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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義 資料
天道敎의 神觀定立에 對하여 3.
부제; 천도교에는 신이 있는가?
발표자; 金 用 天(吾菴 東學思想 硏究所 運營管理者.)
(留意事項); 이 글은, 포덕 152(2011)년 5월 7일에 21C문화연구회가 주최한 교양강좌에서 70여분 동안 강의한 강의 자료입니다. 보조 설명 자료는, 여러 개의 도형설명과 해설 자료의 양이 10페이지가 넘어 게재를 생략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출판준비 중에 있는 ‘東學思想 硏究의 諸 問題’ 에 게재될 “한울님에 관한 연구” 중에서, 강연 주제에 맞도록 발췌하여 요약한 초록(抄錄)이므로, 원문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 주제에 맞게 정리된 자료와 註가 생략된 것이 많으며, 새로 발굴된 관련 자료들을 補完하여 修正한 완성된 연구논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용하거나 이 글을 바탕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려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오암 김 용천 심고.
포덕 152(201)년 5월 7일.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운영관리자. 김 용 천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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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내에서 일부 즉, 도올이 자신의 스승이라 하는 삼암 표영삼은 교단내의 글에서는 한울님이라 하지만, 밖에서의 강연에서는 하느님이라 하였기 때문에 도올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고 보아지고, 수운의 천서를 천주실의(天主實義; 천주교의 교리서이며 안내서. 서양에 소개된 책이름은 "De Deo Verax Disputatio"로 '신에 대한 참된 토론'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도올의 입장에선 기독교가 안고 있는 신의 호칭을 염두에 두고 주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최동희 교수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많을 글에서 ‘하느님’이라 기술하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한 동안 총부와 교인들 사이에서 비난하거나 소원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견해의 차이에 대하여 답이 될 수 있는 한울님과 동학운동의 관계를 명확하고 선명하게 평가하고 설명한 사람은 장영민(張泳敏; 충남대 사학과를 나와 상지대 교수로 있다.)이었다. 장영민은 그의 저서 ‘동학의 정치사회운동’에서 ‘더욱이 최제우 자신이 한울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동학을 창도하고 그 신비체험에 입각하여 교리를 만들었는데 한울님을 천주교에서 빌려온 개념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동학이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단지 天主라는용어 뿐이다. 따라서 천주교 영향설은, 극히 피상적인 견해로 보지 않을 수 없으며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천주란 용어 자체도 한문으로 쓴 ‘東經大全’에만 나오고 용담유사에서는 찾을 수 없다. (중략) 다시 말하여 天主는 한울님을 우리말에 맞는 漢字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上帝라는 개념을 쓰지 않은 이유는 유학적이며 중국적인 主宰者로서의개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주교의 영향을 애써 찾는다면, 절대적인 유일신관에 최제우가 깊은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지만, 우리 민족도 한울님을 최고신으로 경배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최제우의 한울님은 강력한 종교사상이 될 수 있었다.고(P. 82.의 주 64 중간에서 하단까지) 명쾌하게 지적하고 답을 제시했다. 장영민은 더 나아가 ‘동학이 이전의 다른 신앙운동과는 달리 우리나라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된 이유는 한울님이란 신앙의 구심체, 강력한 신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PP.82-83.)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연구 해석을 하고 있는 노길명은 ‘동학 천도교의 천주사상- 그리스도교 사상과의 관련성 여부를 중심으로’(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제 17차 심포지움 주제논문/1995. 6. 15.)에서 그동안 동학의 사상체계나 종교의례 속에는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에 대한 사실여부를 수운이 지도했던 동학시대를 바탕으로 규명하려 했다. 그리고 노길명은 기독교계의 천주와 수운의 천주는 다른 것이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려 서양의 영향설이나 ‘천주’란 용어의 차용설을 일축했다. 노길명이 1995년도의 한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주제발표문을 발췌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학계와 가톨릭교회의 일각에서는 동학이 서학에 대응하여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학의 사상체계나 종교의례 속에는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수운(水雲, 동학의 창시자 崔濟愚의 號, 1824~1864)이 사용한 천주(天主)를 비롯하여 그의 강령(降靈) 체험과 그가 받은 계시의 내용 등과 같은 교의적인 요소들과 함께, 동학의 일요일 예배〔侍日〕나 강론〔說敎〕과 찬송〔天德頌〕 그리고 교구(敎區)제도와 같은 의례와 교단 조직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동학이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동학 사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천주라는 신(神) 관념이 과연 서학의 천주 사상으로부터 연유되엇으며 그 성격 또한 그리스도교에서 정의하는 것과 유사한가의 여부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운의 신 개념은 분명치 않다. 또한 동학의 천주 개념이 수운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일관되어 온 것도 아니다. 종교의 교의체계나 의례구조가 주어진 여건의 변화와 종교의 제도화과정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면서 새롭게 체계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학의 천주 사상 역시 종교적 체험의 증대와 종단 내외의 여건 변화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수운은 그가 지기를 본체로 삼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강조하였는지, 아니면 천주를 모신다는 점에서 천주를 보편자로 삼았는지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수운의 천주 개념이 갖는 모호성은 그동안 여러 해석을 낳게 하였다. 일부에서는 수운이 말한 천주는 초월적 권능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에 의재(外在)하며 영향을 행사하는 인격신으로 해석하는 반면,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 내심(內心)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이면서 동시에 인간 외재의 객관적인 실재로서도 파악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또 다른 일각에서는 지기일원론적 범재신관(至氣一元論的 汎在神觀)과 결부해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운이 언급한 지기나 천주는 초월적 존재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생성 그 자체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삼라만상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천주의 조화로서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화생(化生)한 것이다. 