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농악 이준용 선생과 소리꾼들
최병영
김제에서 호남 우도 농악 무형문화재인 이준용 선생의 팔순잔치가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선생의 이수자와 제자들이 내려가 푸짐하게 한 판 놀기 위해 풍물연습 판을 벌였다. 오채질 굿으로 판놀음에 들어간 우도 농악이 굿거리 풍류와 양산도놀이로 넘어가며 더욱 질펀하게 펼쳐진다. 진형을 짜가는 쇠잡이의 다양한 부포놀이가 현란하고 소고패들의 하얀 상모초리도 신명나게 공중을 휘돈다. 장구잡이들과 북 치배들이 쓴 고깔은 장식 없이 소박하여 정갈하고 깔끔하다. 양반과 포수와 아낙으로 분장한 잡색들이 굿판을 누비며 흥취를 북돋운다. 소고패들이 일제히 연풍대놀이와 자반뒤집기로 돌아대며 굿판은 최고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풍물 판을 아우르는 징소리도 더할 수 없이 그윽해진다.
내가 우도 농악의 대표적인 인물인 이준용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실로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된 추위가 묽어지던 작년 겨울 끝물 무렵에 풍물을 같이 하는 지인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다. 서울에서 김제 농악 전수회를 가지려 하는데 마땅한 연습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잡은 전수 날짜는 바짝 다가오는데도 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시작된 풍물 전수에 나선 이준용 선생은 일견 평범한 촌로의 모습 그대로였다. 소박하고 겸허하며 친절하기에 마주하기가 참으로 편안했다. 그러나 노익장인 그에게는 풍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 연세에 걸맞지 않게 줄담배를 피우다가도 연희패들의 가락이나 동작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냉큼 달려가 바로잡곤 하였다. 선생은 운신이 자유롭지 않을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천성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의 전수회에는 우도 풍물로 평생 잔뼈가 굵어온 이수남 선생이 전라도에서 상경하여 보조지도를 맡아주었다.
일주일로 예정된 전수회가 끝나던 마지막 날에 평가회를 겸한 뒤풀이 모임이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는 교수진을 비롯하여 그동안 고생을 함께해온 전수자들과 이준용 선생의 자제인 이부산 선생 내외도 자리를 같이 했다. 중요 무형문화재인 이부산 선생은 진주 삼천포 농악의 전수 조교로 현재 경기도립 국악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의 부인인 김연자 선생도 타고난 소리꾼으로서 국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자리가 무르익자 예정에 없이 소리판이 엮어진다. 소리꾼 김연자 선생이 중모리 가락인 흥타령을 육자배기로 풀어놓는다. 이준용 선생은 며느리의 편안한 소리판을 위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애간장이 끊어지듯이 애절하면서도 구슬픈 소리가 몇 고개를 넘어가다 숨이 차자 뒷소리를 풍물 조교 이수남 선생이 받아 넘긴다. 흥타령은 두 소리꾼이 노랫말을 주고받으며 이끌자 더욱 깊고 푸짐한 속살을 펼쳐놓는다.
흥타령은 참으로 지독히도 마음이 짠한 소리이다. 너무도 구슬프기에 깊은 심장 속에 쌓인 한을 올올이 풀어내는 몸부림인 듯도 하고, 폐부 속 창자 마디마디를 옭아내는 피맺힌 절규인 듯도 하다. 태형 맞고 죽어가는 지아비 부여잡고 통곡하는 아낙의 처절한 울부짖음인 듯도 하고, 저승으로 떠난 임을 잊지 못해 애절하게 부르는 망혼가인 듯도 하다. 자식을 북망산으로 먼저 보내며 체념하고 부르는 씻김굿 소리인 듯도 하고,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세상에 진력이 난 신세한탄인 듯도 하다. 흥타령은 곡조와 사연이 너무도 애절하고 구슬프기에 보통의 정서로는 끝까지 들어 넘길 재간이 없다.
이토록 한없이 슬프고 청승맞은 소리를 일컬어 흥타령이라 부르는 역설적인 발상이 놀랍다. 흥타령은 너무도 처량하고 애절하기에 예전 사람들은 자녀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걸 금지했다고 한다. 흥타령을 부르다 보면 소리꾼의 팔자도 그렇게 처량하고 슬픈 신세로 변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흥타령은 소리의 진폭에 잠겨있기에는 사연과 울림의 진동이 너무나도 진한 노래이다.
육자배기는 원래 남도 노래의 대표적인 장단으로 굴곡이 많고 높낮이가 심한 곡조로 되어 있다. 보통 소리꾼으로서는 곡조와 사연을 온전히 소화해 내기가 무척 어려운 노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소리꾼은 높낮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소리를 잘도 다스려 펼쳐놓는다. 두 소리꾼의 소리는 줄곧 끊어질 듯이 가느다랗게 이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굵어지기를 반복한다.
아이고 대고 허허 흥- 성화가 났네. 헤-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가니 오난 백발을 어이 할거나.
아이고 대고 허허 나- 성화가 났네. 헤- <중략>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나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얼할거나. 헤- <중략>
잊어야 헐 그 사람을 왜 이다지 못 잊어 삭발을 허고 음- 승이 되어
님이여 내 님이여 우리 님아 목을 놓아 불러를 봐도
우리 님은 대답이 없고 목탁소리만 들려오네. 헤- <중략>
살다살다 못 살면은 어- 첩첩산중 들어가
삼고곡심 무인처에 목탁소리 벗을 삼고
수석으로 우를 삼어 한평생을 그곳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리라. 헤- <중략>
바람 불고 눈비 내리는 해변 가에 엄마를 잃어버린
저 갈매기는 무변대해 끝없는 소리로
엄마엄마 부르건만 엄마는 간 곳 없고 파도만 치네. 헤-
‘어매! 되야서 못 허것네.’
한동안 높은 청을 다스리던 김연자 선생이 잠시 소리를 접고 목을 축인다. 곁에서 소리에 깊이 심취되어 있던 이정미 씨가 연신 눈물을 훔쳐낸다. 이정미 씨는 연습 말미에 춘천에서 달려와 합세한 징잡이 여인으로 예쁘기도 하려니와 연풍대 놀이의 곡선이 버선코처럼 아름다운 풍물꾼이다. 소리를 마친 이수남 선생이 그녀의 눈물을 보고 정색을 하며 한마디 던진다.
‘오사헐 년, 니가 서방이 웁냐, 애새끼가 웁냐. 울긴 왜 울어!’
어려서부터 풍물과 소리를 알고 그 세계에서 세월을 빚으며 순수하게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걸쭉한 입담에 서로간의 정겨움이 그득하다. 흥타령으로 인하여 뒤풀이 자리가 숙연해지자 김연자 선생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상주 모심기’ 노래를 풀어놓는다. 모두가 어우러져 흥겹게 중모리 노랫가락을 부를 때 문밖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다. 도시 아파트 숲 사이로 지는 저녁 해가 선지처럼 붉어 보인다.
- 이 글이 마무리될 즈음 이수남 선생의 암 투병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깊어진 병환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까지 신명나게 풍물 판을 휘돌아대던 고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선생이 병상생활을 이겨내고 다시 그녀의 무대인 풍물 판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강서문학. 2006 (통권 13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