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 문화평론가
검의 세를 말하는 검결도 있지만 한 시대의 성인이나 영웅의 의지가 검결 속에 짧게 표현되기도 한다.
가장 역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학을 창도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검결(劍訣)이다.
수운은 유학을 정통으로 배운 선비였지만 무예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듯하다. 바로 문무를 겸전한 수운이었기에 한 시대를 풍미하는 혁명가가 되었을 것이다.
수운은 죽음을 미리 예감하고 남원 은적사(隱寂寺)에서 1861년 검결을 지어 미래 동학혁명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할 일은 거진 이루었다. 무엇이 두려우랴” 하였다.
시호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때로다, 때로다, 이내 때로다. 다시 오지 않을 때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
(수만년에 하나 날까말까, 남아장부 오만년의 운수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입고 이칼저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우주)에 덮여 있네/
만고명장 어디 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수운은 바로 이 검결 때문에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 도를 그릇되게 하고 바름을 어지럽게 하는 법률)이라는 죄목에 걸려 참형을 당하게 된다.
이 검결의 노래 속에 비수를 숨기고 있는 까닭이다. 검결 속에 한 시대의 운명과 흥망의 정기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갑오농민전쟁 때 이 검결은 군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변혁의지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검결
시호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있네
만고명장 어데 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시호란 때가 이르렀다는 말이다.
<때가 됐다 때가 됐다 이내 때가 됐다 다시 오지 않는 때가 됐다
만년 만에 하나나 날까말까 한 장수로서,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오만년 만에 만났으니,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쓰고 어찌할 것이냐? 기세 좋게 칼을 들어 천지를 홀로 감당하고, 일월을 희롱하며, 우주를 덮을 용맹을 떨치니 만고명장인들 당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