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그리스도(사61:1-3)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죄에 팔려 죄의 노예가 된 불쌍한 사람들에게 친히 속전을 치르시고 자유를 주셨다. 과거 포로 상태의 비참함과 믿는 자가 얻을 자유함은 어떤 것일까?
① 포로란 노예와 같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비참한 인간은 없다. 이 세상에는 노예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노예 제도가 사람의 인격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사람들 중에는 형벌을 받는 것보다 노예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노예로 타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부자유함은 현재와 미래에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비인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사람들은 죄를 범함으로 자유와 평화를 박탈당하고 노예가 되었다.
② 하나님께서는 갇힌 자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해방자이시다. 해방자, 이 얼마나 위대하고 통쾌한 이름인가? 그리스도는 포로 된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먼저 당신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 되셨다.
㉠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옮겨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주님께서는 광대한 영의 세계에 비해 육체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사실에 괴로워하셨다. 주님께서는 모든 물질적인 고통, 즉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슬픔, 그리고 어리석은 자라는 조롱을 겪으셨다. 그분은 인습과 관습에 얽매인 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로 괴로워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과 부조리로부터 주님은 점차적으로 자유로워지셨고, 결국은 모든 속박을 자신의 포로로 만드셨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속박을 친히 체휼하신 분이므로 우리의 해방자가 되신다.
㉡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교훈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율법의 속박을 사랑의 자유로 변화시켰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든 인류가 매장(埋藏)되었던 육체적, 정신적인 무덤 속에서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생명과 영광을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께 서는 언약의 첫 열매로서 신비한 영의 몸으로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속박과 죄악의 무덤에서 부활한 것과 같다. 죄의 사슬은 이제 사라졌다. 우리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J. Vaugham, M. A.).
출처: 『톰슨3 성경주석』, “이사야서 61장”.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주석이 없는 초신자에게는 구입의 계기가 될만한 좋은 글입니다.
공감과 댓글 감사합니다.
<IVP 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포로”
고대에 전쟁에서 진 주민들은 보통 포로로 되었다. 비록 드문 경우에 어떤 사람들은 잘 대우 받을 수도 있었지만(왕상 20:39, 왕하 6:21-22),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다(삼하 8:7,참조. 삿 8:7).
여인들과 아이들도 잔인하게 살해될 수 있었다(왕하 8:12; 15:16; 암 1:3; 나 3:10).
그러나 종종 그들이 가축과 다른 소유물들과 함께 전리품으로 취급되었다(신 20:10).
죽임을 당하지 않은 적군의 성 주민들은 보통 손과 발이 차꼬에 묶여 종으로 끌려가거나 강제로 노역을 하였다. 여인들은, 비록 차꼬에 채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데려간 군인들에 의해 강간당하기 쉬웠다(나 3:5).
앗수르인들과 이후의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따라 경험한 바와 같이, 포로 된 민족들을 뿌리째 뽑아 넓은 지역에 재정착시켰다(참조. 왕하 17:24 ; 24:12-16; 25:11-12).
포로들에 대한 앗수르인들의 대우는 특별히 거칠고 잔인하였다. 포로 된 통치자들은 때때로 앗수르의 수도로 끌려가서 승리한 왕의 전차를 끌었다.
포로 된 왕의 코나 입술에 고리가 꿰뚫어지거나, 혹은 유다의 히스기야처럼(참조. 겔 19:9, 여호야긴) 그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서 철장에 넣어져 성문 옆에 두어질 수 있었다. 모반을 일으킨 포로들은 그들의 손과 다리, 코와 귀가 잘려지고, 그들의 눈은 삐쳐 나오고, 그들의 혀는 그들의 입으로부터 찢겨짐을 당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사형을 선고 받아 참수형이나 말뚝에 꿰찌름을 당하는 형에 처해졌다. 만일 그가 말뚝에 꿰찌름을 당한다면, 그 희생자는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항문과 복부나 혹은 목이 꿰찔러지도록 뾰족한 말뚝 위에 놓여졌다. 또한 포로들은 그들의 가죽이 벗겨짐을 당하고, 그것이 성벽에 펼쳐지기도 하였다.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포로들에게 주어졌다.
@장코뱅 포로의 비참함은 너무나 흉악하지만 왕이 적에게 붙잡혀 당하는 능욕은 더 참담하군요ㅠㅠ
전쟁 포로가 되어 고문과 수치, 능욕을 당한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특히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능욕은 당장에 죽이지 않고 수치와 모멸과 절망과 고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눈요깃감이 되게 했던 것이 너무나 잔인하네요. 저런 상황에서는 빨리 죽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 같아요.
모든 인간들이 마귀의 포로가 되어 죽기를 바라며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셨으니 그 해방의 기쁨이 너무도 큽니다. 주님, 영광을 받으소서!!!
@코람데오 아담이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뺏기고 원수에게 사로잡혀 능욕을 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복하여 주시기 전에는 자유할 수가 없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8:32-34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노베 아멘 🙏 🙏 🙏
@노베 아멘22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신 것이지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