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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처럼-거룩한 내맡김-끊임없는 기도
 
 
 
카페 게시글
★벌거벗은지금 1부 놀란 눈으로 보다
그대로되었다.보조.기조실 추천 0 조회 589 23.10.02 06:51 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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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02 07:09

    첫댓글

    참진리 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사랑을 살도록 불러주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당신의 불신이 회의론이나 부정적 성향으로 고착되게 하지 말고,
    그 통찰들 앞에서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놀라워해 보라.

    도대체 이 같은 이원성이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


    [ ★천상의책
    천상의 책 - 지식 13권 54장

    천상 지복은 지상에서 이를 알게 된 정도에 비례한다.

    무화.보조.기조실 22.02.09 15:09

    ...

    13 딸아, 이제 너에게 위로를 주어
    내 진리들을 더욱 유심히 듣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진리가 나를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지를 말해 주겠다.
    그건 바로 내 뜻에 대한 진리다.

  • 작성자 23.10.02 07:10


    14 내가 사람을 창조한 첫째가는 목적이
    사람의 뜻과 창조주의 뜻이 하나가 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러나 내 뜻을 등 지고 떠났기 때문에
    이 뜻이 지닌 가치와 효과 및 그 진리들을 알기에 합당하지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15 이것이 내가 온 주의를 너에게 쏟고 있는 까닭이니,
    나와 너의 뜻이 함께 달리며
    언제나 최상의 일치 속에 있게 하려는 것이다.

    16 영혼이 내 뜻의 문을 열고
    이 뜻이 지닌 진리들을 알게 되려면,

    첫째, 내 뜻으로 살기를 원하고,
    둘째, 내 뜻을 알기를 원하고,
    셋째, 내 뜻의 진가를 인정해야 한다.

    17 그러므로 나는 너와 함께 문을 열었다.
    사람이 내 안에 파묻었던 내 뜻의 비밀을 네가 알고,
    내 뜻이 지닌 가치와 효과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너는
    내 뜻에 대해 알게 된 진리의 수와 같은 수의 씨앗을 받게 되었고,
    같은 수의 하느님 비서들이 너를 수행하게 되었다.

    오, 이 비서들이 너를 둘러싸고 얼마나 잔치 기분에 젖어 있는지!
    그것은 자기네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18 하지만 그들이 가장 훌륭한 잔치를 벌일 때는
    너를 하늘로 데려올 때일 것이다.

  • 작성자 23.10.02 07:10


    네가 하늘에 들어설 그 순간,
    하느님께서 각기 다른 기쁨과 행복과 아름다움의 수많은 지복들을
    다양하게 쏟아내시어 너를 충만케 하실 뿐더러,
    모든 복된 이들도 참여하게 하실 것이니 말이다.

    천국이 이 새로운 만족들을 누리려고,
    오, 네가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지!" ]


    [ 무화.보조.기조실 22.10.23 23:58

    영성교육 (마처예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80-106)

    엄효선리나56 16.08.31 01:48


    101. 신념과 확신에 찬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신의 의지에 의해서 행한다.

    그 자신을 신의 손에 쥐어진 악기로 여긴다.
    그는 이 삶 속에서 오히려 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려난다.

    「신이여, <나>라는 이 악기를 통해서
    당신의 뜻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러나 신을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그것을 해 낸 것은 바로 나다.」


    102. 신에 의해서 축복받지 않으면,
    비(卑)금속이 현자의 돌에 의해서 황금으로 변질되지 않으면,
    거기 언제나 「나는 행위자」라는 환각적인 비전이 사라지지 않는다.

  • 작성자 23.10.02 07:10


    그리고 이 환각적인 비전이 멈출 때까지
    「나는 좋은 일을 했다」 「나는 나쁜 일을 했다」는
    이 이원적(二元的)인 차별심이 계속될 것이다.

    마야란 바로 이 이원적인 차별심이다.
    이 세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이 이원적 차별심 때문이다.


    그러나 비드야 마야,
    저 신성한 힘에 의지하는 사람은 신과 연결될 것이다.

    그만이, 신을 체험한 사람만이,
    홀로 이 마야의 바다를 건너간다.

    「신만이 진정한 지배자다.
    신과 연결되지 않고는 우리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

    ---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육체의 차원 속에서도 오히려 자유롭게 될 것이다.


