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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시장의 여러 모습
할머니들께 인사드리고 충의시장으로 간다. 일행들이 한 상점에서 쇼핑을 하는 동안 아내와 난 시장구경에 나선다. 리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이 시장은 몇 년 전 우루무치에서 본 대바자르를 떠오르게 한다. 나시족이 주로 이용한다는 이 시장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여자건 남자건 장보러 온 사람이라면 등마다 짊어 멘 대나무바구니다. 루이비통, 샤넬, 지방시, 입생로랑 같은 명품가방은 이곳에는 없다. 어깨에 멘 장바구니가 이들에겐 최선이고, 최신 유행패션이다. 리장의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 맑은 물, 풍부한 토양은 채소와 과일을 살찌웠다. 팔뚝만한 가지나, 얼굴만한 생강이 놀랍다. 한때 배추 파동으로 우리가 '금추'라 부른 배추 한 포기가 이곳에선 단돈 1元. 20cm가 넘는 풋고추 한 근에 4元. 곳곳에서 파는 즉석 먹거리가 종류도 다양하다. 갓 구운 빵. 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 쌀국수, 냉묵, 얼굴 만한 크기의 호떡 등등. 아내와 난 시장을 돌아다니며 1元짜리 먹거리도 사 먹고, 작은 종도 사 배낭에 달고, 여행기간 내내 못 먹었던 풋고추도 산다. 충의시장은 내 눈과 코로 나시족 삶 속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삶의 터전에서 풍겨오는 그 비릿한 고기와 생선 냄새까지도 좋았다. 나시족 일상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다.
▶ 木府 입구
충의시장에서 나와 일행들은 쇼핑을 떠나고 나 홀로 木府로 간다. 해외여행 시 그곳을 추억할 만한 작은 기념품과 먹거리 외엔 쇼핑을 하지 않는 나는 쇼핑을 너무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다니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난 잠시 여행기간동안만이라도 현지인들의 역사와 삶 속에 함께하는 것이 좋다.
목부는 1253년 쿠빌라이가 10만 몽고군을 거느리고 가죽주머니와 뗏목을 타고 금사강을 건널 때 리장의 부족장이 보산 나루터에 가서 영접해 몽고군과 협조하여 대리국을 무너뜨리고 이 지역을 다스리는 토사로 임명된 후 청나라 옹정(雍正) 원년까지 470년간 윈난지역을 다스렸던 관청이다. 명나라 때 황제의 가문인 朱家의 한 일원이라 하여 “주(朱)”에 사람인(人)자를 뺀 “목(木)”씨라는 성을 하사하고 세습 족장의 관공서를 허락하여 황제의 궁전과 같은 웅장하고 화려한 木府가 생긴다. 명나라 말기에는 이들의 세력이 번창한 시기로 통치지역은 윈난성 서북부, 쓰촨성 서남부, 티베트 동남부 지역으로 지금 윈난성 면적의 1/6을 다스린다. 목씨의 통치는 사회발전을 점점 방해하여 1723년 소수민족의 영주가 세습 통치하는 제후령을 폐지하고 중앙 직할령에 편입하여 황실에서 임용된 관료인 流官을 파견 통치하는 “개토귀류(改土歸流)”의 실시로 목씨 토사의 통치도 끝나게 된다. 청나라 말 전쟁으로 훼손되었다 1998년 재건된다.
▶ 木府의 忠義覇榜
먼저 네 마리의 사장상이 지키는 “忠義”라 써진 석조 패방이 보인다. 이 패방은 석패방이라고도 불리는데 화강암으로 건축된 이 패방은 구조가 장엄하고 조각이 정밀해 위용을 느끼게 한다. 매표소에서 60元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木府”란 현판을 중국전통식 단청을 칠한 목조 문이 나타난다.
