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된 심장
손주희
친구 아들 결혼식 날이다. 파아란 하늘 아래 울긋불긋한 수채화 물감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둥실둥실 떠 있는 뭉개구름도 서둘러 산을 넘었다. 품절남 품절녀. 혼자가 아닌 둘이서 손잡고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것 같다. 만물이 일어섰다. 쪽머리 가르마처럼 잘 다듬어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나도 응원 받는 것 같아 설렜다.
신랑 신부가 정말 예쁘다.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청실홍실의 대명사, 사랑의 꽃인 결혼식이 신랑 신부에게 최고의 날인 이유다. 세월을 먹고 혼주가 된 친구가 곱고 아름다워 내 눈엔 그녀밖에 보이질 않았다. 조명이 그녀만 비춰주는 것 같아 대견하고 기뻐하는 마음까지 보였다. 오랜만에 대면한지라 한참을 얼싸 안았다. 따뜻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2년 내내 나와 단짝이었다. 교정에 있는 두 아름이나 되는 나무를 함께 안으면 그녀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를 열창하며 까르르 웃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교정 구석구석을 누비며 상호교류하던 시절이 불혹을 넘겼다.
그녀부부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전복조림과 홍어무침 등 1인분씩 한상차림 받았다. 혼주인 그녀는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나는 스테이크와 따뜻한 갈비탕 국물을 음미하며 먹었다. 그녀부부와 딸부부까지 내게로 와서 인사했다. 아기의 속살같은 살구빛 한복으로 예쁘게 갈아입은 신혼부부도 인사하러 왔다. 새신랑은 총각 때 친구신랑 모습을 쏙 빼닮아 더욱 정감갔다. 식장에서 놓친 사진도 찍었다.
건너편 빈 좌석에 누군가 걸어와서 조용히 앉았다. 내 눈엔 후다닥 달려와 앉는게 보였다.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까맣게 잊었다. 예식장에 분명히 왔을텐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아 나를 계속 찾았다고 했다. 좀 전에 그녀가 한참을 머물러 있어 유심히 보니 나의 뒷모습이 예전과 똑같다며 달려왔단다. 그의 아내는 교직에서 명퇴하고 작년에 결혼 한 딸이 아이를 낳아 손주보느라 못 왔다고 했다. 사십 년이 되었단다. 결혼한지 사십년이냐고 눈치없이 물었다. "아니, 삼십 년... "하더니 말을 아꼈다. 내 모습이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똑 같아서 좋다고 했다. 너무 놀라 그저 헛웃음만 나왔지만 애써 참았다.
바른자세로 덤덤히 앉아있는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초음파의 아기 심장박동기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아닌가, 보인 것인가. 초조해하면서 상기된 듯한 눈빛, 뭔가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는 듯 오물거리는 입술, 올라갔다 내려왔다 바쁘게 그네타는 입꼬리,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과 몸이 바르르 떨리며 점점 앞으로 쏠렸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지만 같은 반 단짝인 내 친구와 동갑내기 친척이다. 그가 대학 다닐 때 친구와 함께 자연스럽게 자주 만났다. 그녀는 그가 동갑이지만 어릴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직장 다닐 때도 가끔 셋이 만났다. 눈치없던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고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러나 친구가 소중하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도 어떤 말도 묻지않고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소식을 읽어줬다.
내가 결혼 후 아이가 셋이 되던 해에 그는 용기내어 생일 축하 전화를 했다. 여동생 생일과 같은 날이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란다. 놀란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멋쩍게 웃고 전화를 끊었다. 이듬해 부터는 문자로 대신했지만 침묵으로 답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연말이면 상여금 대신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팔십 년대에 홍콩 여행을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 밟기 전 우연히 그를 만났다. 오랜만이였지만 나는 일행이 있어서 짧은 인사만 나눴다. 그 후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나눈 인사는 삼십 년도 더 지났다. 그 때의 청년 모습에서 지금은 피로에 지친 중년을 분장한것 같다. 여전히 수줍은 미소에 당당하면서 차분해 보였다. 나의 가정에 영향을 끼칠까봐 계속 참았다고 했다. 4년 남은 퇴임소식을 끝으로 형의 호출에 이끌러 일어서면서 아쉬움을 연신 토로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악수를 청했다. 마음 편하게 보내려고 한 행동은 오히려 나를 위한 것 같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게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몇차례 밀렸지만 우려보다 빨리 도착했다. 다섯 시간만에 도착해 차는 멈춰도 두 다리는 진동을 느끼며 여전히 달리는 것 같았다. 승용차 안에서 여독을 풀면서 그에게서 온 문자를 읽었다. '너무너무 반가웠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한 게 없고 잘 살고 계시니 더 더욱 좋으네요. 긴 세월이 지났어도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그리고, 먼 길 운전이 힘들까 염려하는 말을 보탰다. 예전엔 말하지 않고 웃기만 하여도 그 떨림을 읽을 수 있었다. 언제나 난 모른척 했다. 세월이 흐르니 가능한 걸까. 마음을 드러내 글로 표현하니 부정하기도 인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늘 귀하게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그래야 건강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마지막 인사같은 느낌으로 답글을 보냈다. 아무답이 없었다. 고마웠다. 그의 집요한 성격이 짐작된다. 셀레는 그의 마음은 내겐 응기상(應棄想-살면서 절대 마음에 담아서는 안 되는 생각들)이라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읽었으리라 믿고 싶었다.
실제로는 한 번 쯤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왜 좋은지. 과거형이 아니고 사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어찌하여 잊지 않는지. 나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그의 가정에 한 방울의 먹 물이라도 튀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십 대에 환하게 웃던 내 모습이 귀여웠겠지.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두근거리는 마음 움켜쥐고 혼자서 무지개 다리 위에 걸터앉았으리. 내가 먼저 결혼 했으니 어찌하리. 청춘의 붉은 심장을 부여잡고 힘들지 않기를 바랬지만 살면서 생각지도 못했다.
사랑의 콩깍지도 결혼생활 도중 벗겨지기 십상이다. 이루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붉은 심장에 누런색을 한 겹 두 겹 색칠하며 달래 온 것인가. 산자락에 가려진 부처처럼 겹겹이 금칠한 심장을 안고 손주재롱에 행복해 하며 오래오래 건강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