺽 집어삼킬 수 있는 세포들이 탄생했다. 이 고대의 원생생물들은 대기 중에 산소가 증가하자 그에 대처하여 다른 원핵생물들을 통합했다. 그 후 2차 공생발생 사건들은 많은 후손들을 낳았으며, 나중에 우리도 포함될 그 후손들의 세포에 미토콘드리아라는 이름의 산소를 호흡하는 유기체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복합세포(진핵세포)의 출현이라는 이 거대한 단계에 이어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의 진화가 시작되었다.
진핵세포 안의 수많은 미토콘드리아는 공기나 물에서 끌어낸 산소로 유기 탄소 화합물을 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미토콘드리아는 고에너지 분자를 생산할 수 있다. 세포는 이 분자들을 이용해 효소와 구조 분자 같은 단백질들을 조립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미토콘드리아 발전소들은 짚신벌레 같은 섬모충에서부터 균류, 식물,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동물의 모든 세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복합세포의 삶에 꼭 필요하다.
미토콘드리아는 얼핏 보면 어두운 면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 이 작은 세포소기관은 저승사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프랑스 과학자 귀도 크라머는 그것을 '중심 처형자'라 불렀다.
과학자들이 이 생화학 처형자를 가장 많이 연구한 것은 척추동물의 세포를 통해서였다. 척추동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막은 예정된 죽음의 초기 단계에 이르면 투과성을 띤다. 구체적으로 시토크롬-시cytochrome-c라는 단백질이 새어나온다. 이는 세포 자살 프로그램이 되돌릴 수 없이 시작된 시점이고, 생화학적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예다. 시토크롬-시는 세포의 삶에 시시각각 필요하다.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시토크롬-시는 고에너지 분자를 만들어내는 발전소 순환의 단계 사이에 전자를 운반해준다. 그러나 시토크롬-시는 예정된 세포 자살로 가는 경로에서도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 누출 때문에 죽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출로 인해 자살을 일으키는 일련의 신호들이 시작된다.
현재 미토콘드리아는 식물 세포에서도 예정된 세포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진핵세포가 왜 자살 계획을 이용할까? 아마 이 진핵세포가 앞 장 말미에서 언급한 단세포 남조류 같은 원해생물에게서 사망 프로그램을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진핵세포에게 예정된 죽음이 기능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는 이 세포들이 어떻게 자살하느냐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진핵세포들은 미토콘드리아가 부여하는 조상 전래의 방식에 따라 죽는다. 다른 진핵세포들은 적당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요령들을 진화시켰다. 이 차이들은 상당히 중요하다. 기능적 과정으로서 죽음이 진화의 숫돌에갈고 닦여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죽음은 생존력 있는 생명체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아주 강력한 요소였기 때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확립되었다. 심지어 인간의 몸 안에서도 어떤 세포들은 중심 처형자인 미토콘드리아에 이끌려 사망하고, 어떤 세포들은 다른 수단에 의해 사망한다.
태아가 자궁에서 발생하는 동안 세포사 제어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예는 태아의 손이 납작한 물갈퀴에서 독립된 손가락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미토콘드리아의 살해 능력이 나중에 손가락이 될 것들 사이에 들어찬 물갈퀴 부분의 세포들을 죽인다. 세포사가 발생의 조각가 노릇을 하는 것이다. 대리석이나 나무를 조각할 때 제거된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중에 빗자루로 쓸어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이 세포사 과정의 부스러기들은 다른 세포들 속으로 재활용된다.
제어된 죽음에 의한 조각은 개구리 같은 복잡한 신체가 발생하는 동안에도 필요하다. 세포들 사이에 오가는 화학 신호들이 죽음을 요구하는 명령이 될 수 있다. 고전적인 예는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할 때 발생한다. 변태 중에 올챙이의 갑상선은 꼬리의 세포들을 죽음으로 유도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꼬리는 재흡수되고 재활용되어 꼬리가 더 작고 네 다리를 가진 어린 개구리의 몸을 이룬다.
발생 도중에 진행되는 세포사는 형태를 조정할 뿐 아니라 동물 세포조직들의 세포 수를 조정하기도 한다. 세포는 대개 과잉 생산된 뒤 결국 필요한 수로 떨어진다. 뇌 발생에서 일어나는 예가 가장 유명하다.
태아가 처음에 만들어내는 뉴런의 수는 나중에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뇌에 살아남는 수보다 2배가량 많다. 이 뉴런들은 연결망을 이룰 때 특정한 표적 세포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그 과정에서 표적 세포들은 목적지에 찾아오는 뉴런들을 위해 생존에 필요한 화학물질들을 분비한다. 표적 세포에 도달한 뉴런들은 살아남는다. 생존의 과즙을 충분히 마셨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달하지 못한 뉴런들은 죽는다. 이 세포들이 죽는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신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선별 방법은 뉴런의 최종적인 수에서나 잘 연결되지 못한 뉴런을 제거하는 방법에서나 일종의 품질관리 역할을 한다.
