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케이블 TV에서 방송한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를 보고 나니 짐 싸들고 나를 부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유명 항공사의 광고에서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을 선정하여 그림 같은 유럽 풍광을 보여 주는 것도 여행의 설렘을 자극하는 마케팅이다. 그 시리즈 광고 중 ‘도전해보고 싶은 유럽 TOP 10’에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최고의 관심지로 꼽혔다. 스페인 ‘순례자의 길’, 중국 ‘차마고도’, 독일 ‘로맨틱가도’처럼 자기 이름을 내걸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의 ‘올레길’이 대표적이다.
올레길은 21코스로 이루어졌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 앞 안내소에서 출발하여 성산일출봉에 이르는 제1코스를 시작으로, 제주 섬을 동에서 서로 한 바퀴 돌아 시흥초등학교 인근의 옥빛과 쪽빛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종달바당’에서 21코스의 끝맺음을 한다. 밖에서 제주를 감싼 바다와 안에서 제주를 품은 한라산을 양편으로 끼고 느리게 걸으면서, 중산간의 목가적인 풍경과 곶자왈 등 제주 색깔을 담고 있는 자연을 마음껏 느끼며 심신을 힐링할 수 있다. 걷다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예쁜 카페나 쉼터,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유로운 쉼표로 호흡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문화예술의 향기를 더한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樂乎)? 제주 올레길에서 문화예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과 현장을 만나 본다.
| 올레길 3코스와 6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올레길 3코스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온평포구’에서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의 ‘표선해수욕장’까지 이어진 길이다. 코스 길을 걷다보면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과 문화곳간 ‘쉼’, ‘시선’, 아트창고 ‘차롱’을 만날 수 있다.
충남 부여 출신의 사진작가 김영갑이 한라산 중산간 지역과 제주 오름, 바다 등을 찾아다니며 셔터를 눌러대다가 제주의 자연에 반해 눌러 앉게 된 곳이 한라산 자락의 삼달리다. 작가는 2001년에 폐교인 삼달국민학교에 작가의 작업실과 전시실을 만들었고,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으로 이름 지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으로 공간의 이름을 붙인 것에서 작가의 한라산 사랑을 알 수 있다. 김영갑 작가는 2005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자신이 사랑한 제주에서 숨을 거두었고, 작가의 뒤를 이어 박일훈 관장이 ‘두모악’을 더욱 생기 있게 꾸며 놓고 지키고 있다. 김영갑 작가가 박일훈 관장의 부친 댁에서 거주하며 사진 작업을 해 온 인연으로 작가의 사후를 더욱 빛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실에는 그의 작품이 주기적으로 바뀌어 가며 상설 전시되고 있다. 작가가 작업했던 작업실의 유리창 너머로는 학교 운동장에 만들어 놓은 정원이 보인다. 제주의 돌과 식물로 아름답게 만든 정원 또한 제주의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맞은편에서는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실에서 미술작품 전시가 자주 열린다. 그 공간의 이름은 문화곳간 ‘쉼’이다. 걸어서 5분 정도 범위 내에는 역시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 2곳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문화곳간 ‘시선’과 아트창고 ‘차롱’이란 예쁜 이름표를 달고 있고, 공간의 옆에는 모두 작은 감귤밭이 딸려 있다. 이 공간들은 제주도 작가인 아트창고 박금옥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제주문화재단이 협력하여 지원한 빈집프로젝트를 통해 문화곳간 ‘쉼’과 ‘시선’이 만들어졌고, 2012년부터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으로 연계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작가가 이곳에 거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전시를 하고, 지역 주민들과 미술로 소통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펼친다. 아트창고 ‘차롱’은 서울에서 살다 제주로 이주한 후견인이 문화곳간 ‘쉼’과 ‘시선’이 운영되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자신이 소유한 감귤창고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도록 기꺼이 내놓아 탄생하게 되었다. 감귤창고는 레지던스 작가들의 손으로 전시실로 만들어졌고, 2013년도 여름에 삼달리 농부작가의 작품으로 개막전을 열었다.
