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답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앞서 있은 몇 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후에 님의 질문에 응해야 하였기에 부득불 시간이 걸렸습니다.
님이 이번에 질문한 내용은 모두 세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야웨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명칭]의 문제였습니다.
둘째는, 시편에 있는 성구에서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찌어다 영원한 문들아...."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히브리서 6장과 연계해서 칼빈의 5대교리[5대강령]의 하나인 '성도의 견인'을 볼 때 의문을 품었습니다. 왜냐하면 님은 히브리서 6장 1-8절의 내용이 풍기고 있는 뉘앙스가 성도의 견인을 말하는 것 같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과 연계해서 볼 때 성도의 견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씩 설명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들에 대한 각각의 답변은 간단히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이곳 한곳에 세 가지의 답변을 모두 하기에는 그 내용이 길므로 질문하신 내용의 제목에 맞게 나누어서 세 번에 걸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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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질문인 '야웨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답변입니다.(*글을 올리고 보니 ( )에 써 놓은 히브리어 원문은 올려지지 않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야웨 하나남과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 용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용어에 대한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이해부터 먼저 갖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무슨 의미에서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만 열면 '주님'이라고 부르든, '하나님'이라고 부르든 '예수님'이라고 부르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부르는 것으로서의 기록이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4장 26절에서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러면 왜 이처럼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만 했는가 하는 것은 타락한 아담 이후의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여 나가시는 분이 여호와로 불려지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의 역사를 아담과 그 후손이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주도하여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에덴 동산에서 나온 아담과 하와 부부가 아들을 낳는 것에서나 또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삶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4장 1절에서 아담은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아담은 아들[가인]을 낳은 일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란 것에 대한 믿음에 있는 것을 그러한 고백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담의 그러한 고백적인 신앙에는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셨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손(창 3:15)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대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부른 그 여호와께서 약속의 자손을 실현해 주실 것을 바라는 믿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건한 사람들의 믿음이 후손에게 계승되고 대대로 유지되게 하신 데에도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에 따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에 있도록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일생을 주관해 나가셨습니다(참조, 5:22; 6:9).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믿음에 있게 하여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일에서 세상 끝 날의 마지막 택하신 사람에게까지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이름에서 '야웨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이 이름을 지닌 하나님에 대한 표현의 묘사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면 하나님의 이름들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이름에는 님이 질문한 데서 언급한 '야웨'(또는 야훼;Yahweh), '여호와'(Jehovah)외에도 더 있습니다만 그 모두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또 님의 질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도 하구요. 따라서 '야웨'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이 두 이름은 사실 서로 다른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두 이름은 사실은 하나님의 같은 이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야웨'란 이름은 곧 '여호와'란 이름이라는 것이죠.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다른 표현의 묘사로서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라는 것이 아니라 '야웨'가 곧 '여호와'인 것으로 '야웨'란 말이 '여호와'란 말인 것입니다. 분명히 용어가 다른데 무슨 말인가 싶습니까? 이러한 차이나는 듯한 이름은 번역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는 '야웨'(Yahweh)를 흠정역(KJV)에서는 맛소라 사본에 의해서 '여호바'(Jehovah)로 번역하였고 이를 우리 나라 말인 한글 개역에서는 '여호와'로 번역한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실상은 '야웨 하나님'이란 이름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아시겠죠? 이런 때문인지 일부의 사람들은 굳이 '여호와'를 '야웨'로 고쳐서 읽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세례'란 용어를 굳이 '침례'로 고쳐 있는 것이나 '성경'을 굳이 '성서'로 고쳐서 읽는 것이나 '성령'을 굳이 '성신'으로 고쳐서 읽는 것과 같습니다. 번역한 용어에서 본래의 용어가 의미하고 있는 바가 다르게 바꾸어졌거나 축소되었거나 하는 등으로 왜곡되었다면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고쳐서 읽는 것은 그들의 인식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용어를 바르게 사용하고 읽도록 하는 것은 이에 대한 신학적 사상과 학문적 이해를 가지고서 번역하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그러기에 이분들에게는 지속적인 연구와 번역 작업이 요구되어 집니다(참고로 공동번역에서는 '야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따라서 용어상에 문제의 인식을 가지는 분들은 성경이 올바른 용어 속에서 바르게 번역되도록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지, 굳이 의도적으로 고쳐서 자신들만의 용어로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야웨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따라서 부른다고 해서 이 이름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 의미를 잘못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야웨'란 이름을 부르기를 매우 두려워하였으며 따라서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야웨'라고 발음하는 것을 잘못하고 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처럼 하였는가에는 그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기 24장 16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이라"고 하였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죽음을 당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출애굽기 3장 15절의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를 '이것은 나의 비밀 이름'(문자적으로는 '나의 이름은 감취었느니라'임)로 읽은 데 따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읽은 것은 히브리어에서 '영원하다'( : 레올람)는 자음과 '감취어지다'( : 레알람)의 자음이 동일한 데서 기인한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야웨'의 이름을 부르기를 몹시 꺼려하여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여서 불렀는데 '아도나이'( )라고 읽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맛소라 학자들은 이 명칭의 본래 자음은 그대로 두었으나 이 명칭의 모음을 '야웨'( )에 붙임으로써 '여호와'( )란 이름으로 사용하여 부름에 따라서 '야웨'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이 일반적으로 불려졌습니다. (*)
첫댓글 정말로 감사합니다..경건이 맞습니다...참...향기가 있어서 이카페는 좋습니다..^^ 사람사는 향기가 있는거 같습니다..방금전에 가슴시린 일이 있었는데..여기왔다가면서..참..마음이 따스함을 느껴요..
그렇군요. 잘 배웠습니다. 좀 특별한 줄 알았는데 -구별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