이러한 점은 동학의 본주문(本呪文) 중 핵심이 되는 시천주조화정에서 시천주가 본체(本體)이고 조화정이 용(用)에 해당되고 있다는 점이나,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온 천하에 뚜렷한 것이다〔天主造化之跡 昭然于天下也〕라는 수운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신의 존재 양식이 곧 조화이며, 창조 행위와 창조 과정이 곧 신의 모습이고 신적 생명의 숨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운의 신관에 따르면, 만물은 천주의 좌로서 무위이화로 화생(化生)한 것이다. 이 조화는 창조의 의미와 진화의 의미를 아울러 가진다. 천주는 만물화행(萬物化生)의 내재적인 원인인 동시에 초월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천주는 인간에게 외재하는 초월적 신이 아니다. 그는 인간에게 외재(外在)하는 동시에 인간과 문물에게 내재(內在)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운의 신관은 일신관(一神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범신관(汎神觀)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의 신은 어떠한 신관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이다. 현재 천도교에서도 한울님은 인간의 어떠한 지식이나 인식이 지배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즉, 천주는 개념화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의 의식이나 관찰의 대상도 아니고, 오직 한 사람으로서 부모와 함께 모시고 섬겨야 할 거룩한 님이라는 것이다.시천주란 자신의 몸 속에 잇는 천주, 즉 한울님을 알아서 섬긴다는 뜻을 갖는다. 그가 교훈가(敎訓歌)에서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말가라고 읊은 것도 한울님은 밖에서 찾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곧 한울님의 마음임을 깨달아 공경하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수운은 시천주 사상을 깨달아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자신의 기운을 바르게 하면〔守心正氣〕 성인이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인이나 군자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학문적 탐구의 과정이 없이도 시천주 신앙을 통한 수심정기의 내면적 수양만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나 교화를 통한 무위이화가 아니라, 종교적 수행을 통한 무위이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교에서 말하는 군자론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운의 신관은 초월성과 내재성, 절대성과 상대성, 무궁성과 시간성, 물질과 정신, 전체와 개체, 신과 자연, 신과 인간 등 모든 대립을 일체(一體)로 귀일(歸一)시키고 포용하는 반대일치(反對一致)의 변증법적 논리를 보인다고도 할 수 잇다. 즉, 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면서도 인격적인 것이며, 초월적인 것이면서도 내재적인 것이고, 절대 무궁이면서도 동시에 변화 생성 과정의 상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운은 동학의 신앙 대상을 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주로 표현했지만, 그 의미는 그리스도교에서 듯하는 데우스(Deus)와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의 천주는 하늘〔天〕에다가 존칭〔主〕를 붙인 것일 뿐, 서학의 천주 개념을 차용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註 29; 수운은 서학의 영혼불멸설, 자연과 초자연이라는 이원론(二元論), 실재의 이중구조를 비판하고 있으며, 유신론적 인격신에 대한 인간의나-당신’〔I-You〕 관계, ‘주체-객체의 분단적 분립적 신인관계(神人關係)를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그가 사용하는 천주는 중국의 고대 제례에서 받들어졌다고 하는천주와도 전혀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고대 신앙에서 표현된천주는 세계를 나누어서 다스리는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 등 팔신(八神)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수운이 말하는천주‘는 우주만물을 무위이화(無爲而化)하는 보편적인 신인 것이다.
한편, 수운의 신관 속에는 한국인의 여러 전통적 신관이 포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논학문」에서 지기(至氣)를 무사불섭 무사불명(無事不涉 無事不命)의 보편자로서 혼원일기(混元一氣)라고 설명한 것으로 보아 그의 신관은 서경덕의 기철학(氣哲學) 이래의 기 철학류에 속하고, 무위이화라는 구절에서는 선교(仙敎)의 영향을 읽을 수 있으며, 그의 가르침 여러 곳에서 영부(靈符)와 강령(降靈) 체험 그리고 주술 효험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의 신관 속에는 한국인의 전통적 신관인 ‘하느님개념과 함께 여러 동양 종교와 한국의 민간 신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崔時亨의 號 1827~1898)에 이르러 상당한 변화를 나타내게 된다. 그는 시천주 신앙을 철저히 세속화시켜, 만물에 천이 내재하며 만물이 곧 ‘천’이라는 범신론적 범천론(汎天論)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신관은 ‘물물천 사사천(物物天 事事天)이라는 그의 언명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설(三敬說)을 강조함으로써 경의 대상한울님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에까지 확대하였다.사람을 섬기되 한울님같이 하라〔事人如天〕는 가르침이나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라도 모두 시천주자(侍天主者)라는 설법, 그리고 인간이 먹는 음식도 시천주니 인간이 식사를 하는 것은 시천주가 천을 먹는 것이라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설명 등은 수운의 가르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수운이 강조한 시천주는 인간이 시천주가 되는 것이지 만물까지도 시천주로서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시형의 사인여천 사상은, ‘인즉천(人卽天)이라는 명제를 도출케 한다. 그가 제안한 향아설위(向我設位), 즉 제삿상을 차릴 때 천주를 모신 자기 자신을 향하여 제사상을 놓자는 주장은 인즉천 사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에서 그는 사람이 천령(天靈)을 모셨으니 신(神)이 곧 내 마음이요, 예(禮)는 내 마음의 기념이다라고 하여 인즉천 사상과 함께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한울님과 인간을 매개하는 중보자(中保者)의 존재나 인간 이외의 초자연적인 우상을 인정치 않는 그의 사상은 이와 같은 신관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월의 사인여천 인즉천 사상은 동학의 3대 교주이며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義菴, 孫秉熙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의무화된다. 인내천이란 수운이나 해월의 가르침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용어이다. 그러나 의암은 인내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수운이 「논학문」에서 풀이한 시(侍)의 내용은 영(靈)의 유기적 표현을 가리킨 것이며 사람이 곧 한울님님을 정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을 뿐이다.
