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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의 해석과 행동
오바댜 1장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각자 자기 소견에로 해석하고 행동하면 사사시대처럼 혼란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어느 것이 정의입니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정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고, 공의란 공평한 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두 단어를 바꿔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역은 <미쉬파트>מִשְׁפָּט 를 ‘정의’ 라고 번역했고 <처다카>ְדָקָה 를 ‘공의’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그 반대로 번역함)
-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사건에서 하나님 중심의 공의와 정의는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〇본문말씀
=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주셨습니다. 에서의 뜻은 '붉다'는 뜻이고,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이름입니다. 팔레스틴은 위로 헐몬산, 아래로는 디베랴호수가 있고 그 아래 사해가 있습니다. 에돔족속은 사해인근 교통의 요충지이며, 바위가 많고 험준한 산악지방으로 최고봉이 해발 1087m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아무것도 안 건드리면서 식수 등을 이용할 때는 통행료까지 내면서 지나갈 것을 요청했으나 에돔족이 거절하여 먼 길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민수기 20장 14~21절)
- 통일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는 사울과 다윗에게 정복당해 속국이 되었으나,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요압을 숙청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군사력이 약화되자 그동안 이집트에 망명해 있었던 하닷이 귀국하여 에돔을 재건하고 솔로몬과 대치하였습니다.
-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유다 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할 때까지 연합·대립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바댜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을 예언했고, 실제로 역사 속에서 에돔족속은 멸절되었습니다.
= 에돔이 멸망의 이유
① 에돔이 멸망한 이유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에돔족은 천해의 요새에 높은 바위굴에 집을 짓고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를 끌어 내릴 수 없다고 교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② 에돔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인 야곱의 후손들을 무참히 죽인 죄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에돔은 고소하게 여기고, 흐뭇하게 여기고, 입을 놀려대고, 유다백성이 처참한 일을 당할 때 '잘도 고생하는구나.' 하며 고소해하고, 그 재물에 손을 대고, 살기 위해서 도망칠 때 길목을 지키다가 쳐죽이거나, 겨우 살아남은 자마저 남의 손에 팔아 넘겼습니다.
〇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인의 정의
=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주전(BC) 586년 멸망하였고, 에돔은 느브갓네살에 의해 주전(BC) 533년에 사라졌으나,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페르샤의 고레스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서 유다백성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렐루야!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건에 대한 해석과 행동이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마이클 샌델 교수도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사람들은 각자 가치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지만 합의하며 학습하고 부의 공평한 분배와 같은 더 진실한 정의를 행하며 나아가야 한다. 좋은 결과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며 공동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생각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께 따져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야곱의 후손을 에서의 후손이 못되게 한 것으로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아멘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는 약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왕성하게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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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중심의 해석과 행동
오바댜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길이를 측정하는 도구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 갈대의 마디로 측량을 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이것을 카논이라고 하였고, 카논을 성경과 정경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말씀과 다르게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해석하고 행동하면 사사시대처럼 혼란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 이야기) 2005 아프카니스탄에서 오사마빈 라덴의 친구를 체포하기 위해서 4명의 미군 특수부대원이 잠복하다가 2명의 농부에게 들켰습니다. 미군들은 두 파로 갈렸습니다. 민간인이라도 죽여서 목적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과 민간인은 죽일 수 없다는 의견으로 토론하다가 마침내 살려주었습니다. 2시간 뒤 100명의 아프카니스탄 병사들이 4명의 미군을 포위하여 현장에서 3명이 사살되었고, 구조하려고 온 헬리콥터가 폭팔되었고, 탑승한 미군 16명이 죽었습니다.
-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어느 것이 정의입니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정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되어 있고, 공의란 공평한 도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두 단어를 바꿔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역은 <미쉬파트>מִשְׁפָּט 를 ‘정의’ 라고 번역했고 <처다카> צְדָקָה 를 ‘공의’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그 반대로 번역함)
-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행동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사건에서 하나님 중심의 공의와 정의는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〇본문말씀
=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주셨습니다. 에서의 뜻은 '붉다'는 뜻이고,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이름입니다. 팔레스틴은 위로 헐몬산이 있고 아래로 디베랴호수가 있고 그 아래 사해가 있습니다. 에돔족속은 사해인근의 교통의 요충지이며, 바위가 많고 험준한 산악지방으로 최고봉이 해발 1087m에나 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아무것도 안 건드리고 식수 등을 이용할 때는 통행료까지 내겠다고 하면서 지나갈 것을 요청했으나 에돔족이 거절하여 먼 길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민수기20: 14~21절)
- 그 후 통일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는 사울과 다윗에게 정복당해 속국이 되었으나,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요압을 숙청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군사력이 약화되자 그동안 이집트에 망명해 있었던 하닷이 귀국하여 에돔을 재건하고 솔로몬과 대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정복당할 때까지 연합과 대립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바댜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을 예언했고, 실제로 역사속에서 에돔족속은 멸절되었습니다. 북조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남조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한 뒤 에돔은 바벨론과 손잡고 더 잔혹한 횡포를 저질렀습니다.