    □ 깨달은 사람의 에고


    103. <나>라는 이 느낌을 완전히 제거해 버릴 수는 없다.
    백합꽃잎은 때가 되면 져 버린다.
    그러나 그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신을 체험할 때 너의 에고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이전의 에고가 있던 그 흔적이 남는다.
    그렇지만 이 에고의 흔적은 어떤 나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104. 진실로 현명한 사람은 신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아기와 같이 변한다.

    어린아기는 의심이 없다.
    그 자신이 독립적이며 자유롭게 보인다.

  • 작성자 23.10.02 07:10


    그러나 저 독립성은 외면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
    그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기의 에고는 성인(成人)의 에고와 같지 않다.

    ( * 어린아기는 무한히 자유로운 독립체처럼 뛰어놀지만
    그러나 그의 등뒤에는 부모(신)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든든한 보호가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뛰노는 것이다. )


    105. 밧줄이 타버렸을 때 그 형태는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물건을 묶을 수는 없다.
    저 신의 불길에 타버린 에고도 이와 같다.


    106. 성인들은 모두 높은 차원의 예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흐르는 개울물처럼 신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아직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성적인 에고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증거다. ]


    [ ■ 내맡김 영성 ■
    < 후속 > 18. 왜, 내맡김의 영성이 최고라고 떠드는가?

    moowee 10.04.16 11:50


    하느님과 일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사랑만이 답입니다. 정답입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면,
    당신의 뜻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살아주십니다.

  • 작성자 23.10.02 07:11


    "하느님의 다스리심(통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삶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삶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고정관념과 이원론에 갇혀 사는 이상, 부정적인 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알면서도 반대하고 모르고서도 찬성하면서 그렇게 겉으로만 멀쩡한 척,
    이리로저리로 휘둘리며 사는 삶일 것입니다.

    오늘 답을 하고서도 내일이면 갸우뚱하며, 끝없이 이어질 뒤집기 논쟁에
    휘말려 사는 삶일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점점 더 경계를 지으며 나를 온전히 내어주는 것도,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더 어려워하는 이 세상을 다들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나에게 숨을 주신 내 아버지를 참으로 알아 모시지 않고는, 그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서는, 그 사랑을 살지 않고서는, 참으로 모든 것에
    그저 잠시의 놀람으로만 끝날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2 07:02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아버지께 대한 경외로 가득한 그 놀람으로, 하루 하루 더욱 더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게 되는 거내영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내영을 살며 생기는 놀람은, 더욱 더 내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 이끌리게 하고
    더욱 굳은 믿음과 신뢰를 갖게 한다고 느낍니다.

    내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아멘'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로
    사는 삶으로 이끌어주신 아버지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이시며 지혜의 근원이신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있어 행복합니다.
    사랑하기에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모든 것이 당신의 뜻이며 길임을 새깁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오직 사랑으로 살겠습니다.

    부족한 나에게 오시어 살아주시는 아버지만을 바라며, 사랑으로 끊임없이
    아버지기도 드립니다.
    모든 것, 오직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 거내영 >과 거룩한 사제들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09:44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도대체 이 같은 이원성이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


    < ■ 내맡긴 영혼은 ■
    6하원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moowee 10.07.10 09:00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이 "6하원칙"에 충실하도록
    교육 내지는 강요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야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 왔던 것입니다.
    자연히 6하원칙에 길들여져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은 인간의 잣대인
    이 6하원칙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진실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아주 완죤히
    100%를 다 내맡겨 드렸다면 하느님께서는 6하원칙이라는

    인간의 도식으로부터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똑똑하다는 인간머리로 짜내고 짜내보았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일뿐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6하원칙"은
    하느님의 손바닥 위에 놓여진 새털입니다. >

  • 23.10.02 09:51



    < 무화 17.09.13 00:16


    천상의 책 4-23

    4 나는(귀부인 순명) 인간적인 논리라는 것을 쓰지 않기에
    인간의 관습에 적응할 수 없다.

    나의 논리는 신적인 논리이다.

    그런즉, 나와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는 이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논리를 버리고 나의 논리를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



    [ moowee 18.01.14.08:06


    ★ < 하느님 뜻 안의 세상 >에서의 법과,
    < 이 세상 안에서의 법 >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

    그럼에도 적지 않은 내맡긴 영혼이,
    100% 다 내맡겼다는 영혼이

    < 인간 세상의 법 >을 < 하느님 뜻 세상의 법 >에 그 잣대를 들이대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 세상 법 >이 필요하며,
    하느님 뜻 안의 삶을 사는 영혼들에게는 < 하느님 나라 법 >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다
    내맡긴 영혼은,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갈라 3,20 -

    따라서!