인내천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던 자는 이돈화(李敦化)였다. 그는만물이 한울로부터 창조된 자는 아니다. 다만 한울의 자율적 창조성으로 한울이 한울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 만물인 것이다.…한울은 만물의 내재적 요인이요 만물 밖에 있어서 이것을 생산한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울은 자율적 창조의 자연이며 만물은 소산적(所産的) 창조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는 신을 사람성(性) 무궁(無窮)과 일치한 것이라 하니 사람성 무궁이라 함은 사람성과 신성(神性)이 일치함을 이르는 말인데, 이 점에서 인내천은 범심관과 일신관이 통일되는 경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인내천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범신관 속에 일신(一神)이 포함된 신관이라고 할 수 있다. 즉,범신(汎神)이면서 일신(一神)이요, 일신이면서 범신이다. 이러한 관법(觀法)이 곧 인내천의 관법이다. 그러나 이돈화는 현실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 자체는 신이 아니고 다만 신성을 포함하고 신을 향해 무한히 발전되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 존재로 파악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은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성(性) 속에 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신을 스스로 발견하고 깨치면 자기 자신이 신이 된다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상은 수운의 시천주 신앙과 해월의 인즉천사상 및 양천주 사상이 새롭게 체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고 하고 있다.
이상에서 수운의 천주가, 의암의 천도교 시대까지 변천되어 온 바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운에게 있어서 천주라는 용어는 애당초부터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본체로서의 인간의 본성 또는 본심(本心)을 의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인격신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었다. 수운이 동학의 신앙 대상으로 ‘천주를 제시한 것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논학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동학을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守其心 正其氣 率其性 受其敎)하는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심학(心學)임을 강조코자 했을 뿐이었다. 수운 이후의 교단 지도자들도 이러한 수운의 창교정신을 그대로 계승코자 하였으나 조선 말기의 시대적 상황에서 고통에 직면하고 있었던 민중은 ‘천주를 수심정기를 통해서 찾아야 할 자신의 본성이나 본심으로서보다는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의 천주사상은 서학의 천주사상을 차용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 관념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수운의 강령 체험이나 그가 받은 계시도 그리스도적 체험이나 계시와는 다르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강령 체험이나 계시는 그리스도교에서만 언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학의 천주사상은 수운의 독특한 종교적 경험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후 민중의 실존적 삶과 종교적 욕구가 결합되면서 체계화된 동학의 고유한 신 관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神)이란 개념적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신적 생명에 참여함으로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은 주어진 역사적, 사회적 사람 안에서 체험되고 또한 발전되는 존재이다. 천도교에서 한울님이란 개념화할 수 없는 것으로서 사람으로서 부모와 같이 모시고 섬겨야 할 거룩한 ‘님’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신 관념의 이러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의 천주사상과 그리스도의 하느님사상과의 만남은 그 용어의 동일성이나 개념상의 공통성보다는 하느님(한울님)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할 때 보다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라고 하여 기존의 해석을 넘는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할 때, 총부에서 일방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미미한 주장과 해석으로, 각종 교서에서 한울님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각 종 자료와 교단의 역사를 바탕으로 정확한 자료제시와 공식적인 입장을 시급히 마련하여 발표해야 할 것이다. 그런 발판을 만들기 위하여 필자가 한울님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여 연구한 자료들에 대한 견해를 기술하고자 한다.
註 30; 新人哲學; 李 敦化 ; 천도교 중앙총부. 1924년 3월 30일에 ‘人乃天要義’와 함께 초간. 서울. 1963.복간판. 申一澈은 이 복간판 重刊辭에서 ‘新人哲學’은 수운의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천도교의 교리해설학 만은 아니다. 선생의 웅혼한 점은 천도교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사상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리라. ‘新人哲學’은 자기의 입관적(立觀的) 주장(主場)에서 수운의 사상을 재해석하여 체계화한 훌륭한 자기철학이지 편협한 교리의 고집은 아니다. 동서의 여러 사상을 종(縱)으로 횡(橫)으로 구사(驅使)하여 수운사상의 탁월 점을 들어내고 나아가 근대사회를 비판하고 미래를 투시(透視)한 것이다. 라고 평가하고 있다.
天道敎會月報(1910.8.15.창간)는 발행 초기에는 조사나 접미사 정도의 한글이 붙은 거의 한문체로 시작으로 한주국종체(漢主國從體)에서 출발하여 통권 100호(1918.12.18)를 전후하여,(별도로 諺文部를 마련하여 많은 글을 게재하여 한글 전용을 하였다.) 국한문 혼용으로 조금씩 전환하였다. 天道敎會月報는 교도들의 집단교화용 잡지로, ‘天’ 에 대한 한글 표기가 교단 최초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자료이다. 다만 교단의 공문서에서의 위치는 아니지만, 天道敎會月報의 간행취지로 비추어 보면, 준 공식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創刊號 통권 1호(1910. 8. 15.)부터 2호 까지는, , 하 ,날, 하날, 등이 일정한 기준이 없이 사용되다가 , 하 로 정리되어가는 과정이 보였으나 3호에서 하날님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3호 이후 10호(1911.5.15.)까지 하날님 님 하님이 혼용되었다. 통권 11호(1911.6.15.) 부터는 한을님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고, 통권 13호에서는 ‘한을님’과 ‘한으님’이 혼용되었고, 통권 17호(1911.12.15.)에서는 한우님이 등장하고, 통권 18호(1912.1.15.)에는 한울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한울님’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교단의 공식문서인 天道敎敎團이 교역자나 교인들에게 안내 공지의 성격을 가진 종령(宗令)이란 공문이 있다. 이 공문에 게시된 내용은 교단의 공식적인 내용과 용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천도교회월보와 종령 간의 용어의 사용시기가 다르다. 먼저 종령의 내용을 살펴보고, 회월보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註 31; 종령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공문이 있었는데 그 명칭은 통장(通章), 공함(公函), 공품(公禀), 공보(公報), 성유(聖諭), 윤고(輪告), 경고(警告) 등이 사용되다가 포덕 70(1929)년 부터는 도발(道發), 대발(大發), 성발(誠發), 법발(法發), 지발(知發), 감발(監發), 경발(敬發) 성신발(誠信發) 신발(信發) 等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이중 공함(公函), 공보(公報)가 宗令과 함께 많이 사용하였다.
