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작가 소개>
서정주(1915년~2000년) 시인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등단, 동아일보 문화부장.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을 거쳐 중앙대학교,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
시집으로 『화사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할이 바람』, 『산 시』, 『늙은 떠돌이의 시』, 『80 소년 떠돌이의 시』 등이 있으며,
기행 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 자서전 『도깨비 난 마을 이야기』, 『천지 유정』을 비롯한 많은 저서가 있음. 한국문인협회 회장. 5·16 민족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서정주 시인은 시인으로서는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정치적으로 잘못된 행적을 여러 번 보여 큰 비판을 받았다. 우선 일제강점기에는 <다쓰시로 시즈오 達城靜雄>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하여 친일 활동(10편의 친일적 글을 남김)을 하였다고 전하고,
1949년 여름부터는 경무대에 출입하면서 <우남 이승만>이란 자서전을 쓰는데 헌신하였고,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전두환의 56세 생일을 맞아 축시를 지어 올렸고, 1987년 4월, 호헌 조치 때는 ‘위대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발언을 남겼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그를 능가할 언어 구사력이나 소재 선택 능력이, 현재도 없을 정도로 탁월하였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