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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믿음과 순종의 사람 이삭
김성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삭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노우호: 이삭의 삶은 길게 이야기 할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아버지와 같은 삶은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표상이 되는 삶입니다
그들은 성경도 없었습니다
책도 없었고 교회학교도 없었고 방송도 없었고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순수하게 간직했다는 것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김성윤: 예측을 한다면 믿음의 부모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니까
그 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노우호: 아브라함과 사래가 좋은 부모이기도 하지요
이삭이 얼마나 아버지를 존경했는지는
아버지가 모리아산에서 죽이려고 할 때
도망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후대에 주어진 성경에 기록된 교훈이지만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는 약속이 있습니다만
이삭이 죽기까지 아버지를 순종하고 효도하는 인물이었는데
180세까지 향수 하면서 일생에 어려움 없이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의 장면을 생각하면 재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당히 유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일생동안 흠없이 살다가
아내 말을 듣고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이 있죠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란에서 75세때 부름을 받았는데
85세때가 되어도 아들이 없다 말이죠
10년을 기다렸는데 아들이 없고 사라 자신의 몸도 예전 같지가 않고
갱년기가 느껴지고
사라는 아브라함과 10살 차이니까 75세죠
그래서 초조 해하면서 아브라함의 씨면 되는 것이지
여자인 나는 상관이 없지 않겠나 하면서
자신의 여종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여종 애굽여인 하갈을 아브라함의 방에 보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행동이죠
좀더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결정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하갈을 씨받이로 들여 준 것이다
그렇게 하여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하갈도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 했는지 모르죠
그런데 그것은 잠깐이고
하갈이 아들을 낳았다고 사라가 교만해 지면서
사라의 노를 격동시키며 못 견디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것은 자신이 계획한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지나갑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한동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타나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85세에 이런 일이 있은 후
상당히 세월이 지난 99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은근히 책망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1 아브람의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리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17:20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17:21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이삭이라는 이름은 웃음이란 뜻인데
유대인들 이름 중에 이츠하크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아이작’으로 발음하고 우리말로는 이삭이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니까
사라가 부엌에서 쿡쿡 웃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웃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을 이츠하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김성윤: 사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누구나 웃지 않았을 까요
노우호: 예, 하나님 면전에는 웃지 못하고 속으로 웃었다고 하죠
나중에 아들을 낳은 후에는 사라가 듣는 사람마다 모두 웃을 것이라고
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이야기 합니다
이삭은 이름의 의미가 웃음의 사람이고 웃기는 사람인데
정말 이 사람은 일생동안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이삭의 일생동안 아무도 이삭과 다투지를 못합니다
언제나 스마일로 하니까
누구도 원수를 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온다 해도
이삭은 양보하니까
우물이 우리나라에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그 나라에서는 우물 하나 때문에 전쟁이 납니다
그 나라에서는 아주 척박한 땅인데도 물이 조금 나오면
물로 인하여 풀이 자라고 풀 때문에 양이 살고
양으로 인하여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만 있으면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땅에서 우물은 생명과도 같은 것인데
그런 우물을 빼앗기 위해 그랄 목자들이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소유냐 존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아무리 소유가 귀하지만 존재가 위태로우면 안 되니까
존재를 위해서 소유를 깨끗이 포기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친 교훈이 이삭이 이미 실천했던 교육입니다
[마태복음]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물질관계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교훈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깨끗이 물질은 손해가 되어도 존재(생명)가 안전한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이런 모범을 보였는데
한․두번이 아니고 여러번 시비를 걸어왔지만 그때마다 양보를 합니다
이삭이 양보를 하고 다른 곳에 우물을 파면
그곳도 쉽게 물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을 가만히 보던 시비하던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창세기]
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불가침조약을 제안 하는 자세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이런 이삭과 같은 선한 일을 통하여
불신자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기 원한다고 찾아와야 될 것입니다
한번은 이삭이 살던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때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는데
단순히 이 말씀을 믿습니다
믿고 순종하며 농사를 하였는데 그해에 100배를 얻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26: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
믿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100배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살고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삶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믿는 자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
믿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온갖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두 농사를 하고 육축을 기르고 우물을 파고
개척을 하고 선교하고 손님을 대접하고 이웃과 다투지 않고 살았던 사람인데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소개 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만나서 본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아브라함과 이삭입니다
야곱은 나중에 상세하게 다루겠지만
성격상에 많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후손대대로 자녀손 천대 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복을 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섬겨 왔던 분이라도
후손 대대로 복 받기를 원하고 영원토록 영생하기를 바라신다면
교회를 찾아가서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유산을 물러주었는데
그 약속도 이삭이 물러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시기를
[창세기]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했던 그 약속도 유업으로 물러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이삭은 그곳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단을 쌓는 것을 소홀하게 하지 않고
브엘세바에서 꾸준히 살았습니다
이러한 삶을 가만히 지켜본 블레셋의 그랄 목자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 부터 이삭에게로 찾아와서
평화의 조약을 맺습니다
이삭은 원수처럼 행동했던 이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게 되죠
후덕한 아브라함의 인품을 본받아 이삭도 위대한 선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삭과 더불어 평화를 배우는 삶을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3. 악착같이 움켜잡는 야곱
김성윤: 아브라함과 이삭... 오늘은 야곱의 생애에 대하여 말씀 나누겠습니다
야곱은 야곱의 이름이 의미하듯 악착같이 움켜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편안한 삶이 아닌 것 같아요
노우호: 예, 창세기에 나오는 4사람의 족장 중에서 가장 험악한 일생을 보냈습니다
생애 끝이 좋아서 복된 사람이지만
그리고 어려움을 격은 사람들이 좋은 교훈을 남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잘 먹고 잘살다 갔다면 드라마틱하지 않고 교훈도 없지요
그러나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입니다
정말 아버지 이삭과는 다른 삶을 살았군요
예, 성품이 아버지도 닮지 않고 가문에도 없는 돌연변이처럼 태어나서
자신도 고생이지만 주위사람들도 많이 힘들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품 때문에 자신도 힘들고
주위 사람들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 이삭은 얼마나 양보를 잘 하는 사람입니까?
예, 이삭은 양보의 사람이고 순종의 사람인데
야곱은 처음부터 양보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뱃속에서부터 계속 에서와 싸우니까 어머니 리브가는 견디기 힘들죠
리브가의 자녀는 이 쌍둥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였죠
이렇게 힘들 것 같으면 아기를 갖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뒤에는 아기가 없습니다
리브가는 뱃속의 두 아이의 진통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러 갑니다
하나님께 못살겠다고 항의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네 뱃속에 두 국민이 있구나!