註 32; 하님과 하, 한울님과 天主의 사용과정과 사용시기의 인용 사례는, 趙基周가 편술한 ‘天道敎宗令集’과 (1983년 간행) 李東初가 편술한 ‘天道敎會 宗令存案’(2005년 간행)과 본인 소장하고 있는 天道敎宗令 冊(한지 또는 인찰지에 기록된 것과 영인본.)을 사용하였다.
公函 第 號(포덕 47;1906년 4월 26.호수가 없다.) 천일 기념에 관련된 내용을 공지하는 중에 ‘하이라 사람이라’말을 비롯하여 하이란 말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 종령 제 5호(포덕 48;1907. 3. 31.)와 공함 제 10호(포덕 48;1907. 5. 17), 종령 제 3호(포덕 48;1907. 9. 9.)의 내용에 ‘天主’와 ‘敬 天主’란 용어를 사용하였고, 종령 제13호(포덕 48;1907. 6. 2. / 종령 71호에 해당됨 조기주의 상계서에 기술됨.)는 최초의 한글공문으로 하이 여러 번 사용되었지만, 한울로 수정 인쇄하여 확인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종령 제15호(포덕 48;1907. 7. 16./ 종령 73호에 해당됨 조기주의 상계서에 기술됨. 발행일자는 포덕 51;1910. 7. 13로 됨.)도 두 번째 한글공문으로 ‘하이’ 한울로 바꾸어 인쇄되었다. 종령 제12호(포덕 51;1910. 6. 23./종령 54호에 해당됨 조기주의 상계서에 기술됨.)와 종령 제16호(포덕 51;1910. 7. 16. / 종령 58호에 해당됨. 조기주의 상계서에 기술됨.)의 한글공문에서도 ‘하’이 한울로 인쇄되었으나 종령 제 3호(포덕 52;1911. 2. 9./ 종령 70호에 해당됨. 조기주의 상계서에 기술됨.)의 한글공문에서는 ‘하’이 하날로, ‘하님’이 하날님 또는 하임과 한날님(두 단어는 誤記인 듯)으로 표기했고 또 종령 제 96호(포덕 53;1912. 1. 20. / 大宗司本의 影印本.)에는 하님으로 표기되었다 이후 하과 하날이 계속 사용되다가 종령 제 99호(포덕 53;1912. 11. 7.)와 종령 제 105호(포덕 55;1914. 3. 25.)의 한글번역 필사본에는 놀랍게도 ‘하님’이 ‘한울님’으로의 표기는 최초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의 변화과정을 거쳐 정착된 ‘한울님’이 천도교의 공식용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포덕 66(1925)년 6월 30일에 公函으로 공고된 天道敎儀節에서 특히 심고문(心告文)에 기술된 9회의 한울님의 표기가 돋보였다. 喪禮와 祭禮의 심고에서는 性靈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註 33; 종령 호수의 연도별 차이는 당시의 교단 사정과 각 기관의 별도 발행에서 오는 혼란이다.
註 34; 1983년에 간행된, 趙基周가 편술한 ‘天道敎宗令集’과 2005년에 간행된 李東初가 편술한 ‘天道敎會 宗令存案’(2005년 간행)에는 고어표기가 있는 시기의 공문을 현재의 언어인 한울로 표기하고 있어, 하의 표기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사료적 가치가 없다. 이 부분의 자료는 영인을 해서라도 밝혀야 한다. 이런 부분은 본인의 소장본에서 확인을 했다.
天道敎會月報의 통권 28호(1912.11.15.)에 이 종일(李鐘一) 쓴 ‘天을稱說’이란 글에서 모든 사람들과 배우지 못한 어린이라도 하늘을 부를 때 반드시 한우님, 한울이라 하지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男婦老幼와 無學小兒라도呼天卽必曰한우님 한울이지 無他名辭라.)’고 전제한 다음, ‘하나님.’ ‘하날님’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然則依其由來固有之語而呼天則曰한울呼天主則曰한우님者ㅣ正合理義에有不可變易者也오先儒汗乙韓捺之論及或者하나님하날님等은實無可據之地也로다.)
이후 통권 115호(1920.3.15.)에서는 ‘한울님’과 ‘한우님’이 주로 혼용되었고, 오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운님, 울님, 우님 등의 표기가 있었다. 통권 116호(1920.4.15.)부터는 ‘한울님’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이후 천도교 회월보에서는 ‘한울님’이 전면 사용하다가, 천도교 중앙총부가 1924년 3월 30일에 이 돈화의 “新人哲學”과 “人乃天要義”의 초간을 간행한 것을 시작으로.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인간은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한울님’을 표준표기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註 35; 天道敎會月報 ; 創刊號 통권 1호 - 終刊 296호(1910. 8. 15. - 1937, 6, 15.)로 폐간되었고,. 新人間 ; 創刊號 통권 1호 (1926. 4. 1.) -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다.
강 우(姜 禹)는 신인간 창간호에 게재 발표한 ‘新人間의宣言’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나스니 과연 하나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어보는것도 조흔일일것이다. 온갖미신의 뭉치가이하나님이라는것이아닌가한다. 생각건댄 하나님이라는 말은 한나이라는말인것갓다. 상대(相對)가안이오 절대(絶對)라는 말이다. 한인격을 가지고 엇던우상 갓흔것이 엄연히어데좌뎡하야 잇는것을 가라쳐말하는 것이다.이것은미신(迷信)이다. 그릇된말이다. “한울님”이라는 말이 올흔것갓다. ’한‘은한문으로 변력하면 一大라는 이오 ’울‘은울타리(籬)라는 말에서지나지 안는말이다. 한울타리에 잇는 다시말하면 우주(宇宙)안에잇는가장 새로운 진리를 동경(憧憬)하야 한울님이라 일흔것이다. 사람각개체(各個體)에진리가잇고 만물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텬도교(天道敎)에서사람이 이에 한울이라는말이이인것갓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것은 과거시대에 잇서서우매한백성의의게너히들은 죄를지으면 하나님이벌을준다. 디옥으로간다.는공구심과미신을부처주던일흠임을알겟다.’
