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
▒ 경북 문경시 산북면, 문경읍
▒ 문경 말구리재~하늘재
▒ 신라 향기 짙은 하늘로 가는길
산북면 대하리에 이른 일행은 이제 33번 지방도를 버리고 김룡사 표지판을 좇아간다. 햇살을 받은 벼포기들이 더욱 싱싱해 보인다. "올해 농사가 아주 잘 됐네요" 문경시청 김규천씨의 애기 속에 추수의 넉넉함이 예견된다. 이번 엣길은 운달산 북쪽 가좌리와 문경읍의 경게에 있는 말구리재다.
"소금 실은 말이 넘어져 굴렀다"는 소박한 이름의 내력, 또 가좌리에 이르는 길에 대가람 김룡사와 대승사가 인접해있다는 것 외에 기실 말구재가 지닌 이렇다할 만한 내력이나 자취는 전무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취재 대상으로 정한 것은 순전히 하늘재와의 연관 때문이었다. 본명이 계립령인 하늘재는 가는 길이 어디 여우목 뿐인가. 고개를 서남쪽으로 돌리니 그곳에 또 한 길이 있다. 말구리재다. 게다가 그곳은 다행히 포장을 면한 채 옛길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김룡사가 가까워지는 동안 말구리재 역시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하늘재를 넘는 사람들이 적잖이 많이 다녔을 거란 생각에 미친다. 충주땅 미륵리 미륵사지는 물론 고개 남쪽 관음리에도 불교문화의 흔적이 적잖은데... 말구리재 언저리에만도 신라때 창건된 대가람 김룡사가 들어앉아 있지 않은가. 김룡사는 말구리재 가는 길에서 살짝 비켜난 골짜기에 있으나 일행은 기꺼이 이 오래된 신라고찰부터 들러보기로 한다.
김룡사는 몇 넌전 경험한, 고즈넉한 사칠의 첫인상과는 딴판이었다. 절간 입구에서부터 신도들과 이들이 타고온 차량으로 복닥거렸고 한켠에선 화재후 재건축 불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하기 그지 없다. 마침 찾아간 날이 칠월칠석이어서다. 물려온 사람들을 반기기라도 하듯 때를 맞춰 화사하게 핀 백일홍과 상사화가 절간 곳곳을 적절히 장식해 주고 있어 그나마 눈길을 고정시키게 해준다.
가좌리로 드는 포장길은 엣길 산행 출발지인 가좌목에서 끝이 났다. 지형이 가재 목 같아 '가재목'으로도 불린 이 마을은 사람이 줄어든 지금도 40여 가구가 사는 제법 큰 동네. 마을에서는 요즘도 정월 초 이튿날에 동제를 지낸다. 가좌목은 윗동네 묵언터 주민들이 1948년 공비사건으로 모두 이 마을로 이주한 이후 말구리재로 가는 마지막 동네가 되었다.
말구리재는 가좌목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자 모습을 드러냈다. 939미터의 국사봉과 그와 높이가 엇비슷한 다른 봉우리가 마치 꽃잎을 벌린 듯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 푹 꺼진 곳에 말구리재가 들어앉은 것이 흡사 나팔꽃잎의 어느 한 부위를 연상시켰다. 가좌목에서 말구리재골을 끼고 한동안 지루한 뙤약볕길이 이어졌다. 계곡에서는 가족 나들이를 온 아이들의 물장구치는 장난기 어린 아이들의 외침이 간간이 들려온다.
원두막용으로 지은 듯 가건물 한채를 지나서부터 산길은 정적이다. 그런 정적을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매미가 일순간 깨놓는다. 매미소리는 뙤약볕에 무방비로 노출된 산길의 나름함과 한가로움을 더욱 부추긴다. 더위에 시달리는 곤혹스러움은 곧 수풀이 우거진 산길이 나타나 한숨 돌리고 그러나 땀을 많이 흘리는 정이호씨(60세 태백한마음산악회)는 그세 벌써 한 바가지를 채울 정도로 웃이 땀에 푹 젖었다. 권택경씨(40세)와 김규천씨를 말구리재로 먼저 떠나보낸 일행은 유유자적.
