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휴가는 어디서 어떻게? Date 2013. 7. 21
Text Lk 10,38-42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요즘 나오는 T.V 광고 멘트 중에 ‘쉼표도 음악의 일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보를 연주할 때에 다른 음표들과 마찬가지로 쉼표도 잘 지켜야 그 연주가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우리 국민들은 쉰다는 것을 사치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쉼과 휴가에 대하여 왜곡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 읽은 성구를 통하여 본격적인 휴가철과 7월의 주제인 평강에 맞추어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오늘 성경본문에는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한 언니 마르다와 몇 가지 혹은 한 가지에 집중하여 있는 동생 마르다가 나옵니다. 언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는데 혼자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동생도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도와주라는 말씀을 하시는 대신 마르다에게 염려를 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근심 다이어트를 하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41-42)라고 하셨습니다. 근심 다이어트를 하라는 말은 일 다이어트도 하라는 말입니다. 얼마만큼 다이어트를 하면 될까요? 굳이 동생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다이어트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눅14,31-32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길 자신이 없으면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며, 지저분하고 징그럽더라도 칼을 뽑아들고 무모한 싸움을 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화친을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감당도 못할 너무 많은 짐을 지고서 감당도 못할 염려를 하고 살고 있습니다. 무사안일하게 살라는 말씀으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세상을 외면하고 모르는 체 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하고 나머지는 주님을 믿고 주님께 맡기라는 얘기입니다. 괜히 일 많다고 불평하지 말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남을 원망하지도 말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염려 다이어트’이고 ‘근심 다이어트’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평강은 이 ‘일 다이어트’와 ‘염려 다이어트’로부터 시작됩니다. 능력 이상의 일들은 최선을 다하되 그 일 자체와 결과는 다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하여 주님의 뜻으로 알고 겸손히 순종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했고, 예수님께 가서 그 다음에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이라는 예수님의 멍에를 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최선 이후의 결과에 대하여 예수님께 배우는 온유와 겸손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데 되나요?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멘.
여러분, 휴가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의 휴가는 근심 걱정 다이어트가 아니라 되레 근심 걱정거리를 더 추가하고 있습니다. 새 힘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남아 있던 힘마저 소진하게 합니다. ‘휴가=노는 것=비생산적 소비’라는 잘못된 인식은 퇴폐성 행락풍속도를 만들어놓았습니다. 퇴폐성 행락은 휴가 기간뿐만 아니라 휴가 후에 심각한 후유증까지 만들어 삶을 더욱 어지럽게 만듭니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을 권태롭고 피로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이를 털어내고 심기일전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요. 이 기회가 바로 휴가입니다. 휴가 혹은 쉼이란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상의 분주함을 떠나 근심 걱정을 다이어트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저기 붙어있던 삶의 군더더기들을 털어내고 성도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재정비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휴가란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득하게 충전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많은 일로 염려하던 것 확실히 다이어트 하시어서 근심 대신 평강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염려 다이어트’ 제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다음 말씀입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칫 언니의 궁시렁 대는 소리에 마음이 흐트러질 수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며 마리아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막아주셨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바른 선택을 하고 있다며 말씀 듣는 일에 방해를 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혹시 이 말씀을 ‘집안 살림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 교회생활만 잘 하자.’ ‘바쁜 것은 지 사정이고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런 하찮은 일로 사역에 지장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뭐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신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25-37절)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 애기가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적 사역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도 만난 이웃을 외면한 제사장, 레위인보다 신분은 천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옳게 여기시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안일은 가치 없는 일이고 말씀 듣는 일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오늘 읽은 성경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도리어 ‘때’에 관한 말씀입니다. 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말씀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할 때는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시험공부 한답시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 영적 생활을 한답시고 성경을 읽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생각은 온통 집에 가 있다고 합니다. 집에 두고 온 빨래 걱정, 밥 걱정, 청소 걱정...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런 사람은 집에서 또 집안일을 하면서 교회 일 핑계로 살림을 제대로 살지 않을지도 모르죠. 괜히 하나님 욕만 먹이고 교회 욕만 먹이는 잘못을 하지 말자구요.
어떤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 사업에 실패해서 쓰디쓴 고통의 시절을 맛보았었기 때문에, 늘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거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 이래서는 안되겠는데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매일 걱정과 근심을 하느라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는 말씀을 읽다가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날마다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지내기보다는 일주일 중 하루를 ‘걱정하는 날’로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목요일을 ‘걱정하는 날’로 정하고 ‘목요일 걱정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걱정이 생길 때마다 메모지에 적어서 걱정 상자에 집어넣고 목요일까지 걱정을 미루었습니다. 목요일에는 상자를 개방하여 그간 넣어둔 걱정거리들을 꺼내어 정리도 하고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주일 하다가 그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메모지에 기입하여 상자에 넣을 당시에는 큰 격정거리로 여겨졌던 것이 나중에 꺼내볼 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바뀌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쓸 데 없는 염려로 시간을 낭비했구나.’
마침내 그는 염려로부터 해방되어 평강을 누리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전에도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휴가제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입니다. 하루의 1/3은 잠자는 휴가로, 일주일 중 하루를 안식일 휴가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등 일 년에 몇 차례씩 특별 휴가로, 50년에 한 번씩은 희년이라는 휴가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에게 쉴 때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그 모든 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들을 ‘핏팅’ 하는 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십시오. 휴가지 중에 가장 좋은 휴가지는 마리아가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던 주님의 발치입니다.
금년 휴가철에 어디로 가시든 그곳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는 주님의 발치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4. 한 번 더 새김질 합니다. ‘내 휴가지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주님의 발치이다.’
마지막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는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르다에게는 마리아에게서 이 좋은 선택을 빼앗지 말라는 말씀이셨고, 마리아에게는 네 선택은 가장 훌륭한 선택이니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고 굳게 지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여기서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씀하신 ‘좋은 편’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발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염려 다이어트, 근심 다이어트를 하고, 평강이라는 새 힘과 은혜를 얻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니, 아무에게도, 무슨 이유로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인 줄로 믿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평강을 누리고 휴가를 즐기는 것을 사치라 여깁니다. 또한 퇴폐적 행락이나 유흥을 휴가와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돈 핑계 대고 일을 핑계 삼아 쉴 줄을 모릅니다. 또한 기껏 맘먹고 쉰다고 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주님의 발치가 아니어서 되레 상처를 키우고 걱정거리를 키우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립니다. 쉼표도 악보의 일부입니다. 쉬라고 할 때 쉬는 것도 음악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여유가 있어 휴가를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든, 아니면 그저 뒷동산 계곡에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던,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며 피곤해진 심령에 쉼을 갖게 하여 평강으로 채우는 것은 꼭 하셔야 할 일입니다.
나와 내 가정, 가족들이 세상의 포로인 채로 살지 않고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하여 주는 힘과 은혜와 평강을 채울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