라 하여 ‘하나님’과 ‘한울님’을 구분 비교하여 설명하고 이해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그 당시의 천도교단의 지도자들의 공통된 시각으로 보아지고 있고, 한울님에 해석은, 야뢰의 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천주(天主)’에 대한 ‘한울님’의 정의는, 야뢰 개인의 사상이 아니라 천도교단의 보편화된 해석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강우는 이 글에서 인내천을 ‘사람이 이에 한울이라’ 해석하고 있다. 같은 호에 ‘崔海月先生’이란 글을 게재한 천우(天 友)는 ‘사람이 곳 한울’이라 달리 표현하고 있다.
한울님에 대한 대내외 연구자들의 견해.
교단 내에서 ‘한울님’이 정착되는 과정을, 위의 자료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단의 공식기구에서 합의 도출된 시기나 관련기구와 참가자에 대한 자료가 발굴된 것이 없기 때문에, 교단이 발행했던 자료들을 통하여 확인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1920년대 초에서부터 각 종 기록에 ‘한울님’이 표준표기로 기술되다가 1924년 3월에 출간된, 야뢰 이돈화의 ‘신인철학’의 제 1장에서 ‘한울’이란 어원과 의미를 상세히 설명한 이후,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것이 교단 내에서의 정설이다. 일부에서는 ‘한울님’이란 호칭사용에 대하여 야뢰의 개인적인 주장이라고 비평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그 당시의 천도교 교단의 운영방식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오해라 할 수 있다.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후에, 교단은 100 만여 명에 달하는 교인들을 위한 집단교화의 필요성이 생겼고 이를 위하여 교화용 책자들이 시급히 필요하게 되자, 교단은 1906-7년에 사이에 동경대전과 교리 해설서를 16 종을 출간하였다. 이 출판물들은 개인 명의가 아닌 천도교 중앙 총부 편찬으로 되어 있다. 대표집필자니 공동 집필자의 이름이 없는 것은, 이 교리서들이 교단의 공식적인 교리 해설서로서 교단의 핵심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로 수운의 사상을 밝힌 교서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교단의 교서간행에 대한 입장은, 제 2차로 1912년에도 10여 종에 가까이 많은 교리서를 출간했을 때에도 일관되게 지켜졌다. 이와 같은 교단의 입장은, 교단 명의로 간행된 교서는 물론 교단 내에서 최고의 교리해설을 하고 있는 지도자의 명의로 된 교리서가 교단에서 출간했을 때도, 교리해석에 대한 교단의 공식적인 해설서로 받아들였고 개인의 입장이나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교단의 교리해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뜻이다.
註 36; 1906-7년에 간행된 교서.-天道敎大憲, 準備時代, 텬덕숑, 天道敎典, 天道敎志, 天道太元經, 觀感錄, 大宗正義, 東經大全, 東經演義, 三壽要旨, 聖經演義, 天約宗正, 敎友自省, 天道敎門, 玄機問答 等
註 37; 1912년에 간행된 교서.-道經, 无體法經, 後經 1. 2., 玄野, 定字工夫, 誠米篇, 二一錄 四科要義, 體理宗的, 大宗先後, 等
그러므로 그 당시 천도교의 교리해설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갔던, 지강과 야뢰를 필두로 한 여러 사람들의 출간물 들은 그 당시의 교단의 입장에서 기술된 교서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런 선상위에서 교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교리해설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면서 야뢰의 신인철학에서 밝힌 견해(PP. 9 -12.)를 인용하여 살펴보면,
1. 한울의 名義.
‘無窮한 그 理致를 無窮히 살펴내면 無窮한 이 울 속에 無窮한 내아닌가’ 이것은 水雲의 노래이다. 水雲은 無窮의 意義를 自我속에서 發見하고 그를 吟味하여 스스로 無窮을 讚美한 것이다. ‘無窮한 이 울’이라 함은 곧 ‘한울’을 가르쳐 하는 말이니 無窮은 ‘한’을 意味한 말이며 ‘한’은 ‘크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큰 길’을 ‘한길’이라하며 할아버지를 큰아버지라 함은 ‘한’과 ‘큰’것이 同一한 것을 意味한 것이다. 그리하여 ‘울’이라는 뜻은 量的 意味에서는範圍를 表象하는 것으로 解釋할 수 있는데 空間上으로 본 無窮의 範圍와 時間上으로 본 通三界의 範圍를 總合한 宇宙全體를 가르쳐 ‘울’이라 말한 것이니 이 意味에서 ‘울’이라는 것은 宇宙의 全體 全量을 가르쳐 하는 말이며 質的意味에서의 ‘울’ 이라 함은 ‘우리’라는 뜻이니 우리집 우리民族 우리人類라는 것과 같은 ‘우리’이니 우리는 곧 나의 同類를 包含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한울’ 은 곧 ‘큰 나’라는 뜻으로 解釋할 수 있다. 이를 漢字로 말하면 ‘한울’은 ‘大我’라는 뜻으로 個體인 小我에 對하여 小我와 關係되는 ‘우리’를 ‘大我’라 名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神的 對象을 普通 ‘하느님’ ‘하나님’이라 이름하나 이것은 우리말의 語源에 어글어진 것이며 設使 그러한 말이 우리固有語라 할지라도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한울’이라는 對象과는 槪念에서 甚遠한 差異點이 있다. ‘하나님’이라는 名辭는 基督敎信者들이 부르는 이름로 이것은 純全히 一神敎的 人格的 神을 가르쳐 부르는 이름이오 ‘한울’이라 함은 人格的 神을 가르쳐 하는 말이 아니라 部分에 對한 全體라는 意味이며 小我에 對한 大我라는 이름이오 一層 나아가 宗敎的 名稱으로 볼지라도 ‘한울’은 汎神觀的이며 萬有神觀으로 解釋할 수 있고 또는 이것을 哲學的 또는 科學的으로 본다면 小我에 對한 大我는 때와 곳에 따라 方便的으로 使用할 수 있으니 한 個人이 自己團體를 생각할 때에 이를 大我라 부를수 있으며 한 百姓이 自己國家를 생각할 때에 이를 大我라 할 수 있고 한 사람이 社會를 생각할 때에 亦是 大我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름하는 ‘한울’의 槪念은 어떤 部分에 限定하는 말이 아니오 宇宙全體를 이르는 말이다. 小我 卽 個體我는 全宇宙에 對하여 大我 卽 ‘한울’이라 부르는 것이다. ‘無窮한 그 理致를 無窮히 살펴내면 無窮한 이 울 속에 無窮한 내아닌가’하는 意味로 본다면 小我 卽 我의 個體와 大我 卽 ‘한울’은 根本에서 同一하다는 것으로 小我는 大我에 融合一致될수 있다 함이니 ‘한울’의 名義는 이 노래의 뜻으로 因하여 더욱 明白해졌다.
