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준 총괄국장
남해가 문화의 불모(不毛)시절 남해문화원장과 신문.방송등 30여년 간의 오랜 언론생활을 접고 초야에 묻혀 야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남해읍 아산리 봉전마을 장대우씨(75)가 올해 남해군 문화대상자로 추대.추천하기 위해 제언해 본다.
장 전 문화원장은 문화대상 수장자로 진작 선정 됐었어야 할 자격요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자인데 여타 각급기관들이 추천을 외면하고 다른 추천 대상자을 선정하는 바람에 제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특히 장 전 원장은 언론생활을 통해서나 지역사회 개발에서도 크게 기여를 했을뿐 아니라, 남해문화발전사업 활동에도 공로가 많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 지난 1974년 3월10일 제3대 사단법인 남해문화원장에 취임(전국최연소문화원장)해 남달리 일찍이 지방문예진흥사업과 내고장 지방 문화창달사업 발전 및 전통문화를 창출 발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바쳐 일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로 알려져 있을뿐 아니라, 문화사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공로자로 인정 받고 있다. 당시 전국에서 최연소(34세) 나이로 문화원장에 선임되면서 군민들의 문화 향유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
장 전 원장은 지난 재임기간 5년여 동안 하고 자하는 사업들을 위해 막대한 사비까지 들여가면서 사업을 적극적 추진해 지방 문화사업을 이끌어 냈으며, 이들 사업들로 하여금 또한 큰 성과로 많은 실적을 올려 전국 우수 문화원에 발탁되는 성과를 올렸다.
장 전 원장은 꿈과 포부도 많았으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국, 도 ,군 비등을 한푼도 지원 받지 못한채 오로지 원장의 자부담만으로 사업을 집행 해야 했기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당시 초창기라 지, 자체들의 예산을 받지 못하고 자부담만으로 사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열악을 감수하고 남해문화원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각분과위 및 기능 보강을 위한 문화요원 50여 명을 결성해 조직한데 이어 남해향토 문화연구회을 최초로 개설했다.
이에따라 초대회장에 이청기씨를 추대 하고 또한 76년11월8일 남해문화진흥회를 창립,(각향후회별로) 초대회장에 故 최치환 국회의원을 추대 하는등 문화교류를 위한 갖가지 지방문화사업을 적극적 추진해 왔다,
장 전 원장은 젊음의 혈기로 시작했기에 쥐꼬리 보수 조차 받지 않고 자부담을 들여 가면서 지방문화사업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만 하더리도 남해는 문화의 불모지였다. 마치 황무지을 개척하듯이 해 홍보와 계몽에 힘써 점차적 문화를 깨우치게 해 오늘 날의 남해군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장본인이다.
문화원장 재직시 주요특수사업 실적을 살펴보면 1970년초에 정부의 인구정책에 따라 가족계획(산아제한) 사업을 추진, 군민 궐기대회는 전국에서도 우수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어 각면별 계몽및 강연회실시에 이어 거군적 촉진대회로 큰성과를 올린기도 했다.
1974년 6월에는 사라져가는 전통농악계승 발전을 위한 전수자 발굴을시작해 각면별 기능우수자들을 선발해 당해10월20일에는 제1회 남해향토민속 농악경연 각면별대항 대회를 개최했으며, 11월15일에는 진주개천예술제에 남해농악을 출전시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해 10월 26일에는 경상남도 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해 농악부문 우수상을 수상 한바 있다. 이를 계기로1975년 10월12일에도 제2회 남해향토민속농악경연대회 각 읍면별 대항을 개최하는등 매년 년중 행사로 실시해온것을 비롯해 같은해 11월 20 전국민속 경연데회에 남해농악을 출전시켜 최우수 수상을 차지 하는등 연속 3회 에 걸쳐 남해군 위상을 전국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게다가 남해군은 도서지역으로 어촌 상주바다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도 해수욕장 구실을 제대로 못해오던 그 자리에 전국 노래자랑 공개방송 등을 유치해 임해공개방송을 시작했던 것이 오늘에 전국 상주해수욕장으로 관광객이 피서철에 구름처럶 몰려 오고 있다,
특히 전국에 남해군 명소를 알리기 위해 제1회 부터 3회에 이르기까지 상주해수욕장 개장을 위한 납량특집 임해공개방송 (노래자랑)을 개최, 개인 및 각 읍면별 직장대항(방주연 가수 등 5명과 이기동 코메디 사회)노래자랑 열기도 했다.
이날 상주해수욕장에는 남해 사상 최초로 5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대혼잡을 이뤄 교통경찰들이 진땀을 빼기도 했었다. 지난2009년 7월 9일개장시에는 첫 공개방송으로부터 시작된 전국노래자랑(해변가요제)개최와 함께 남해관광명소알리기 를 위한 연속3회에 걸친 특집방송으로 상주 해수욕장이 비약적 발전에 공로가 큰 장대우씨는 상주 번영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또 1976년 5월에는 남해 사상최초로 발행된 '내고장의 어제와 오늘'이란 남해 향토발전사(南海 鄕土發展史)를 저술해 편찬 하기도 했으며, 이와 같은 남해문화원은 설립후 처음으로 1976년 10월 20일 전국 문화연 연합회 산하 심사 평가 결과 전국문화원 연합회중『우수문화원』으로 선정돼 제9회 문화의 날을 맞아 이은상 문화원연합회장의 표창장까지 수여 받는 등 큰 실적을 올린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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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우 전 남해문화원장
1977년 1월 17일에는 범국민적 새마을운동 사업 추진과 76년 직능새마을운동우수문화원으로 선정 되어 조병규 경남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수상 했다. 이같은 열과 성을 다해 문화사업을 했었기에 남해가 전국에 알려지고 우수지방문화원으로 선정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또, 재직시 불우 이웃돕기(소맥분과 라면등으로)년중 행사의 하나로 계속 추진해 왔을뿐 아니라, 2008년 자서전 출판 기념식에서도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부모 없는결손가정 아이들을 돕고자 성금 100만 원을 아동협의회에 기탁했을뿐 아니라 재임 동안 어렵게 사는 남해읍 유림동 생활보호대상자 16세대를 선정. 불우이웃돕기를 해 주위를 감동시켰다.
그후 퇴임후에는 남해를 위한 저서 발간 만도 3권의 책을 발행했다. '내고장의 어제와 오늘', '남해 향토발전사'를 사상처음으로 발행한 것을 비롯해서 2008년 '되돌아본 남해100년사'를 집필 발간해 출판기념회를 대성황리에 가지면서 또 한차레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뿐만아니라, 2010년 11월 '세월속에 묻어가는 삶'이란 회고록을 남기기도 했다. 장 전 원장은 젊은 시절 KBS, MBC, 경남일보, 부산매일, 등 30여년 간의 언론생활과 5년간의 남해문화원장을 역임하는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지방지 및 일간지 등에도 경남논단과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는 '남해의 인간 보물' 이요, 숨은 공로자 및 인간승리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장대우』씨다. 그리고, 인물 탐방편 등이 특집으로 보도되기도 했으며, 2016년 6월에는 현대 한국인물사(한국민족정신문회진흥회 발행)에도 크게 게제 되는 등 군내 각 기관 및 사회단처로부터 35회 걸쳐 표창 및 공로패와 감사패 등을 받는 지역사회 훌륭한 귀감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필자는 남해를 위해 수십년간 헌신 봉공한 사람을 발탁하지 않고 외면해 온 것은 군민의 한 사람으로 참 부끄럽게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장 원장을 문화상 수상자 추천에 군민 여러분들께서 힘을 모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