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의 기초 확립
성경본문 : 에스라 3:8-13
할렐루야! 오늘도 가장 귀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루를 시작하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크고도 놀라운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성전의 기초 확립”
성도 여러분!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면서 감사를 드렸고 그 감사를 바탕으로 예배와 절기와 예물을 회복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의 포로, 사망 권세의 포로, 허무의 포로, 무의미의 포로, 불안의 포로에서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이들은 성전 재건 사업을 착수하기 전에 먼저 파괴된 성전을 보고 자신들의 불신앙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제일 과업임을 인식하여 단을 만들어 번제를 드리고 초막 절기를 지켰습니다.
특히 나팔절,속죄일,초막절이 있는 7월을 택하여 信仰的인 준비를 했습니다.그리고 物質的 준비로 솔로몬이 성전을 세울 때 하였던 것처럼 기술자(목수와 석수)들을 준비하고 시돈과 두로 사람을 통하여 재료를 준비했고 또 이들에게 음식과 기름을 주어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 재건 준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당름과 같습니다.
첫째:모든 事業의 시작은 언제나 信仰으로부터 出發합시다.
이들이 성전의 지대를 놓기 전에 먼저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켰다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왜냐하면 모든것의 근본은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생명과 구원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제일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모든 事業은 無理함 없이 正當하게 處理되어야 합니다.
이들이 일군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했던 것처럼 성도들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억지로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되고 정당하게 지급할 것은 지불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세째:하나님의 일은 信仰的 熱心으로 結集해야 합니다.
성전 재건을 위해 유다백성들이 모인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려고 하면 신앙적 열심으로 결집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은 매사에 시간을 다투는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서,자칫하면 현실적 분주함에 정신을 빼앗겨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데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정해 놓고 무슨 일에든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자세가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됩니다(마6:33;고전10:31)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앙을 준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신앙적 열심으로 결집하여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전의 기초 확립
돌아온 유대인들 중에서는 성전을 세워야 하느냐 세우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일은 즉시 결정되었습니다. 가장 신속히 성취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횃불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그의 이름의 기록을 모시지 못한다면, 그들이 그 땅에 돌아왔다고 해서 무슨 낙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 선한 역사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봅시다.
Ⅰ. 그것은 언제 시작되었습니까?-제2년 2월입니다.
즉 그 해의 때가 허락되자마자였습니다(8절). 그리고 유월절 의식이 끝났을 때였습니다. 터전과 재료를 준비하는 데 반년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성전에 대한 그들의 열심은 이와 같이 컸습니다. 어떤 선한 사업이든지 그것이 성취되려고 하면 빨리 시작하는 것이 지혜요, 비록 난관과 반대가 있을지라도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됨을 기억합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선한 사업에 자신들을 투자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그 일에 개입하십시다.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Ⅱ. 누가 그것을 시작했습니까?-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행정관들과 사제들과 백성들이 열심이고, 그리고 모두 자기의 직위에서 동조하여 힘을 합치면 잘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일에 한 가지의 마음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전망이 밝았습니다.
Ⅲ. 그 일의 진전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
그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 레위인들을 감독으로 세웠습니다(8절). 그래서 감독들은 일꾼을 독려하고(9절) 그리고 부드럽고 위안의 말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해줌으로써 그 일을 진전시켰습니다.
직접 일하지 않는 자들이라도 일하는 자들을 격려하고 독려함으로써 선한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Ⅳ. 성전 기초가 놓일 때, 하나님은 어떻게 찬양을 받으셨습니까?(10, 11절).
모세로 말미암아 지정된 나팔을 든 제사장들과 다윗의 규례대로 제금을 든 레위인들이 찬송했습니다.
이 찬양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코 낡아지지 아니하는 찬미를 부르기 위함이며, 우리의 혀가 "주는 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라는 시편 136편의 후렴주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비의 모든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우리의 슬픔이 아무리 크든지,
우리의 두려움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찬송을 고백합시다.
실패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자비는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이 찬성을 여기서와 같이 열심을 다하여 부릅시다.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서 포로될 때나 본국에서 나그네 될 때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영원히 함께 하시는 그 자비를 찬양합시다.
상태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하시고" (시 73:1) 우리에게도 선하십니다.
교회의 번영이 쇠하는 것 죽어가는 것 같이 보이나 다시 소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영원하심 때문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존속할 것입니다.
Ⅴ.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두드러진 반응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은 있습니다.
각 개인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따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불화(不和)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들은 서로 분리되지 않았고, 그것으로 그들의 공공 관심사가 지연되지 않았습니다.
☛1. 전혀 성전을 가지지 못했던 비극을 알고 있는 그들은 성전 기초가 놓이는 것만 보아도 기쁨의 함성으로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11절).
그들에게는 이 기초까지도 위대하게 보였고, 죽음에서 살아난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주린 영혼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좋은 만찬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멀리까지 들릴 만큼" 컸습니다.
아직 자비가 완성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비의 출발을 보면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랜 폐허가 지난 후에 와서 세워진 이 성전의 기초는 모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솔로몬이 세운 제1성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또 이 제2의 성전이 그것에 비해 초라하고 그 규모에 있어서나 그 위용과 화려함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음을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큰 소리로 울었을 것입니다" (12절).
우리가 여호야김 즉위 제4년부터 첫 번 포로의 시간을 잡는다면, 성전이 불탄 지는 약 52년이 되고, 여고니야의 포로 때부터 잡는다면 59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성전의 옛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살았고, 또 그들이 예루살렘의 영광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남에게 해줌으로써 빨리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은 포로들에게 내려진 커다란 자비였습니다.