2.‘한울’本體의 屬性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한울’은 全體的 表顯을 이름인 故로 唯一의 一元으로 ‘自存’하는 것이다. 어떤 다른 實在에 依存하는 것이 아니오, 自存其 自體가 곧 實在인 것이다. 他의 依하여 存在하는者는 그 스스로 有限이 되지 아니치 못한다. 그것은 存在 以外의 他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自存이라 하는 것은 他存을 許치 않는 絶代自存이므로 그는 全體가 되는 것이다. 全은 無限을 意味하는 것이니 無始無終의 體를 이름한 것이오, 無漏無增을 이른 말이다.
‘無窮한 이 울’이라 함은 ‘한울’은 곧 無限無窮하다는 뜻으로 ‘한울’은 그 自身으로서 無窮的 自存이며 無限的 自律이라는 말이다. ‘한울’은 卽 無窮하다. 無窮한 故로 唯一일 뿐이다. 一元的 自存일 뿐이다. 多數中의 一이라는 말이 아니오 모든 多數를 全部 包容하고 있는 一인 것이다. 卽 唯一이다. 他에 依據치 아니한 卽 存在의 根據가 自己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한울’은 自體本性에 存在의 根據가 있다. 卽 自身이 自己自身의 存在根據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卽 必然的 存在인 것이다. 그리하여 自己本性上 必然으로 存在하였으므로 그는 스스로 無窮하지 않을 수 없다. ‘無窮한 이 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水雲은 이點에 대해 많은 驚嘆의 뜻을 表하였다. 위에 말한 無窮의 讚辭 以外에도 ‘無窮無窮萬事知’ ‘無窮造化’ ‘無窮大道大德’ 等의 讚嘆辭는 얼마든지 例를 들 수 있다. 그리하여 無窮의 槪念은 時間上 無期限으로 存在한다는 意味가 아니라 時間을 超越한 無窮이며 自存이라는 말이니 水雲은 이것을 詩로써 ‘南辰圓滿北河回大道如天脫劫灰’라 象徵 하였다. ‘南辰圓滿北河回’는 現象界의 圓圓充充한 大自然의 融化를 意味한 것이오 ‘大道’는 ‘한울’의 本體性을 意味한 것이며 ‘劫灰’는 時間 空間의 變化體를 意味한 것이므로 ‘한울’은 그 本體性에서 根本으로 時間 空間의 制限을 받지 않는다는 意味다. 그리하여 ‘한울’은 어디 까지든지 絶對的으로 自身이 自身의 原因이 되고 他의 制限을 받지 않음으로 그는 自律的造化를 가졌다 할 수 있다. 造化라는 것은 無爲而化라는 뜻이니 無爲而化는 곧 自律的 創造를 意味한 것이다. 이와같이 ‘한울’은 自存性이 있으며 無窮이며 唯一이며 自律的 創造 卽 ‘造化’이므로 우리는 그에 對하여 否定을 意味하는 形容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否定은 實在를 限定하는 것이며 無窮을 有限化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以上에서 말한 것은 量的 ‘한울’의 自存性을 말한 것으로 더 나아가 量的 ‘한울’과 그의 部分과의 關係를 考察하기로 한다. ‘한울’은 部分的으로는 自然界의 特徵 動物界의 特徵 사람性의 特徵으로 表顯되는 것이니 ‘한울’은 造化 즉 自律的 創造로써 以上의 顯著한 特徵을 나타내었다. 이것을 일러 우리는 ‘量的 한울의 進化’라 한다. ‘量的 한울의 進化’라 함은 ‘한울’은 絶對的 自存이며 無窮한 唯一的 本體이면서 그 自性上에 造化(自律的 創造)를 包含하였으므로 그는 靜的이 아니라 動的狀態로 있게 되었다. 造化는 動的 狀態이며 自律的 狀態이며 創造的 狀態이다. 水雲은 이 點을 가르쳐 ‘대개 먼 옛적으로부터 地球가 생기고 春秋가 迭代하며四時가 盛할 적 盛하고 衰할 적 衰하는 것은 이 또한 ‘한울’의 ‘造化’의 자취가 天下에 昭然하거늘 愚民들은 다만 雨露의 德澤만 알고 無爲而化는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은 甚히 平易한 말로 ‘한울’의 造化를 들어 말한 것인데 ‘한울’은 無爲而化의 進化力으로 自己의 自律的 創造로서 地球의 創造에 까지 進化한 것이다. 이와같이 ‘한울’ 自體의 無爲而化의 創造力이 現象界를 創造하였으므로 ‘한울’은 本體와 現實의 關係에서 一卽多. 多卽一로 形容할 수 있다. 本體 卽 現象. 現象 卽 本體로 表示할 수 있다. 그러므로 水雲은 ‘物物天事事天’이라 하였다. 本體의 原理가 現象界에 나타난 그대로를 가르쳐 ‘物이 다 한울이며 事가 다 한울이라’ 한 것이다. 그리하여 本體 卽 한울은 오직 人間의 自覺的 認識에 의해서만 認識할 수 있는 것이므로 水雲은 ‘人乃天’이라 하였다.