  • 23.10.02 10:02



    < 율법 아래 >의 삶이 아니라,
    < 율법 위 >의 삶을 살아갑니다!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러워도 또 내일 죄에 떨어진다 하여도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왜냐구요???

    ★자신 안에 사시는 하느님이
    그 사람의 삶을 함께(?) 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


    아멘, 아멘!

    무형의 성전의 많은 내맡긴 영혼들에게 이제
    < "신비생활" 이라는 말이 전혀~ 신비롭지 않게 느껴 >(위무위) 지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 부족한 나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면
    진정 이원론에서 벗어나 참 자유의 삶을 살게 해 주심을 체험합니다.

    <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루카 6,2)
    이원론에 빠져 사는 지도 모르고 무지한 '나'의 논리로 참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 거룩한 내맡김의 삶 >을 알게 하시고, 살게 해 주셔서
    넘 넘 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 모두를 사랑하는 아버지께 내맡겨 드립니다.
    부족한 저희 모두와, 참 행복을 찾는 많은 이들을 내맡겨 드립니다.

    < 거내영 >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시며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2:18



    하느님아버지, 이원론을 벗어 나는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사랑하는 아버지
    항상 이원론으로 나누기를 하던 제가 거내영의 이끄심으로
    새세상을 보게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누고 한 쪽으로 편협된 생각이 잘살아가는 것인줄 착각속에
    빠진것을 거내영에 와서야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이 모든것을 통합하시는 아버지따라 아버지의 작품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은총을 주시니 이 새로운 길에 서 있음이 경이롭습니다.

    아버지께 저의 모든것을 내맡기오니 아버지의 뜻의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

    아멘,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거룩한 내맡김>을 만나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를 알고 사랑하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분명 저도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제뜻과 경험과 이원론에 사로잡혀

    이상하게 여기고 단순한 허무에 빠져,
    있는 사실도 부정하고 왜곡하며
    진리를 수호하고 지킨다며
    옳다 그르다~ 편가르기에 온 목숨을 거는
    '내뜻'의 우상숭배로 살았을 겁니다.

    머리로, 입으로, 지식으로만,
    제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평화의 일꾼'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ㅜㅜ

    부족한 이 죄인의 모든 것을 다 깨부셔 주시고
    성전을 허물어 사흘 안에 다시 세워 주시는(요한2,19)

    나의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미와 흠숭을 뜨겁게 올려 드립니다.


  •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모든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5:37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교직에 있을 당시에 토의와 토론에 대한 교육이 아주 활발했습니다.
    교육청 주체 시 토론 대회를 해마다 열어서 시상을 하며 학교 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한 가지 안건을 제시하면 그 안건에 대한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고 그 의견에 대한 설명과
    상대 설명에 대한 반박, 그리고 최종 결론을 내는 절차를 밟는데,

    한 가지 안건에 대한 찬성 팀과 반대 팀이 정해지면 찬성, 반대에 대한 확실한 근거와 사실의 설명을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상대 팀에 대한 반박이 있어야 하기에 상대 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설명에 대한 철저한
    반박 할 자료를 준비하고 대회 당일 상대 팀에서 어떤 의견이 나오는지 잘 들어서 4명의 팀원이
    정해진 시간 안에 의논하여 의견을 모아서 반박을 더 잘하여 상대 팀이 할 말이 없게 하는 팀이 승리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토론 교육이 떠오르네요.
    이런 형식의 토론 교육이 현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교육이라고 받아들여 집니다.

    논리적인 설명,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거기에 따른 날카롭고 사실적이 근거에 의한 반박할 논리적인
    사고를 항상 시킨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 23.10.02 15:39


    토론 대회에서 이기면 기분이 아주 째집니다.
    상대 방의 대한 안타까움이나 다 함께 공유하는 의견은 없습니다.
    논리적이 사고로 상대 팀을 어떻게 든지 공격하여 이기는데 목적만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나는 몰랐습니다.
    아, 논리적이고 냉철한 이성은 발달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공감이나 감정의 공유 라든지
    상대와 함께 같이 의견의 모으고 서로 배려하며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은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 헛점이 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느끼며. 너무나 무지했던 저를 봅니다.

    논리적인 사고, 내 옳음의 이성만이 발달한다면,
    이원론사고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고 또 압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하고 부족한 저와 모든이들을 내맡겨드립니다.
    아버지만을 더욱더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5:15



    '끊임없는 화살기도'라는 선물과 함께
    진실한 생각을 갖고 진실된 질문을 하며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이상하게 여김'의 끝을 맺게 해 주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세월이 흐름에 따라
    토론 문화가 단지 답을 찾는 쪽으로 퇴보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도 모든 문제에 대한 완벽한 정답을!