사람의 몸에는 더 큰 생명을 지원하는 죽음이 가득하다. 우선 하나의 수를 생각해보자. 성인의 몸에서는 초당 10만개의 세포가 죽는다. 이는 1초마다 대략 10만 개의 세포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로부터 우리는 사람의 세포가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 완전히 바뀐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 회전율은 생명이 물질의 재생 방식임을 보여준다. 원자들은 완전히 바뀌어도 우리의 몸은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 세포 회전율은 체세포의 종류에 따라 크게 차이난다. 예를들어 뇌 세포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 안정성은 우리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느끼는 연속성과 관련이 있으며, 그 세포들은 방대한 신경망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경이 죽으면 다른 신경들과의 연결도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 신경을 대체하는 세포들이 전과 똑같은 복잡한 연결을 만들어낼 것이란 보장은 전혀 없다. 많은 뇌 세포들이 새로운 세포들로 대체되어 연결 패턴이 달라지면 기억이 바뀔 수도 있다.
뇌와 대조적으로 신체의 다른 장소들은 세포 사망과 탄생이 빠르고 뜨겁게 일어나는 분쟁 지역이다. 우리의 피부가 그 중 하나다. 피부 재생은 벤 상처와 긁힌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피부 재생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피부의 모든 곳, 가장 바깥의 각질층 밑에서 새로운 세포들이 세포분열을 통해 생겨난다. 이곳에서 신체는 죽음을 이용하는 멋진 요령을 보여준다. 안쪽의 살아있는 세포층으로부터 가장 바깥의 피부세포를 만들어낼 때, 세포들은 탈핵과정을 거친다. 중앙의 DNA가 없어지면 세포들은 오래된 효소가 제 기능을 못해 신선한 효소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 세포들은 죽을 운명에 처한다.
죽어가는 피부 세포들은 케라틴이라 불리는 단단한 단백질외투를 이루고, 이웃들과 힘을 합쳐 열장이음처럼 가장자리가 서로 꼭 들어맞는 기하학적 조직을 이룬다. 그와 동시에 이 세포들은 바깥의 표면 쪽으로 밀려나가 우리가 보고 만지는 피부가 된다. 이곳에서 세포들은 세파를 겪으며 삶을 위해 희생한다. 이 세포들은 결국 지속적으로 허물을 벗는 어느 순간에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보호껍질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우리의 몸은 맡은 바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는 세포 시체들의 층으로 덮여 있다.
장 내벽도 세포 재생이 결렬하게 일어나는 곳으로 회전율이 1주일 미만이다. 이곳은 세포에게 위험한 장소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분자들을 박살내는 강력한 산성 효소들과 뒤섞이는 곳이다. 그리고 장에는 박테리아 군단들이 있고, 그 중에는 병원성 박테리아도 있다. 장 세포들은 최전선에 거주하면서 화학물질을 이용해 자기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물체들(음식물)을 찢어발긴다. 이 장소를 사회적으로 비유하자면 탄광이 떠오른다. 채굴 산업에서 노동자들은 종종 막장이라 불리는 최후의 공간에서 일한다. 그들은 위험한 조건에서 일하면서 사회에 필요한 원료를 퍼 나른다. 그들은 직업병에 걸리고, 부상을 당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다.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발전해왔지만, 초기에 노동자들은 소모해도 괜찮은 희생물이었다. 장 세포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멋진 적렬구세포가 있다. 적혈구 세포들은 세포분열로 탄생한 뒤 약 4개월 동안 생존하고 피부세포처럼 핵이 없다. 그들은 번식을 못해서 수명이 제한되어 있다. 핵이 없기 때문에 단백질을 만드는 능력이 없고, 결과적으로 삶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 적혈구 세포가 핵 속의 DNA가 없어 지속되 못하고 나이 들어 죽으면, 혈액 속의 백혈구가 그 죽은 찌꺼기를 발견하고 섭취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의 부위를 재활용한다.
면역계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세포 사망과 탄생에 의해 돌아간다. 신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면서 계속 파괴되는 탓에 그럴 수밖에 없다. 면역계의 세포들은 혈액 속에서 바이러스와 해로운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죽이지만 막상 그들 자신도 단명을 피하지 못한다. 면역세포는 이용된 뒤나 너무 오랫동안 이용되지 않으면 죽는다. 이들의 경우엔 중심 처형자인 미토콘드리아가 자살을 유도한다.
체세포는 수명이 다르고 그에 따라 생활양식이 다르다. 신경세포는 일반적으로 수명이 길다. 심장의 근육세포들도 비슷하다. 병리학자 에드몽 르그랑은 두 세포의 장수 이유가 서로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심장의 결정적 시기에는 심근세포들이 전기충격을 전달하고 수축해야 하는 동시에 긴밀한 협조 체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망에 잘 들어맞지 않는 대체물을 허용할 여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장과 뇌의 세포들은 보호가 필요하다. 두 종류의 세포 모두 해당 기관의 다른 세포들과 긴밀한 망을 이루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등의 피부세포는 뺨 위에 피부세포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어깨에 있는 적혈구 세포는 왼쪽 새끼발가락 속의 적혈구 세포와 별 관계가 없고, 관계가 있다고 해도 심장 세포들과 뇌 세포들이 자기네 종류끼리 서로 연결되어 협조하는 수준과는 크게 다르다. 신체의 하부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부 기능들을 원래대로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따라 어느 세포가 오래 살고 어느 세포가 빨리 죽는지가 결정되는 듯하다.
우리를 비롯한 포유동물의 몸에서 생명을 지탱해주는 이 모든 죽음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만일 우리가 물질과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소용돌이라면, 그 소용돌이 안에서 많은 물질이 재활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몸에서 죽음은 발생과 성장에 필요하고 더 나아가 생명이라는 소용돌이의 안정성에 필수적이다.
-도리언 세이건-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