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의 길라잡이 / 12 영적 치유
원제 : Talking with God (하나님과 이야기 나눔)
by Mrs, Gwyne Dresser Mark (귀네 드레서 마-크 여사 지음)
12 영적 치유
“주께서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신7:15)
우리가 만일 사람의 몸의 근거(reason)를 안다면
영적인 수단에 의해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현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영적 치유'는
마음에 광범위하게 시인되는,
즉 각 개인의 삶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이
존재의 육체적 영역에
질서를 따라, 기본적으로 경이롭게 나타난 것입니다.
(Spiritual healing is an orderly, basic and wonderful manifestation,
in the physical area of existence,
of what is widely acknowledged mentally:
God’s presence and power at the core of each individual’s living.)
그러한 치유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영적 능력에 의한 치유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행해졌으나
교회의 몸이 점차 그 목적의 순수성을 잃게 되자
교회의 기능으로서의 그것은 상실되었습니다.
이후 몇 세대에 걸쳐 영적 치유는
주로 신비와 기적에 속한 일이 되었고
그것은 얼마쯤은 존속되었으나
이해되지 못하고 효율적으로 활용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의 장애(disorders)에 대한 치료가
‘비물질적(non-physical) 수단’을 통해 유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약 100년 전부터였습니다.
조직된 그룹을 따라 개인들이 이 현상에 대한 연구를 했고
다양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그들이 배운 것을 가르치고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치료 방법은
성공적이기도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질병이 치료될 수 있는 영적인 원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몇몇 방법들은 의심스러웠고 늘 있는 사기꾼들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치유는
특히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많은 교회 교단과 종교, 의학의 모든 분야에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현재 ‘영적 치료’라고 불리는 것을 진지하게 조사, 활용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초자연적 치유’에 대한 너무 많은 인증된 기록들을 발견했고
그것들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영적 치유가 작용하는 법칙’이 있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 법칙들을 자기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평화를 달성하는데 근본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치료는
단순히 교직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헌신적인 일일 뿐 아니라
특히 개인이 스스로를 질서 안에 유지하기 위한 학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학습에서는 이야기의 양면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무엇이 실패의 원인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이 성공인지를 아는 것만큼 도움이 됩니다.
실패는 치유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장애의 모든 치유는
‘개인 안에 있는 비물질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한 측면으로
일반에게 알려진 ‘살고자 하는 의지’는
종종 병의 흐름을 결정하고
의사의 진단에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치유되며
신체검사에서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을 때
여전히 아픔은 남아있고
기도는 신체 기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영적 치유는 의학적 도움을 대체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의학의 과학은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부여하고 사용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약물 치료의 법칙은 영적 치료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로 세워졌습니다.
그것들은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다만 발견되고 적용될 뿐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약물이나 수술로 병이 언제나 고쳐진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여기에도 사람의 지식과 기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적 치유는 의사의 일을 크게 강화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의사가 아직 익히지 못한 것을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영적 치료를 선택하고
모든 의료 노력이 실패한 후에 나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오늘날 과학적 노력에 대한 중요한 보완책으로
영적 치유에 의존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치유가 예상한 형태로 찾아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손상된 기관이나 조직의 복구가 없어도
그 사람 전신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데
이것은 모든 기적 중에서도 대단히 큰 기적입니다.
어떤 기관과 혈관이 상했을 때
가까운데 있는 기관이나 혈관이 잃은 작용을 인계한다는
보상의 법칙은 의학도 인정합니다.
사람이 손상이나 결함을 가지면서도
불능을 극복하고 유용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영적 치유의 법칙에 의한 것입니다.
남보다 불리한 조건에
눌리지 않고 변함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몸을 다스리는 영의 힘 때문입니다.
세상은 보통으로는 일평생을 병상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불구 장해를 몸에 지니면서 몸으로 거뜬히 활동에 복귀하는
역동적인 영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거야 말로 진정한 영적 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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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라는 말은 ‘완전체(whole)를 만드는 것’을 뜻하고
완전체라는 것은 부서지거나 나뉘지 않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서 완전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치유는 사람이 그의 최상의 차원, 또는 영적 차원에
이르는 것에 의해 완전체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The word heal means “to make whole.”
And whole means unbroken, undivided, complete and perfect.
Spiritual healing, then, is helping a person to become whole
by reaching him through his highest, or spiritual, level.)
사람은 땅 위에 있는 동안
결코 육체만으로 또는 정신(mentally)이나 영만으로 기능하지 않고
이 셋 모두가 동시에 기능하며
만일 그 중 하나에 장애가 생기면 다른 것도 기능을 못합니다.
때로 육체의 질병은
정신적 또는 영적 장애의 가시적 결과일 때가 있지만
또 병의 원인이 육체 차원에 있어도 정신과 영의 기능이 방해되어
그 사람은 완전체가 아닙니다.
‘영적치유’란 말은 보통 영을 치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히 영에 의한 치유를 뜻하고
또 마음과 몸의 치유도 포함합니다.
