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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五回 武侯预伏锦囊计 魏主拆取承露盘
제105회: 제갈 무후가 비단주머니에 미리 계책을 준비하고 위나라 군주가 승로반을 떼어내다.
却说杨仪闻报前路有兵拦截,忙令人哨探。回报说魏延烧绝栈道,引兵拦路。仪大惊曰:“丞相在日,料此人久后必反,谁想今日果然如此!今断吾归路,当复如何?”费祎曰:“此人必先捏奏天子,诬吾等造反,故烧绝栈道,阻遏归路。吾等亦当表奏天子,陈魏延反情,然后图之。”姜维曰:“此间有一小径,名槎山,虽崎岖险峻,可以抄出栈道之后。”一面写表奏闻天子,一面将人马望槎山小道进发。
각설, 양의는 앞길을 어떤 군사들이 가로막는다는 보고를 듣고, 황망히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위연이 잔도를 불태워 끊고 군사를 이끌고 길을 막고 있다고 했다. 양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승상께서 생전에 이 자가 먼 훗날 틀림없이 반역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누가 오늘 과연 이렇게 할 줄을 생각이나 했겠소? 이제 우리의 귀로를 끊었으니, 어찌해야겠소?”하니, 비위가 말하기를,“이 자가 틀림없이 먼저 천자께 우리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무고하고 잔도를 불태워서 우리의 귀로를 막은 것이오. 우리도 역시 천자께 위연이 역심을 품은 것을 상주한 뒤에 그를 도모해야겠소.”했다. 강유가 말하기를,“이 사이에 지름길이 하나 있소. 이름이 차산인데 비록 기구하고 험준하지만 잔도의 뒷쪽으로 우회할 수 있소.”하니, (양의가) 한편으로는 천자께 표를 써서 아뢰면서, 한편으로는 인마를 차산의 지름길로 출발하게 했다.
且说,后主在成都,寝食不安,动止不宁;夜作一梦,梦见成都锦屏山崩倒;遂惊觉,坐而待旦,聚集文武,入朝圆梦。谯周曰:“臣昨夜仰观天文,见一星,赤色,光芒有角,自东北落于西南,主丞相有大凶之事。今陛下梦山崩,正应此兆。”后主愈加惊怖。忽报李福到,后主急召入问之。福顿首泣奏丞相已亡;将丞相临终言语,细述一遍。
한편, 후주(유선)는 성도에서 먹고 자는 것이 불안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편했다. 밤에 꿈을 꾸니 꿈속에서 성도의 금병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놀라서 깨어나 앉은 채 아침까지 기다려서, 문무 관료를 조정으로 불러모아 해몽을 하게 했다. 초주가 말하기를,“신이 어젯밤 천문을 우러러 관측하니, 한 별이 붉게 빛나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졌습니다. 승상에게 매우 흉한 일이 일어날 징조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산이 무너지는 꿈을 꾸셨다니 참으로 이 징조와 맞습니다.”했다. 후주가 더욱 놀라고 두려워하는데 홀연 이복이 왔다고 알렸다. 후주가 급히 불러들여서 그에게 물으니, 이복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승상이 이미 별세했음를 알리고 승상이 임종하며 남긴 말을 자세히 고했다.
后主闻言大哭曰:“天丧我也!”哭倒于龙床之上。侍臣扶入后宫。吴太后闻之,亦放声大哭不已。多官无不哀恸,百姓人人涕泣。后主连日伤感,不能设朝。忽报魏延表奏杨仪造反,群臣大骇,入宫启奏后主,时吴太后亦在宫中。后主闻奏大惊,命近臣读魏延表。其略曰:“征西大将军、南郑侯臣魏延,诚惶诚恐,顿首上言:杨仪自总兵权,率众造反,劫丞相灵柩,欲引敌人入境。臣先烧绝栈道,以兵守御。谨此奏闻。”
후주가 듣고 대성통곡하며 말하기를,“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하고, 울다가 용상 위에 쓰러졌다. 모시는 신하가 부축하여 후궁으로 들어갔다. 오 태후가 듣고, 역시 목놓아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많은 관리가 애통해 하지 않는 이가 없고 백성들은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후주가 날마다 비통하여 조회를 열지 못하는데, 갑자기 위연이 표를 올려 양의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신하들이 크게 놀라서 궁궐로 들어가 후주에게 아뢰었다. 이때 오 태후도 역시 궁중에 있었다. 후주가 신하들의 상주를 듣고 크게 놀라 근신을 시켜 위연의 표를 읽게 했다. 그 표에 대략 이르기를,“정서대장군 남정후 신 위연이 참으로 황공하오나 머리를 조아려 말씀드립니다. 양의는 스스로 병권을 장악하여 무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서 승상의 영구(시체를 넣은 관)를 빼앗아 반적들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들어오려고 합니다. 신이 먼저 잔도를 불태워 끊고 병력으로써 막아 지키고 있습니다. 삼가 이렇게 아룁니다.”했다.
读毕,后主曰:“魏延乃勇将,足可拒杨仪等众,何故烧绝栈道?”吴太后曰:“尝闻先帝有言:孔明识魏延脑后有反骨,每欲斩之;因怜其勇,故姑留用。今彼奏杨仪等造反,未可轻信。杨仪乃文人,丞相委以长史之任,必其人可用。今日若听此一面之词,杨仪等必投魏矣。此事当深虑远议,不可造次。”众官正商议间,忽报:长史杨仪有紧急表到。近臣拆表读曰:“长史、绥军将军臣杨仪,诚惶诚恐,顿首谨表:丞相临终,将大事委于臣,照依旧制,不敢变更,使魏延断后,姜维次之。今魏延不遵丞相遗语,自提本部人马,先入汉中,放火烧断栈道,劫丞相灵车,谋为不轨。变起仓卒,谨飞章奏闻。”
읽기를 마치자 후주가 말하기를,“위연은 용장이라서 족히 양의 등의 무리를 막을 수 있거늘 무슨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운단 말이오?”하니, 오 태후가 말하기를,“일찍이 선제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는데, 공명이 위연의 머리 뒤에 반골이 있는 것을 알고 매번 그를 참하려 하였으나 그 용기를 아껴 우선 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그가 양의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아뢰었으나 아직은 가볍게 믿을 수 없습니다. 양의는 문신이라 승상이 장사(비서장)의 임무를 맡겼으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믿고 쓴 것입니다. 오늘 만약 이렇게 한쪽의 말만 듣는다면 양의 등은 틀림없이 위나라에 투항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 멀리 보고 의논해야지 성급해서는 안 됩니다.”했다. 뭇 관리가 상의하고 있는데, 장사 양의가 긴급히 올린 표가 당도했다고 했다. 근신이 표를 열어 읽기를,“장사 수군장군 양의가 참으로 황공하옵게도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를 올립니다. 승상께서 임종하며 장차 대사를 신에게 위임했습니다. 옛 제도를 감히 변경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저는 위연으로 하여금 후미를 엄호하게 하고 강유를 그 밑에 두었습니다. 이제 위연이 승상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휘하 인마를 거느리고 한중으로 먼저 들어가 불을 질러 잔도를 끊고 승상의 영구를 실은 수레를 빼앗으려 하며 반역을 모의했습니다. 변란이 갑자기 일어나서 삼가 급하게 글을 올려 아뢰옵니다.”했다.
