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는 카레를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보통 밥을 뜨고 그 위에 카레를 부어주지만 일부러 식판에 밥과 카레를 분리해서 줍니다. 밥에다 카레를 얹는 정도만이라도 스스로 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데, 여전히 준이는 밥 따로, 카레 속 고기나 감자를 반찬집어먹듯이 카레 따로, 그렇게 먹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준이의 전두엽 상태를 엿보게 합니다.
주어진 상황 그대로, 그게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도, 상황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대로 맞추는 단편적 태도는 태균이도 그랬습니다. 가령 식탁 위에 자신의 밥과 국이 놓여있는 위치가 먹기 불편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밥과 국의 위치를 바꾸거나 자신이 앉은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색한 자세로 그냥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근래에는 그런 불편함이 있으면 밥과 국 위치를 바꾸는 융통성이 생기기는 했지만 한동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활방식들이 많은 부분에서 보여지곤 했습니다. 보통 식사할 때 스스로 정해놓은 자리를 보면 정수기에서 태균이 자리가 가깝다보니 늘 태균이가 준이 물을 챙겨줍니다.
식사 시작할 때 물 한 컵뜨고 시작하니 첫 잔은 태균이가 의식적으로 챙겨주지만 자기도 식사에 열중하다보면 준이를 위한 다음 물서비스는 관심 밖이 될 수 밖에 없는데요, 준이가 식사 중에 물이 더 필요할 때, 물달라는 욕구표시를 언제 할지 참으로 궁금해서 10년 가까이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물마시고 싶은 욕구조차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기도 합니다.
보통 시각이 청각보다 우세한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제스츄어로 욕구표현을 하게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양육자의 팔을 끌고 원하는 장소로 이끈다든지, 포인팅언어를 배운 경우에는 포인팅을 한다든지 (언어습득 전에 일반 아이들은 포인팅의사소통 단계를 자연스럽게 거치게 됩니다) 하는 시각적 욕구표현을 하게 됩니다.
일반 아이들의 경우에도 양육자의 손을 끌어 원하는 장소로 데려가거나 포인팅을 하거나 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언어기능이 생기면서는 자신의 욕구를 말이라는 편리한 수단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가장 빨리 습득하게 되는 욕구를 반영한 말들은 '물' '밥' '까까(과자)' 등일 겁니다.
시각정보처리라는 큰 감각문제로 가진 경우에는 자신의 욕구표현에의 방식조차 개발하지 않는 지독한 수동성과 무의지 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밥따로 카레따로 주어지면 그걸 혼합하는 기능조차 하지않을 정도의 수동성은 바로 눈문제에서 비롯됩니다.
감자칩이나 치킨, 돈가스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음식을 대할 때 태균이는 소스가 없으면 먹지않을 정도로, 그런 음식들의 부가적 조치를 잘 알고 소스를 스스로 열심히 챙깁니다. 준이는 스스로 소스를 찾거나 뿌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소스가 주어지면 시도하긴 하지만 거의 소스없이 먹곤 하는데 눈문제에서 비롯된, 주어진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성향이 음식의 부가적 맛을 길들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두 녀석 모두 샤워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도와주는 비율을 보면 여기서도 감각문제때문에 확 갈리게 됩니다. 태균이는 15%선이지만 준이는 거의 95%입니다. 씻는 과정도 그렇지만 다 씻기고나서 욕실 밖으로 내보내고나면 태균이는 알아서 수건가져다 물기닦고 스스로 속옷 다 챙겨서 입지만 정말 준이는 이게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수건이나 속옷 놓아둔 장소를 인지하지 못하며 스스로 물기닦을 의지도 없이 그대로 서있곤 합니다. '길버트 그레이프 Who's eating Gilbert Grape?'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 자폐증 동생 목욕시키다가 여자친구와의 약속이 생각나 다녀온다는 것이 밤을 새우는 데이트가 되어버렸는데, 뒤늦게 돌아와보니 동생은 그대로 욕탕에 있는 상태로 그저 오돌오돌 떨고 있고만 있는 융통성 제로상태...
시각정보처리에 문제비중이 큰 아이들이 빠지기 위한 무의지, 무욕구, 무관심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는 아기 때부터 열심히 밖으로 끌어내서 넓은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는 기회를 계속 연습시켜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기본적 욕구를 드러내는 욕구표출조차도 그게 뭔지 몰라 남들이 알아서 조치를 해주지 않으면 그냥 방관하는 태도는 커가면서 절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자기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서 관심, 보상체계를 결정짓는 거울뉴런은, 시각처리기능의 중추인 후두엽과 두엽정의 발달없이는 거울뉴런 활성화를 담당하는 전두엽 영역(Frontal MNS)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거울뉴런 형성의 핵심은 시각처리기능 바로 그 자체이며, 그 기능이 제대로 가동되어야 전두엽의 거울뉴런이 연동되어 가동되게 되어있습니다.
거울뉴런이 작동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 특히 일상생활의 수많은 규칙과 자조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설명하듯 남들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수행하고, 그 행동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의 조합이 바로 거울뉴런의 작동원리가 되는데, 그래서 거울뉴런은 공감능력과 흉내를 통한 생활기술구축, 상상경험(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되는 타인의 경험이나 감정 등)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거울뉴런이 작동하지 않는 준이인지라 타고난 학습능력이 있음에도 전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커갈수록 내재된 고집과 타고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니 세상에 나가 얻고 배우는 것도 점점 한계가 커지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언어가 되는 듯 해 보이지만 대화는 전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전두엽 발달을 위한 노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야만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태균이도 시각정보처리에 문제가 될을법한 행동들이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눈문제에서 풀려나게 된 것은 아주 갓난쟁이 시절부터 밖으로 자주 끌고다니며 너른 자연풍경에 자주자주 노출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울뉴런이 작동하지 못하는 준이는 결국 듣기나 언어발성 능력이 충분함에도 자신의 욕구를 밖으로 표현하는 기능은 아예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태균이처럼 청각처리기능이 극도로 취약한 경우 토마티스훈련을 통해 뒤늦게라도 상당부분 만회를 해나갈 수 있었지만, 시각처리기능이 아주 취약한 준이는 어렸을 때 외부노출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연령이 올라가도 만회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준이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수동적인 자세유지.
많은 자폐스펙트럼의 아이들이 시각정보처리라는 안구실행증에 빠져있고, 이는 전정감각 개선해 나가듯 어렸을 때 관심을 두면 상당부분 나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나아졌다는 행동특성이 바로 산만해지고 부산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일반 아이들 중에 태어나서 2~3세에 이르는 동안 산만하고 부산하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그건 건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자폐스펙트럼 기질이 있는데 행동반경이 정해져있고 굼뜨며 전혀 산만하지 않다면 이건 안구실행증 요인이 크다고 봐야합니다. 문제는 자폐스펙트럼의 경우 뒤늦게 산만한 단계가 오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산만해진 시기가 오면 더 본격적으로 몸을 가동시키는 훈련을 해야 될 때입니다.
이렇게 산만한 단계가 오면 주변에서 정신과약물 권유가 커지며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부모가 흔들리면 안됩니다. 꿋꿋하게 아이의 뇌단계를 읽고 이해하면서 좋아지는 신호로 여겨야만 합니다. 단 산만함을 덜어주기 위한 외부활동 노력에는 온 힘을 쏟아도 될 때라는 것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준이 아직도 절대 산만하지 않습니다. 평생 그럴지도 모릅니다. 산만을 포기한 대신 일상생활 속의 어떤 의지도, 모방도, 관심도 함께 포기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평생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극한 수동성의 원인을 꼭 헤아려야만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