[창세기]
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처럼 나라가 나누어 질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개인의 다툼이 아니고 먼 미래를 보며 두 국민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란성 쌍생아 이었나 봅니다
성경도 다르고 체형도 다른 모습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은 에서 탓이 아니고 순전히 야곱 때문에 어렵게 됩니다
야곱의 성격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어머니도 힘들고
낳은 후에도 화평한 관계가 한번도 묘사된 적이 없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하고 20년 동안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는데
이 쌍둥이를 낳고는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고 두 형제만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형제가 잘 지내지 못하고 늘 싸우고
언제나 에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야곱이 빼앗으려고 했을 것이고
집안은 편하지 않는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성윤: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다투었다고 하니까
태어나서도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죠?
노우호: 3초 늦게 나와서 형의 장자명분을 빼앗으려는 마음도 포기하지 않고
팥죽을 끊이는 중에 배고픈 형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게 됩니다
에서는 장난처럼 말을 했지만 야곱은 악착같이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됩니다
장자의 명분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복이 있어야지요.
아버지 이삭은 다른 면은 건강하고 장수 했는데
130살 되니까 시력이 좋지 않았고 청력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아들에게 축복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까
우리나라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축복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통에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결정적인 축복
즉, 임종직전의 마지막 축복은 권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데
야곱보다는 사실상 어머니 리브가가 이런 계획을 세웁니다
아들 야곱은 아버지가 만져보면 금방 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인데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염려를 하지만
리브가가 야곱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염소털을 팔에 붙여서
형 에서의 팔처럼 털이 많게 변장하고 음성도 변조해서 이삭에게 들어갔는데
그러나 이삭이 좀 이상했는가 봅니다
에서의 손은 맞는데 음성을 야곱의 음성같다고 하면서도 속아 넘어 갑니다
이렇게 복을 가로채로 난 뒤에 에서가 굉장히 분노하게 됩니다
에서는 성품이 관대하고 너그럽기 때문에 그만한 일 가지고는 화를 내지 않지만
그러나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복을 가로챈 것을 알고는
에서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건강을 생각하면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현재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절제를 하지만
아버지를 장사한 뒤에 야곱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을 리브가가 듣고
크게 염려하여 야곱을 외가댁 밧단아람으로 도망치게 하는 장면을 봅니다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경우라면
나이가 10대 청소년 시절일 것이라 생각 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일로 외가로 도망할 때 야곱의 나이는 70살 정도 되었습니다
이삭은 130세 정도 되었고
에서는 결혼을 했지만 야곱은 그때까지도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120에서 180세정도 살았기 때문에
70살 이라고 해도 중반의 나이라 생각이 되지만 그러나 70세는 늦은 편입니다
야곱이 하루쯤 도망을 가다가 잠을 자게 되었는데
거기가 벧엘이라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루스였는데
거기서 야곱은 돌베게를 가지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는데
꿈속에서 자신이 누운 곳에서 사닥다리가 하늘로 이어져 있었고
그 사닥다리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던지 잠을 깨어서 그곳을 하늘의 문으로 알았어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없는 그곳에 특별이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약속도 재미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평안이 돌아오게 하고 아버지 집에 잘 도착하게 하고
자신이 가는 길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야무지게 따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따지지 아니하시고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이룰 때 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은혜로운 약속을 하시는데
야곱은 쩨쩨하게 약속의 조건을 덧붙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야곱의 성품에 나오는 것이죠
결국 야곱은 자기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처음에는 환영을 받게 되지만
야곱의 성격이 고약한 면이 있으므로
외삼촌 집에서 20년동안 살면서
외삼촌이지만 딸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았으니 장인도 되죠
장인이자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야곱의 생각에 자신이 장인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두 명의 아내를 위해서 14년을 일하지만 자신의 재산은 없고
자신도 언제 집을 세울 것인가 하고 삼촌에게 항의 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 들어오고 난 후
하나님이 야곱으로 인하여 그 집에 복을 주신 것이 사실입니다
야곱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식도 커가고 아내도 둘씩이나 되니까 자신의 소유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이 품삯을 정합니다
그러나 품삯을 10번이나 속이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 라반도 좋은 사람인데 야곱이 성질이 못되게 행동하니까
두 사람은 점점 관계가 악화되어
야곱이 밤에 몰래 도망을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같이 전도를 하면 안 되겠죠
20년이 자나는데도 외삼촌 가정을 전도 못하고
오히려 외삼촌이 섬기던 드라빔이라는 우상을 라헬이 훔쳐서 가지고 나와
선교 당하는 꼴이 된 것이죠
신앙이 순수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흐릿해 지고
결국은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어려워지고
또 물질관계도 풍성하지 않고 참 어려움을 격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소중이 여기고 인간관계를 소중이 여기면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야곱은 이것을 모르고 야곱은 계속 소유(물질)를 챙기는 성격 때문에
소유도 넉넉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도 항상 어렵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늘 원만하지 못하고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있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야곱의 일생을 우리가 어떤 면에서 좀더 자세히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정말 믿고 순종하면 쉬운데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참 어렵게 만듭니다
그의 130년의 나그네 인생길은 자신의 말대로 한 줄로 줄이면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130년을 돌아 볼 때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후에 애굽에 가서 비로소 17년을 더 살게 되어 147세까지 살았는데
애굽에서 마지막 17년은 하나님의 은혜의 삶이였고
130년은 자신의 잘못된 성품으로 아주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4 야곱의 아들들이야기
노우호: 오늘은 야곱의 아들들을 살펴 볼 것인데
요셉의 이야기부터 하고자 합니다
요셉은 꿈을 가진 소년이였죠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부모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쪽에서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다른 쪽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12명의 아들의 성품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성경에서 몇 명의 아들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각각의 아들들이 개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2명의 아들 혹은 12지파를 축복하는 모세의 축복이나 야곱이 축복을 보면
그의 아들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요셉에 대하여는 야곱도 풍성하고 후한 축복이 있었고
모세가 하는 12지파의 축복 가운데도 요셉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게
큰 축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자 루우벤은 성품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나이가 많아지도록 결혼을 못하니 결국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한순간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므로 일생일대의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도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요셉을 죽이지 않고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
루우벤 이었습니다
역시 장자다운 면을 볼 수 있죠
루우벤의 이름의 의미는 ‘보라 아들이다’ 인데
레아가 첫 아들을 낳고서 굉장히 기뻐하며 붙인 이름입니다
루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에 오르면서 장자의 명분을 상속하지 못하게 되고
둘째가 시므온 셋째아들이 레위인데
분노가 혹독하고 노여움이 맹렬한 모습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아
저주를 받게 됩니다
[창세기]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이렇게 아들에게 복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아버지의 심정이
아버지 야곱의 기도 속에 묻어나옵니다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한 루우벤이 결국은 장자의 복을 상실하게 되고
둘째와 셋째도 상실하게 되고
넷째 유다도 잘못했다가 돌아왔지만
성경을 보면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자의 명분의 갈래가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유다로
하나는 요셉으로 흘러 갑니다
아버지 야곱의 축복의 두 맥이
유다를 통해서 하나의 맥이 흘러가고
요셉을 통해서 또 다른 맥이 흘러갑니다
창세기를 읽을 때 아런 것들을 간파해야만 숲도 보고 나무도 보는