太后听毕,问:“卿等所见若何?”蒋琬奏曰:“以臣愚见:杨仪为人虽禀性过急,不能容物,至于筹度粮草,参赞军机,与丞相办事多时,今丞相临终,委以大事,决非背反之人。魏延平日恃功务高,人皆下之;仪独不假借,延心怀恨;今见仪总兵,心中不服,故烧栈道,断其归路,又诬奏而图陷害。臣愿将全家良贱,保杨仪不反。实不敢保魏延。”董允亦奏曰:“魏延自恃功高,常有不平之心,口出怨言。向所以不即反者,惧丞相耳。今丞相新亡,乘机为乱,势所必然。若杨仪,才干敏达,为丞相所任用,必不背反。”
태후가 듣고 나서, 묻기를,“경들의 소견은 어떻소?”하니, 장완이 아뢰기를,“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양의는 사람됨이 비록 품성이 지나치게 급하고 남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군량을 준비하고 군사 기밀을 보좌하며 승상과 더불어 일을 처리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에 승상이 임종하며 대사를 위임했으니, 그는 결코 배반할 사람이 아닙니다. 위연이 평소에 자신의 공을 믿고 높은 자리를 탐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멸했습니다. 양의가 유독 그를 가차 없이 대하니, 위연이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었습니다. 이제 양의가 병력을 총지휘하자 위연이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그런 까닭으로 잔도를 불태워 귀로를 차단한 것입니다. 게다가 양의를 무고하는 글을 올려,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꾀한 것입니다. 신이 바라옵건대 저희 온 집안의 양천(양민과 천민)을 걸고서라도 양의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보증할지언정, 참으로 감히 위연을 보증하지는 않겠습니다.”했다. 동윤도 아뢰기를,“위연이 공이 높은 것을 자부하며 늘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 입 밖으로 원망의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예전에 즉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오로지 승상을 두려워했을 따름입니다. 이제 승상이 사망하자, 그 틈을 타고 반란하는 것이니 이러한 형세는 필연입니다. 만약 양의가 재간이 기민하고 통달하여 승상이 임용한 것이라면, 틀림없이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后主曰:“若魏延果反,当用何策御之?”蒋琬曰:“丞相素疑此人,必有遗计授与杨仪。若仪无恃,安能退入谷口乎?延必中计矣。陛下宽心。”不多时,魏延又表至,告称杨仪背反。正览表之间,杨仪又表到,奏称魏延背反。二人接连具表,各陈是非。忽报费祎到。后主召入,祎细奏魏延反情。后主曰:“若如此,且令董允假节释劝,用好言抚慰。”允奉诏而去。却说魏延烧断栈道,屯兵南谷,把住隘口,自以为得计;不想杨仪、姜维星夜引兵抄到南谷之后。仪恐汉中有失,令先锋何平引三千兵先行。仪同姜维等引兵扶柩望汉中而来。
후주가 말하기를,“만약 위연이 반역했다면 무슨 계책을 써서 막아야겠소?”하니, 장완이 말하기를,“승상이 평소 그를 의심했으니 틀림없이 계책을 양의에게 남겼을 것입니다. 양의가 믿는 것도 없이 어찌 골짜기로 들어왔겠습니까? 위연은 반드시 계책에 걸려들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했다. 얼마 뒤 위연이 다시 표를 올려, 양의가 반역했다고 했다. 위연의 표를 읽는 사이에, 양의가 다시 표를 올려 위연이 반역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잇달아 표를 올려서 제각기 시비를 늘어놓았다. 갑자기 비위가 왔다고 알리니, 후주가 불러들였다. 비위가 위연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고 자세히 아뢰니, 후주가 말하기를,“이렇다면 우선 동윤에게 부절(신표)을 주어 해결하러 가게 해서, 좋은 말로 그를 달래야겠소.”했다. 동윤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떠났다. 한편 위연은 잔도를 불살라 끊고, 남곡에 병력을 주둔하여 요충지를 장악하고, 스스로 계책이 성공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의와 강유가 한밤에 병력을 이끌고 남곡의 뒤로 우회했다. 양의가 한중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선봉장 하평에게 군사 3천을 이끌고 먼저 가게 했다. 양의가 강유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제갈공명의 관을 호송해서 한중을 향해 갔다.
且说,何平引兵径到南谷之后,擂鼓呐喊。哨马飞报魏延,说杨仪令先锋何平引兵自槎山小路抄来搦战。延大怒,急披挂上马,提刀引兵来迎。两阵对圆,何平出马大骂曰:“反贼魏延安在?”延亦骂曰:“汝助杨仪造反,何敢骂我!”平叱曰:“丞相新亡,骨肉未寒,汝焉敢造反!”乃扬鞭指川兵曰:“汝等军士,皆是西川之人,川中多有父母妻子,兄弟亲朋;丞相在日,不曾薄待汝等,今不可助反贼,宜各回家乡,听候赏赐。”
한편, 하평은 군사를 이끌고 지름길로 남곡의 뒤로 가서, 북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렀다. 정찰 기병이 급히 위연에게 알리며, 양의가 선봉장 하평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차산의 지름길로 돌아서 싸움을 건다고 했다. 위연이 크게 노해, 급히 갑옷을 차려입고 말을 타더니, 칼을 쥐고 군사를 이끌고 맞서러 갔다. 양쪽 진영이 대치하자, 하평이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욕하기를,“역적 위연은 어디 있느냐?”하니, 위연도 욕하기를,“네놈이 양의를 도와 반역하면서 어찌 감히 나를 욕하느냐!”했다. 하평이 외치기를,“승상께서 돌아가시고 골육이 식지도 않았는데 네놈이 어찌 감히 반란을 일으키느냐!”하며, 이에 채찍을 들어 서천의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하기를,“너희 군사들은 모두가 서천 사람이니 서천에 부모와 처자, 형제와 친구가 많을 것이다. 승상께서 살아 계실 때 너희를 박대하지 않으셨으니 이제 반적을 돕지 말고 마땅히 고향 집으로 돌아가 포상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했다.