이 성전과 옛 성전 사이의 차이가 이들을 슬프게 했습니다.
▶(1). 그리고 이 슬픔에는 다소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눈물을 바른 방향으로 돌리어 이러한 슬픈 변화를 가져오게 한 죄를 애통했었다면, 그들은 잘한 것입니다.
죄는 모든 교회나 민족의 영광을 더럽힙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타락하고 퇴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2). 그러나 그들의 눈물이 일상적인 기쁨과 뒤섞여서 그들에게 실망의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라면, 그 슬픔은 그들의 허약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작은 일의 날을 경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리는 자비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2성전도 그들이 받을 만한 자격과 비추어 볼 때 훨씬 큰 것이었지만, 조상들이 가졌던 것만큼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뻐할 때는, 우리들도 슬픈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합시다. 여러 가지 섭리가 작용했음에 감사하는 태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고 가르치면서, 또 옛날의 괴로움을 기억하여 오늘의 자비를 경시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러한 백성들에게 실망을 조장시켰다면, 그것은 더욱 잘못된 일입니다.
슬픔과 기쁨이 혼합된 것은 이 세상사의 단적인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물의 홍수에 빠져있는 동안 혹자들은 기쁨의 강에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모든 사람이 노래 부르고 있고 아무도 한숨 짓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울음소리와 기쁨의 소리를 분별할 수가" 거의 없습니다.
"기뻐하는 자들과 더불어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우는" 것을 배웁시다. 그리고 우리는 기뻐하지 않는 자같이 기뻐하고 울지 않는 자같이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 역사의 시작"
오늘 성경말씀은 오랫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토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준비를 갖추고 2년후에 7월1일 하나님의 성전에 지대를 놓고 기초를 쌓을때에 백성들이 3가지 반응을 보인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레위사람들은 20세이상 장정들이 그 성전에서 일할 사람들을 잘 관리하면서 감독하는 일을 맡았으며, 백성들은 하나님께 성전의 기초가 놓여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중에 어떤 사람들은 참 기뻐서 놀라운 외침, 정말 기쁨의 외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고, 나이 많은 어른들은 그 성전이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독려하고 칭찬하고 힘을 주어서 일이 잘 되도록 감독하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기쁨이 넘쳐서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들은 감격이 넘쳐서 대성통곡하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멀리서도 그 소리가 들렸다 하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슬픔을 겪고 하나님의 성전을 잃어버린 슬픔은 이것은 더 큰 슬픔이어서 하나님을 마음놓고 예배할 수 없는 그런 고통 속에 있었던 저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에 지대를 놓을 때 하나님께서 저들을 축복하시고 기뻐서 감격해서 울고 웃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地臺)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大聲痛哭)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르게 설명을 하는데, 그 성전이 다시 재건되는 것을 보고 감격해서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옛날 성전의 화려했던 모습에 비해서 너무 초라하고, 옛날의 아름다웠던 솔로몬의 성전, 옛날 성전을 보고 그 찬란함에 비해서 너무도 초라한 모습을 보고 정말 슬픔과 가슴 아픈 울음을 울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울음이었다고 볼텐데, 만일 이 울음이 감격스러워서 울었다면 다행이지만, 지금의 성전이 옛날의 모습보다 초라해서 울었다면 그 울음은 옳지 않은 울음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좀더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고,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해 드리는 뜨거운 마음과 기쁨이 우리에게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그 일이 잘되고 안 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는 전혀 무관심 내지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그저 상관하지 않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것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대단히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울 것이냐? 웃을 것이냐? 기뻐할 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감격해 할 것이냐? 아니면 배 아파 할 것이냐? 하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고 감격해 하시고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떤 자세로 하느냐 하는 그 중심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위보다 더 중요하게 마음, 감정, 느낌, 사랑, 감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 이런 뜨거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 동기가 중요한데 그런 마음과 중심이 뜨거운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 앞에 즐거이 부르는 마음속에 깊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울고 웃는 다는 것은 감정입니다. 도시생활에서 복잡한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 감정이 무디어 졌습니다.
잔칫집에 가도 즐거워하지 않고, 초상집에 가도 울지 않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괴로운 줄 모르고, 죽어가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감사한 감정보다는 원망과 불평과 분노의 어두운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 찬 사람이 없지 않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속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다윗 왕에게서 배운대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정의 극치의 표현으로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열정과 꿈과 사랑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열정과 꿈이 여러분들을 불태우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더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것에 더 헌신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실 수 있도록 사랑과 헌신과 순종과 희생을 주님 앞에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면"
1.성전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2.최상의 성전이 아니라면 성 통곡함이 있어야 합니다.
3.외치는 소리라 멀리까지 들리는 성전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성전은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감사가 넘쳐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현재의 형편에서 최상으로 세워졌습니까? 제대로 외치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요?
마가의 다락방,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우리에게 올바른 교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곳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른 성전이 세워져야 합니다.여러분은 죄의 땅에서 해방되어 귀환한 백성입니다.이제 성전을 세우는 자리로 뛰어 드시기를 바랍니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나중은 창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분은 모든 일의 시작에 서서 하나님께 아뢰고 의지하며 그의 뜻을 구하십니까?
여러분이 그리하실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지금이 어렵다고 작다고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까?
시작은 미약해도 나중에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묵상:에스라3:11-13절입니다.오늘도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시고 나라의 법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