그런 김에 잎이 부채만한 크기로 자란 오동나무 뒤로 계곡물 소리가 들려온다. 김부래 기자와 정이호씨, 문경산악주인인 이주화씨(45세) 모두 그리로 달려가 계곡물에 손을 담근다. 김부래 기자와 정이호씨는 그새 틈을 타 등목으로 더위를 식힌다. 계곡에서 땀을 식힌 일행은 다시 상쾌한 기분이 되어 말구리재를 향해 쉬엄쉬엄 오른다. 무성하게 자라난 성하의 수풀이 앞을 가로막지만 엣길은 선명하다. 굽도는 엣길 가에 산복숭아가 빨갛게 익어 마음을 사로잡는데 그때 먼저 간 일행들의 에코가 들려온다. 벌써 말구리재에 당도한 것인가?
가좌목에서 겨우 1시간 10분 정도 밖에 오지 않았는데... 생각하며 고개에 올라서니 김규천씨 일행은 고갯마루 왼쪽 언덕 성황당 앞에서 빨리 오라 손짓한다. 먼저온 일행은 벌써 성황당에 술 한잔까지 올리고 쉬고 있다. 김규천씨가 고개의 병목을 통해 보이는 먼산을 가리킨다. 주흘산과 하늘재가 거기 있었다. 문경은 명산인 주흘산과 백두대간을 향해 구불거리며 올라간 하늘재 옛길의 실루엣이란!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말구리재에서 보이는 하늘재 엣길은 실로 '하늘로 가는 길'을 연상시킬 정도로 간절함을 전해준다. 주흘산 산세와 포암산의 어깨는 함게 맞댄 하늘재는 또 가장 처음 생긴 길이라는 출신에 걸맞을 말한 태초의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말구리재만한 하늘재 전망대가 있을까. 1평 면적의 슬레이트 지붕을 인 성황당에는 고개 너무 관음리의 도공들이 구워냈을 사기 술잔이 놓여 있다. 고개에서는 갈평리와 관음리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관음리와 갈평리에는 문경도자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요가 네 곳이나 있다. 관음리의 조선요, 뇌암요, 묵심도요와 갈평리의 관음요다. 눈길은 또 갈평리 일대 너머 하늘재로 가 닿는다.
과거 이곳 말구리재에 다다른 길손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넘어야 할 저 오랜 역사의 하늘재를 향해 무사와 행운을 기원하는 절을 올렸을 법하지 않을까 싶다. 성황당 그늘은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일행은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하늘재로 구름이 몰려오는 걸 먼빛으로 바라보며 걸음을 옮겨놓는다. 갈평리 하산길은 엣길다운 정취가 듬뿍 흘러넘쳤다.
무성히 자라난 잎을 단 나뭇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길을 가로막을 정도로 뻗어자랐고 정갱이 높이까지 자라난 초록 풀들이 엣길을 소복하게 뒤덮고 있다. 마을을 향해 내려올수록 시야는 더 넓어져 갈평마을과 대간이 걸쳐놓은 중부 내륙의 웅장한 산세가 눈안 가득 들어왔다. 바위산 포암산은 위압적인 풍채를 드러내며 백도대간의 위용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담배 등 작물이 심어진 산비탈이 나오고 갈산마을까지는 40분 남짓. 마을까지의 엣길은 하늘재를 향해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마치 담을 넘을 곳이 하늘재임을 쉼없이 일러주기라도 하는듯.
갈산에 도착할 즈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포장 옛길은 갈산마을을 눈앞에 두고 끝이 났다. 이제 영남권을 벗어나는 저 하늘재만 넘으면 한강 줄기에 가 닿는다. 엣 길손들은 이 대목에서 설렘과 동시에 긴 여정의 피곤함을 주체하기 힘들었을 법. 그들의 힘겨움이나 절박함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까. 하늘재 언저리 마을 이름 조차 관음리나 미륵리다. 하늘재가 불교 문화가 전해지는 길목임을 말해주는 증거를 하늘재 오르는 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갈평리의 오층석탑과 관음리 석불입상은 모두 불교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통일신라 때의 유물들이다. 비단 옛길은 사라지고 아스팔트 포장길이 들어섰지만 하늘재 가는 길은 여전히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그것은 엣길 주변에 간직된 오래된 향기 때문일 듯한데 이곳에서는 신라의 향기가 느껴진다.