众军闻言,大喊一声,散去大半。延大怒,挥刀纵马,直取何平。平挺枪来迎。战不数合,平诈败而走,延随后赶来。众军弓弩齐发,延拨马而回。见众军纷纷溃散,延转怒,拍马赶上,杀了数人,却只止遏不住;只有马岱所领三百人不动,延谓岱曰:“公真心助我,事成之后,决不相负。”遂与马岱追杀何平。平引兵飞奔而去。魏延收聚残军,与马岱商议曰:“我等投魏,若何?”岱曰:“将军之言,不智甚也。大丈夫何不自图霸业,乃轻屈膝于人耶?吾观将军智勇足备,两川之士,谁敢抵敌?吾誓同将军先取汉中,随后进攻西川。”
뭇 군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함성을 한바탕 지르며, 태반이 흩어져 달아났다. 위연이 크게 노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몰아 하평에게 달려들었다. 하평이 창을 꼬나쥐고 맞붙으러 나왔다. 몇 번 부딪히지 않고, 하평이 못 이기는 척 달아나니 위연이 뒤쫓았다. 뭇 군사가 활과 쇠뇌를 일제히 쏘아대니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서 돌아갔다. 그런데 뭇 군사가 어지러이 흩어지는 것이 보이자, 위연이 더욱 노하여, 말을 몰고 뒤쫓아서 몇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달아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다만 마대가 이끄는 3백 명만 동요하지 않았다. 위연이 마대에게 말하기를,“공께서 진심으로 나를 도우니, 일이 이뤄진 뒤에 결코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소.”했다. 곧 마대와 더불어 하평을 추격했다. 하평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달아났다. 위연은 남은 병사들을 거두어 모으고, 마대와 상의하여 말하기를,“우리가 위나라로 가는 것이 어떻겠소?”하니, 마대가 말하기를,“장군의 말씀은 몹시 지혜롭지 못합니다. 대장부가 어쩌 스스로 패업(으뜸가는 사업)을 도모하지 않은 채 함부로 남에게 무릎을 꿇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장군께서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추었으니 양천(서천과 동천)의 군사들이 누가 감히 맞서겠습니까? 내가 맹세코 장군과 함께할 것이니, 먼저 한중을 취하고 뒤따라 양천으로 진공합시다.”했다.
延大喜,遂同马岱引兵直取南郑。姜维在南郑城上,见魏延、马岱耀武扬威,风拥而来。维急令拽起吊桥。延、岱二人大叫:“早降!”姜维令人请杨仪商议曰:“魏延勇猛,更兼马岱相助,虽然军少,何计退之?”仪曰:“丞相临终,遗一锦囊,嘱曰:若魏延造反,临阵对敌之时,方可开拆,便有斩魏延之计。今当取出一看。”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곧 마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남정을 점령하러 갔다. 강유가 남정성 위에서 바라보니, 위연과 마대가 무력을 과시하며 바람같이 몰려들었다. 강유가 급히 명령을 내려, 적교(해자에 걸쳐 들어올리는 다리)를 들어올리라고 했다. 위연과 마대 두 사람이 크게 외치기를,“어서 항복하라!”하니, 강유가 사람을 보내 양의를 불러서 상의하기를,“위연이 용맹하고, 더욱이 마대가 도우니, 비록 저들의 군사가 적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물리치겠소?”하니, 양의가 말하기를,“승상께서 임종하시며, 비단 주머니를 한 개 남기시며 부탁하시길,‘만약 위연이 반란을 일으켜서 적병과 맞설 때 열어서 보면 위연을 참할 계책이 있을 것이라.’하셨소. 지금 당장 꺼내서 봐야겠소.”했다.
遂出锦囊拆封看时,题曰:“待与魏延对敌,马上方许拆开。”维大喜曰:“既丞相有戒约,长史可收执。吾先引兵出城,列为阵势,公可便来。”姜维披挂上马,绰枪在手,引三千军,开了城门,一齐冲出,鼓声大震,排成阵势。维挺枪立马于门旗之下,高声大骂曰:“反贼魏延!丞相不曾亏你,今日如何背反?”延横刀勒马而言曰:“伯约,不干你事。只教杨仪来!”仪在门旗影里,拆开锦囊视之,如此如此。仪大喜,轻骑而出,立马阵前,手指魏延而笑曰:“丞相在日,知汝久后必反,教我提备,今果应其言。汝敢在马上连叫三声‘谁敢杀我’,便是真大丈夫,吾就献汉中城池与汝。”
곧 비단 주머니를 꺼내서, 봉한 것을 뜯어서 읽으려는데, 겉에 적기를,“위연과 대적하기를 기다려서, 말 위에서 열어보시오.”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이미 승상께서 경계하고 약속한대로 장사께서 보관하시오. 내가 먼저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서 전투 대형을 벌일 테니, 공께서 곧 나오시오.”했다. 강유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창을 손에 쥐었다. 군사 3천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일제히 달려나가 북소리 크게 울리며 전투 대형을 벌였다. 강유가 창을 꼬나쥐고 군영 입구의 큰 깃발 아래 말을 세워 멈추고 소리높여 크게 꾸짖기를,“반란을 일으킨 역적 위연아! 승상께서 너를 버리신 적이 없거늘 오늘 어찌 배반하느냐?”하니, 위연이 칼을 비껴들고 말을 세워서 말하기를,““백약(강유)과는 상관없으니, 다만 양의를 불러와라!”했다. 양의가 문기의 그늘 아래에서 비단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적혀 있었다. 양의가 크게 기뻐하며 가볍게 말을 타고 나가서 군영 앞에서 말을 세운 뒤 손가락으로 위연을 가리키고 웃으며 말하기를,“승상께서 생전에 네가 먼 훗날 반드시 배반할 것을 아시고 나더러 준비하라 지시하셨는데 이제 과연 그 말이 맞구나. 네가 감히 말 위에서 연달아 세 번 ‘누가 감히 나를 죽이랴!’하고 외치면 참으로 대장부가 맞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곧 한중의 성을 네게 주겠다.”했다.