큰 흐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큰 흐름은 야곱의 아들 중에
하나는 레아의 소생이고
또 다른 하나는 라헬의 소생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죠
아무리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이지만
레아가 큰 부인입니다
아무리 귀여움을 받았지만 라헬은 둘째 부인입니다
그래서 미움 받는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이 첫 아들일 때
율법에서 규정하기를
사랑받은 여인의 아들이라고 첫아들의 명분을 가질 수는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야곱의 가정을 경험하면서 훗날 기록한 것이기에
이런 규정을 넣었던 것 같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버지 야곱의 마음도 상하게 하므로
노여움이 혹독한 사람들은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유다는 네 번째 아들인데
그의 회개와 반성이 마침내 아버지의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요셉과 유다는 두개의 산맥으로 이어져서
훗날 유다는 남쪽 유다지파의 대표가 되고
요셉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표가 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인데 장자의 명분과 같은 큰 복을 받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표가 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과정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죠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갔을 때나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 갔을때도 요셉의 성실한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요셉의 모습을 본받아야 될 텐데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애매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가 죄를 짓고 고난을 받으면 아무런 자랑 할 것이 없겠죠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이
[베드로전서]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런 말씀의 모본이 요셉이죠
선을 행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정직함과 순전함을 끝까지 지켜 나갑니다
그리고 요셉의 일생을 보면
어디를 가든지 은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나중에 할 일이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김성윤: 요셉은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었어요
노우호: 그럼요, 아버지에게도 사랑을 받고 보디발의 집에서도 은혜를 입고
감옥에 갔을 때도 간수에게서도 은혜를 받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기고 신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바로왕에게 가서도 왕에게 은총을 입게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셔서 사랑 쏟을 곳을 찾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그 사랑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게 할 수 없죠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남편을 사랑하기 전에
남편의 사랑을 달게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랑을 받는 아내
은혜를 받는 사람
성도들이 교회에서 충성을 먼저 하지 말고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정신입니다
나중에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수 있고
나눠 줄 것이 있습니다
남에게 받아본 사람이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요셉처럼 어디가서든지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김성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겠죠?
노우호: 예, 하나님을 떠나서는 은혜를 받을 길이 없고요
그리고 2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첫째 겸손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예절이 바르면 은혜를 받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기본적인 예절을 갖춘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예절이 없는 사람과 있으면 짧은 시간이라도 피곤하게 됩니다
사람이 은혜받는 길이
은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속에서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겸손하고 예절 바르면
반드시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고이 간직하면서 소망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다가도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개꿈으로 취급하면서 꿈을 버리는데
요셉은 칠흑 같은 어두운 날들을 보내면서도
자기에게 주신 꿈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어떤 방법으로 성취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게 주신 꿈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꿈을 간직하고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의 힘이죠
우리가 소망이 있을 때 어려운 날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다면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면 선을 행하다가 포기하게 되고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킬 수가 없게 됩니다
요셉은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키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예절바르게 함으로써 어디를 가서든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표상처럼
어려운 날들을 격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날들을 격으면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여
30세의 어린나이에 대 애굽제국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원수를 갚지 않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팔아버린 형님들을 모두 용서하고 포용하며
그들의 가족들도 모두 보살피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으면 언제나 보복하려고 하지만
요셉의 마음은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든 것이 예수님을 닮은 그림자로 칭찬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을 잘 공부해서 본받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야곱의 이야기와 요셉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면서
상당히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고
아브라함이 은혜를 입었고
이삭과 야곱이 은혜를 입었고
요셉이 은혜를 입었고
다윗이나 솔로몬
룻이나 기생 라합, 바울...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로서
위대한 삶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예절을 배우면서 은혜를 받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이 요셉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은혜를 받고
복 있는 사람이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5. 야곱의 편애와 비극
김성윤: 목사님, 저번시간에는 꿈을 가진 요셉을 살펴 보았는데요
노우호: 예, 이 시간에는 요셉과 함께 유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다는 히브리어로는 ‘여후다’인데
여후다의 뜻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요즘 사람들은 자녀의 이름을 찬양이라고 많이 짓죠
유다가 곧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입니다
김성윤: 찬송할 자라는 뜻을 가진 유다가 동생 요셉을 팔 때 앞장선 사람이잖아요
노우호: 예, 정말 일생일대의 잘못을 범하게 되죠
그러니까 사람을 미워하다가 보면 반드시 실수하게 됩니다
시기 질투가 이처럼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울 때 미움이 생기지 않도록 편애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편애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편애하면 부모가 형제간을 이간시키는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 자녀를 기르게 되거든 한 아이를 책망할 때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못되죠
자녀들을 고르게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헬의 소생인 야곱과 베냐민을 편애 한 것은
인간적으로는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예뻐서라기보다도 어머니가 없고 또 늦게 노년에 얻은 아들이고 어리니까
애처롭고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이해가 되죠
그런데 형님들이 미워하는 감정도 이해 할 수 있죠
이런 면에서 성경은 사실적이고 진실 되게
인간들의 삶 가운데 있을법한 일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여러 가지 면에서 똑똑한 사람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할 때 앞장선다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아넘기는데 앞장서게 되면서 어려움을 격게 됩니다
성경을 파노라마식으로 읽어가다 보면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런데 갑자기 요셉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요셉이야기는 중단되고
38장에서 유다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요셉을 팔고나서 유다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38장에서 곧장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요절이나 단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지만
성경의 흐름의 큰 줄기를 보면서
이 흐름의 줄기가 어느 줄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다이야기가 길지는 않지만
요셉의 이야기 속에 유다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의미를 잘 살펴야 되겠습니다
동생 요셉의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하며
자살까지 생각하는 아버지 야곱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결국 집을 뛰쳐나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내려가서
수아의 딸을 취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께 연락도 없이
그야말로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것이 더욱 불행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첫 아들 엘을 낳고 둘째 아들 오난을 낳고
이들이 장성하여 며느리까지 보게 되는데
큰 아들 엘의 아내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입니다
이 며느리는 엘과 결혼하자마자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엘이 죽게 됩니다