    덕분에 '이상하게 여김'에서 '답하기'로 옮겨갔고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흐름의 극치를
    오늘 우리는 거의 모든 종교에 공통으로 있는 이른바
    '근본주의'에서 본다. >

  • 23.10.02 15:17



    [ ▣ 주일강론
    신앙의해, 대림 제3주일(2012,12,16)

    moowee 12.12.16 08:53


    여러분은
    동물과 사람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질문)

    동물과 사람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저는 사람은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말 못하는 사람도 질문을 할 수 있다, 몸이나 글로.


    그러나,
    동물은 질문을 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저 타고난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 뇌가 자라면서 끊임없는 질문을 시작한다.
    엄마, 저게 뭐야? 엄마 저게 왜그래? 등등,,,,


    어제,
    이 번 주일학교 첫 영성체 어린이들의 엄마들 모임에 초대받아
    시내로 나가는데

    승용차 안에는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어린이가 함께 있었는데
    그 어린이들의 궁금한 질문은 끊임이 없었다.

    우리 수녀님이 그 질문들에 답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어린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 23.10.02 15:18


    따라서,
    질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동물과 같은 존재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던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질문할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한다고
    그것을 다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생각" 과 "잡념" 은 다른 것이다.


    잡념을 생각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잡념은 오히려 생각을 방해한다.

    왜 많은 구도자들이 잡념을 없애려
    산으로 절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행하는가?


    생각 없이 살아가는 다시 말해
    잡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잡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삶에 대해 영원한 것에 대해.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생각에 사로잡혀.


    생각 없이 살아가는 신앙인은, 잡념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은
    질문을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 23.10.02 15:19


    오늘 복음에서 군중들은 세레자 요한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리들도 질문을 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군사들도 질문을 하였다,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진정한 질문을 하려면 진실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진실한 생각은 아무나 갖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한 생각은 "생각을 없애야"
    진실한 생각, 하느님이 주시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생각을 없애는, 아니
    잡념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이 "끊임 없는 화살기도" 이다.

    화살기도에 집중할 때
    하느님이 진실한 생각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조차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
    이라고 인정하는 <겸손된 사람>만이

    진실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진실된 질문을 할 수 있다.


    진실된 질문을 하는 자만이 질문의 끝을 맺을 수 있다.

    <진실된 질문으로 하느님을 만나면
    인간의 질문이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질문을 갖고 있는가? ]


  • 23.10.02 15:50

    @무화.보조.고문단

    너무나도 혼 없이 살아온 세월이 크기에
    그렇게 어른이 되어
    질문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주위의 영향이든
    나 자신의 에고의 확장이든

    세상에 휩쓸려 이상을 세워놓고
    그것이 잘 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조그만 점만도 못한 피조물의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아버지의 뜻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살아오다가

    아버지의 선물인 자녀들을
    나보다도 더 이상한 벽창호의 에고덩어리
    괴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애는 참 아름다운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왜 하늘은 파래?"
    "탁구, 농구 등 모두 '구'자로 끝나는데
    골프나 테니스는 왜 '구'자로 안 끝나?" 등

    그저 웃기만 하며

    우리 집에서는
    골프를 골구라고, 테니스를 테니구라고 하며
    재밌게 웃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던 애들이 이제는
    더 이상 질문을 갖지 않고

    자신의 아상에 갇힌 채
    가족이라는 너울만 뒤집어쓰고 살게 되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각각의 방의 문이 닫힌 채로!

  • 23.10.02 15:51


    그리고
    거내영을 만나 부족하지만 제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고

    아버지의 섭리하에
    모든 것이 조금씩 조금씩 공명되기 시작합니다.

    본문에 나열된 근본주의적인 질문은 사실
    <하느님 신앙의 가장 근본 영성인> 거내영 한 방이면
    모조리 해결되는 질문입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모든 생각을 없애고 무뇌인간이 되면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진실한 생각으로
    그 질문이 끝을 맺게 되는 것이지요.

    그 답은 "하느님 뜻"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죄인에게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든 것,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당신께서 십자가상에서 저희들을 위하여 흘리고 돌아가셨듯이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당신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합니다!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7:02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완벽한 정답을 찾는 대신 질문 자체를 정제한 것이다. >


    < moowee 2011.02.11

    우리의 생각을 없애는 일, 생각을 없애라는 것은,
    생각없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생각이 있는 사람,
    하느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진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천 11-53,2
    "딸아, 내가 원하는 것은
    상상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소멸이 네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실행 가능한 방법으로 말이다.

