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 홍몽선(洪夢鮮)
필자가 존경하던 선배 역술인이다.
학문도 대가 수준이지만 인격 역시 훌륭하신 분이다.
20세 미만에 역학에 입문하셨는데 당시로서는 우리 나라에 변변한 역학서적이 없어 주로 일본 서적으로 역학을 공부하셔서 홍선생님 책꽂이에는 항시 일본서적이 꽂혀있었다.
한국 역술계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역점(易占)을 하는 분은 희소하다.
주로 명리학에만 매달려 운명 상담을 하는 관계로 단방적인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이 적다보니 엉뚱하게 국적이 모호한 [타로 · 카드]점이 유행하게 되었다.
화투(花鬪)점 고안의 원조라고 알려진 타로점을 폄하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천민 집단인 집시들에 의해 창안된 타로 보다는 통치자 집단의 천재들에 의해 연구된 역점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잘 만들어진 학문이라는 것이다.
역점에도 분파가 많아서 주역의 원문 효사에 충실한 역경파가 있고, 매화역수(梅花易數)로 보는 파가있으며, 효에다 12지를 붙여서 오행으로 해석하는 육효파도 있고, 단역(斷易)으로 보는 파도 있는데 단역파와 가장 유사한 것이 역점(단역과 역점의 차이점은 필자도 잘모름)인데 그 역점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신 분이 홍몽선 선생님이다.
홍선생님의 실점 일화를 적은 “역점 실화”라는 책에 있는 내용중 하나를 옮겨보면...
천수송괘(天水訟卦)
대구 신암동에서 영업할 때 어린 소녀가 혼전임신을 비관 공장 선배언니에 이끌려 선후책을 상의해 와서 해결방책을 위해 점쳐서 [송지환(訟之渙)] <천수송의 4효변>을 득괘하였기에 다음과 같이 점단했다.
필자는 득괘를 보고 참으로 알기 쉽고 보기 쉬운 괘가 나와서 즐거웠다.
왜냐하면 건부(乾父)에게 감중남(坎中男)이 호소(呼訴: 訟)하면 완고한 건(乾) 부친이 손순(巽順)으로 바뀌고 변해서 근심 걱정이 흩어지고(渙) 사라진다는 점시(占示)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호소하는 날짜를 언제 할 것인가?
건부(乾父) 강건(剛健)은 오행상 양금(陽金)이니 경(庚)으로 대입(代入)한다면, 변괘 손순(巽順)은 오행상 음목(陰木)이니 을(乙)로 택한다면 이른바 을경상합(乙庚相合)의 이치로 합당하리라 여겨졌다. 이렇게 점고(占考)대로 일러주었다.
“...이번 주말에 애인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전하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하시오.
다음 다음주 토요일(甲日)에 1박 2일 외출 또는 휴가를 얻어서, 시골 본가에 가서 그날 밤은 자고 일요일(乙日) 아침에 부친에게 무조건 <소자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나서 대구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모두 아뢰고 선처를 바라면 반드시 두 사람의 고민은 깨끗이 해소될 것이오. 내 말대로 명심해서 실시하도록 이르시오”라고 강조해서 보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두 남녀가 상담소에 인사차 찾아왔다.
좌정한 뒤 “본댁에 다녀온 모양인데 어찌 되었오?” 물었더니 당시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시킨 그대로 실행했단다.
토요일에 외출증을 떼어 귀향해서 저녁을 잘 먹고 일찍 취침하고 다음날 일찍 기상해서 세수한 뒤 부친이 계신 사랑방에 들어갔다.
다짜고짜 절을 올린 뒤 “불초 소자가 큰 죄를 저질렀으니 꾸지람을 내리십시오 그리고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했다.
어리둥절한 부친은 약간 놀라서 “아니 평소 착실하던 네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느냐? 어서 말해 보거라” 하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실직고했다. 대구에서 18세난 소녀와 이성교제한 일, 서로 좋아하다가 그만 임신이 됐고 벌써 3개월째가 되었는데 이일을 어찌해야 될지 난감해서 염치없으나 아버님께 여쭈어 선처를 하교 받고자 외출 나왔습니다 고 사정을 아뢰었다. 경과보고를 다 듣고나신 부친은 그 처녀의 성품이며 집안 환경등을 물으신 다음 “서로 사랑하느냐?” 하문 하셨다.
그래서 “네! 서로 아끼며 무척 사랑합니다!”라고 군인답게 씩씩하게 대답했단다.
부친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웃는 낯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단다.
“네 마음에 들었다니 그 처자를 배필로서 짝을 지어주겠다. 그리고 애기를 잉태했다니 몸조심 단단히 시켜야한다. 하지만 금년에는 혼례는 안되겠다. 네 누나가 봄에 결혼했는데 한해에 두 번 잔치는 안 하는 법이다. 그대신 명년 봄에는 성혼해 줄 수 있다. 너도 알다시피 네 형은 장가든지 벌써 5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가 없다. 명후년이면 나도 환갑인데 아직 손자를 못 봤다. 그러니 손자를 꼭 봐야겠다.”
이렇게 허락이 쉽게 내릴줄은 몰랐다. 매우 가법이 엄하신 어른이셨는데, 이게 모두 도사님께서 날을 잘 택일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듬해 첫봄에 초례를 치루고 득남도하여 시댁 부모님의 사랑도 받으며 잘살고 있다는 소식은 소녀의 옛 직장 선배언니가 들렀을때 전해 주었다.
홍선생님의 본명은 홍헌식(洪憲植). 선친은 초대 제주 경찰국장과 5대 치안국장을 지내셨다.
나름 떵떵거리는 집안의 아들이셨지만, 역술인이 되어 일생을 청빈(淸貧)하게 보내셨다.
일반 고객에게 친절하셨고, 후배에게는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려고 애를 쓰시던 어른이셨고,
특히 나 류래웅을 아껴주셨던 훌륭한 역술 선배시다.
홍선생님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己 己 癸 壬 <- 1932년생
巳 卯 丑 申
시 일 월 년
67 57 47 37 27 17 07
庚 己 戊 丁 丙 乙 甲
申 未 午 巳 辰 卯 寅
재격(財格)의 사주인데도 돈과 여자를 멀리하신 훌륭한
인품의 인물.
2007(丁亥)년 양력 2월 21일 새벽에 갑자기 작고하셨다.
첫댓글 홍몽선 선생님이야말로 그 길을 따라갈만한 훌륭한 선생님이셨던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_ _)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좋은 글을 보고 가도 댓글 한줄 안남기고 가는군요.
유교수님 제자분들 다시보게됩니다.
홍몽선님을 한 10여년전에 만나 보았는데 고상한 인상을 주었슴니다.어렵게는 살고 게시던군요.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