장자를 잃은 유다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고
또 자녀도 없이 과부가 된 며느리를 보게 될 때 더욱 가슴 아프죠
그 나라 풍습에는 형이 자녀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하게 되면
동생이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 해서 형님의 아들을 낳게 해서
그 이름으로 그 가문을 잇게 하여 장자의 명분이 형수가 낳은 아들에게로 갑니다
아버지의 재산도 형수가 낳은 아들에게로 가게 되니까
오난은 형수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이것을 계산하게 되고
형수에게서 아들이 나오면
아버지의 많은 재산이 전부 그쪽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하고는
결국은 형수가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게 땅에 설정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행위가 하나님께 악한 행위로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게 됩니다
죽은 자식은 고사하고 살아있는 유다의 고통은 끔찍한 일이죠
장자와 차자가 모두 죽었다는 것은 정말 불행이죠
세상에서 가장 불행이 있다고 한다면
자녀가 죽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일 것인데
유다는 아들 둘을 모두 죽게 되는 어려움을 격게 됩니다
이제 셋째 아들 셀라가 너무 어리기에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 할 때 까지 친정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유다의 아내마저 죽게 됩니다
유다에게는 아들 둘씩이나 죽은 것도 큰 불행인데
아내마저 죽게 되니까 이제 하나 남은 아들 셀라만 바라보고 살아가게 됩니다
유다가 그 혹독한 날들을 격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야곱이 아내를 잃고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하는 것을
아버지의 낯을 피해서 집을 나가버리면
아버지의 괴롬운 심정을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이런 일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셀라가 자라게 되지만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줄 마음이 없습니다
여자다말이 아들 둘씩이나 죽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유다는 셀라가 장성하였지만 다말에게 줄 생각도 없고 다말을 부르지도 않으니까
며느리 다말은 은근히 마음에 앙심을 품고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을 하고
양털깍는 길목에서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게 됩니다
유다도 아내가 죽고 세월이 지나면서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고
결국 창녀의 유혹에 넘어가 창녀와 하룻밤을 지내고는
화대가 없어서 지팡이와 인장을 대신 주고는
내가 양털을 깍고 내려올 때 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지팡이와 인장을 주고 그 집을 나왔는데
돌아오면서 보니까 그 창녀가 없어졌다 말이죠
유다의 생각에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
지팡이와 인장은 다시 만들면 되겠지 하고 지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소식이 들려오기를
친정에서 수절하던 며느리 다말이 배가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는 유다가 노발대발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들도 죽고 아내도 죽은 불행이 겹친 상황에서
며느리마저 못된 짓을 하여 배가 불러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노여워했던지
당장 여자를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라고 합니다
며느리가 화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이 지팡이와 인장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고 하면서
지팡이와 인장을 유다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유다가 받아보고 충격을 받게 되며
며느리가 행한 일이 자신이 행한 것보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에게 주지 않은 것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은 그가 나보다 옳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고 아기를 낳게 되는데
쌍둥이였습니다
산파가 아기를 받으면서 보니까 한 아이가 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네가 장자구나 하면서 손목에 붉은 줄을 매여 주었는데
붉은 줄을 메었던 손은 들어가고 다른 아이가 먼저 나온다 말이죠
그래서 네가 어찌 터치고 나오느냐 하면서 이름을 베레스로 짓고
뒤에 나온 아이를 세라로 지었습니다
유다가 이 쌍둥이를 볼 때
아들도 아니고 손자도 아닌 것이 이상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마음이 많이 상하게 되고
한편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깨닫고 회개하여 변하게 됩니다
결국은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잘 모시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유다의 못된 성질은 변화되어 장자가 될 만큼의 분량이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유다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죠
다윗왕이나 모든 이스라엘의 왕들이 유다의 후손입니다
베레스에게로 장자의 명분이 넘어 가니까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은 것이죠
이런 족보는 룻기서 끝에 가면 은혜의 흐름이 유다지파를 통해서
즉, 유다의 아들 베레스를 통해서 흘러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아버지에게 회개하고 돌아와서 지난날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 효도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잘 하려고 노력했던 유다를 보면서
깊은 수령 같은 날들을 지나면서도 유다가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은총을 다시 베푸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젊은 날 한때 실수하고 죄를 범한 일이 있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유다의 아버지 야곱도 용서 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도 그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다시 은혜의 길을 연장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가 행한 것은 누가 봐도 용납 받을 수 없는 못된 짓이지만
그가 그 댓가를 지불하고 깊은 회개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고
그 다음 부터는 모든 형제를 화목하게 하는데 앞장을 서고
마침내 베냐민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창세기]
44: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요셉도 그 형님 유다에 대한 나쁜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고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요셉이 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형제들 간에 불화가 없고 완전히 화목 되는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야곱의 아내 4사람이 낳은 12아들이
마침내 모두 화목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창세기의 끝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김성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세49장 8절 말씀입니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6. 실패하는 선교사 야곱
노우호: 창세기를 넘어서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고생하는 기간을 지나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창세기를 제외한 나머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런 책들은
거의 동시에 연구가 되어야 될 책인데
만약 이런 책에게서 요절 몇 개를 외우고 복 준다는 구절만 관심이 있으면
성경전체의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는 것이나 이삭, 야곱, 요셉을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과 교재 하여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후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교적인 목적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아브라함은 잘 수행 했습니다
이삭도 대체로 선교적인 좋은 삶을 살았죠
그런데 야곱은 실패한 선교사처럼 살았습니다
만약 야곱의 자녀 중에 요셉이 없었다면
요셉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애굽 사람에게 하나님을 선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야곱은 선교적인 면에서는 정말 형편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나중에 요셉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왕에게 전파되는 결과가 옵니다
요셉은 매우 지혜로운 선교사로서
애굽왕 바로에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봉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사장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훈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냥 대수롭게 생각하는데
선교사다 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제사장민족이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받아야 할 훈련이 진흙이기는 것과 벽돌 굽는 일
즉, 종이 되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거룩한 백성이 되고
섬기는 백성이 되려면 종이 되는 훈련부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삶을 상당히 오랫동안 받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받는 훈련이 모세의 시종자가 되어 종이 되는 훈련을 받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지도가가 되는 훈련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이 되는 훈련을 하지 않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되기 어렵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는 것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엘리사를 얼마나 무시했던지
옛날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자라고 표현합니다
주인의 손에 물을 붓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거든요
이렇게 종이 되는 훈련부터 해서
나중에 스승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주와 스승이 되면서도 섬기려고 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백성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 과정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때 노인들이 교도하던 말씀은
왕께서 이 백성의 종이 되어서 백성을 섬기면
이 백성도 종이 되어서 왕을 잘 섬길 것이라고 했는데
왕에게 종이 되라고?
