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족장 요셉
야곱은 요셉을 특히 귀여워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유다가 중심이 되어 형제들이 그를 지나가는 애굽 상인에게 팔았다.
팔린 가격은 은돈 20매로, 그것은 함무라비 법전에 규정된 남자노예의 가격이었다.
요셉 유혹 설화는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가 원전이다.
<표 6 참조>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A643A559E154E2C)
두 형제 이야기
젊고 성실한 동생 안푸 - 형수가 유혹함 - 거절함 - 거짓으로 고함 - 곤경에 빠짐.
요셉 유혹 설화
젊고 성실한 요셉 - 주인의 아내가 유혹함 - 거절함 - 거짓으로 고함 - 감옥에 갇힘.
당시 애굽 역사기록에는 요셉이란 이름이 없다.
이집트 역사기록에는 지방의 말단 하급관리의
횡령사건 같은 작은 사건에 대해서도 소상한 기록이 남아있다.
기근을 극복한 거국적 중요인물이 이름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요셉이 이집트 총리대신으로 일한 적이 없다는 반증이다.
요셉 총리 설화의 원전은 고대 이집트 <이모텝의 전기>이다.
제3왕조 조세르(재위 기원전 2630~2611) 시대에 활약했던 총리대신
이모텝(기원전 2650~2600)의 전기를 약 2000년 후 구약 편집자들이 각색한 것이다.
<표7 참조>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9B934559E15751B)
원전에는 7년 흉작과 7년 풍작이지만(☞ 이거 케인즈 이론이네!),
구약성서에는 그 순서만 뒤바뀌어 있다.
신화와 전설은 실제 사건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편집과정에서 가필되고, 어휘가 교체되고, 각색되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구약성서는 바빌로니아 유수를 겪은 이후 절망에 빠져 있던
히브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일 목적으로 대대적인 편집 및 가필작업이 행해졌다.
그러나 구약 편집자들은 다른 나라의 신화나 전설,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실존인물까지도
각색하여 자기민족의 신화로 만들었다.
그것은 민족의 자존을 세운다는 명분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진실의 왜곡일 뿐이다.
아마르나 문서, 보가즈쾨이 문서, 우가리트 문서 등은 기원전 2000~1200년에 걸쳐
소아시아에서 시리아, 가나안, 애굽으로의 대규모 민족이동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힉소스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의 후르리인, 셈계, 그리고 인도-아리안계의
혼합 민족 집단이었다.
힉소스는 히타이트에서 흡수한 뛰어난 철기제조기술을 통해 얻은 개량된 철제무기와 전차를
바탕으로 한 기동력을 갖춰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중왕국시대와 신왕국시대 사이인 제2중간기(기원전 1650~1550)의 왕조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힉소스인들은 나일강 동부 유역을 장악했다.
이로써 下이집트 나일 삼각주 중심의 힉소스 왕조(제15,16왕조)와
上이집트 테베 중심의 애굽인 왕조(제17왕조)가 대치하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 중왕조 제15~16왕조에 이르는 108년(기원전 1648~1540) 동안
힉소스 왕들이 下이집트를 지배했다.
구약성서에서 요셉 형제들의 집단이주는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배세력도 애굽인이 아닌 힉소스 혼합이주민 세력이었으므로
요셉 형제들과 히브리인들은 높은 지위와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다는 요셉설화는
바로 이 힉소스 왕조의 애굽 지배를 배경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힉소스의 지배가 끝남은 이집트 안에 살던
유대인들을 포함한 힉소스 잔존세력 및 동조세력의 몰락을 의미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 출1:8~10.
여기서 새 왕이란 애굽인으로 제18왕조의 세 번째 왕인
투트모세1세(기원전 1504~1492)를 가리킨다.
기원전 1500년 경부터 애굽인은 힉소스인, 유대인, 베두인족 등 가나안인들을 노예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