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분노가 내 잠을 깨웠다.
우리 두 내외는 젊은 시절부터 변화를 싫어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태생적으로 발전하고는 먼 기질을 타고 났다. 시류를 따라갈 능력이 없고 따르려는 생각도 안한다.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만 해도 그렇다. 둘 다 2G폰을 쓴다
남편의 전화기는 검은색, 내 것은 흰색이다.
남편의 전화번호는 018-***-5892. 내 번호는 016-***-4520.
016이 없어지면서 내 번호는 010-****-4520이 되었다.
나는 전화를 걸고 받고, 문자도 주고받으니 2G폰만으로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장만하라는 권고를 많이 받았다. 세상이 넓어진다고 한다.
나이 먹으면 집에만 있게 마련인데 스마트폰을 쓰면 일단 심심치 않고 여러 사람과 소통이 용이하고,
무엇보다 정보를 많이 얻게 되어 상식이 풍부해 진다고 한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을 하나씩 덜어내야 할 나이에 뭘 더 알아야 하리요.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살아가는 데에 지나치게 넘친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일상화 되면서 길게 써내려가던 카페의 글들이 드물어지고
단답형의 짧은 글이 대세를 이루어 생각을 나누는 깊은 이야기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것이 아쉬워서 아무도 오지 않는 카페에 나는 긴 글을 올리곤 했다.
그런데 아들이 강제로 사서 안겼다. 2년이 된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무궁무진하다해도 나는 여전히 전처럼 전화, 카톡만 할 뿐이다.
몇 군데 단톡 방에 초대되어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그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그러면서 나도 점차 카페에 들어가서 느낌이나 사유의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엊그제, 모처럼 직계가족에 한해 5인 이상 거리두기가 해제 되었기에 집에서 아들 셋과 점심을 같이 했다.
함께 만나는 것이 몇 달 만이다. 막내가 새 스마트폰을 사왔다.
2년이면 교체해야 될 시기라고 한다.L회사 제품을 썼었는데 S사의 겔*시로 바꿔 주었다.
쓰는데 전혀 지장 없고 익숙한 것을 새것으로 바꾸니 낯 설어서, 기계치인 내가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낑낑대고 있는데 남편이 묻는다.
"왜 그래?"
"쓸데없이 막내가 스마트폰을 새로 바꿔주었지 뭐에요?"
"전화기를? 바꿔줬다고?" 남편의 기색이 달라지더니 식탁으로 가려다가 다시 침대로 올라간다
"기분 나빠서 나. 밥 안 먹어! 당신이 해주는 밥 안 먹고 이제 식당에서 사 먹을 거야"
이불을 뒤집어 쓴다.
짐작 되는 것이 있다.
남편이 입원하고 있는 동안 그리고 퇴원 후에도 전혀 핸드폰을 쓰지 않기에 구입한 가게를 찾아가서 해제를 했다.
매월 요금이 나오는 것이 아까운 마음에서 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복구하려니
같은 번호를 쓸 수 없다고, 다른 번호라야 개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010-****-5892로 정해서 쓰게 되었다.
남편의 검은 색 전화기가 산지가 오래 되어 낡았기에, 새것인 흰색 내 핸드폰에 새 번호를 입력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이때부터 남편은 자기 전화기가 없어진 것으로 인식되어 심기가 상해 있었던 것이다.
전화기도 달라지고 번호도 달라졌다. 자기는 이제 이 세상과 연락두절의 존재가 되었다는 허탈로
깊은 상처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내 실수 였다. 그까짓 15000원 정도의 전화비가 뭐라고 해제를 했단 말인가.
그리고 전화기가 조금 허름해졌다고 해서 그냥 둘 것을 왜 나의 흰색 전화로 바꾸고 검은 전화기를 버렸단 말인가.
후회를 했지만 별 도리가 없기에 전전긍긍하면서 지내오고 있는 참이다.
그런데 내 스마트폰을 아들이 새로 사오니 그 동안 6년 가까이 상실과 유감이었던 감정이 분노로 나타난 것이다.
"내가 잘못 했수다. 정말 내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면 안 되겠수?"
"절대 용서 못해. 용서 안 해...이제 당신이 해주는 밥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수발 든 것으로 용서하구료.."
"수발 들지 마. 누가 수발 들래? 싫어...절대 용서 안해. 뭐든지 지 맘대로야!! 당신은...”
병석에 누운 이래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은 이다.
아프면 짜증도 낸다는데 한결같이 조용하고 편안했다. 그래서 간병이 힘들지 않았다.
또 그래서 그의 가슴 밑바닥에 유감이나 불만, 섭섭함이 고여 있을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당연히 고마운 마음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망치가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아니 예리한 칼끝에 몸 어디가 베어지는 것 같았다.
병들어 누워 있는 환자는 돌보는 사람에게는 "을"의 위치가 된다.
입는 것, 씻는 것, 먹는 것, 모두 내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니 나는 어느새 "갑"으로 둔갑 한다.
내 위주다. 열심히 정성껏 해준다 해도 모두 내 본위다. 그러면서 어떤 시혜를 베풀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칭송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지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움을 받고 사는 쪽의 입장을 헤아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곤히 자고 있다. 애들은 식탁에서 이야기들을 나누며 안방에서 일어나는
부모의 이상기류를 짐작도 못하고,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 풀기에 여념이 없다.
"아버지는 속이 좀 불편하신 듯하구나. 나중에 잡숫겠다고 하신다.”
애들 앞에서는 언제나 내 목소리는 밝고 명랑하다.
"주무시니 인사하지 말고 그냥들 가거라.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
애들을 보냈다.
잠든 남편을 바라본다.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본다. 바라보는 마음에
자기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의 자괴감이 보인다.
방금 한 것은 자꾸 잊어버리는 그의 슬픔이 보인다.
몇 발자국 띄면 다리 힘이 풀리는 그의 좌절이 보인다.
온몸의 가려움 때문에 울부짖고 싶은 그의 고통이 보인다.
자기 때문에 수고 하는 늙은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 때문에
속으로 참고 있는 그의 울음이 보인다.
나는 처음으로 깨닫는다.
지금까지 전혀 남편의 입장이 되어 수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게 닥친 일이니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차원이었다는 것을.....
내 마음 편하자고, 내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하려고, 의지적으로 하는 것임을...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끝나는 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임을....
아내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남편의 참담함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을....
남편이 눈을 뜬다. 눈 뜬 노환의 남편에게 내가 말을 했다.
"내가 정말로 잘 못했수. 제발 나를 용서해 주기요"
" 뭘 용서해? 당신이 뭘 잘못했다고?" 좀 전의 화는 생각도 안 나는 말투다.
" 그 동안 화나게 해서 정말 정말 잘못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화가 났다니?!"
눈물이 흘렸다. 처음으로 내보인 그의 잠재된 분노가 내 잠을 깨웠다.
나에게 다른 마음의 수발을 가르쳐 주었다. 수발하는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도움 받는 쪽이 더 마음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무릇 간병은 간병 받는 쪽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틀.
나는 내 마음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이 되어 먼저 헤아리고 수발을 든다.
아니 들려고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