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하면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무리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었다지만 왜 아무런 죄 없는 양민들이 저렇게 참혹하게 죽어가야만 하고, 또 남은 가족은 어떻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쓰라린 가슴 부여안고 살아가야만 하는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60여 년 전이었으리라. 저학년이니까 옥수수가루로 쑨 죽을 배급받아 후루룩 마신 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읍내 완전동을 거쳐가야 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집집마다 전 굽는 냄새로 가득찼는데, 겨우 옥수수죽으로 뱃속을 채운 어린 나이에 전 굽는 냄새가 얼마나 식욕을 당겼을진 불문가지(不問可知)라...
귀가 후 어머니께 물어보니 오늘이 그 동네 제삿날이라 하신다. 뭔 곡절인가 다시 여쭈니, 1950년, 그러니까 몇 년 전의 늦은 10월 어느 날의 참상을 말씀해 주시는데...한 동네 30여 명의 장정들이 한날 한시에 모두 죽음으로 내몰렸단다. 그야말로 떼죽음이었단 거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을 타고 내려온 인민군들이 의성을 지나 갑티고개(甲嶺)를 넘으면 곧장 우리가 살았던 고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그들은 한밤중 집집을 이 잡듯 샅샅이 뒤져 장정들을 잡아가서는 신녕천 방죽 위에 일렬로 세워 총알 세례를 퍼부어댔단다. 그렇게 해서리 완전동의 가가호호는 한날 한시에 제삿상을 차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날이 밝아가면서 인민군들이 팔공산 깊숙이 달아나자 집안에서 숨 죽여 있던 여인들이 뛰쳐나와 "** 아부지요! 어디 계신기요?" 하고 울부짖었지만 보이는 건 싸늘하게 식은 그립디 그리운 서방님이었다네. 행여 임이 살아남기만 했어도 부처님, 칠성님 전에 남은 생 다 바쳐 공양하려 했었는데...
하지만 역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데...그렇게 온 국토와 국민들을 처참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던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이 땅의 백주대로를 활보하면서 그들의 최종 목적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공산주의자들은 위의 사진을 갖고 한 번 뒤틀어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 군경이 죄 없는 국민들을 정치범이나 보안사범으로 몰아 집단사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확대하여 제주 4.3사태, 여순반란사태와 결부시켜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무수히 살해한 게 겉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남한 정부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의 전 대통령 몇 명도 그렇게 생각했을 뿐 아니라 어제 사퇴한 민주당의 혁신위원장 내정자란 자도 그렇게 주장한 바 있다고들 하더만...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고 있는 족속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군 한 명 죽이기 위해 탄약이 몇 트럭분이 투입되지만 민간인은 탄약 한 발에 몇 명이 동시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전쟁을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켰기 때문에 애꿏은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도 쉬쉬하고 있는 건 아닌지...하튼 어떤 전쟁이든 결과적으로 볼 때 하릴없이 민간인들에게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