올레길 6코스는 서귀포시 하효동 ‘쇠소깍’에서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한 서귀포시 서홍동 ‘외돌개’까지 이어진 길이다.
6코스의 출발점인 ‘쇠소깍’에서 한라산 방향 북쪽으로 6km 가면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마을에 ‘꿈꾸는 고물상’이 있다. 이름만큼 궁금하고 기대해도 좋을 만한 곳이라 코스를 살짝 벗어나더라도 둘러보기를 권유한다. 이곳 역시 감귤창고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으로 2012년 빈집프로젝트 지원의 산물이다. 방치된 감귤창고 2개를 보물창고로 만든 사람들은 3쌍의 부부로,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내려온 소위 문화 이주자들이다. 예술가들의 솜씨는 남달랐다. 유광국-염정은 부부와 이치웅-이은희 부부가 시각예술과 건축 부분 등 꾸미는 일에 역량을 집중했고, 민경언-이가영 부부가 공연예술 배우와 기획자로서 아이디어를 더하고 활용성을 높였다. 공간을 꾸민 재료는 대부분 주변에서 획득한 고물들이다. 고물도 작가의 손길을 거치면 보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2개의 꿈꾸는 고물상 중 1개는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작가들의 작업실로 쓰이는데, 작업공구들도 있고 주변에서 모아 놓은 고물들도 있다. 2층은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주거 공간 겸 쉼터로 꾸몄다.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한라산이 눈에 잡히고 뒤돌아서면 제주 바다가 살짝 보인다. 다른 1개의 고물상은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는 다목적 예술공간이다. 카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이곳은 방치된 창고가 이렇게 보물창고로 변신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6명의 작가들은 참여자들과 함께 매월 ‘고물데이’를 펼치면서 계속 꿈을 이어가고 있다. ‘꿈꾸는 고물상’은 입소문을 타서 1년 만에 많은 관심을 갖는 공간이 되었다. 고물을 재활용해 꿈꾸어 오던 고물상을 만들었고, 그 고물상은 오늘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6코스 중에는 서귀포의 도심과 자구리 해안길을 연결한 아름다운 길에 유토피아로를 만들어 예술길로서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있다. 유토피아로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추진되어, 이중섭거리를 출발점으로 약 5km의 거리에 군데군데 미술작품이 설치되었다. 골목길, 작은 집, 공원, 서귀포 앞바다와 마주한 공간 등에서 다양한 모습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6코스의 정방폭포 옆 경관 좋은 곳에는 이왈종 화백의 그림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왈종미술관’이 있다. 사립미술관으로서 입장료 부담을 좀 한다면 작가의 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인근의 이중섭거리에는 ‘이중섭미술관’이 있다. 이중섭의 원화 그림은 몇 점 안되지만, 6.25 때 이중섭 화백이 잠깐 거주했던 역사적 공간에 자리한 미술관으로서 의미가 있다. 김환기, 박생광, 이응로, 장욱진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가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천지연폭포 위 칠십리공원 옆에는 한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이 있다. 재일교포 기당 강구범이 1986년에 설립하여 서귀포시에 기증하여 시립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도 작품이 소장된 제주 출신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 올레길 13코스와 14-1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올레길 13코스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의 용수포구에서 한경면 저지리의 저지마을회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올레길 13코스에서는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의 ‘의자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의자마을’이라는 이름부터 호기심을 부른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라고 노래한 조병화 시인의 <의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14미터 크기의 커다란 의자가 먼저 반긴다. 의자에는 ‘대화합문’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고, 커다란 의자 속에는 작은 의자들이 제각각 들어 앉아 있다. 커다란 의자가 작은 의자를 넉넉히 받아들여 편히 쉬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화합은 너그러운 포용력이라는 메시지를 느끼게 해 주려는 것인가? 영호남 대화합, 국민 대통합, 남북통일까지 뻗어 나가는 소망도 담겨 있을까? 동네 곳곳에는 1천 개의 다양한 모습을 한 의자가 놓여 있다. ‘키크는 의자’라는 명칭이 붙은 의자도 있고, 꽃 같이 피어나는 모습을 한 의자도 보이며,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의자도 있다. 낙천리는 제주 4·3 사건 때 사라졌던 마을을 재건한 곳이라 평화의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평화의 마을에서 의자에 편히 앉아 기대어 있으면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웃한 청수리, 저지리, 산양리 마을과 함께 4개 마을이 해마다 ‘웃뜨르 문화축제’도 연다. ‘웃뜨르’라는 말은 윗뜰의 제주 사투리로, 한라산 윗쪽 뜰 중산간 마을을 일컫는다. 아래 바닷가 쪽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알뜨르’ 마을이 있어 대비된다. 그 ‘아래 마을 넓은 뜰 - 알뜨르’에는 일제가 진주만 공격을 위해 소형 비행기를 숨겨 놓았던 격납고가 널려 있다. 최근 아베 정권의 망언과 망동으로 인해 더욱 격분을 느끼게 해 주는 현장이다.