延大笑曰:“杨仪匹夫听着!若孔明在日,吾尚惧他三分;他今已亡,天下谁敢敌我?休道连叫三声,便叫三万声,亦有何难!”遂提刀按辔,于马上大叫曰:“谁敢杀我?”一声未毕,脑后一人厉声而应曰:“吾敢杀汝!”手起刀落,斩魏延于马下。众皆骇然。斩魏延者,乃马岱也。原来孔明临终之时,授马岱以密计,只待魏延喊叫时,便出其不意斩之;当日,杨仪读罢锦囊计策,已知伏下马岱在彼,故依计而行,果然杀了魏延。后人有诗曰:“诸葛先机识魏延,已知日后反西川。锦囊遗计人难料,却见成功在马前。”
위연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양의 이 필부 놈아 들어라! 공명의 생전에 내가 그를 좀 두려워했다만, 이제 그가 죽었는데, 천하에서 누가 감히 나를 대적하겠느냐? 세 번 잇달아 외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3만 번을 외치는 것도 무엇이 어렵겠느냐?”했다. 곧 칼을 들고 말고삐를 잡은 채 말 위에서 크게 외치기를,“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하니,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머리 뒤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응답하기를,“내가 너를 죽이겠다!”하고, 칼을 들었다가 내리치니 위연이 베어져 말 아래 떨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위연을 벤 사람은 바로 마대였다. 원래, 공명이 임종할 때 마대에게 비밀 계책을 주며, 위연이 외칠 때를 기다려, 뜻하지 않은 상태를 노려서 그를 베라고 한 것이었다. 그날 양의가 비단 주머니 속의 계책을 읽고 나서, 이미 마대가 그쪽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계책대로 행하여 과연 위연을 죽였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제갈량이 위연을 미리 알아보고, 훗날 서천을 배반할 것을 이미 알았네. 비단 주머니에 계책을 남긴 것을 사람들이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오히려 마대가 바로 눈앞에서 공을 세울 것을 알았구나.”했다.
却说,董允未及到南郑,马岱已斩了魏延,与姜维合兵一处。杨仪具表星夜奏闻后主。后主降旨曰:“既已名正其罪,仍念前功,赐棺椁葬之。”杨仪等扶孔明灵柩到成都,后主引文武官僚,尽皆挂孝,出城二十里迎接。后主放声大哭。上至公卿大夫,下及山林百姓,男女老幼,无不痛哭,哀声震地。后主命扶柩入城,停于丞相府中。其子诸葛瞻守孝居丧。
한편, 동윤이 미처 남정에 이르기 전에 마대가 이미 위연을 죽이고 강유와 병력을 합쳤다. 양의가 표를 써서 한밤에 후주에게 아뢰었다. 후주가 교지를 내려 말하기를,“이미 위연의 죄를 밝혔으나 전날의 공로를 생각하여 관곽(속널과 겉널)을 하사할 테니 장례를 치르시오.”했다. 양의 등이 공명의 영구를 성도로 옮기니, 후주가 문무 관료를 이끌고 나왔다. 모두 상복을 입고 성 밖 2십 리까지 나와서 영접했다. 후주가 목놓아 크게 곡했다. 위로는 공경대부에서 아래로는 산림의 백성까지, 남녀노소가 통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구슬픈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후주가 성안으로 운구하라고 명하여, 승상의 부중에 안치했다. 그 아들 제갈첨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렀다.
后主还朝,杨仪自缚请罪。后主令近臣去其缚曰:“若非卿能依丞相遗教,灵柩何日得归,魏延如何得灭。大事保全,皆卿之力也。”遂加杨仪为中军师。马岱有讨逆之功,即以魏延之爵爵之。仪呈上孔明遗表。后主览毕,大哭,降旨卜地安葬。费祎奏曰:“丞相临终,命葬于定军山,不用墙垣砖石,亦不用一切祭物。”后主从之。择本年十月吉日,后主自送灵柩至定军山安葬。后主降诏致祭,谥号忠武侯;令建庙于沔阳,四时享祭。
후주가 궁궐로 돌아오니, 양의가 스스로 결박하여 죄를 청했다. 후주가 근신(가까이 모시는 신하)을 시켜 그 결박을 풀게 하고 말하기를,“만약 경이 승상의 남긴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승상의 영구는 언제 돌아오고 위연은 어떻게 멸망시켰겠소. 큰일이 보전된 것은 모두 경의 노력 덕이오.”하고, 곧 양의에게 중군사(승상부의 관속)의 직위를 더해준다. 마대도 역적을 토벌한 공로로 즉시 위연의 벼슬을 이어받았다. 양의가 공명이 남긴 표를 바치니, 후주가 읽고 나서 크게 곡하고, 교지를 내려 장지를 잘 골라 안장하도록 했다. 비위가 아뢰기를,“승상이 임종하며 명하기를 정군산에 안장하되 담을 쌓거나 벽돌을 쓰지 말고 일체의 제물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하니, 후주가 이를 따랐다. 이해 시월의 길일을 골라 후주가 직접 영구를 정군산까지 따라가서 안장했다. 후주가 조서를 내려 제사하고, 충무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면양에 사당을 지어, 네 철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
后杜工部有诗曰:“丞相祠堂何处寻,锦官城外柏森森。映阶碧草自春色,隔叶黄鹂空好音。三顾频烦天下计,两朝开济老臣心。出师未捷身先死,长使英雄泪满襟!”又杜工部诗曰:“诸葛大名垂宇宙,宗臣遗像肃清高。三分割据纡筹策,万古云霄一羽毛。伯仲之间见伊吕,指挥若定失萧曹。运移汉祚终难复,志决身歼军务劳。”
훗날 두공부(두보)가 시를 지어 이르기를,“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으리오.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이네. 계단을 덮은 푸른 풀은 절로 봄빛을 띠었고, 나뭇잎 사이 꾀꼬리는 아름답게 지저귀네. 삼고초려로 천하의 계책을 자주 간청하니, 두 임금 모시며 나라를 열어 구함은 늙은 신하의 충심이라. 출사표 올리고 이기지 못한 채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옷깃을 적시게 하네.”했다. 또 두공부의 다른 시에 이르기를,“제갈공명의 큰 이름이 우주에 드리우고, 공신의 남긴 초상은 맑고 높아 숙연하네. 천하를 셋으로 나눌 계책을 내놓으니, 만고에 걸쳐 높은 하늘에 날아오른 깃털 같구나. 이윤과 여상 같은 분들과 엇비슷하고, 승리를 확정한 듯 지휘하니 소하와 조참도 빛을 잃네. 운수가 다하니 한나라도 결국 부흥하기 어렵고, 뜻은 굳건만 몸은 죽으니 군무에 과로하였네.”했다.
