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보스턴(March 17, 1676 - May 20, 1732)
보스톤은 신학과 언어 공부를 계속하여, 고전어와 불어 화란어를 마스터하였다. 그는 자주
Dutch Annotations로 알려진 the Statenbijbel을 참고하였다. 이 책은 화란 의회의 요
청으로 번역된 화란어 성경인데 관주와 주석과 유용한 해설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내 교회당 건물이 비좁게 되었는데, 특별히 성찬식이 있는 주일에는 더더욱 그랬다. 7년
이 지나는 동안 심프린 교구에서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 가정이 단 한 가정도 없게 되었
다……….
보스톤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15에 어머니를 여의고, 10년후에는 아버지 마저 여
의게 되었다. 심프린에 있는 동안, 보스톤은 케더린 브라운과 결혼하였는데, 보스톤은 그녀에
게서 “은혜의 불씨”를 보았다고 적고 있다. 비록 그의 아내가 우울증과 정신착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결혼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겼다. 1720년부터 그녀는 따
로 갖혀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이 갖혀 있는 곳을 “the inner prison”이라 불렀다.
그녀는 수년, 수개월을 안식이 없는 괴로움으로 보내야만 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그리
고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해 사단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보스톤은 10명의 자녀가운
데 6명의 자녀를 땅에 묻어야 했다. 보스톤 자신의 건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시 고통과
병약함과 더불어 자주 싸워야 했다.
보스톤은 이런 시련들을 자신의 하늘 아버지께 받는 훈련이라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이렇게 묘사한다, “소중한 여인, 그러므로 내가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기품있고, 아
름답고, 아담한 인격의 소유자. 진실로 경건하고, 주님을 경외하며, 우리가 항상 당하는 어려
움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잘 견뎌낸다.” 그는 에딘버에 사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했
다, “고통을 언약의 연단으로 보는 것은 참 감미롭다. 그렇다. 고통은 언약으로 말미암은 연
단이다. 성부의 자녀에게 고통은 언약의 연단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고통은 치료하는 것이다. 고통은 하나님이 그 고통을 통해 바라시는 수 많은 은혜로운 목적
들로 영롱하게 빛난다. 그리고 그 고통의 끝자락에 이른 사람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된
다….보스톤은 생각하기를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은 “내 마음이 천상에
더 걸맞게 되고, 세상을 더욱 더 멸시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 주의 깊게 동행하며, 여러 어려
움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더욱 더 굳건해 지는 것들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출처 : 기독교 고전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