    3 이를테면
    너에게 나를 위한 생각이 아닌 생각이 떠올랐다고 가정해 보아라.
    너는 그 생각을 없애고 신적인 생각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인간적인 생각이 소멸되는 대신 신적 생각의 생명을 얻게 된다. >

  • 23.10.02 16:05


    아멘 아멘~!!!

    < 진정한 질문을 하려면 진실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위무위)>는
    사랑하는 신부님의 가르침에 진정으로 아멘!!!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질문만 많았던
    정말 웃기는 짬뽕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결론만을 바라는 질문들만 가득 안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질문들을 밖으로 잘 꺼내 놓지도 못하면서요.

    이제 내맡긴 영혼이 된 저의 질문은
    오직 한 방향으로 모아졌습니다.

    <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는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을까?" (위무위) >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이미 얻었습니다.
    무형의 성전에서 이루어진 반복 교육을 통해서요.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죽도록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 아버지기도 >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 모두가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 참으로 이상하신 하느님아버지의 지극히 흠숭하올 뜻을 찬미하며,
    이끌어주시는 모든 것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 내맡긴 영혼이 된 후,
    지금 여기 매순간이 이 세가지 ‘서있음’의 순간 자체입니다.

    아버지께 고통과 아픔만 드리고,
    아버지 사업에 아무 쓸모 없는 것들로 가득한,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러운 저를 지명하시어,
    복되고도 복된 내맡긴 영혼 되게 하시고 거내영 사도 되게 하시어,

    폭포수 같은 사랑과 은총을 쏟아 부어주시며,
    아버지 영광과 영혼 구원의 도구로, 작은 하느님으로 다듬어 가시니,

    이 자체가, 참으로 이원론에서 벗어난,
    무리수(無理數)를 두시는 이상한 아버지이심을,

    제 영혼육이 날이 갈수록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며,
    아버지의 그 놀라우신 뜻과 사랑에 완전 부복하여,

    무뇌아, 철부지, 어린아이의 100% 내맡김과 순명으로,
    아버지께 대한 뜨거운 감사와 찬미와 사랑과 함께,


  •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타고,
    기즐행 물처럼 바람처럼 죽기까지 이끌려드리리라는 다짐 뿐입니다.

    이제는 진정, 아버지의 참맛을 알아버렸으니,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로 오직 아버지 현존 안에 머물며,

    아버지 따라쟁이로 아버지께만 무리수를 두어,
    과거, 지식, 경험 등 뼛속까지 깊이 박혀 있는 이원론일랑 훌훌 벗어 던지고,

    아버지 뜻의 양력을 타고 훨훨 날아올라
    아버지 품 안에 포~옥 안기렵니다!

    오직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진실로 죽도록 뜨겁게 죽기까지 아버지만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진정한 막가파, 하향외로,
    아버지 뜻과 사랑의 초전도체로 이끌어 주소서.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버지께 내맡겨 드립니다.

    < 거내영 >과 모든 사제와 저희 모든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7:38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아멘!

    하내영이 되고나서 한 가지 저를 찌르는 질문이 있었어요.

    탐구적 성향이 강한 저는(그렇다고 해서 머리가 좋다는 의미는 아님) 너무 답답하고 괴롭기까지 했지요.

    왜냐하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직접 깨우쳐주셔야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때로는 허무에 빠지고 싶은 유혹도, 다 벗어던지고 부정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어느날인가 아버지께서 친히 저를 압도하시는 경험을 하게 해주셨어요.

    '그대가 이해한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이 이런 뜻이었구나! 아버지의 압도하심과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에 놀랐지요.

    단순하지 못하고 머리 굴리는 성향을 가진 저의 성향에 딱! 맞게, 제가 무슨 신학생은 아니지만 마치 신학생인 것처럼 저를 공부시키고 교육시키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 경배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18:30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아멘 아멘~!!!

    리차드 로어 신부님의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사랑하는 위무위 신부님께서 ' 희안하신 하느님 '이라 표현 하신 그대로,
    저 또한 참으로 희안하신 아버지를 체험했습니다.

    처음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일이 제 앞에 벌어졌을 때엔
    놀라움을 넘어 이상하게 여길 수 밖에 없었지요.