= 에돔이 멸망의 이유
① 에돔이 멸망한 이유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에돔족속은 천해의 요새에 높은 바위굴에 집을 짓고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를 끌어 내릴 수 없다고 교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옵 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② 에돔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인 야곱의 후손들을 무참히 죽인 죄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옵 1:10) 한 동기인 야곱의 후손을 무참히 죽인 죄로 너희는 치욕을 당하고 영영 망하게 되었다. (11) 오랑캐가 예루살렘 성문을 부수고 밀려들어 약탈하여 서로 나누어가지던 날, 너희는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한통속이 되었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에돔은 고소하게 여기고, 흐뭇하게 여기고, 입을 놀려대고, 유다백성이 처참한 일을 당할 때 '잘도 고생하는구나.' 하며 고소해하고, 그 재물에 손을 대고, 살기 위해서 도망칠 때 길목을 지키다가 쳐 죽이거나, 겨우 살아남은 자마저 남의 손에 팔아 넘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옵 1: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마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〇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 정의
-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주전(BC) 586년 멸망하였고, 에돔은 느브갓네살에 의해 주전(BC) 533년에 사라졌으나,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페르샤의 고레스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서 유다백성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렐루야!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고 있는 심장이 뛸 수 있고, 태어나서 한번도 멈춘적 없는 호흡도 계속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건에 대한 해석과 행동이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을 조금 더 깊게 적용하기 위해서 10년 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중요한 순간에 생각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 》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핵심내용
①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중요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친구사이의 관계, 사회적 신뢰, 공공복지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가치있는 것들임에도 현대사회에서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②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서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사회적 지휘나 권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현상이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위협을 불러 일으킨다. ③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서 어떤 가치들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의(justice)에 대하여 정의(definition) 내리는 일이 필요해진다. 정의를 규정할 때 자기 기준에서만 내린다면 그것은 보편성을 잃게 되고, 결국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한 정의가 되지 못한다.
① 공리주의에서 정의란 사람들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② 자유주의에서 정의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③ 공동체주의에서 정의란 행복의 합계나 자유보장으로 단순히 설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도덕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논의로부터 공동체 구성원의 좋은 삶과 공동선에 대한 답을 천천히 찾아보자면서 확정하지 아니한다.
-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증진 시키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사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을 넘는다면 정의롭다고 본다. 그러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기에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위한 선택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상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기에 상황에 따라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개개인은 공동체 내에서 도덕을 배워서 본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치참여, 토론 합의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주의는 전체주의처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강압적인 공동체주의와 구별되어야 한다.
- 마이클 샌델이 지지하는 공동체주의는 형식적이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윤리적인 문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단순히 인간의 선택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하지만 합의하며 학습하고 부의 공평한 분배와 같은 더 진실한 정의를 행하여 나아가야 한다. 정의는 단순히 허울뿐인 개념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변 할 수 밖에 없고, 좋은 결과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며 공동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제시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되십니까? 아담이 지은 죄가 원죄가 되었다는 것,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모두 진멸하라,는 말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가 죄사함 받았다는 것, 팔레스틴 원주민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 신앙이 아닌 이성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고, 사울과 다윗의 때 속국이 된 것에 대한 앙갚품으로 유다가 바벨론에 망할 때 원수를 갚았다고 이성적으로는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〇 결 론
- 그리스도인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생각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께 따져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야곱의 후손을 에서의 후손이 못되게 한 것을 저주하시면 아멘으로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사람들에게는 약해져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왕성하게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소크라테스를 죽이라는 아테네의 군중은 현중이 아니었습니다.
다수결이면 정의로 받아들이는 세상은 인간적으로는 좋은 방법이지만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고, 또 가져올 수 있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확실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살아갑시다! 주님이 힘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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