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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NEMO는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과학박물관이다. 총 5층으로 구성된 NEMO의 옥상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계단으로, 옥상에서 박물관 외부의 지상까지 계단을 통해 오르고 내려올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NEMO는 세계적인 명성의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작품으로, 바다와 육지가 뒤섞여 있고, 광장이나 공공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암스테르담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져서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새로운 광장 공간을 제공한다.
암스테르담 시민은 NEMO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통로로 쓰는 것 이상으로, 계단에 앉거나 누워서 쉬기도 하고, 여름에는 계단 꼭대기에서 아래로 흐르는 인공 폭포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NEMO의 계단 옥상은 시민에게 ‘광장’이 되었지만, 단순한 평지의 광장과 다른 점이라면, 계단이 주는 높낮이 덕분에 더 편하게 앉고 누워서 경치를 감상하며 쉴 수 있다는 점이다.
‘Why Don’t We Do It On The Stairs?’는 북유럽 최대의 록 페스티벌인 로스킬데 페스티벌(Roskilde Festival)의 문화 공간에서 쓰일 건축 디자인 공모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Why Don’t We Do It On The Stairs?’는 로스킬데 페스티벌에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언제, 어떤 행동을 하든지,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 하기 위하여 설계된 유연한 개념의 공간이 다. ‘Why Don’t We Do It On The Stairs?’는 커다란 계단 모양에 군대군대 박스 모양의 공간들(activity boxes)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서 페스티벌의 경관을 구경하기도 하고, Activity boxes안에서 사교 활동, 음악연주, 책 읽기, 춤추기, 또는 쉬면서 잠자기 등 다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한다. 디자이너는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어떤 것이든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한 것이다.
계단 위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임을 하기도 하고, 다른 페스티벌 참가자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다양한 방향으로 설계된 계단 구조 덕분에 계단에서 태양을 마주하고 앉을지, 그늘에 앉을지도 선택할 수 있으며, 계단 중간마다 움푹 팬 공간을 만들고 지붕을 덮어서 어떤 날씨에도 쉴 수 있는 공간도 구성되어 있는데 이 공간은 밤에 댄스 무대가 되기도 한다.
또한, 디자이너는 다양한 사이즈로 여러 개의 Activity boxes를 구성해서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여러 용도로 공간을 사용하고 그들만의 의미를 창조하도록 했다.
계단은 언제나 독립적이지 않은, 건물에 기생하는 부설물이었다. 그런 계단을 활용하고 독립적 공간의 지위를 부여할 때, 계단이 가질 수 있는 ‘공간적 의미’는 무엇일까?
야외로 트인 계단은 행인들을 마주 보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좁은 계단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넓이를 확보한 계단에서는 사람들이 통로로 사용하기도 하는 한편, 앉아서 쉬기도 하는 쉼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계단은 그만큼 접근성이 높고 누구에게나 부담이 없는 공간이다. 야외 계단에 행인들의 흥미를 끌고, 그들이 앉을 아주 약간의 ‘동기’만 부여한다면 사람들은 점차 자율적으로 모이게 되고, 새로운 광장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계단은 암스테르담의 사례와 같이, 커다란 광장이 형성되기에 지형적 한계를 지닌 곳에서도 새로운 개념의 광장 형성의 가능성이 되어주는 특징이 있다.
계단은 기본적으로 ‘상승’의 구조로 되어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를 연결해주는 계단은 그 위에 있는 사람에게 다양한 높낮이를 제공한다. 계단의 낮은 곳에 앉아있을 때는 보행자들의 발치에 시선이 닿고, 계단의 높은 곳에 앉아있을 때는 건물과 사람들 위에서 전망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계단은 높낮이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계단은 본래의 의미대로 오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앉기도 하고, 무언가를 늘여 놓으면 전시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다. 게다가 계단은 누군가 오랫동안 머무르고 차지하는 공간이 아니라 ‘거쳐 가는’ 이동적인 공간이므로, 일정 부분의 오르내릴 길만 유지해준다면 어떤 용도로 계단을 사용하든 자유로운 편이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서는 이태원 이슬람 사원 뒷편에 있는 말 그대로 ‘그냥 동네 계단’에서 벼룩시장 “계단 장”을 열었다. 계단장이 열리자 신청자에 한하여 사람들은 가져온 옷을 팔기도 했고,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초상화를 그려서 팔기도 했다. 기다란 계단의 양쪽 끝에서는 장사꾼들이 준비해 온 것들을 팔고, 구경온 사람들은 계단의 중간 통로를 오르내리며 이것 저것 사기도 하고 때로는 사온 것을 구경하면서 잠시 앉아있기도 했다.
이처럼 계단은 다양하게 쓰여서 ‘유용’하다. 그런데 단지 유용한 것뿐만 아니라 계단은 그곳에 앉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성’을 주기도 한다. 그냥 계단에 앉아있는 그 순간의 기분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잠깐 앉아서 쉬는 ‘턱’이 되었던 계단의 느낌, 소풍 때 유적지의 계단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던 기억, 이층집의 나무 계단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계단은 어떤 경험적인 감성을 주기도 한다.
계단이 주는 의미와 감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계단의 용도를 파악한 꾸준한 쓰임이 눈에 띄고 있다. 카페에서 테이블과 의자 대신 이동할 수 있는 작은 계단들을 마련하면 어떨지, 바닷가에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계단으로 된 가게를 열면 어떨지 등, 계단을 어떻게 더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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