    저는 그 때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거내영 가르침에 따라

    그저 믿기지 않은 채 < 서 있었 >고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 서 있었 >던 나날들도 있었으며,

    때론 무상함과 에고의 격정을 느끼면서도
    < 서 있었 >던 시간들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 23.10.02 18:33


    일어나는 모든 일( 아버지 뜻 )앞에 서 있었던 시간들을 통하여
    제 영혼이 다듬어지고
    이원론적 사고로는 다 알 수 없는 하느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맡김이 깊어지고 깊어질 수록
    하느님을 향한 경외심이 점점 더 커지니,
    모든 것의 모든 것인 아버지께 더더 내맡기고 싶어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어 영이신 당신을 따라 산다는 것은
    경이롭고 신비하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원론에 사로잡힌 에고로는
    기존 사고방식을 무너뜨려야 하기에 두렵고,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기에 답답하기 그지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틀이 없어진 사고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어딘가 묶여있지 않은 그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날이 갈수록 더더 진하게 체험하니,
    제 영혼이 물처럼 바람처럼 성령을 따라 살게 됩니다.

    얽히고 섥힌 인간사의 가장 최선의 길은
    진선미의 근원이신 하느님 뜻대로 살 때만이 가능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부족한 저를 거내영으로 이끄시어
    인간 최고, 최선의 삶을 살게 하시는 아버지께 무한 감사와 찬미를 올려드리오니,

    부족하고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 23.10.02 18:31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21:09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한 번이라도 이런 것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의 그 '이상하게 여김'에 머물러 보길 바란다.

    당신의 불신이 회의론이나 부정적 성향으로 고착되게 하지 말고,
    그 통찰들 앞에서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놀라워해 보라.>

    사랑하는 아버지,
    오랜 동안 받아온 교육과 습득 된 경험들을 통하여
    저도 모르게 견고한 이분법적인 틀 안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내가 옳다고 알고 믿어왔던 진실(?)들이
    사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지식들일 뿐
    본질이신 아버지 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니
    그토록 견고하게 쌓고 지켜왔던 경계들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무너지고 있습니다.


    거내영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듣고, 깨달아지니
    당연하고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명제 안에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에나 계신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함께 작용해 선을 이루어가심을 알기에

    눈 앞에 펼쳐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곰담묵>으로 순명하며 이끌려 드릴 수 있음이
    내맡긴 영혼이 누릴 수 있는 큰 은총입니다.

  • 23.10.02 21:18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을 통하여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해주시고
    나날이 확장시켜주셔서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무지하고 아둔하기만 한 저는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은총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제 뜻의 무덤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지요.

    이끌어주신 이 귀하고 귀한 거내영의 삶 속에서
    더더욱 아버지를 진실되게 알아가고 뜨겁게 사랑하여
    아버지의 기쁨이 되고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2 21:10



    이원론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번이라도 이런 것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의 그 '이상하게 여김'에 머물러 보길 바란다.

    당신의 불신이 회의론이나 부정적 성향으로 고착되게 하지 말고,
    그 통찰들 앞에서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놀라워해 보라.

    도대체 이 같은 이원성이 인간의 조건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아멘아멘!!

    아마도 <거내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도 지독한 이원론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이고
    내가 받아들인 것이 참된 진리인양

    모순과 경직된 사고로 세상을 보고
    아버지를 만났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무족하고 모자란 제가 귀하디 귀한
    평신도 영성인 <거내영>을 만나

    변화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셨으니
    베푸어 주신 모든 것에 엎디어 감사 흠숭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제가 아버지만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여
    아버지의 완전하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하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앞에 펼치신 일을 겪거나 바라보았을 때에

    <저는 믿기지 않은 채 서 있>었던 적은 없는 듯 합니다.
    저는 참으로 머리형이지만,
    제 앞에 아버지의 섭리로 벌어진 희한한 일들을 바라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버지이심을 믿고
    그 신비로운 일이 저에게 일어남이 기뻤던 적이 더 많았지요.
    그 때마다 제가 특별히 아버지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으니까요!

    (교만한 선민의식이나 자뻑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저는 그 때문에 더욱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가지 서 있음이 꼭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저 경외심을 가진 겸손한 영혼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고 싶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아버지이심을 굳게 믿으며
    왜나 어떻게나 그 밖의 어떤 질문도 머금지 않은 채
    그저 경외심을 가지고 서 있고 싶습니다.