야뢰는 같은 해에 출간된 ‘人乃天要義’에서 ‘이제人乃天主義의 宗敎를 一神敎와 汎神敎의 觀念으로 觀하면 人乃天은그基礎와根據를’汎神觀上에置하고 그應用主義를一神敎的사람性에歸納케하야 그로써敎體를 삼은 것‘(P. 103)이라 하여 천도교의 神을 汎神觀的一神敎으로 본 것에 대한 논리적 근거의 바탕으로 삼았다. ‘人乃天主義는 神을사람性無窮과一致한 것이 라하나니 사람性無窮이라함은 上에도 廔說한과가티사람性과神聖이一致됨을이르는말인데 이点에서人乃天은 汎神觀과一神觀의統一할境涯를發見할수있는것이라. 人乃天은宇宙萬有를한가지로 神의自己創造的表現으로본点에서 汎神敎의色彩를가젓스나 終에사람性이 進化的理法에由하야 萬有汎神性을사람性自體의中에包容하면서 宇宙最高神經末梢의統制的靈長으로본点에서 汎神觀的一神敎이라할수있다.(PP. 267-268.) 라고 하여, 천도교의 天主 또는 한울님을 바탕으로 한 신앙을, 종교학적, 신학적인 이론으로, 처음으로 汎神觀的一神敎이라고 판단하고 단정했다. 그리고 나아가 ’人乃天信仰을 大神師의가르치신바와 大神師以下모든覺者의말한바에 依하야보면 大略세 가지로 논하볼수있나니 甲. 한울님을바르게미들것. 乙. 사람을바르게알고바르게셍길것. 丙. 世界를바르게알고바르게 組織할것. 이세가지가 人乃天信仰에要素가된것이라 卽人乃天信仰은 天地人세가지를바르게밋고 바르게組織하는三大正에 歸結케되는것이다.’(P. 49.)라고 강조하여 천도교 신앙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했다. ‘人乃天要義’는 ‘新人哲學’과 같은 해에 출간되었지만, 천도교회월보의 게재된 草稿내용을 기준으로 한다면 ‘人乃天要義’의 논리적 전개가 ‘新人哲學’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무리한 평가가 아닐 수 있다.
야뢰 이돈화의 신관이 위의 저서들을 통하여 ‘민족종교로서의 천도교의 신을 서양종교의 인격신이나 범신관을 넘어서서 새로운 신관으로 정립했다’고 보는 시각은 학계의 일반화된 평가이다. 야뢰가 수운의 경전을 통하여 ‘한울’에 대하여 이해하고 서구적인 사상을 가미하여 해석한 것을, 교단에서 단 한 번도 부정하거나 수정한 적이 없다는 것은. 천도교 교단의 입장이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1905년에 의암이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면서 제시했던 宗旨, 綱領, 目的,倫理, 修行道德의 수용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천도교는, 의암이 제시한 宗旨, 綱領, 目的, 倫理, 修行道德을 바탕으로 신앙하는 것이며, 한울님이 신앙의 대상으로 수용되어 교리교사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단정은 교단이 발행하여 배포하고 있는 안내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래의 글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는 안내서이 기술된 신관(한울님)에 관련된 부분이다.
천도교의 신관은 ‘초월과 내재또는인격성과 자연성을 모두 포함하는 신관이며, 동시에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시천주(侍天主)를 근간으로 하는인내천의 새로운 신관이다.
註 38; ‘인내천의 새로운 신관’이란 표현은, 야뢰의 ‘동학지인생관’에서 人乃天의 神觀이 처음으로 설명되었다. ‘神은 汎神이며 一神이며 宇宙神이며 人乃天 神이 되는 所以의 妙法을 大覺하는 것이 人乃天의 神觀이다.’ 라고 했다. 복간판 신인철학 PP.232-236의 3. 人乃天의 神觀 참조.
각 종교에 있어 경배(敬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神)에 대한 명칭은 서로 같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기성의 많은 종교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즉 하느님‘하나님’한얼님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기성의 많은 종교들이 표방하고 있는, 하느님‘하나님’한얼님등의 신에 대한 명칭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고 있는 이땅(地)의 상대개념인 하늘(天)을 그 염두에 두고, 신은 곧 이 지상이 아닌 저 먼 하늘에 계시다는 관념 속에서 부쳐진 이름들이라고 하겠다.
천도교 역시 그 믿음의 대상인 신(神)에 대한 명칭이 다른 종교들과는 다소 다르게 한울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천도교의 한울님이라는 신에 대한 명칭은땅(地)‘의 상대개념인하늘(天)’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은 아니다. 이한울님이라는 명칭은 천(天)과 지(地)가 모두 포함되는 천지(天地)곧 우주적 개념을 지닌 명칭이 된다.
일찍이 대신사 스스로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고, 『용담유사』 「흥비가」에서 노래한 바와 같이, 이 무궁한 이 울은 곧 무궁한 우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 무궁한 이 울에서부터 한울님이라는 천도교의 신의 명칭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한울님이라는 신은 다만 인간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地)의 상대가 되는 저 먼 하늘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이 하늘과 땅, 즉 우주 어디에나 편만(遍滿)되어 있으며 동시에 내 몸에 주체적으로 모셔져 있다고 보는 것이 천도교의 신관이기도 하다. 이렇듯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일컬어 시천주(侍天主)라고 말하며, 이것이 천도교 신관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사람들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 역시 무궁한 한울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천도교의 윤리가 나오게 된 것이고,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종지(宗旨)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천도교의 신관은 종래의, 신이 어느 초월적 공간에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초월적 유일신(唯一神)의 신관과 만물 속에 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재적 범신(汎神)의 신관을 동시에 극복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천도교의 신인 한울님은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이고, 인격적이면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반대일치(反對一致)의 묘합(妙合)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한울님은 무궁한 절대자로서 만물을 화생(化生)하는 조화(造化)의 주재자이면서, 아직 인간의 역사창조에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계속 인간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울님은 우주 만물을 낳으신 초월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만물 속에 내재해 계시면서 무궁한 생성, 변화와 그 조화를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울님의 조화는 자연계와 모든 생명, 그리고 우주 만유의 끊임없는 생성변화와 그 질서를 주재하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힘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 조화는 무위이화(無爲而化)로서 어떤 다른 힘의 작위(作爲)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한울님의 섭리에 의하여 저절로 되는, 말하자면 타율적이 아닌 자율적 창조․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천도교의 종교적 경배의 대상이 되는 한울님은 어떠한 표현으로도 개념화될 수 없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신사는 『동경대전』 「논학문」에 있는 주문(呪文) 21자를 해의(解義)하면서 오직 한울님에 해당되는 천(天)에 대하여서만 그 해의를 유보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의 감응(感應)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거룩한 한울님의 뜻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 즉 우주 만유는 한울님 스스로의 무궁한 조화에 의하여 그 자취를 나타내는 것이며, 사람은 한울님을 몸에 모시고 한울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울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파한 천도교의 신관은 곧 단순한 초월적 신관이나 내재적 범신이 아닌 초월과 내재를 모두 포함하는, 또는 인격성과 자연성을 모두 포함하는 신관이며, 동시에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시천주를 근간으로 하는인내천의 새로운 신관인 것이다. /안내서인 천도교에서 신관(PP. 40-42.)