올레길 14-1코스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저지마을회관’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무릉2리 생태학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 코스에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과 ‘제주현대미술관’이 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제주도가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2001년에 조성한 곳이다. 돌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단정하게 정리된 마을 안에는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세련된 현대식 건축물과 작업실이 있다. 김흥수 화백, 박서보 화백, 서예가 조수호, 조각가 박석원 등 우리나라의 저명 예술가들도 이곳에 둥지를 만들었다. 작업실 내부도 궁금한데 일반인은 외관만 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작년에는 중국의 베이징과 쓰촨, 그리고 싱가포르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중국 작가 펑정지에가 박서보 화백의 작업실 옆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제주도에 대한 관심도가 국내외에서 깊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현장이다.
‘제주현대미술관’은 제주도가 2007년에 개관하여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김흥수 화백’과 ‘박광진 화백’의 상설 전시가 열리고, 수시로 기획전도 연다. ‘제주현대미술관’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의 중심부에 현대식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 올레길 18코스, 20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올레길 18코스는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마당’에서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만세동산’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 코스에는 ‘국립제주박물관’과 ‘제주민속박물관’이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 10경의 하나로 꼽히는 ‘사봉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제주시내 동쪽의 사라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2001년에 문을 열었다. 국립박물관으로 관람료는 무료다. 탐라와 해양문화 전문 박물관으로 특화하고 있으며 수시로 특별전도 연다.
‘제주민속박물관’은 제주시 삼양3동 화북선착장에서 우측으로 3백 미터 거리에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3층 건물로 자리한 박물관의 1층은 특별전시장, 2·3층은 상설전시장으로 사용하는데, 상설전시장에는 제주 고유의 민속자료 3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은 서민용품들이 대부분이고 기본생활용구와 생업생활용구 등 6개 분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사립박물관으로서 2천 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올레길 20코스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김녕 서포구’에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의 ‘제주해녀박물관’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 코스에서는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는 예술과 건축과 과학이 융합하여 작품을 탄생시킨 프로젝트다. 2013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건축가 그룹,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손잡고 새로운 융합의 모델을 위한 융복합공동기획프로젝트로 추진하였다. 4개 팀의 예술가와 건축가와 과학자가 협업하여 탄생시킨 4개의 작품은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 후 제주 김녕리 올레길 20코스 중 김녕마을 인근 4곳에 설치되었다. 풍력발전과 유체물리, 해양염분차발전, 해양바이오와 같은 에너지기술 영역에 건축과 미디어아트를 융합한 새로운 창작물은 색다른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첫댓글 제주에 가면 꼭 들러보고 싶은 곳들....무슨 일이 있어도 2월에 꼭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