    질문을 하지 않아도,
    혹은 아주 잠깐 찰나의 궁금함이 올라올 지라도( 그 즉시 화살기도로 날리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께선 제 영혼 안의 낌새로 즉시 접수하시고

    그에 대한 답을 즉시 혹은 시간차를 두고 저에게 깨달음으로 주셨던 적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세 가지의 서 있음이 꼭 필요한지 저는 잘 모르겠다는
    저의 느낌이 혹시 잘못된 것이라면 기꺼이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저 감탄과 경외심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 23.10.03 00:22



    이상하게 여김을 체험케 하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상하게 여김 (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

    사랑하는 아버지,
    사실 저는 아직도 그 날의 놀람 안에 있었답니다.

    그 날은 지도신부님께 엄청 혼나서 부족한 저를
    더더 내맡기던 날이었지요.

    여름 내내 저를 움직이시게 한다는
    느낌(너가 전화하라.)이 왔지만,

    제 뜻인지 알 수 없어
    (아버지께서 그가 전화하게 하소서!)
    애써 외면해 왔습니다.

    3년 전 헤어진 남친에게 먼저 안부를 묻도록 하셨지만,
    유혹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늦은 밤에 그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그 날따라 아침인데도 계속 강한 느낌이 와서
    사실 당황스러웠습니다.

    오전 내내 아님말구를 외치며 디뎌 문자를 보냈지만
    예상외로 답이 없어 담담하고 무답이 고맙기까지 했지요.

    5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습니다.

    문자로 답해도 될 껄 굳이 전화가 와서 잠시 당황했지만,
    담담이 통화를 했습니다.

    잘 지냈느냐는 질문에
    지난 세월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 23.10.03 00:30


    개신교 신자였던 친구인데 현재 의성의 한 사찰에서
    법명을 받고 주지스님의 상좌가 되었다며
    사진까지 보내주는 겁니다.

    그 동안 왜 전화가 없었냐는 질문에
    너무 미안해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저로 인해 매여있거나 걸려넘어진 상태로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자 그 친구의 어이 없는 인생행로 변화가
    놀랍고도 기가 막혔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께서 제 앞길에 예비하신 섭리가
    이상하기도
    경이롭기도 하면서 저절로 무릎이 끓어지고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지요.

    전 옆지기, 저, 친구는 각기 다른 인생행로지만
    묘한 인연의 고리와 얽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순간적인 느낌이었지만
    가장 먼저 저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의성과 인연이 없고 사찰과는 더 인연이 없던 그가
    맥락없이 승려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한편 고향이 의성인 전 옆지기는
    젊었을 때 승려가 되려했던 경험이 있는데
    두 사람이 너무 닮았기에 놀랐습니다.

    두 번째로 저를 통해 이끌어 가시고자 하는 방향을
    더 모르겠기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분명 세 사람을 향해
    선명하고도 날 선 아버지의 계획이 있음을 느꼈기에
    마지막에는 경외심마저 들었습니다.

  • 23.10.03 00:14

    @빈손.보조

    인격적인 아버지로 만나주신 하느님아버지,
    감사와 찬미영광 드립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더더 아버지께서 주시는 느낌에
    즉답하고 즉행할 수 있도록 안테나를 세우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처럼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지만
    내맡김의 큰 걸음을 떼보려 합니다.

    그리하여 그 어떠한 일에도 놀라지 않는 마리아처럼
    곰담묵으로 이끌려 드리겠습니다.

    부족하고 비천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

    아버지, 어머니의 곰곰이는 답을 찾으려는 곰곰이였을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제게 느껴지는 마음은 어머니의 곰곰이, 담담히 , 묵묵히는
    그 어떤 것도 다 알고 다 보여서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마음이 듭니다.

    대신 거룩하신 아버지께 대한 확신과 믿음, 그리고 사랑이셨겠지요!
    그렇게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삶을 통과하시도록 가만히 서 계셨던 것이겠지요?

    지난주에 지도 신부님께서 올려주신 주말 특강을 보면서
    아버지 아니시면 정말 아무것도 아님을 느꼈습니다.

    제 몸이 제가 아님을, 과거도 미래도 다 지금 일 수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삶은 찰나이겠다. 나는 그동안 바로 지금을 위해 있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갈수록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 만이 나의 존재의 의미임을 알게 하시는 아버지,


  • 왜 철부지가 되는 것이 마땅한지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진리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갓난아기 와도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무엇을 알아 논하며
    가르치겠나이까!
    아버지, 저는 당신 안에 꼭 잡힌 작은 인형이기를 원합니다.

    저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되게 하소서.

  • 23.10.03 01:15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엇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직접 보여주신 기적들,
    오병이어,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그 모든 행적들~
    그 모든 것들이 믿어집니다.