이러한 교단의 입장과는 달리 학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수많은 연구논문을 통하여 발표되었지만, 교단은 그 어느 부분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혹평에 가까운 비판과 해석은, 천도교단의 교서 연구의 불충분함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되어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고, 새로운 해석을 한 몇 가지 연구 결과물을 살펴보기로 한다. 윤성범과 유동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통의 학자들의 혹평에 가까운 비판은, 천도교교단이 올바른 해석을 함으로서 잘못된 비판이었음이 증명될 것이라 믿는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 동학과 천도교의 시천주와 한울님에 대한 연구가 미미한 가운데 독보적인 연구가가 최동희였다. 최동희는 천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 시기에는 교인으로서의 역할은 없었다. 교단이나 학계에서 최동희의 해석에 준하는 기술들이 보였다. 이런 최동희의 독자적인 해석은, 교단과 학계를 있는 교량적인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동희의 한울님에 대한 해석은 초기해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70년에 고대 민족문화 연구소가 간행한 한국문화사 대계 12 권. 宗敎, 哲學史(下)에 수록된 ‘한국동학 및 천도교사’에서 필자인 최동희는, 천도교 신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PP. 733-742, 751-754.)
‘水雲의 神 즉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성실한 存在다. 그것은 성실하고 인간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격적이기도 하다. 그는 또 온 자연계를 다스리고 모든 생명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유일한 最高存在다. 이러한 점에서는 다른 一神敎的인 종교의 神과는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라고 전제한 다음 경전 구절을 인용하여 다른 점을 설명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神의 전지전능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믿는 태도에 있어서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엿보인다. 역시 水雲의 歷史的 社會的 배경과 개인적 사정이 반연되어 있는 듯하다.’(P.733.) 그리고 필자는 수운은 신을 경외의 대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을 敬畏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水雲의 神觀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賢人 達士‘가 도덕을 따지고 君子를 자처하지만 하느님에게 敬畏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사실은 하느님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水雲의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은 마땅히 敬畏心으로 받들어야 항 대상이다. 水雲은 至誠으로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외쳤다. 지그히 하느님을 위하고 하느님만 믿으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바로 敬畏의 대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러면 水雲은 왜 이토록 敬畏를 강조하였을까. 당시의 국제적 위기와 국내의 혼란은 모두 세상 人心이 극도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水雲은 믿었다. 또 이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攝理에 따르지 않고 제 욕심만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全能을 믿고 敬畏心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네 따라야만 온 세상의 질서가 회복되고 온 세상 사람들이 一體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하느님에 대한 敬畏心만이 흩어진 세상인심을 一體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토록 敬畏를 강조 하였다.(PP.737-738.)고 하면서 수운의 신관은 새로운 신관으로 가는 발전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해월의 일화들을 통하여 수운의 신이 다른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해월이 1885년경에 ’무릇 天地는 鬼神이며 鬼神 역시 造化이다. 그러나 鬼神이라 하며 조화라 함은 다만 一氣의 所使니, 어찌 사람뿐이 天主를 侍하였으랴. 天地萬物이 侍天主 아님이 없나니 故로 以天食天은 宇宙의 常理니라.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의 生物이라도 無故히 害하며 하나의 生命이라도 無故히 傷함은 天主로써 傷함이니라.(天地人, 鬼神, 陰陽과 以天食天의 說法을 참조.) 설교한 것과 청주의 도인인 徐택淳의 집을 지나다가 며느리가 베짜는 소리를 듣고 이 소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조화를 感得하였기 때문에, 그 후 1890년에 ‘저것도 또한 侍天主의 소리니라. 妙하도다. 天道의 靈妙한 일에 干涉치 않음이 없도다. 하늘의 일월로부터 땅의 微塵에 이르기까지 다 天道의 靈光이니라. 지금 愚俗이 山이나 물에 빌어 福을 구하는데 또한 異驗이 없지 아니함은 天地의 靈妙 照臨치 않는 곳이 없는 證據니라.(待人接物의 설법을 참조.)란 설교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뿐만이 아니라 天地의 萬物이 다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고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해월은, 天地의 萬物이 다 하느님의 靈妙한 屬性을 갖추고 있다. 라고 감득하여 설교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두 說敎의 內容은 좀 더 愼重히 分析한다면, 좀 다른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첫째로 이것은 汎神觀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世上의 온갖 事物 속에 神聖이 갖추어져 있다고 믿는 立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물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主張이 그 좋은 例證이다. 특히 以天食天이라는 좀 색다른 말이 가장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중략- 이 以天食天이라는 主張이 汎神觀의 立場이라는 것을 잘 뒷밭침하여 준다.’라고 하여 水雲과 海月의 神觀을 汎神觀에다 하느님의 攝理에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PP. 75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