却说后主回到成都,忽近臣奏曰:“边庭报来,东吴令全琮引兵数万,屯于巴丘界口,未知何意。”后主惊曰:“丞相新亡,东吴负盟侵界,如之奈何?”蒋琬奏曰:“臣敢保王平、张嶷引兵数万屯于永安,以防不测。陛下再命一人去东吴报丧,以探其动静。”后主曰:“须得一舌辩之士为使。”一人应声而出曰:“微臣愿往。”众视之,乃南阳安众人,姓宗,名预,字德艳,官任参军、右中郎将。后主大喜,即命宗预往东吴报丧,兼探虚实。
한편, 후주가 성도로 돌아오니, 홀연 근신이 아뢰기를,“변방에서 보고하기를, 동오가 전종에게 군사 수만을 이끌고 파구의 입구에 주둔하라 했다는데, 그 속셈을 아직 모르겠습니다.”했다. 후주가 놀라서 말하기를,“승상이 세상을 뜨자마자, 동오가 맹약을 어기고 국경을 침범하니 어찌해야겠소?”하니, 장완이 아뢰기를,“신이 감히 왕평과 장의를 추천하여 군사 수만을 이끌고 영안에 주둔해서 불의의 사태를 방비하라고 해야 합니다. 또한 폐하께서 사람을 동오로 보내어 승상의 별세를 알리고 그 동정을 살피게 하십시오.”했다. 후주가 말하기를,“아무래도 변설이 뛰어난 인물을 사자로 보내야겠소.”하니, 한 사람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며 말하기를,“미천한 신이 가겠습니다.”했다. 여러 사람이 바라보니 바로 남양 안중 사람으로 성은 종이고, 이름은 예이며, 자는 덕염인데, 벼슬이 참군 우중랑장이었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종예에게 동오로 가서 공명의 별세를 알리고 동오의 허실을 정탐하라고 했다.
宗预领命,径到金陵,入见吴主孙权。礼毕,只见左右人皆着素衣。权作色而言曰:“吴、蜀已为一家,卿主何故而增白帝之守也?”预曰:“臣以为东益巴丘之戍,西增白帝之守,皆事势宜然,俱不足以相问也。”权笑曰:“卿不亚于邓芝。”乃谓宗预曰:“朕闻诸葛丞相归天,每日流涕,令官僚尽皆挂孝。朕恐魏人乘丧取蜀,故增巴丘守兵万人,以为救援,别无他意也。”预顿首拜谢。权曰:“朕既许以同盟,安有背义之理?”预曰:“天子因丞相新亡,特命臣来报丧。”权遂取金鈚箭一枝折之,设誓曰:“朕若负前盟,子孙绝灭!”又命使赍香帛奠仪,入川致祭。
종예가 명령을 받고, 곧장 금릉(남경)으로 가서, 오나라 임금 손권을 만나러 들어갔다. 인사를 마치고 보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소복을 입고 있었다. 손권이 낯빛을 바꾸어 말하기를,“오나라와 촉나라가 이미 한집안인데 경의 주군은 무슨 까닭으로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오?”했다. 종예가 말하기를,“신이 헤아리기에, 동쪽에서 파구의 병력을 증강하니, 서쪽에서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는 것은 모두 사세에 따라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것을 서로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하니, 손권이 웃으며 말하기를,“경은 등지보다 못하지 않구려.”했다. 그리고 종예에게 말하기를,“짐은 제갈 승상이 귀천한 것을 듣고 매일 눈물을 흘리며 관료들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고 했소. 짐은 위나라 사람들이 초상을 틈타서 촉나라를 공격할까 두려워서, 파구의 수비 병력 1만을 늘려서 촉나라를 구원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했다. 종예가 고개를 숙여 사례하니, 손권이 말하기를,“짐이 이미 동맹을 받아들였는데 어찌 의리를 배반할 리 있겠소?”하니, 종예가 말하기를,“저희 천자께서 승상이 얼마 전에 별세하자 특별히 신을 보내어 알리게 하셨습니다.”했다. 손권이 곧 금비전(금살촉의 화살) 하나를 가져와서 부러뜨리며 맹세하기를,“짐이 만약 지난날의 맹약을 어긴다면 자손들이 절멸될 것이오!”하고, 또한 사자에게 향백(향과 비단)과 전의(조의금)를 가지고 서천으로 들어가서 제사를 올리게 했다.