르호보암이 이 교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
마땅히 모든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생각과
그리고 목회자들이나 장로들이 성도를 섬기는 종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왕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최 고도로 발달된 민주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은
백성을 섬기는 대통령, 백성의 공복이 되는 대통렿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깨닫게 되는데
성경을 진작부터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되거나 왕이 되는 사람은 백성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이 훈련받는 과정은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민수기는 선민들의 훈련일지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민이란 말은 선택받았다는 자만심만 가지고 있어서는 않되죠
자만심으로 태만에 빠지면 징계를 받게 되고
선택받은 제사장의 직분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단히 훈련을 받아야만 주어진 사명을 완수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겠죠
이스라엘사람들을 훈련한 냉용이 레위기란 책이죠
레위기에 기록된 내용으로 훈련받은 것을 기록한 것이 민수기이고
이것을 다시 해석한 책이 신명기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뒤에 이어지진 책은 동시에 살펴야 할 책인데
대부분 성도들이 출애굽기를 읽다가 25장쯤 나가면 재미가 없어 덮어버리죠
왜냐하면 거기 성막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도면으로 그렸으면 깨끗하게 성막이 이해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성막의 설계를 글로 표현을 하다보니까
굉장히 지루하고 복잡한 과정이 이어집니다
25장부터 40장까지 16장을 그런 내용이니까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출애굽을 못하고
애굽에 갇혀서 성경읽는 것을 포기 하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의 훈련이죠
성경의 내용이 지루한 부분이 있지만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읽는 것도 하나의 훈련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범사에 인내하면서 참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민수기도 보면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데
이런 모든 과정은 우리들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유대인들은 그것을 글로 읽는 정도가 아니고
살면서 몸소 실천한 것인데
오늘날 우리는 읽는 것을 지루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어렵습니다
훈련을 받는 사람의 기본자세는
순종과 복종 그리고 믿음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10번이나 되풀이 되는 재앙이 나옵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믿으면 언제나 유익이 되고 복과 은혜가 되는데
말씀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가 되고 손해를 보는
그런 훈련을 10번 하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 말씀이면 반드시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정말 순종해야 된다는 인식이 생길 때 까지
재앙이 10번 되풀이 됩니다
그 훈련을 통해 백성들의 생각이 바뀐 뒤에 출애굽사건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제일 먼저 배울 것은
하나님 말씀이라면 믿는 훈련
하나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훈련
이런 것이 처음에는 잘 안되죠
우리에게 아직 체험되지 않은 일들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면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운 것은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반드시 복이 되고
거역하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다음 출애굽하게 되죠
그래서 어떠한 경우에도 훈련 받는 사람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훈련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 말씀인지 확실히 아닌지 아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것이 확실 할 때는 믿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고 순종하는 것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니까
하나님 말씀을 삼가 잘 듣는 것
듣고는 깨닫고 깨닫고 믿는 것 믿고는 순종하는 것
사실상 단순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게 되면 반드시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오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큰 계시중의 계시죠
애굽의 학대로부터 해방을 받고 선민으로서 훈련 받는 것은
감사하고 감격할 일입니다
김성윤: 그러나 불평하고 불만이 있었잖아요?
노우호: 예, 훈련생은 그렇습니다
피교육자는 언제나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불평이 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머물렀던 자리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애굽에서 바로의 종 되었던 집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면
그들은 진흙이기는 일과 벽돌 굽는 일을 하다가 멸종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니까
더 이상 사내아이가 태어나지 못하면 결국 민족은 멸종되는 것이죠
이렇게 멸종되는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구해준 것을 돌아보면서 감사해야 되고
또 홍해 바다를 맨땅 밟듯 건너오게 하고
바로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킨 하나님을 감사해야 되겠고
또 약속의 땅에 들어갈 미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과거를 돌아보면 애굽 땅에서 바로왕의 종 되었던 것에서
강한 손 편 팔로 구원하신 하나님을 감사하면서 순종해야 되고
미래에 주어질 영광스러운 소망의 나라인 가나안땅을 생각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순종하여야 되는데
그런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애굽에서 나왔던 장정들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만한 사람들
칼을 뺄만한 사람들 603550명이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사십년 동안에 광야에서 모두 죽습니다
이 안타까운 장면들이 민수기의 내용입니다
오늘날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우리도 마치 그 광야에서 약40년 동안 거룩한 백성 되는 훈련을 했던 것처럼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위해
세상광야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을 참고 훈련을 달게 받는 그런 백성이 될 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죠
돌아보면서 감사하고
미래의 소망을 바라고 감사하고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찬송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시간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바로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27. 야곱의 험악한 세월
김성윤: 할아버지도 닮지 않고 아버지도 닮지 않은
악착같은 야곱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노우호: 예,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에 비교하면 성격도 차이가 나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를 살았는데
야곱은 147세를 살았으니까 오늘날 우리들에 비하면 많이 살았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조상들의 연수에 비하지 못하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자신의 일생을 한 줄로 줄이면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야곱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는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야곱의신앙의 적극적이고 좋은 면만 강조하고 듣다보니까
야곱의 일생에서 그늘진 곳이 많았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노라마식으로 성경을 전체로 보게 되면
밝은 면만 보는 것이 아니고 그늘진 곳도 보게 되고
혹시 우리의 삶 속에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식구들을 데리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와서
얍복강을 건너고 도중에서 에서를 만났을 때
형 에서는 함께 가기를 제안하지만
야곱의 생각에는 나중에라도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것을 문제 삼지 않을까 하고
불안한 마음에 극구 사양을 합니다
부하들 몇 명을 머물게 해서 동생과 그 가족을 지키게 하겠다는 것도 사양합니다
결국 형은 세일로 가고 야곱은 숙곳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납니다
디나의 나이는 20세를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밧단아람에서 지냈던 기간이 20년이 안되니까요
성경에는 아들 낳은 것만 기록되어 있고 딸들의 기사는 없죠?
