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곳을 입는 사람이 멋진 시대
미우라 아쓰시 지음, 뜨인돌
제4 소비사회는 한마디로 '물질적 풍요로움에서의 탈피'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물질적 풍요로움에서 벗어나 물건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공동체 지향 의식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개인주의에서 공유와 공동이용으로 넘어가는 시대인 셈이다.
또, 친환경 삶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 단순한 생활을 추구하는 흐름과 함께, 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고도 경제성장기 이전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친환경적 생활이 주류였는데,
다시 그런 유형의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예스러운 삶에 끌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도
제4 소비사회의 뚜렷한 특징이다. 22쪽
어쨌든 날마다 입을 옷을 고르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사람보다는
매일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사람이 오히려 세련되고, 멋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시대가 온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하자면,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이지 않는 사람이 물건에 얽매이는 사람보다
좀 더 세련되고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는 게 요즘 세태인 듯하다. 36쪽
자기 업무가 아니면 부서 전체가 난리가 나도 팔짱 끼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와 정반대로 능동적, 주체적으로 일하는 태도에 나는 '자기 관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55쪽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오토매틱이 싫다며 굳이 수동 스틱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역시 '자기 관여성'의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57쪽
자전거가 인기를 끄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자기 관여성이 높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 강렬한 느낌을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자전거는 색이나 모양도 다양하고 이런저런 옵션도 추가할 수 있다.
(...) 그런데 대다수 일본 기업은 자기 관여성을 즐길 수 없는 상품을 만드는 데 골몰한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스스로 새로운 요소를 더하지 않고
완성된 상품 그 자체로 사용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58쪽
요즘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도시 개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관여할 여지를 주지 않고 정부나 개발회사에서 계획한 대로 철거하고 개발을 밀어붙인다.
그 결과, 살기에는 편리하지만 어느 마을이나 비슷비슷하고 개성이 없는
무미건조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59쪽
'자기 관여성'
정교하게 세운 사회복지사의 모임에 참여해 사회복지사의 의도로 따라가는 지역 주민..
하지만, 이제 이런 모임에 끌리지 않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를 주어진대로 참여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그 어딘가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이웃 동아리 활동과 같은 주민 모임 방식이 이 책 내용대로마면
잘 가고 있음을 '자기 관여성'으로 확인해요.
-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사람이 멋진 시대 읽다'가 강민지 선생님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나는 인간관계를 가늠하는 척도로 '파(派)·족(族)·계(系)'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이 개념을 활용하면 '풍요로움=속세에 물든 정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를 정리하는 나만의 개념인 셈이다.
'파'는 강한 동료의식으로 구성원들을 결속한다. 정치인들의 계파도 그중 하나다.
'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파가 가능한 한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탈은 허용되지 않는다. (...)
'족'은 파에 비해 느슨하고, 자유로우며, 일시적이다.
(...) 히피들도 '히피족'이라 불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유행은 유행인지라 영원하지 않다.
동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언제든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과격 반체제 단체나 사이비 종교 집단에는 '족'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
'계'는 이보다 더 느슨한 인간관계로 서로 얽매이지 않는 담백한 관계다. (...)
'계'에는 특정한 구성원이 없다. 들어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나가는 사람을 잡지 않는다.
고정 멤버라는 개념도 없다. 122쪽.
그렇다면 현대의 가족은 '족'이라는 말이 합당할까?
어쩌면 '계'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는 논외로 치고, 고등학생 이상인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생활 시간이 달라진다.
육아를 마친 어머니가 일터로 복귀하면 온 가족이 밥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던 풍경도 사라진다.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각자의 방이 있고 주방과 욕실, 거실 등의 공간을 공유하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낯선 이들과 한 지붕 밑에 사는 셰어하우스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123쪽.
'낡은 공공'이란 관에서 하는 일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면 공무원들은 그 세금을 사용하여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 국민은 세금으로 행정서비스를 사는 셈이다.
반면, '새로운 공공'의 주체는 시민이다.
시민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든다.
각자의 생활에 충실히 하는 데 힘을 쏟을 뿐 아니라 시민 자신이 공공을 위해 일하고자 애쓴다. 228쪽
공간은 사람이 없어도 공간이다. 우주 공간에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장소는 다르다. 사람이 없으면 장소라고 부르지 않는다.
공간에 인간이 관여할 때 비로소 장소가 된다.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관여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주장이
요즘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 공통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31쪽
도쿄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 밥을 먹으면 쓸쓸할 뿐만 아니라 혼자 먹으려고 수고스럽게 요리하는 것도 귀찮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면 마음도 즐겁고 요리하는 일도 성가시지 않다.
게다가 반찬 가짓수도 늘어나 골고루 영양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
(...)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들)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외로움도 덜 수 있다.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어 식생활도 건강해진다.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