宗预拜辞吴主,同吴使还成都,入见后主,奏曰:“吴主因丞相新亡,亦自流涕,令群臣皆挂孝。其益兵巴丘者,恐魏人乘虚而入,别无异心。今折箭为誓,并不背盟。”后主大喜,重赏宗预,厚待吴使去讫。遂依孔明遗言,加蒋琬为丞相、大将军,录尚书事;加费祎为尚书令,同理丞相事;加吴懿为车骑将军,假节督汉中;姜维为辅汉将军、平襄侯,总督诸处人马,同吴懿出屯汉中,以防魏兵。其余将校,各依旧职。
종예가 오나라 군주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나라 사자와 함께 성도로 돌아와서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 아뢰기를,“오나라 임금이 승상이 별세하자 역시 눈물을 흘리며 여러 신하에게 모두 상복을 입으라 했습니다. 파구에 병력을 증강한 것은 위나라 사람들이 이 틈을 타서 침입할까 우려해서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화살을 꺾어 맹세했으니 동맹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종예를 크게 포상하고 오나라 사자를 잘 대접해 떠나보냈다. 곧 공명의 유언에 따라, 장완을 승상, 대장군, 녹상서사(문서관리 총괄)로 제수하고, 비위를 상서령으로 제수해, 승상의 사무를 함께 처리하게 했다. 또한 오의를 거기장군으로 제수해서 신표를 주어 한중의 병력을 총독하게 하고, 강유를 보한장군 평양후에 제수해서 각처의 인마를 총독하고, 오의와 함께 한중으로 나가서 주둔하여 위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그 나머지 장교들은 제각각 원래의 직위를 따랐다.
杨仪自以为年宦先于蒋琬,而位出琬下;且自恃功高,未有重赏,口出怨言,谓费祎曰:“昔日丞相初亡,吾若将全师投魏,宁当寂寞如此耶!”费祎乃将此言具表密奏后主。后主大怒,命将杨仪下狱勘问,欲斩之。蒋琬奏曰:“仪虽有罪,但日前随丞相多立功劳,未可斩也,当废为庶人。”后主从之,遂贬杨仪赴汉嘉郡为民。仪羞惭自刎而死。
양의는 스스로 나이와 벼슬이 장완보다 앞선다고 여겼으나 직위가 장완의 아래가 되었다. 또 자신의 공이 높다고 자부했는데 큰 포상이 없자 입에서 원망의 말이 나와 비위에게 이르기를,“지난날 승상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내가 만약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했다면 이렇게 적막한 대우는 받지 않았을 것이오!”했다. 비위가 이 말을 모두 후주에게 은밀히 아뢰니, 후주가 크게 노하여, 양의를 하옥하고 심문해서 처형하려 했다. 장완이 아뢰기를,“양의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일전에 승상을 수행하며 공로를 많이 세웠으니 참할 수 없습니다. 그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는 것이 마땅합니다.”하니, 후주가 이 말에 따라 곧 양의를 한중의 가군으로 귀양을 보내고 평민으로 만들었다. 양의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蜀汉建兴十三年,魏主曹睿青龙三年,吴主孙权嘉禾四年,三国各不兴兵,单说魏主封司马懿为太尉,总督军马,安镇诸边。懿拜谢回洛阳去讫。魏主在许昌,大兴土木,建盖宫殿;又于洛阳造朝阳殿、太极殿,筑总章观,俱高十丈;又立崇华殿、青霄阁、凤凰楼、九龙池,命博士马钧监造,极其华丽:雕梁画栋,碧瓦金砖,光辉耀日。选天下巧匠三万余人,民夫三十余万,不分昼夜而造。民力疲困,怨声不绝。
촉한 건흥 13년, 위나라 군주 조예의 청룡 3년, 오나라 군주 손권의 가화 4년, 삼국이 제각기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위나라 군주는 사마의를 태위로 봉하여 군마를 총독하고, 여러 변방을 안정시키게 했다. 사마의가 사례를 올리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군주가 허창에서 토목 사업을 크게 일으켜 궁전을 지었다. 또한 낙양에 조양전, 태극전을 짓고, 총장관을 지었다. 모두 높이가 열 길에 달했다. 또한 숭화전, 청하각, 봉황루, 구룡지를 만들었다. 박사 마균을 시켜 건설을 감독하니, 지극히 화려했다. 조각을 새긴 들보와 그림을 그린 기둥, 푸른 기와와 황금색 벽돌로 꾸미니 태양처럼 빛났다. 천하의 뛰어난 장인 3만여 명과 백성 3십만여 명을 뽑아서 밤낮없이 건축했다. 백성들이 지쳐서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睿又降旨起土木于芳林园,使公卿皆负土树木于其中。司徒董寻上表切谏曰。“伏自建安以来,野战死亡,或门殚户尽;虽有存者,遗孤老弱。若今宫室狭小,欲广大之,犹宜随时,不妨农务。况作无益之物乎?陛下既尊群臣,显以冠冕,被以文绣,载以华舆,所以异于小人也。今又使负木担土,沾体涂足,毁国之光,以崇无益:甚无谓也。孔子云:君使臣以礼,臣事君以忠。无忠无礼,国何以立?臣知言出必死;而自比于牛之一毛,生既无益,死亦何损。秉笔流涕,心与世辞。臣有八子,臣死之后,累陛下矣。不胜战慄待命之至!”
조예가 다시 교지를 내려서 방림원에 토목 공사를 일으키게 하여, 공경(고위 관료)들도 모두 그 안에서 흙과 나무를 져서 나르게 했다. 사도 동심이 표를 올려 간절히 간하기를,“건안(한나라 헌제의 연호) 이래 백성들이 싸움터에서 죽거나 온 집안이 몰살당했습니다. 비록 살아남았더라도 고아나 노약자들입니다. 만약 이제 궁전이 협소하여 이를 넓고 크게 만들고 싶더라도 마땅히 시기를 맞춰서 농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을 짓겠습니까? 폐하께서 신하들을 존중하신 까닭에, 관면(모자)을 머리에 쓰게 하고, 무늬로 수놓은 옷을 입게 하고, 화려한 수레를 타게 하여서, 그들을 소인(평민)들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로 하여금 나무와 흙을 져 나르고, 몸을 적시고 발에 진흙을 묻게 했습니다. 국가의 영광을 훼손하면서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을 존숭하시니 참으로 부당합니다. 공자께서 이르시길,‘임금이 신하에게 예를 갖춰서 부리면, 신하는 충성을 바쳐 임금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충성도 없고 예의도 없다면 국가가 어찌 존립하겠습니까? 신은 이런 말을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의 털 한 올과 같아서, 살아도 아무 쓸모가 없고, 죽어도 아무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붓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세상에 이별을 고합니다. 신에게 아들이 여덟 있사온데, 신이 죽은 뒤에 폐하께 누가 될 것입니다. 몸이 떨려옴을 이기지 못하며, 어명을 기다리겠습니다!”했다.