디나를 제일 먼저 낳지는 않았을 것이고
디나의 나이가 아마 15살을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죠
이 일이 야곱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오라버니 되는 시몬과 레위가 보복을 하는데
아주 나쁜 방법으로 보복을 합니다
즉, 세겜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들처럼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주겠다고 속였는데
세겜 사람들의 남자들과 그 속속 전체가 할례를 행합니다
디나를 얼마나 욕심을 내었으면 그 부족이 모두 할례를 받으면서 까지
디나를 아내 삼기를 원했던 것이죠
그들이 할례를 행하여 몸이 불편할 시기에 시몬과 레위가 부하들을 데리고
몸이 불편해서 거동을 못하는 모든 남자들을 모두 칼로 죽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는 굉장히 노여워 하죠
그리고 나중에 야곱이 죽기 전에
12명의 아들에게 복을 빌면서 기도 하는 것을 보면
시몬과 레위에게는 복을 빈 것이 아니라 저주를 합니다
저주의 내용이 뭐냐하면
[창세기]
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49: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처럼 분기가 가득하고 노염이 혹독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경우 분을 지나치게 발하거나 노여움이 혹독한 사람들은
자칫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저주를 받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하는 불행한 일이 있고
시몬과 레위가 세겜사람들에게 비겁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을 했다는 소문이
좁은 근동 지방에 퍼져 나가니까
야곱이 아들들을 결혼을 못시키는 것입니다
혼인은 집안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므로 소문이 중요한데
결혼하기가 어렵게 되면서 그 중에 큰 아들 르우벤이 제일 나이게 많죠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조혼을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보다 일찍 결혼을 하죠
이렇게 르우벤이 나이가 많게 결혼을 못하니까
남자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자기의 서모 빌하의 이불 밑에서 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빌하가 르우벤 부모에게는 종이지만
아버지가 빌하를 통해서도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서모라고 할 수 있죠
즉, 어머니침상에 올라가서 통간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야곱으로서는 정말 난처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야곱의 가슴에 자꾸만 쌓이게 됩니다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시키지 못한 야곱으로서는
르우벤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장자로서 못된 짓을 한 이 아들에게 장자의 명분이 이어질 수 없고
다음 아들이 시몬과 레위인데
그들도 세겜에게 행한 악한 일로 노여움이 혹독하고 분기가 맹렬한 것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줄 수가 없습니다
넷째아들 유다를 지목하였는데
유다는 요셉을 팔아먹은 후에
요셉을 잃은 아버지가 너무 상심하고 괴로워 하니까
아버지가 날마다 괴로워하는 얼굴을 마주대하기가 어려웠던가 봐요
유다는 결국 집을 나갑니다
유다가 여러 가지 면에서 똑똑한 구석이 있어서 장자로 삼을까 했는데
유다가 집을 나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내려가서 살다가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취하여 아버지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결혼을 합니다
그 후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았는데
엘과 오난이 죽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악하였는지는 설명도 없지만
하나님에게 바르지 못하고 부모형제에게 잘못하게 될 때
그 저주와 형벌이 어떤 식으로 오느냐 하면
아주 못된 자녀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녀가 패역하고 괴악하다면 일평생 괴로움이 되겠죠
두 아들이 죽고 유다의 아내도 셀라를 낳고는 곧 죽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체험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차츰 이해하게 되죠
아들 요셉을 잃었을 때의 아버지 심정과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죽었을 때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사람은 몸소 체험하지 못하면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결국은 돌아오게 됩니다
어려움을 격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양털 깍으러 가다가 어떤 창녀가 길에서 유혹하는데
유다가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창녀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로 밝혀집니다
이것은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 했는데도 며느리에게 주지 않으니까
며느리 다말이 보복하는 심정으로 창녀로 변장해서 유다를 유혹한 것으로
유다가 이해는 합니다만 마음은 망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결혼을 해서 얻은 아들들이 죽고 아내도 죽고
며느리와 이상한 관계로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들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것이 아들이라 할 수도 없고 손자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격은 후에 유다는 아버지 야곱에게 돌아오게 되고
아버지의 연세도 많으니까 지금부터 아버지를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 왔는데
효도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곧 흉년이 들어 식구만 더 보태는 결과만 되어
아버지를 더 어렵게 합니다
야곱이 격는 괴로움은 계속 겹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가 집을 나간 동안에 야곱은 수단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아들들을 모두 결혼 시킵니다
결혼한 아들들이 자녀가 낳으니까 식구는 잔뜩 늘어나 70명이나 됐는데
그 땅에 흉년이 오게 됩니다
흉년이 계속되니까 양식이 떨어지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니까
이웃나라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양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막내 베냐민은 어리다고 보내지 않죠
사실은 어린나이가 아닌데 늘 편애하는 마음이 늘 있는 거죠
라헬이 낳은 아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갔으니까
어미 없는 아들이라 좀더 사랑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죠
양식을 구하러 갔던 아들들이 요셉을 만났지만 요셉은 알 수 있지만
형님들은 너무 신분이 높아있는 요셉을 전혀 알 수 없죠
나이가 든 사람들은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지만
한창 자라는 나이에 팔려갔고 신분도 애굽의 국무총리니까 도무지 알기 힘들죠
양식을 구하러 왔던 형들 모습은 형편이 없었을 것입니다
흉년을 지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못 먹은 형편과
먼 길을 여행하면서 목욕도 못하고 머리도 수염도 깍지 않고 옷도 헤어지고
이런 상태에서 요셉 앞에 나타난 형들의 모습은 측은했을 것입니다
그 때 요셉이 놀란 것은
자기와 한배(라헬)에서 난 베냐민만 그 무리 중에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베냐민은 또 어디에 팔아먹었나?
