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동행, 소운/박목철
막내 외손주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녀석은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할아버지와 시간을 같이하며 따뜻한 동행의 정을 쌓았다.
동행이라는 말이 생뚱맞다고 하실 수도 있으나, 손주와 눈높이를 같이하고 친구가 되려는
할배의 노력 탓인지는 몰라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애정과 사랑을 준 대상이 이 녀석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무슨 짓을 해도 이쁘기만 하지 서운하거나 실망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손주도 이런 할배의 마음을 아는지 나이답지 않게 깊은 신뢰를 표현하기도 한다.
입학 하루 전 데리고 놀다가 점심을 정성껏 만들어 먹였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질긴 고기를 삼키지 못하는 손주를 위해 파인애플을 갈아 부드럽게 잰 고기
를 구어서 먹였다. 애 성장을 위해 단백질 공급 차원에서 계란을 늘 먹였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물을 타 부드럽게 한 후 중탕으로 계란찜을 해서 먹이고 뼈 성장을 위해 잔 멸치볶음도 먹였다.
준비해 둔 손주 먹거리를 보며 문득, 이젠 학교에서 점심을 먹이니 더 먹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를 위해 하던 소중한 일을 뺏긴 듯 허전한 생각을 한동안 지을 수 없었다.
할배가 해 주는 마지막 점심을 먹였다고 했더니, " 애가 어디 가기라도 해요? " 딸의 핀잔이다.
-녀석 코로나 탓에 바깥나들이를 못 한 탓인지 뱃살이 쪄 걱정이긴 하다.
입학식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손주는 유아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으니 적응이나 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덧셈 뺄셈의 기본과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느라 녀석과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과정도 겪었으나, 아이는 이제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려 주기도 한다.
입학식이 끝나고 애들이 교실을 향해 줄을 서서 선생님을 따라가는 와중에도 손주는 할배의 손을
놓지 않았다. 교실로 가야지, 하며 교실 쪽으로 밀었지만 오히려 할배의 손을 꼬옥 잡았다.
어디를 가건 할아버지와 함께했는데 따로 떨어져 간다는 현실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가지 말고 밖에 있어야 해, 할아버지 없으면 무서워" 그러겠다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4살 때부터 애를 데리고 와 점심을 해 먹이고 저녁 무렵까지 데리고 놀다 집에 데려다주던 리듬이
애의 입학으로 깨져 버렸다. 초등학교까지는 내가 애를 데리고 등 하교를 시키겠다고 했다.
놀던 버릇 탓인지 학교가 끝나고도 할배 집에서 놀겠다고 떼를 썼고 매주 한 번 데리고 자던 것도
요일 만 바뀌었을 뿐 금요일에 자겠다고 하도 떼를 써 그러자고 약속도 했다.
나이가 더 들고 학년도 올라가면 당연히 할배보다는 애들하고 놀거나 다른 세상의 재미에 빠질 것이고
당연한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건강이 나빠져 애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 입학하던 날 엄마 손을 잡고 노란 개나리가 활짝 핀 학교 문을 들어서던 순간에
꼬옥 움켜잡았던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잊지 못하듯 아이도 할아버지와 함께한 따뜻한 동행을 잊지 못
할 것이다.
입학식, 소운/박목철
입학식 끝나고
다들 선생님 따라 교실로 가는데
겁먹은 얼굴로
할배 손을 꼬옥, 놓지 않았다.
"교실에 가야 해"
등을 밀자
"할아버지 가지 마, 대한이 무서워"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무릎에만 안던 아이가
몇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강제된 질서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힘들까?
그것도 16년 이상이나,
아!
첫댓글 https://im.newspic.kr/ZskSui9
답글 달기가 어렵네요,
손주에 대한 애정을 절실히 표현하셨군요. 충분히 공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