▶ 장쭤민(江澤民) 전 주석의 목부 방문 기념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이 문을 지나 흰색 담장을 돌아서니 검은색 대리석에 “世界文化遺産麗江古城, 1999年5月2日 江澤民”이라고 장쩌민 전 주석의 친필이 금색 글씨로 써 있다. 매표소에서 얻은 자료에 의하면「목부의 총 면적은 3ha이고 축선을 따라 차례로 “천우류방(天雨流芳)”패방, 충의방(忠義坊), 의문(儀門), 의사청(議事廳), 만권루(万卷樓), 호법전(芦法殿), 광필루(光碧樓), 옥음루(玉音樓), 삼청전(三淸殿), 각루(閣樓), 무대(舞台)등 15채에 크고 작은 162칸의 방이 있다. 그 안에는 역대 황제가 친히 하사한 11개의 편액이 걸려 있고 목씨 가족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목부는 명나라 건축의 특색과 예술을 충실히 나타내고 있는 목조건물로 한족, 백족, 나시족의 건축기술을 기묘하게 이용하여 세 민족 간 동심동덕(同心同德) 단결의 상징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 목부 정치 중심이었던 議事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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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청 내부
돌을 다듬어 바닥을 깐 작은 광장을 지나니 석조계단 아래엔 물이 흐르고 2층 석조계단 위에 의사청이 붉은 나무기둥 위에 날아 갈듯 기와를 얹은 지붕 아래 단정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안으로 들어가니 정중앙 단상엔 온 정성을 다하여 정치에 힘쓴다는 의미의 “礪精圖治”라 쓴 목조장식이 있고 그 앞에 호피로 덮은 의자와 나무 탁자가 있어 토사의 위엄을 말해 주고 있다. 단상 좌우로는 신하들의 직책을 표시하는 커다란 글씨와 의자가 배열되어 있어 이곳이 신하들과 더불어 족장이 국가대사를 논의하던 곳임을 보여준다.
▶ 만권루와 만권루 내부에 진열된 고서
의사청 뒤 3층 목조건물인 만권루는 2천년 문화유산의 정화(精粹), 천권의 동파경, 백권의 라마교의 경전, 세습토사의 시집, 유명한 시인들의 서화(書畵)등을 가득 진열한 박물관이지만 자세히 돌아 볼 시간이 없어 대충 1층에 전시된 것만 보고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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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시족 민속관
만권루 옆 회랑에는 나시족 민속관이 있다. 민속관 내부에는 나시족들의 기원과 역사, 생활 등을 설명하는 사진과 생활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 호법전
▶ 호법전 옆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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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법전 우측 회랑을 따라 지은 건물에 진열된 목씨토사 집권 당시 생활상
만권루 뒤에 있는 호법전은 의사청과 똑같은 모습을 한 전각인데 내부엔 토사의 제단과 조상들의 초상화 병풍이 진열되어 있다. 이곳은 목씨 토사의 집안 일을 논의 하는 곳이란다. 호법전 우측 수로 건너 회랑을 따라 지어진 작은 건물들에는 목씨 토사 집권 당시의 규방, 손님방, 제단 등이 생활용품과 함께 전시되어 그 시대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다.
▶ 옥음루
▶ 삼청각
▶ 목부 언덕에서 본 목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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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목부의 이런 저런 모습
호법전 뒤편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옥음루는 임금의 성지를 받는 곳과 가무를 보며 즐기는 곳이라는데 주위의 숲과 어우러져 풍광이 매우 좋아 보인다. 맨 위쪽 깃발이 밖을 지키고 내부엔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중앙에 자리 잡은 삼청각은 세습토사가 도가의 정신을 숭배하던 전각이다. 목부는 나시족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고 당시 목씨 토사 정치와 가족의 생활과 교육, 문화, 역사, 종교 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역사와 문화 교육장이다. 목부는 충의 패방에서 일렬로 배치된 각종 전각들 중간중간에 돌을 다듬어 만든 계단과 다리로 이어져 조화를 이루고 전각들 우측엔 연못과 정원이 돌난간 사이로 배치되어 휴식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뒤편 얕으막한 동산의 대나무 숲과 전각들이 잘 어우러지는 공간 배치를 가지고 있다.
▶ 목부 밖 나시 전통 조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