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모세를 80살에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말로 그 이유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단을 위한 일이었고 자기를 포기하기까지 기다리신 것이었고 완전무능을 깨닫기까지 참으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40살까지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의 궁에서 왕자 대접을 받으면서 자랐고 왕실의 교육도 받았습니다.
후에 미디안 우물가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위해 여러 명의 그 지역 목동들을 쫓아낸 것을 보면
무술 훈련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아마 자기 형제를 치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도 이 무술과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정처 없이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아마도 억울함, 분노, 상처, 그리움, 원망, 고집, 독선 등이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사람을 구하려고 자기 민족을 노예처럼 부리는 애굽 사람을 처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됩니까? 하나님은 나의 정의를 그렇게 몰라주신단 말입니까?
심지어 히브리인끼리 다툴 때 내가 조금 관여한다고 해서 나의 실수를 들쳐 내는 그 히브리 형제는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형제를 구하려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을 그렇게 까발릴 수 있단 말입니까?
또 내가 그렇게 실수했다고 해도 내 양어머니 바로의 공주는 평생 어머니로 모셨는데 나 한 사람 구해주지 못한단 말입니까?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은 왜 나를 내버려두십니까?
내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런 식으로 내버려두시는 것은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나를 알리려고, 내 힘을 과시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오직 히브리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걸 몰라주십니까?
정말 너무합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려서 나는 이제 완전히 망했습니다.
내가 이제 무엇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그는 이것을 버리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으로 쫓겨 가서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세는 그것으로 인생을 마치려고 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80살이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그는 그때까지도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냥 힘없는 완전한 양치기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모세가 아니라 힘 빠지고 능력 없어서 장인 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노인에 불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원망이나 상처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나 과거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만약에 모세에게 자랑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하나님은 쓰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에 화가 남아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일을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완전 무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온전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원망이나 자랑이나 인정받으려는 마음이나 자기 고집이나
자기가 무엇인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같은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온갖 악조건 가운데에서도 지속적으로 감당하고 성과를 내신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자존심 하나로 여태까지 버텨왔다고 생각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물론 그 자존심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버려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누군가 내 열심을, 내 믿음을, 내 진심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면 아직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고집, 자존심, 자기 비전, 인정욕구, 자기 의, 자랑이 남아있으면 자기성공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성공은 결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