    하느님 나의 아버지,
    예수님 나의 오빠!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나의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신이심을 믿기에 경외심과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신비이고 이끄심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이해할수 없다는 댓글을 보고 깜놀했습니다.

    내맡김으로 아버지가 모든 것을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해가 안되서 어쩌나 하고 있을때 신부님의 보충교육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직은 많이많이 부족하지만 하느님 나의 아버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100% 이해할수 있기를 온전히 내맡기옵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3 02:11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댓글을 통해 배움의 장을 열어주신 사랑하는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욥기에서 욥이 아버지를 체험하고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으로 압도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욥에게 논리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앎이 아닌 신적 차원에서 알게되는 앎을 알게해주셨을 것 같아요.

    '이해하다'의 정의가 무엇인지 통일되어야 배움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하다'를 '인간의 사유로, 논리적 차원에서 깨닫고 알다'로 해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영적으로 한참 모자란 저를 일깨워주시려 배움의 장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눈치없이 댓글을 달았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이 세 가지 '서있음' 은 단순한 허무주의나 부정성否定性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아주 좋은 방편이 된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가끔 믿기지 않은 채 서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다 하여도 그것은 저의 무지와 부족함 때문이지
    아버지의 오류임이 아님은 너무나 자명한 것을 압니다.

    또 가끔은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아버지 앞에 서있기도 하지요.

    그럴 때도 아버지 앞에 서있기만 하면
    분명히 아버지 때에 아버지 방식으로 답을 주실 것을 믿고 신뢰합니다.

    그렇기에 설사 답을 얻지 못한다 하여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크고도 크신 아버지 앞에
    감히 서있을 때도 있습니다.

    오직 베풀어 주신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놀랍고 황송하여
    떨리는 환희와 기쁨으로 전율하며 말입니다.

    도대체 아버지 앞에서는 허무와 부정적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저의 영적 성장에 좋다 나쁘다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무지한 제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이 거룩한 내맡김의 길 위에 서있음이
    마냥 감사하고 감읍할 뿐입니다.

    무형 성전에서 노니는 하늘의 특혜를 누림이
    기적만 같고 완벽한 행운이라 확신합니다.

    날이 갈수록 무뇌아가 되어감이 행복합니다.
    아버지와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아버지 뜻만을
    오로지 바라고 느끼고 살고자 열망합니다.

    제 뜻만이 가득하여 세상적인 이원론에 온통 사로잡혀 살아왔던
    지난 날이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저의 전부가 되어버린 한개의 동그라미인
    지금 여기 무형성전이 제 세상입니다.

    아버지만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기에
    모든 것 안에서 매순간 아버지만 그립나이다.

    저의 사랑과 내맡김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만이 하늘과 땅 전체에 이루어 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3.10.03 12:26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생각하는 방식>

    사랑하는 아버지,
    <놀란 눈으로 보다>에 대한 보조교사님들의 사랑의 댓글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느낌을 이끌어 냄니다.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겨 드려야 함을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가지만 현실과 맞닥뜨리면 다시 마귀의 밥이 되곤 했는데

    고통도 조용히 지나감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듣고 알고는 있지만

    아버지 느림보 거북이가 내가 해서 안되는지, 생각을 하지 말라는 그 뜻의 의미도 확실히 <분명히, "생각" 과 "잡념" 은 다른 것이다.> 모른채 아버지기도를 하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생각을 없애는, 아니 잡념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이 "끊임없는 화살기도" 이다. 화살기도에 집중 할 때 하느님이 진실한 생각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아멘, 아멘!

    아버지 생각을 내려주시는 아버지 뜻이 <아버지기도>라는 것을 통하여 온전히 더더 내맡겨 드리기로 결심하고 결심하오니 이끌어주소서.

    주님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와 영광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상하게 여김(놀라워함)'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믿기지 않은 채 서있음
    질문 자체를 생각하며 서있음
    무언가에 경외심을 느끼며 서있음

    이 세 가지 '서있음'이 당신 안에 있게 하라. >

    여러 보조교사들의 댓글을 읽으며
    저도 이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러 보았습니다.

    첫째는 그냥 가볍게 넘어가곤 하였고
    둘째는 영리하지 못해 질문 자체를 잘 하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왔으며,

    셋째는 직간접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아버지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과 거룩하심을 느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내영을 만났을 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단상'이나 '아님말구'나 '흐르는 물처럼, 부는 바람처럼' 살아갈 수 있음에요~

    단세포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주하는 상황을 이리저리 재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아버지께서는 선한 길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체감하면서요~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오니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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