눈물이 묻어나듯 빗방울이 차창문을 타고 흘러 내린다. 마침내 하늘재다. 백두대간 이정표가 즐비하고 고개 너머 미륵리로 가는 비포장 흙길이 소리없이 비에 젖어들고 있다. 하늘재 푯말은 비포장길 입구 숲 속에 홀로 웅크리고 서서 비에 젖고 있다. 비포장길을 따라 월익산 품으로 들면 하늘재의 비밀을 간직한 미륵리 석굴사원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지만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고개에 돌려 문경땅을 바라본다. 고개 하나가 눈 앞에 화악 다가선다. 말구리재가 봐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하늘재를 마주보고 있었다. <글 이정숙 기자 사진 김부래 기자>
말구리재 옛길 답사 여정은 짧다. 비포장 옛길인가좌리 가좌목~말구리재~갈평리 갈산 구간만 답사하면 6.8킬로미터. 그러나 말구리재가 문경새재보다 역사가 훨씬 앞선, 신라때부터 이용되던 하늘재와 이어지는 옛길임을 감안하면, 답사는 말구리재를 내려선 다음 포장이 된 하늘재까지 연결시켜봐야 이 길의 의미와 역사를 제대로 음미해볼 수 있다.
옛길 산행 출발자는 가좌리 포장이 끝나는 가좌목, 가좌목에서 말구리재 넘어 갈평리 갈산까지는 갈림길이 없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말구리재에 올라서면 성황당이 있고 이 성황당에서 보이는 주흘산과 백두대간의 산세, 백두대간을 넘는 구불구불하게 난 하늘재 옛길이 퍽 인상적이다. 비포장 옛길은 말구리재 넘어 갈산에서 끝난다. 길산에서 갈평리, 관음리 지나 하늘재까지는 포장길로 약 6킬로미터, 걷는 것도 좋다.
볼거리 옛길 산행후 불과 20여분 거리에 있는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가볼만하다. 육로교통의 길목이었던 새재는 제1,2,3관문을 비롯 문경새재박물관 등 수많은 문화유적을 만나볼 수 있는 문경제일의 관광지다. 또한 드라마 [왕건]의 촬영현장인 용수골이 주목받고 있다. 그외에도 경복제일경인 진남교반을 비롯 봉암사, 선유동계곡 등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재산인 문경에는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옛길 언저리에는 김룡사와 대승사를 비롯 갈평리와 관음리에서 관음리석불입상, 갈평리 오층석탑, 관음도요지 등지가 있다.
↑ 개념도문경시 점촌이 기점이다. 들머리 가좌리와 날머리 갈평리까지 점촌에서 시내버스(문경여객054-553-2230)가 다닌다. 점촌-가좌(들머리) 행은 흥덕동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07:15, 08:40, 10:25, 14:00, 16:30, 19:10 출발. 40분 걸린다. 가좌행 버스는 점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경 방면으로 10분 내려간 '한라유통'앞에서도 탈 수 있다.
점촌-갈평 행은 점촌에서 하루 약 20회 운행하며, 점촌을 출발해 문경과 갈평리를 거쳐 관음리가 종점이다. 갈평에서 나가는 버스 시각은 첫차 07:00 막차 18:35, 1시간 걸리고 요금은 2250원 승용차로는 점촌 읍내에서 예천 방면 34번 국도를 거쳐 반곡리에서 단양 방면 33번 지방도로 바꿔타고 가다가 대하리에서 김룡사 방면으로 꺾어 들어간다. 점촌과 김룡사 방면으로 꺾어 들어간다.
점촌과 김룡사 입구에 숙식할 곳이 많다. 점촌 시내에 그랜드파트(553-4565), 김룡사 입구에 김룡 송어장가든(553-2211), 운달식당(552-6644), 김천식당(552-6943), 통나무집가든(554-5570), 등. 갈평리에서 문경읍쪽으로 문경 새재 가는 길에 새재골(571-9980이상근)의 음식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5만분의 1 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