睿览表怒曰:“董寻不怕死耶!”左右奏请斩之。睿曰:“此人素有忠义,今且废为庶人。再有妄言者必斩!”时有太子舍人张茂,字彦材,亦上表切谏,睿命斩之。即日召马钧问曰:“朕建高台峻阁,欲与神仙往来,以求长生不老之方。”钧奏曰:“汉朝二十四帝,惟武帝享国最久,寿算极高,盖因服天上日精月华之气也:尝于长安宫中,建柏梁台;台上立一铜人,手捧一盘,名曰‘承露盘’,接三更北斗所降沆瀣之水,其名曰‘天浆’,又曰‘甘露’。取此水用美玉为屑,调和服之,可以反老还童。”睿大喜曰:“汝今可引人夫星夜至长安,拆取铜人,移置芳林园中。”
조예가 표를 읽고 나서 노하여 말하기를,“동심은 죽는 것도 두렵지 않느냐!”했다. 좌우의 사람들이 그를 처형하라고 주청하니 조예가 말하기를,“그는 평소 충의로운 사람이니 이제 서인으로 폐하겠소. 다시 이런 망언을 하는 자는 반드시 참하겠소!”했다. 이때 태자의 사인(가신)들 가운데 이름이 장무이고, 자가 언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표를 올려 간절하게 간하니, 조예가 그를 처형하라고 명했다. 이날 조예가 마균을 불러 그에게 묻기를,“짐이 높은 누대와 전각을 지어서, 신선과 더불어 왕래하며, 장생불로의 방법을 구하고 싶소.”하니, 마균이 아뢰기를,“한나라의 24 황제들 가운데 오직 무제께서 가장 오래 나라를 다스리고 수명이 아주 길었습니다. 그 까닭은 대개 하늘의 해와 달의 정기를 흡수해서입니다. 일찍이 장안의 궁중에 백량대를 짓고, 대 위에 동인(구리 인형) 하나를 세웠습니다. 그가 손으로 승로반이라는 쟁반을 들게 하고, 3경(자정쯤)에 북두성이 내리는 이슬을 받아 모아서 그것을 천장 또는 감로라고 불렀습니다. 이 물에다 아름다운 구슬 가루를 개어 조제하여 복용했습니다. 이로써 늙음을 되돌려 젊어질 수 있었습니다.”하니,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그대는 지금 인부들을 이끌고 한밤에라도 장안으로 가서 그 동인을 뜯어내서 방림원 안으로 옮겨 놓으시오.”했다.
钧领命,引一万人至长安,令周围搭起木架,上柏梁台去。不移时间,五千人连绳引索,旋环而上。那柏梁台高二十丈,铜柱圆十围。马钧教先拆铜人。多人并力拆下铜人来,只见铜人眼中潸然泪下。众皆大惊。忽然台边一阵狂风起处,飞砂走石,急若骤雨;一声响亮,就如天崩地裂:台倾柱倒,压死千余人。钧取铜人及金盘回洛阳,入见魏主,献上铜人、承露盘。魏主问曰:“铜柱安在?”钧奏曰:“柱重百万斤,不能运至。”睿令将铜柱打碎,运来洛阳,铸成两个铜人,号为翁仲,列于司马门外;又铸铜龙凤两个:龙高四丈,凤高三丈余,立在殿前。又于上林苑中,种奇花异木,蓄养珍禽怪兽。
마균이 명령을 받들어, 1만 명을 이끌고 장안에 이르러, 주위에 나무시렁을 쌓아서 백량대에 올라갔다. 순식간에 5천 명이 밧줄을 연결해서 끌고 주위를 에워싸며 올라갔다. 이 백량대의 높이는 스무 길이고, 구리 기둥의 둘레는 열 아름이었다. 마균이 동인을 먼저 떼어내라고 지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동인을 떼어내서 오는데 동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여러 사람이 모두 크게 놀랐다. 홀연히 백량대 주변에서 한바탕 미친 바람이 불고,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는 것이 마치 소나기가 퍼붓는 듯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이 커다란 소리가 울리더니, 백량대가 기울어지고 기둥이 쓰러져 1천여 명이 깔려 죽었다. 마균이 동인과 황금 쟁반을 가지고 낙양으로 돌아와서 위나라 군주를 뵙고 동인과 승로반을 헌상했다. 위나라 군주가 묻기를,“구리 기둥은 어디 있소?”하니, 마균이 아뢰기를,“기둥의 무게가 백만 근이라서 옮겨올 수 없었습니다.”했다. 조예가 영을 내려, 구리 기둥을 때려 부숴서 낙양으로 옮겨, 이를 녹여서 동인을 두 개 주조하여 옹중이라 일컫고, 사마문(황궁의 바깥문) 밖에 세우게 했다. 다시 구리로 용과 봉황을 주조하니, 용은 높이가 네 길, 봉황은 높이가 세 길이 넘었다. 함께 궁전 앞에 세웠다. 또 상림원에 기이한 꽃과 나무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기르게 했다.
少傅杨阜上表谏曰:“臣闻尧尚茅茨,而万国安居;禹卑宫室,而天下乐业;及至殷、周,或堂崇三尺,度以九筵耳。古之圣帝明王,未有极宫室之高丽,以凋敝百姓之财力者也。桀作璇室、象廊,纣为倾宫、鹿台,以丧其社稷;楚灵以筑章华而身受其祸;秦始皇作阿房而殃及其子,天下叛之,二世而灭。夫不度万民之力,以从耳目之欲,未有不亡者也。陛下当以尧、舜、禹、汤、文、武为法则,以桀、纣、楚、秦为深诫。而乃自暇自逸,惟宫台是饰,必有危亡之祸矣。君作元首,臣为股肱,存亡一体,得失同之。臣虽驽怯,敢忘诤臣之义?言不切至,不足以感寤陛下。谨叩棺沐浴,伏俟重诛。”
소부(보좌관) 양부가 표를 올려서 간하기를,“신이 듣자오니, 요임금은 초가에 살았으나 천하가 평안했습니다. 우임금은 초라한 궁실에 살았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생업을 즐겼습니다.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임금의 집이 3척이 더 높고, 넓이는 아홉 장 대자리 넓이였습니다. 옛날의 성왕들은 궁실을 높고 화려하게 지어서 백성의 재물과 힘을 피폐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걸왕이 옥돌로 궁실을 짓고 상아로 행랑을 꾸미고, 주왕이 경궁(기울어질 듯이 우뚝 솟은 궁궐)과 녹대를 짓더니, 마침내 나라를 잃었습니다. 초나라의 영왕이 장화대를 건축하더니 그 몸이 재앙을 입었습니다.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자 재앙이 그 아들에게 미치고, 천하가 배반하여 겨우 2세 만에 멸망했습니다. 무릇 만민의 수고를 헤아리지 않은 채 이목의 욕구를 따랐다가 망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마땅히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을 본받으시고, 걸, 주, 초, 진을 깊이 경계해야 하시거늘, 스스로 안일에 빠져 오로지 궁실을 장식한다면 반드시 멸망의 재앙을 입을 것입니다. 군주는 국가의 원수이고 신하들은 그 다리와 팔이라서 존망을 한 몸처럼 함께하고 득실을 같이합니다. 신이 비록 우둔하고 겁이 많지만, 감히 간쟁하는 신하의 의무를 잊겠습니까? 제 말씀이 적절하고 알맞지 않아, 폐하를 감동시켜 깨우치게 하기에 부족하오나, 삼가 관을 준비하고 목욕재계하여 폐하께서 내리실 극형을 엎드려 기다리겠습니다.”했다.