이것이 충격이 되어 그들을 간첩으로 취급하여
친동생 베냐민의 생사를 확인 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야곱의 남은 이야기를 다음시간에 조금 더 연장하기로 하죠
김성윤: 그러죠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8. 야곱의 어려운 날들
노우호: 야곱이 양식을 구하러 보낸 뒤 기다리고 있는데
애굽에 갔던 아들들은 간첩의 누명을 쓰고 잡혀있으니까
아이들은 배가고파 아버지들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어머니에게 칭얼거리며 아버지 언제 오느냐고 졸라대곤 하겠죠
한편 애굽에 잡혀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김성윤: 예,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노우호: 아이들은 배가 고파 굶어 죽을 판인데
양식을 구해서 가기는 고사하고 간첩으로 몰려서 감옥에 있으니까
절박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우리가 전날에 요셉이 팔려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도움을 청할 때
무시하고 그런 못된 짓을 했기에 이런 천벌을 받는다고
요셉의 앞에서도 자기들끼리 말이 오고 갑니다
형들은 요셉이 애굽 사람이니까 자기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자기들의 잘못을 요셉 앞에서도 마음 놓고 이야기 하는데
요셉은 형들의 말을 모두 알아듣고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구석진 곳에 가서 실컷 울고 나와서는 형님들에게 제안하기를
나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인데
집에 있는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니까
여기에 모든 사람들을 잡아 놓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여기 한 사람만 볼모로 잡혀있고
나머지는 양식을 가지고 가서 식구들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라고 우기고
또 말째가 집에 남아 있다고 했으니까
너희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양식을 구하러 와야 할 것인데
그때는 너희 형제들 중에 이번에 데려오지 않은
막내를 데려오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겠고
말째를 데려오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주어서 돌려보내는데
요셉이 지혜롭게 양식구하기 위해 가져 왔던 돈을
양식 자루에 모래 넣어 함께 보냅니다
가져간 양식은 떨어졌는데 돈이 없으면 또다시 올수가 없으니까
돈을 함께 넣어 보낸 것이죠
그들이 한참 가다가 자루에 돈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누가 넣었는지 모두 모른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너무 먼 길을 다시 돈을 돌려주기란 어려워서 이왕 이렇게 된 것
집에서 기다리는 자식들이 더 급하니까 우선 집으로 가기로 하고
다음에 올 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돌려주기로 하고 집으로 갑니다
오니까 아이들과 아내와 야곱이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들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몬이 애굽에 볼모로 잡혀 있는 거죠 야곱이 시몬은 왜 오지 않는지 물어보니까
여차여차해서 데려오지 못했다고 하지만
야곱의 생각에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을 볼 때
시몬을 어디에 팔아서 양식을 가져 온 것으로 생각이 되니까
야곱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돌이켜보면 디나는 강간을 당하고
큰아들 르우벤은 어머니 이불 밑에 들어가 못된 짓을 하게 되고
사랑하던 아내 라헬은 죽고 요셉도 야곱의 입장에서는 죽은 것이고 시몬도 없어졌고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어지고
인간적으로 애착을 가졌던 모든 것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야곱은 악착같고 움켜잡으면 놓을 줄 모르는 성품의 소유자인데
돈이나 양이나 소때도 라헬도 야곱도 베냐민도
이렇게 인간적으로 좋아하던 모든 것이 자꾸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는 것을 보면 못된 야곱의 성품을 고쳐서 사람 같은 사람을 만드는데
하나님이지만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애굽에서 구해온 양식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굶주렸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먹겠어요!
또 11명의 자기자식들을 먹이려고 양식을 챙기려고 마음먹으면
곧 양식이 떨어지게 되는 거죠 양식이 떨어져 가니까
야곱이 언제까지 관망만 하고 있을 것인가 하면서
다시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다그치니까
이 아들들이 주저주저 하면서 가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다시 가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베냐민을 내놓으라고 아버지에게 말을 못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시몬을 팔아먹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볼모로 잡혀 있다고 해도 아버지 야곱은 믿지 못하니까
이렇게 믿지 못하는 성품이 야곱의 성품이고
대게 자신이 순진한 사람은 남을 잘 믿는데
못된 사람들은 남을 믿지 못하거든요
야곱이 믿음을 갖지 못하니까 자기마음이 이렇게 괴롭습니다
그래서 똑 바로 말하라고 다그치니까 바른말 한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양식을 구해 올 수 없다고 하니까
베냐민 까지 빼앗아 가려고 하는 아들들의 못된 마음을 오해하면서 가슴아파하는지
너희들은 나를 해롭게 하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베냐민 하나 움켜잡고 있는데 베냐민마저 데려가려고 하니까 노발대발 합니다
하지만 며칠 지난 후 정신을 차려 보니까
베냐민을 그냥 데리고 있어도 모두 굶어 죽을 판국에
할 수 없이 베냐민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하면서 베냐민을 내어줍니다
문제는 베냐민을 내어 놓으라는 이 어려운 이야기를 누가 해야 되느냐하면
유다가 해야 합니다 유다가 옛날에 요셉을 팔아먹을 때 앞장을 섰던 일로
이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돌아 왔는데
베냐민을 내 놓으라고 아버지에게 말을 해야 할 입장이니까
유다의 마음도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하는 말이
만약에 내가 이 아이를 데려오지 못하면 나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손자를 죽이는 할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얼마나 애가 타면 자기의 아들마저 죽이라고 까지 하면서 다짐하지만
야곱은 믿을 마음이 없고 결국 야곱의 움켜쥐었던 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헬도 요셉도 베냐민도 인간적으로 좋아하던 것 모두 없어지고
양떼, 소떼, 은금패물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죠
야곱이 아들들을 보낸 후 시몬이 다시 돌아 올 것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베냐민이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간 11명의 아들들이 요셉 앞에 나타나니까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보자마자 바로 알죠
모른척하고 너희가 말하던 동생이 이 아니냐 하면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22년만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게 됩니다 그것도 애굽에서
김성윤: 이 사실을 요셉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잖아요
노우호: 그렇죠,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음식상을 차려 놓았는데 동생 베냐민의 자리에는 5인분을 갖다 놓습니다
김성윤: 많이 먹으라고...
노우호: 사실 먹지도 못하지만 5인분을 갖다 놓은 것은
그동안 형들 틈바구니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외롭고 굶었겠는가 하면서
5인분을 앞에 차려 준 것이죠
볼모로 잡혔던 시몬까지 함께 잔치를 베풀고
친형제가 맞구나 하면서 양식을 채워 모두 돌려보냅니다.