아주 현명한 의사는 사람에게 있는 모든 형태의 장애가
‘영의 힘’이라고 하는
최종 통제력에 종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즉각적인 치유를 일으키는 유일한 힘이고
때때로 그 치유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록을 조사한 사람들에 의해 인정됩니다.
의학적으로 희망 없는 상태에서
비정상으로 빠르게 치유되든지 점진적으로 치유되든지 하는 것은
영적치유가 극히 많이 취하는 형식입니다.
그것이 몸에 나타나게 되는 데는 충분한 영적 이유가 있습니다.
치유가 생물학적 장애와 관련이 있는 것은
몸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서가 아니라
장애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또는 영적 장애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명백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 치유를 통해 육체적 질병을 완화할 때,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영적 측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영적 치유와 중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새 사람이 되는 것,
즉 대립으로 조각조각 찢어져 분리되지 않고
모든 차원에서 조율이 잘 이루어져 기능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생을 향한 노력을 통해 사람은 점차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완전함을 자기 안에 실현합니다.
영혼은 주님께 복종하고
몸은 영혼에 복종하도록 훈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종이 이처럼 시종일관할 때에는 몸의 질서가 잡힙니다.
중생은 질서와 일체, 즉 사람의 완전함을 의미하며
육체적 건강은 그것의 외적 나타남입니다.
그리고 이를 향한 첫 걸음은
자기 자신에 의해 생기는 장애를 없애는 것입니다.
만일 어린아이가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듯
우리의 태도가 단순하고 신뢰에 차 있다면
그 기도는 주님께 미치게 됩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않으면
결단코 거기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단순하다는 것은
그것이 쉽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장애물을 치우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겸손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투쟁과 발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믿음의 가치는 증명됩니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영적 치유의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하나님과 사람의 친밀한 관계,
그리고 물질에 대한 영의 지배를 믿는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활용하지 않는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일 완전체를 이루는 일에 이 믿음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육체가 영혼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형태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관계를 완전하게 지탱할 책임이 있습니다.
병중에 우리들은 흔히
‘만일 내가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하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단순하고 재치 있게 기도를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도움을 얻는 직접수단이 되며
이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의 은사가 주어졌지만
대분의 영적치유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기도가 가진 놀라운 잠재력을 이해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영적 치유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창조한 것을 질서 안에 지키시는 주님의 힘을
단순하게 시인하고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러한 힘에 도달하여 그 힘이 유입하는 통로가 됨으로
몸과 영혼이 조화로운 협력 속에 그들의 유대가 막히지 않고
단절되지 않게 하는 수단입니다.
영적치유는 존재하는 최상의 원인이 되는 영을 위해
존재하는 최대의 힘인 영의 힘으로
질서가 무너진 사람을 완전체(whole)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5:48).
(참고 : 스베덴보리 증언
* 사람은 한 개의 영이요
사람은 누구나 영혼과 마음과 육체로 되어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입고 있는 몸은
그가 이 지상권(地上圈)에서 많은 일을 다 하기 위해서 봉사한다.
사람의 몸에 생기는 것과 영에 생기는 것 사이에는 늘 대응이 있다.
* 몸은 영에서 사람의 꼴을 얻는 것이므로 영혼을 닮고 있다.
사람 안에 살고 또 느끼는 것은 모두 그의 영이 하는 것이다.
눈과 귀의 생명은 몸의 것이 아니요 이들 기관 안에 있는 영의 것이다.
* 영혼은 머리의 제일 안 쪽 뿐 아니라 몸의 가장 안쪽도 구성한다.
같은 모양으로 영혼과 몸의 중간적인 존재인 마음도
머리 부분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지로는 몸에서 나온다.
그래서 영혼과 마음이 의도하는 행동은
그 즉시 몸으로부터 나온다.
영혼과 마음은 그 결과들을 생기게 하기 위해서
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 결과는 몸에서 나오고
결과를 낳게 하는 원인은 마음에서 나온다.
몸에 생기는 것은 어떤 것도 마음 밖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람의 영은 그 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사정 안에 있다.
* 영적인 병은 영적 생명을 해치는 악이며
자연적인 병은 이것에 대응한다.
인류의 모든 병은 이 근원에서 나온다.
모든 악은 감염되며 나중에는 모든 것을 범한다.
만일 영적생명이 병들면
그것에 유래하는 악은 자연적 생명에도 미친다.
* 병은 사람 안쪽의 것을 손상하게 하는바
무절제, 질투심, 증오, 복수심 따위의 병의 근원인
육욕(肉慾)이나 격정에 대응한다.
만약 사람의 안 쪽 것이 파괴되면 밖의 것도 해를 받고
그 때문에 병에 걸리게 된다.
* 가장 작은 맥줄은 사람 안 쪽 것의 연장(延長)이기 때문에
악은 극히 미세하고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맥줄을 닫고
다음에 크고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맥줄은
그것들의 미세한 맥줄로 되어있다.
거기에서 비로소 가장 안쪽의 장애가 생기고
거기에서 피의 시초이면서 맨 안쪽인 불순한 것이 생긴다.)
* 만일 인류가 선한 삶을 살고
안쪽의 것이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다면
극히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맥줄도
그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병이 사라질 것이다.