表上,睿不省,只催督马钧建造高台,安置铜人、承露盘。又降旨广选天下美女,入芳林园中。众官纷纷上表谏诤,睿俱不听。却说,曹睿之后毛氏,乃河内人也;先年睿为平原王时,最相恩爱;及即帝位,立为后;后睿因宠郭夫人,毛后失宠。郭夫人美而慧,睿甚嬖之,每日取乐,月余不出宫闼。是岁春三月,芳林园中百花争放,睿同郭夫人到园中赏玩饮酒。郭夫人曰:“何不请皇后同乐?”睿曰;“若彼在,朕涓滴不能下咽也。”
표를 올렸지만 조예는 반성하지 않았고, 마균을 독촉해서 높은 대를 건조해서 동인과 승로반을 안치하라고 했다. 또한 교지를 내려서 널리 천하의 미녀를 선발해서 방림원에 들이게 했다. 여러 관리가 잇달아 표를 올려 간쟁했지만 조예는 모두 듣지 않았다. 한편, 조예의 황후 모씨는 하내 사람이었다. 일찍이 조예가 평원왕이던 시절에 서로 매우 사랑했었다. (조예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모씨도) 황후로 책봉됐다. 그 뒤에 조예가 곽 부인을 총애하여, 모 황후는 총애를 잃었다. 곽 부인이 아름답고 총명하니 조예가 몹시 사랑하여 매일 쾌락을 찾아 한 달이 넘도록 그 궁궐을 나오지 않았다. 이해 봄 3월에 방림원에 온갖 꽃이 다퉈서 피어나자 조예가 곽 부인과 함께 방림원에 이르러 즐기며 술을 마셨다. 곽 부인이 말하기를,“어찌하여 황후를 불러서 함께 즐기지 않으십니까?”하니, 조예가 말하기를,“그 사람이 여기에 있으면 내가 (술을) 한 방울도 마실 수가 없소.”했다.
遂传谕宫娥,不许令毛后知道。毛后见睿月余不入正宫,是日引十余宫人,来翠花楼上消遣,只听的乐声嘹亮,乃问曰:“何处奏乐?”一宫官启曰:“乃圣上与郭夫人于御花园中赏花饮酒。”毛后闻之,心中烦恼,回宫安歇。次日,毛皇后乘小车出宫游玩,正迎见睿于曲廊之间,乃笑曰:“陛下昨游北园,其乐不浅也!”睿大怒,即命擒昨日侍奉诸人到,叱曰:“昨游北园,朕禁左右不许使毛后知道,何得又宣露!”喝令宫官将诸侍奉人尽斩之。毛后大惊,回车至宫,睿即降诏赐毛皇后死,立郭夫人为皇后。朝臣莫敢谏者。
곧 궁녀들에게 일러서, 모 황후가 알지 못하도록 했다. 모 황후는 조예가 한 달이 넘도록 정궁에 들지 않자, 이날 십여 명의 궁인을 이끌고 취화루 위에서 한가히 보내는데,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므로, 묻기를,“어디에서 음악을 연주하오?”하니, 한 환관이 아뢰기를,“임금님께서 곽 부인과 더불어 어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술을 마시고 계십니다.”했다. 모 황후가 이를 듣고 마음속으로 번뇌하다가 궁으로 돌아가 쉬었다. 다음날 모 황후가 작은 수레를 타고 궁을 나와서 놀러 가다가 마침 행랑을 도는 데서 조예와 마주쳐 웃으며 말하기를,“폐하께서 어제 북원에서 노시던데 그 즐거움이 결코 작지 않았겠지요!”하니, 조예가 크게 노하여, 어제 윗사람을 모셨던 사람들을 잡아들여, 꾸짖기를,“어제 북원에서 놀 때, 짐이 좌우에게 모 황후가 알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거늘, 어째서 또 누설했느냐!”하고, 환관에게 소리를 지르고 모셨던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모 황후가 크게 놀라, 수레를 타고 궁궐로 돌아오니, 조예가 즉시 교지를 내려 모 황후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고, 곽 부인을 황후로 삼았다. 조정의 신하들이 감히 간하는 자가 없었다.
忽一日,幽州刺史毋丘俭上表,报称辽东公孙渊造反,自号为燕王,改元绍汉元年,建宫殿,立官职,兴兵入寇,摇动北方。睿大惊,即聚文武官僚,商议起兵退渊之策。正是:才将土木劳中国,又见干戈起外方。
갑자기 어느날, 유주자사 관구검이 표를 올려 보고하기를, 요동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연왕이라 일컫고, 연호를 소한 원년으로 고치고, 궁전을 짓고 관직을 만들며 군사를 일으켜 침범하여 북방을 뒤흔든다고 했다. 조예가 크게 놀라서, 즉시 문무 관료를 불러 모아 군사를 일으켜 공손연을 물리칠 대책을 상의했다. 이야말로, 토목 공사로 중국을 괴롭히는데, 국경 밖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구나.
未知何以御之,且看下文分解。
어떻게 막아낼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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