그때 11명의 형제들의 마음은 날아 갈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시몬도 되찾았고 베냐민도 데려가게 되었으니까
유다와 모든 형제가 기뻐하고 감격하며 집으로 가는데
요셉의 생각은 아무래도 형님들이 베냐민을 시기하고 질투할 것 같은데
베냐민을 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래서 베냐민 자루에 은잔을 몰래 넣고는 병사를 시켜서 잡아오게 합니다
그때 형님들이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일이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는데 은잔을 넣었으리라 생각도 못한 것이죠
병사들이 도착하여 배은망덕 하다고 하며 짐을 조사 한다고 할 때 우리는 독실한 사람으로 절대로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고 나이 순서로 짐을 풀어 가는데
마지막 전혀 예상치 못한 착한 베냐민의 짐에서 땡그랑 하며 잔이 나옵니다
아마 형님들이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애굽 총리에게 돌아가서 애걸하고 용서를 구해 보기로 하고
모두 짐을 다시 꾸려서 총리 앞에 옵니다
총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정을 이야기 하는데
베냐민은 아버지가 노년에 얻은 아들로서 하나는 없어졌고
만약 이 아이마저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는 자살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하는 말이 저를 대신 볼모로 잡아주시고
이 아이만은 제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모든 형들이 같은 마음인 것을 알게 됩니다
김성윤: 예전에 요셉을 팔아먹던 유다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졌어요
노우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죠
그리고 다른 형님들도 이런 어려운 날들을 겪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형님들의 변한 모습을 목격하고는
눈과 귀를 의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변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모든 일을 볼 때 사람이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증명 된 것이고
요셉도 이 사실을 알고는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됩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좀 더 이어지겠습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
29. 하나님이 연출하신 드라마
노우호: 요셉이 형님들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을 때
형님들이 굉장히 놀랐겠죠
놀라움이 연속되면서 형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힌 후 자세히 보니까 요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인류역사상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가 다시 있겠는가 생각 합니다
성경 안에 보면 이런 위대한 드라마가 가끔 있는데
예를 들면 에스더서의 드라마와 요셉의 일생 드라마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드라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를 데려오라고 하면서
아들들이 황금수레를 가지고 아버지 야곱을 모셔가기 위해 옵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반가운데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하다가
자기를 태우고 갈 황금수레를 보면서 실감을 하고
내가 죽기 전에 내 아들을 보리라 하며 기운이 소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먼 곳에서 오는 기쁜 소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 같이 기운을 솟구치게 하죠
그래서 이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아들 요셉을 만나고
얼마나 감격 하였겠습니까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최고 큰 나라의 총리가 되어서
아버지를 황금수레에 태워 모실 것을 어느 누가 생각 하겠습니까
우리가 요셉이라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면
요셉은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후 승천하셨는데
훗날 예수님께서 황금수레를 가지고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오실 모습의 비유죠
형님들이 팔았는데 원수를 갚지 않고
예수님도 유다가 팔았죠
요셉을 판 사람도 유다였고 예수님을 판 사람도 같은 이름의 유다 였습니다
한편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맡은 관원장은 결국 목이 메달린 것과
예수님 십자가 못박힐 때도
한편 강도는 구원 받게 되고 한편 강도는 버림받게 되는 것이
요셉이 예수님 그림자처럼 비춰 진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모시고 즐거워하는 소식이 바로왕에게 전해 졌습니다
바로왕이 총리의 아버지가 오셨으니 만나보기위해 초청을 합니다
야곱 뿐 아니라 12형제가 함께 잔치에 참여 하였을 것입니다
바로왕이 야곱을 만나자마자 질문을 합니다
어르신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고 물어 보니까
[창세기]
47: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김성윤: 바로왕의 눈에는 아주 늙게 보였나 봅니다
노우호: 예, 바로왕에게 아마 500살쯤 되어 보였을 것입니다
너무 애환이 많은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야곱 자신이 자기의 삶을 돌아 봐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에서와 다투기 시작해서 장자명분을 때문에 에서와 다투고
외삼촌과도 편안한 관계가 아니고 세겜 사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아들들 모두 야곱을 힘들게 하고 흉년이 계속되고
착한 아들은 죽거나 없어지고 다른 아들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못하고
예쁜 아내는 일찍 죽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도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게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이게 망각의 은혜를 주시고
또 기억한다고 할지라도 추억은 아름답게 비춰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야곱은 얼마나 혹독한 세월을 보냈던지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인생을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누구의 탓이겠습니까?
자신의 탓이겠죠
예, 자신의 성품 때문이죠
성품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품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기초인격 형성이 잘못되면 자기도 고생이고 주위 사람도 고생을 시키죠
야곱이 자신도 고생이지만 야곱 주변에 아들과 딸들
그리고 며느리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나 아버지의 축복을 정상적으로 받아야지
속임수를 가지고 악착같이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꾀를 부리면 꾀는 반드시 꾀의 댓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기를
[잠언]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사람의 축복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쟁취하므로 이루려고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정한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질 수 있도록
때를 따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고 쟁취한 야곱은
축복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가로챈 축복은
자기의 생애 중에는 거의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움켜진 것을 펴서 모든 것을 내어놓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이제 나타나게 됩니다
김성윤: 그렇군요
노우호: 양보하고 포기하면 잃는 자는 찾게 되고 얻게 됩니다
사실상 야곱이 잃어버리고 포기한 것이 애굽에 모두 있었잖아요
모든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 했는데 라헬만 없고 나머지는 모두 있었죠
자기가 애착을 가졌던 베냐민이나 시몬도 잃지 않고 요셉도 있었고
자신이 생각지 못한 부귀영화까지 애굽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김성윤: 많은 시간을 야곱이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는데
악착같은 자기 방법대로 자기의 꾀를 이용해 얻으려고 했던 야곱이
그렇군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시도록 인내하는 교훈을 말씀하고 있군요
노우호: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기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게 될 것이다 하며
인내 하면서 기다리는 믿음
기다리고 오래 참는 것은
믿음은 소망 사랑 모두에 꼭 필요합니다
믿음도 인내가 필요하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죠
조급해지면 스스로 실수를 하게 되지요
사람이 미련한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조급한자 보다 미련한자에게서 바랄 것이 있다고 합니다
조급한자는 반드시 실수하게 되고
또 인간적인 수단방법으로 하면 자기 꾀에 배부르게 된다고 하는 것이 교훈입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배울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못된 성질을 깨뜨려서 새사람 만드는데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야곱의 성품을 깨뜨려 새사람 되게 하는데
130년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깨뜨려 새 사람이 된 것이죠
야곱이 애굽으로 갈 때는 하나님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고 움켜질 것이 없었죠
야곱이 새사람이 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남은 17년 여생을 애굽에서 끝이 좋았지요
야곱은 지렁이 같고 악착같고 도저히 성질이 못되먹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러한 야곱이라도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 성질 때문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앙생활 하는 교회성도나 우리 가족들이나 우리자신을 돌아보면
아브라함이나 이삭같은 사람이 많지 않고 야곱같이 악착같은 면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버리지는 아니하지만
스스로 꾀를 많이 내어 어려움을 격는 수가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쓰지 않는 말이 있는데요
잃어버린 말 상실한 말이 있는데
하나님을 기다립시다
하나님께 믿고 맡깁시다
주님께 맡깁시다
이런 말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자신의 노력과 수단으로 쟁취하고 악착같이 움켜지는 모습들이
야곱의 삶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는거죠
요셉을 보면
요셉은 아무리 험한 날을 보낸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에 이미 약속한 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수단과 방법을 쓸려고 하면 요셉도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지혜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만 전혀 인간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순전하게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이 때가 되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때 까지
꾸준히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꿈이 22년만에 이루어 집니다
17세에 꾼 꿈이 39세에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죠
아마 감옥에 들어가서 절박한 날이 닥치고 기막힌 수령에 빠졌을 때는
그 꿈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낙심할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므로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 합니다
이것도 요셉에게 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세대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교훈을 남기는 아주 위대한 성경의 파노라마 같은 하나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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